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 달구나
김 진 영
영화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거기에 나왔던 놀이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달고나 만들기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SNS에서 나오는 달고나 만들기 동영상이며 어른들의 추억 놀이에 아이들 또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언니와 통화를 하는데, 딸이 달고나 만들기를 하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달고나 만들기 세트를 구매했단다. ‘달고나’라는 말을 하니 초등학교 때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학교 앞에서 연탄불 위에 국자를 올려서 달고나를 자주 만들어 먹었는데, 언니는 달고나 만들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달고나보다는 쫀득이를 눌러 먹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 집에서 몰래 달고나를 만들어서 국자 여러 개를 태워 먹었던 말썽꾸러기였다. 언니가 못 하게 말렸지만 내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나는 완성된 달고나를 언니와 남동생에게 나누어 주며 공범으로 만들었던 치밀한 구석도 있던 아이였다.
언니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딸내미가 학원에 다녀와 집에 들어서자마자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엄마를 보며 달고나를 만들 거라고 하더란다. 해보지 않았던 거라서 긴장한 탓인지 주방이 난리 날 것이 걱정되었던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달고나가 반갑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의 시도는 실패도 돌아갔다고 한다. 달고나가 틀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더란다. 시무룩한 딸에게 “이런 건 이모가 잘해!”라고 했단다. 그 말에 이모랑 꼭 만들 거라며 결심하는 딸을 바라보아야 했던 언니는 웃으며 토요일에 놀러 온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은 나도 긴장되기 시작했다. 나무젓가락으로 달고나 막대사탕만 만들어 봤는데 누르는 건 해보지 않아서였다. 그날 저녁 유튜브로 ‘달고나 잘 만들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조카에게 좋은 이모가 되고 싶어서 늘 이미지 관리를 해오던 터였다. 한 번씩 보드게임을 할 때면 진심이 되어서 놀기는 했지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조카가 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이미지 관리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는 언니에게 이모는 친구 같기도 하고 선생님 같다고도 하더란다.
대망의 토요일이 되었다. 우리 집에 도착한 조카는 가방부터 펼친다. 만들기 전에 주의해야 할 부분을 재차 말하며 달고나 잘 만들기 꿀팁을 알려주었다. 소다 양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데 적게 넣으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많이 넣으면 너무 부풀어 오르며 맛이 쓰다고 말하니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집에서 달고나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을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달고나는 성공했다. “음, 역시 이모야. 이모는 할 줄 알았어!”라고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조카의 칭찬은 달콤한 노래가 되어 나를 춤추게 했다. 뭐든 잘하는 이모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둥둥 날아갈 것 같았다.
모양을 긁는데 이쑤시개 대신 바늘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소독한 재봉틀 바늘을 주었다. 재봉틀 바늘이라 뒷부분이 두껍고 길이도 짧아서 아이 손으로 잡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이모가 이만큼 널 생각해!’라고 젠체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숨기는데, 조카는 “이모, 고마워!”라고 인사한 후 한참을 집중하더니 별 모양을 완성했다.
조카는 핸드폰을 들어 완성한 달고나 사진을 찍는다. ‘이모’와 함께 만든 달고나 사진을 모바일 메신저 배경 화면으로 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엉망진창이야!’라는 글과 함께 난리 난 달고나와 사방팔방 펼쳐진 설탕 알갱이를 배경 화면으로 했었기 때문이다.
조카와 언니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날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랑 달고나를 만들었다며 자랑한다. 그날 조카의 메신저 배경 화면은 아빠와 함께 만든 달고나였다. 어제 먹은 달고나가 씁쓸하게 올라오는 것 같다. 어제 몰래 했던 기대감이 나를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예전에 친구가 “조카가 이모를 너무 좋아하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조금 있으면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되는 시기잖아. 지금이라도 맘껏 사랑받아야지!’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진 한 장에 시무룩해지는 걸 보면 조카의 사랑을 오래 받고 싶었던지도 모른다. ‘인정 욕구’가 발동한 걸까. 조카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인정받고자 애써온 내가 돌아보인다.
예전에 조카와 보드게임을 하다가 하나를 고장 낸 적이 있다. 고치려고 했지만, 잘 되질 않았다. 그때도 사과하는 내게 ‘이모, 괜찮아.’하고 웃으며 말했다. 같이 놀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게 좋다던 다정한 아이다. 내가 달고나 만들기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분명히 조카는 괜찮다고 했을 것이다. 실패의 원인을 함께 알아보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조카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 같은 이모뿐만 아니라 친구처럼 여리고 서툰 이모의 모습을-. 기를 쓰고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친구 같은 이모를 더 가깝게 느끼지 않았을까?
어제 먹은 달고나가 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