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HP2 스포츠
최강, 최고라는 수식어는 그 이상이 없다는 전제하에 사용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 설정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 가운데 가장 큰 배기량을 갖고 있다거나, 가장 강력한 출력을 낸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BMW HP2 스포츠의 한계를 설정한다면 BMW의 전통적인 엔진인, 수평대향 2기통 엔진을 사용하는 모터사이클 가운데 최강의 칭호를 허락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말 그대로 박서에서의 최강으로 끝나는 문제일 것인가는 보장할 수 없다.
▲좌우로 튀어나온 형상의 수평대향 2기통 엔진, HP2 스포츠의 경우 일반적인 박서 엔진보다 높은 위치에 엔진이 얹어졌다.
High Performance Boxer
HP2 스포츠의 HP는 고성능을 뜻하는 하이 퍼포먼스(High Performance)의 약자이며, 뒤에 붙는 ‘2’는 수평대향 2기통 엔진을 뜻한다. 다시 말해 고성능 박서의 스포츠 모터사이클이란 뜻이다. BMW의 HP2 시리즈는 2006년 처음으로 등장한 HP2 엔듀로를 시작으로 HP2 메가모토, 그리고 HP2 스포츠로 넘어오게 됐다.
▲HP2 시리즈의 서막을 연 HP2 엔듀로
▲HP2 스포츠와 함께 등장한 HP2 메가모토
이런 HP2 시리즈는 모두 박서 엔진을 기본으로 하고 있되 기존의 박서 엔진이 낼 수 있는 출력의 한계치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 각 파츠에 있어서도 하이 퍼포먼스를 추구했다.
우선 전면 헤드라이트 부의 카울은 누구라도 손쉽게 카본파이버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본 파이버 특유의 무늬가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HP2 스포츠의 모든 카울은 카본 파이버를 사용해 경량화를 추구했다. BMW의 컬러링이라고 할 수 있는 화이트, 블루, 블랙의 컬러가 어우러지고 있다. 다시 말해, 카본 파이버에 도색을 입힌 호화스러운 구성인 것이다.
▲HP2 스포츠의 카본 파이버가 사용된 곳을 표시한 사진
이 처럼 호화스러울 정도의 구성은 HP2 스포츠 전체에 걸쳐있다. 브렘보의 모노블럭 레이싱 브레이크 시스템, 올린즈 서스펜션, 모토지피 스타일의 계기반, 아크라포비치 사의 머플러까지 그 호화스러움을 따지자면 하나 하나 열거하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다.
이에 누군가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박서 엔진에 이렇게 많은 비용을 쏟아 붓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에 HP2 스포츠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좌)HP2 스포츠의 탑 브릿지, 우)조절가능한 스탭, 모두 알루미늄 절삭 제품으로 경량화를 추구했다.
▲서스펜션은 모두 올린즈의 풀 어저스터블 타입을 사용한다. 물론, BMW 특유의 텔레레버 방식과 페러레버 방식을 사용한다.
쉴 새없이 몰아치는 펀치
시동을 걸면 박서 엔진 특유의 진동과 함께 HP2 스포츠는 깨어난다. 더블 오버헤드 캠샤프트를 적용한 박서 엔진은 다소 조급한 느낌을 준다. 스로틀 그립을 튕기듯 당겨 반응성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리어 시트가 완전히 생략되고 그 부분을 사일렌서로 사용하고 있는 배기음은 잘 억제되어 있다. 앞서 밝혔듯, 이 머플러 일체는 슬로베니아의 머플러 브랜드 인 아크라포비치의 제품이다.
▲HP2 스포츠의 머플러는 슬로베니아의 머플러 브랜드 아크라포비치의 제품이다.
BMW의 R1200S를 베이스로 개발됐지만 그 감각은 매우 색다르다. DOHC화 된 엔진이기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마력의 손실이 무척 적은 느낌이다. 출발 이후에 가속감이 특히나 그렇다. 전 부분에 걸친 경량화는 달리기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HP2 스포츠는 기존 R1200S를 베이스로 개발됐지만, 실제 달리기 성능에서 전 부분에 걸친 경량화는 빛을 발한다.
권투 선수의 글러브는 손을 보호함과 동시에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러브의 무게와 부피 때문에 미세하게 펀치의 속도가 줄어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HP2 스포츠는 글러브를 끼지 않은 펀치, 말 그대로 베어너클인 것이다.
그것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소나기 펀치다. 기존의 박서 엔진보다 회전 영역을 넓힌 HP2 스포츠의 엔진은 최대 9,500rpm까지 돌아간다.
▲경량화를 거친 HP2 스포츠는 말 그대로 글러브를 끼지 않은 권투선수의 펀치를 실감하게 해준다.
모토지피 스타일의 디지털 계기반 상단에는 총 8개의 램프가 박혀있는데, 맨 왼쪽의 두 칸은 녹색으로 그 뒤의 두 칸은 노란색 그리고 마지막까지는 붉은색의 램프가 점멸한다.
이는 풀 디지털 계기반에서 라이더의 성향에 따라 엔진 회전계를 설정, 램프가 점멸하는 시점을 조정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엔진의 영역대를 설정해, 램프의 점멸만으로 시프트 타이밍 등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 뿐만 아니라 계기반에서 랩 타임을 잴 수 있는 등의 다양한 기능들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너스에 불과한 것이다.
▲모토지피 스타일의 디지털 계기반, 다양하고 세밀한 조작이 가능하다.
당신은 HP2 스포츠를 감당할 수 있는가
HP2 스포츠로 빠르게 달리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물론 최근의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 가운데 빠르게 달리는 것이 어려운 모터사이클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HP2 스포츠는 2,000rpm만 넘어가면 어디서나 충분한 출력을 분출한다. 최대 토크가 쏟아지는 6,000rpm을 유지하면서 가속하면 시속 200km까지 도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BMW의 자료에는 최고속은 그저 ‘200km 이상’이라고 표시하고 있지만, HP2 스포츠는 200km 이상의 속도를 즐기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기존 박서 엔진을 장착한 BMW의 모터사이클과 비교했을 때, 엔진이 다소 높게 장착되었다.
최고속으로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는 모터사이클이 없다는 전제하에 HP2 스포츠는 타 메이커의 슈퍼 스포츠와 경쟁할 만큼 강력하다.
특히, 브레이크는 감동적이다. 최상급 레이서가 아니고서는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모노 블록 브레이크 캘리퍼는 압도적인 브레이킹을 자랑한다. BMW가 자랑하는 ABS 시스템은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브레이크 레버의 유격을 직접 조정한 것은 아니지만, 당기면 당기는 데로 브레이킹이 가능하다.
▲좌)브렘보의 모노블럭 캘리퍼, 우)리어브레이크 역시 브렘보의 2 피스톤 제품을 사용한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브레이크 레버를 어느 정도 당긴 상태에서 그 감속 비율이 매우 일정한 것이다.
레버를 더 당기지 않았는데, 조금씩 감속이 빨라진다거나 점차 밀리는 느낌이 든다거나 하는 일은 일체 없었다.
▲HP2 스포츠는 기존에 BMW가 갖고 있던, 내조의 여왕과 같은 이미지는 거의 버렸다.
언제나 시승을 마칠 즈음엔 시승에 대한 미련이 남지만, HP2 스포츠는 더욱이나 강렬한 미련이 남았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타고도, 전혀 내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오해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HP2 스포츠가 편안한 모터사이클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라이더가 생각할 수 있는 준비를 모두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모터사이클은 흔치 않다. 그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HP2 스포츠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돈과 시간, 그리고 당신의 열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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