2018년 9월 15일(토)~16일(일), 가평 물미연꽃마을 > 클럽 에스프레소 > 이일유발효밥상 > 캔싱턴 리조트 가평
청도, 블라디보스톡... 두레 들살이 장소를 정하면서 벌써 우리는 동북아 투어를 마쳤다. 그렇게 몇달에 걸쳐 어디로 갈지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담당자에게 일임하자' 였다. 그렇게 태은아빠(길)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태은아빠는 문체부에 근무한다. 게다가 목소리가 아주 좋다. 그래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 들린다. 아무래도 업무상 지역 관광 콘텐츠에 대한 정보가 많다보니 두레원들 모두 믿고 맡기는 분위기였다. 자유학교 사람들은 두레 들살이 장소가 어디든 크게 개이치 않는다. 어디를 가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다보니 숙소에서 밥먹고 수다만 떨다 와도 그냥 좋아한다. 우리가 이런 조직이다.
첫번째 여행지는 '물미연꽃마을'이다. 북한강에 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된 마을이다. 현재 마을터는 수몰 전 마을의 뒷산 중턱쯤되는 곳이다. 마을 앞에는 홍천강이 흐르고 마을은 연잎으로 덮인 아름다운 호수을 품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좁은 길을 따라 고개를 넘다보면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고개 너머에 별천지가 펼쳐질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지난 여름이 유난히 더웠기에 청명한 가을 날씨가 더없이 고맙다.
마을 회관 식당에서 연잎밥을 먹었다. 홍천강과 연잎 호수를 배경으로 이렇게 소박한 상차림에 화려한 점심은 처음이다.
연잎밥은 이 마을 이장님이 직접 지어주셨다. 이장님은 이마을에서 태어나신 토박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마을이야기, 연꽃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손님들은 요리사 앞에서 겸손하고 요리사는 손님을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한끼 밥에도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참 좋았다.
이번 여행은 가평 주민여행사 '가치가'와 함께 했다.
문체부에서는 지역에 특화된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지역마다 '관광두레PD'를 공모해서 선발했다. 관광두레PD는 지역주민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마을의 역사, 이야기, 음식들이 녹아있는 관광상품을 만든다. 이번 여행을 안내해준 조성주PD는 전국 최고의 관광두레 PD로 뽑힌 분이다.
점심을 먹고 '가치가'의 한인수님의 진행으로 숲 예술 체험을 했다. 여유있게 강가와 마을길을 거닐면서 그림도 그리고 쉬고 수다도 떨었다. 이동식 칠판처럼 생긴 큰 액자틀에 투명한 아크릴 판이 끼워져 있고 그 뒤에 마을을 배경으로 아이들과 엄마들이 섰다. 아이들과 엄마들의 실루엣을 따라 그림을 그린 다음, 액자틀을 이리 저리 옮겨 보았다. 배경이 바뀌니 그림은 그대로인데 표정이 바뀌는 느낌이다.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다.
투명한 작은 액자를 하나씩 받아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자유학교에 재주꾼들이 많다. 그림을 빨래 늘듯 강을 배경삼아 걸어놓고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풀어보았다.
마을길을 여유있게 걸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좋았다. 대충 훑어보고 게을러지니 힐링이 된다.
두번째 여행은 '클럽 에스프레소' 커피 체험이다. 커피 체험은 클럽 에스프레소 '마은식 대표'가 맡아주셨다. 클럽 에스프레소는 꽤나 유명한 커피집인가 보다. 클럽 에스프레소 부암점에는 문대통령이 단골이란다. 문대통령이 즐겨찾는 원두 배율로 '문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한다.
마은식 대표는 달변이 아니어서 좋았다. 수줍어하고 살짝 상기된 표정이 맘에 들었다. 다양한 원산지의 커피를 맛보면서 커피이야기를 했다. 마대표는 커피의 원류를 찾는 여행자다. 커피에서 원산지의 바람, 흙, 물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멋있다.
원래 커피는 필터로 거르지 않고 미숫가루처럼 원두와 함께 마셨다고 한다. 하얀 밀가루와 정제 설탕에 익숙해지면서 원래 밀가루와 설탕이 새하얗다고 믿는 것처럼 우리도 필터로 깨끗하게 걸러낸 아메리카노가 커피의 전부인줄 알고 커피를 마셨다. 마은식 대표는 커피의 원류를 찾기 위해 상상을 한다. 옛날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했던 옛날 사람들이 살던 마을, 가축, 사람들을 하나씩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옛날에는 커피를 이렇게 마셨을거야 상상한다.
우리 아이들도 상상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일이 탐험이 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커피를 마실동안 아이들은 '가치가' 박승걸님과 놀이를 했다. 박승걸님은 유명한 연극연출가이다. 대표작으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가 있다. 아이들이 어떻게 놀았는지 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무척 재미있었다고 한다.
체험을 마치고 각자 마시고 싶은 커피를 한 잔씩 했다. 숙소로 들어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나왔는데 PD님이 마대표님의 작업장을 구경하고 가잔다. 마대표는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한다. 작업장에는 목공 장비들이 가득했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드는 작업대도 있었다. 아빠들의 눈이 커졌다. 부럽다. 요즘 아파트는 방이 보통 3개이다. 안방은 사모님들의 공간이고, 나머지 방들은 아이들 차지다. 아빠들은 거실 쇼파와 한 몸이 된다. 자유학교 부모들의 집에는 거실에 TV가 없는 집이 많다. 이런 집에서는 쇼파와 한 몸이 되기도 어렵다. 아빠들도 놀 곳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 남자들은 그렇게 차고에 집착하나보다.
부럽다. 몸 서리치게 부럽다.
후기를 쓰는 지금에서야 사진 한장 안 찍은 것이 아쉽다.
숙소는 캔싱턴 리조트 가평점이다. 조종천이 흐르는 강변에 아담하게 지어진 리조트다. 오래되어서 낡았지만 화려하지 않게 주변 풍광을 해치지 않아서 좋다.
저녁은 리조트 앞 '이일유 발표 체험 & 밥상'에서 먹었다. 원래 가평에서 소박하게 식초와 발표식품을 만들던 곳인데 조성주 관광두레PD를 만나 발효체험, 발효밥상, 발효도시락, 천연식초, 발효장아찌를 만드는 가평지역 대표 체험 코스가 되었다. 도시 사람들의 여행 트랜드와 감성을 잘 아는 PD와 내공을 갖춘 지역 주민의 협업으로 투박했던 식초와 발효식품이 '이일유'라는 브랜드와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로 태어났다.
발효 식초로 맛을 낸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했다. 미리 추석 선물도 장만했다.
너무 맛나고 신나게 멋었나?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사진 몇장을 퍼왔다.
숙소에 돌아와서 두레 들살이의 밤을 보냈다. 아이들은 노래방으로 마실보내고 아빠 엄마들은 따로 모여 앉아서 곡차와 함께 수다를 떨었다. 정치, 경제, 문화, 청년실업, 수능개편안, LG 트윈스의 부진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주제로 썰전을 찍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쉽게도 남북문제는 다루지 못했다. 다음 두레 모임에서 다루겠지.
아침은 라면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조종천 강변에서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강변을 내려다보면서 우아하게 여유를 부렸다.
두레 들살이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행복하다.
마지막 두레들살이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만들어주신 태은아빠, 그리고 우리 두레 식구들 모두 잊지 않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바쁘지 않고 느리게 걸으면서 구경꾼이 아니라 손님이 될 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원래, 이 글보다 백배는 잘 썼는데....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글이 사라지는 바람에... 혈당이 떨어져서 글이 많이 허접해졌습니다. ㅎㅎ
여행을 함께한 가족들
태은이네 / 다인이네 / 지우네 / 준영,지원네 / 연우네 / 서연, 수연네 / 유현, 소운네 / 수현, 유준네
첫댓글 맛있고 행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우아~
멋진 후기입니다...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죠...
마지막 자유학교 생활이시라,
마지막 들살이 후기를 부탁드려서 부담 많이 되셨을텐데,
멋진 후기로 마무리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ㅎ
이처럼 맛난 후기를 쓰는 능력자이시네요~~^_^..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들살이 감동과 아쉬움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멋진 후기쓰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이리 긴 후기는 필히 워드프로세서 작업 후 복사하셔야~ 홀랑 날아갈 때 영혼 탈탈 털리는 기분이란...ㅜㅜ
그럼에도 이리 멋진 후기를 남겨 주시니 진정 능력자이십니다.
돌고래의 애정의 깊이가 느껴져요
마지막해라서 더더더 두레라는 공간과 사람에 대한 돌고래의 애정이 느껴지네요. ^^후기글로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이예요~~좋은 여행 만들어 주신 길께도 감사드립니다. 발효밥상은 계속 생각나는곳~~가까운곳에 이런 밥집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