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2.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잘 익은 벼로, 잘 익은 밥을!
아시다시피 초대교회는 몇 번 위기를 맞았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음식을 분배하며 차별 문제가 발생했을 때
-11장에서 베드로가 할례받은 사람들과 음식을 먹은 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들고일어났을 때
-15장에서 유대인들이 안티오키아까지 와서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쳐 바오로 바르나바와 갈등이 생겼을 때입니다.
이 세 경우 모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유대 중심적인 차별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분열의 위기에 처했던 것인데 특히 어제와 오늘
유대인들의 그리스도교와 이방인들의 그리스도교로 갈라설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앞두고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회의를 개최하고 현명히 대처합니다.
요즘 우리가 시노달리따스(Synodalitas)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예루살렘 회의가 바로 이 시노달리따스의 원형인 셈이기에 이참에 저는
오늘 우리 공동체들이 어떻게 합의와 일치를 이루어갈 것인가 성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합의와 일치를 이루어가는 성숙한 공동체의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겸손과 자기를 내려놓는 것’ 이것을 저는 첫째로 꼽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자주 해주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
이 말씀을 어렸을 때는 명심하며 살았는데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한동안 많이 교만했다는 반증입니다.
요즘 합의와 일치를 잘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 때문에 오래 숙고하지 않고 설익은 자기주장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숙고(熟考)와 성숙(成熟)은 같이 가는 것이고
숙고할 때 성숙하게 합의와 일치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숙(熟)’이라는 한자가 ‘익다’라는 우리말에 해당하지요.
겸손한 사람은 자기주장을 펴기 전에 숙고를 많이 하고,
거기서 내려놓을 것과 내놓을 것을 가릴 것입니다.
자기는 내려놓고 공동선을 위한 것은 내놓을 겁니다.
두 번째로 제가 꼽고 싶은 것은 사랑과 이웃 존중입니다.
밥은 익어야 맛있고 그러기 위해서
익을 때까지 솥뚜껑을 열지 말아야 하고 뜸을 한참 들여야 합니다.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나의 익은 의견을 겸손하게 제의한 다음
그것을 받아들일 이웃의 시간을 존중하며 한참 뜸 들이는 것입니다.
제의하는 나에게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받아들일 그에게도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줄탁동시同時 또는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깨진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새끼가 안에서 껍질을 톡톡 쫄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 이전에 어미 닭이 성급하게 껍질을 깨버리면 새끼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경우 미숙아로 나오면 인큐베이터에서 한동안 성숙을 돕지요.
아무튼 이때 새끼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고 하고
밖에서 어미 닭이 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그의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나의 제의에 대한 그의 동의를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함부로 날 선 공격을 하지 않음은 물론
숙고 되지 않은 말도 하지 않아야 하고,
공동선을 위한 겸손한 나의 말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웃의 시간을 기다리며 이웃의 의견을 존중할 때
공동체의 합의와 일치는 이루어짐을 깊이 생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잘 익은 벼로 잘 익은 밥을 지어야지요.
덜 익은 벼로 설익은 밥을 짓진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