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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해서 정신이 번쩍 든 조영은 서둘러 더듬어서 옷을 입고 등잔에 불을 켰다. 하지만 불을 켜고 방안을 둘러보다가 그는 세 번째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여인이 전신 나체로 누워있었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미시아였던 것이다.
조영은 황급히 불을 끄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 어서 일어나 옷을 입으시오.”
미시아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듯하더니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조영은 몹시 염려스러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요? 그런데 왜 여기에 와서 누워있습니까?”
그녀도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글쎄요. 저도 어떻게 여기 와서 누워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겠죠.”
“어서 빨리 방으로 돌아가세요. 누가 보면···.”
여기까지 말하다 조영은 속으로 아차 했다.
‘이건 틀림없이 고질이라는 그 괴짜 노인이 저지른 짓이렷다!’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던 조영은 서둘러 미시아를 자기 방으로 보내려할 때, 갑자기 급한 발걸음 소리가 나며 바깥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방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었다. 이어서 횃불을 든 군사들이 나타났다.
방안으로 들이닥친 병사들은 일언반구도 없이 준비해온 오라로 다짜고짜 조영과 미시아를 묶기 시작했다. 조영과 미시아는 대항하려고 했으나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 굳세고 팔팔하던 초인적 힘이 어디로 갔는지, 손발은 마음과 완전히 따로 놀았다.
병사들에게 온 몸이 묶인 고조영과 미시아는 눈이 가려지고 입까지 막힌 채 그 새벽 즉시 말 위에 태워졌다.
동짓달의 밤은 한없이 길고 매섭도록 차가웠다. 조영과 미시아를 태운 건마들이 남쪽 성문에 당도하니 성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해자를 건넌 후 말발자국소리도 없이 그들을 호송하는 이들은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루하가 이끄는 거란 군대의 포위망을 무사히 뚫고 그들은 남으로, 남으로 내닫는다.
뒤쪽에서 “서라!”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으나, 쾌속으로 달리는 말들을 거란의 마병들은 따라잡지 못했다.
마미성에 사자로 간 고조영과 미시아가, 사흘이나 기다려도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루하는 다시 다른 사자를 보냈다. 사자들이 돌아와 두 사람이 억류당했다고 복명했다.
드디어 이루하는 부대에 공격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록 마미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사상자만 낸 채 이루하는 당나라 지원군이 밀려오자 부득이 퇴각해야 했다.
그 시각에 요동고성을 맹공했던 손만영의 군대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당나라 건안왕 무유의가 보낸 요동주 지원군의 역습을 받고 고구수가 지키는 요동고성에서 물러나야 했다.
충성스럽게 마미성을 잘 지킨 공로로 고질은 좌옥검위대장군左玉鈐衛大將軍 겸 좌우림군상하左羽林軍上下로 승진하고, 거란군 진압의 청변도동군총관清邊道東軍總管을 맡게 된다<고질 묘지명>.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하던 거란군이, 당나라 관할 고구려 항성降城들의 우두머리 격인 마미성과 요동고성에서 장애에 부딪히자, 두 성의 승리에 크게 고무된 당장 무유의는 여태 두려움에 젖어 직접 전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가, 한편으로 조정에 두 성의 승전보를 띄움과 동시, 요동성과 마미성을 포함한 기타 요동주의 고려 성읍들에 서신을 보내, 얼마 후 당군의 총공세가 있을 것을 알리고 이에 대비하도록 명한다<전당문>.
무유의가 마미성주 고질과 자신의 조카인 요동주도독 고구수에게 승전 축하문을 보낸 것은 물론이다. 고구수는 이 전투에서 심지어 거란군 일백여 명이나 사로잡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전당문>.
무유의는 서두르지 않고 전열을 정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왕효걸과 소굉휘가 새로 청변도총관에 임명되어 십칠만 대군을 거느린 채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군대가 도착하면 함께 연합 전선을 펼 작정이었다.
마침내 왕효걸이 계성에 도착해 무유의를 만난 것은 697년 2월 중순이다<전당문>. 두 사람은 손만영의 거란군을 일거에 소탕하고자 치밀한 전략을 짰다.
왕효걸과 소굉휘는 697년 3월에 먼저 십칠만 대군을 이끌고 손만영의 부대를 찾아 떠난다.
손만영은 이루하의 부대와 자신의 군대를 합해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적의 동정을 파악하다가 동협석곡東硤石谷(하북성 창려현 북쪽)에 매복했다.
작년에 두 번이나 당군이 서협석의 황장곡에서 거란의 복병에 걸려 거의 몰살을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 왕효걸은 그 곳을 피해 동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를 예상한 듯 손만영은 동협석곡에 진을 쳤던 것이다.
황효걸이 동협석곡에 도착했을 때, 어디선가 기분 나쁜 올빼미 울음소리와 산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것을 신호로 거란군이 좌우 산에서 나타나더니 맹공을 퍼부었다.
왕효걸은 거란의 군대를 맞아 고함을 지르며 싸움을 독려하고 직접 선봉이 되어 결사적으로 거란군을 두들겨 팼다. 마침내 거란군은 당군의 공세에 밀려 퇴각하기 시작한다.
왕효걸은 그들을 압박하며 급하게 뒤쫓아 거란군을 베기 시작했다. 거란군이 어느 분지로 달아나더니 갑자기 머리를 돌렸다. 거란군중에서 일위장수가 장창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나오는데, 그 기세가 마치 한 마리 독수리와 같았다. 신창 이해고였다. 그를 뒤따라 거란의 기마병들이 꿩을 낚아채는 보라매처럼 날아든다.
신창 이해고가 창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당나라 군사들은 그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쓰러져간다. 당군의 진열이 와해된다. 거란의 기마병들은 산길을 마치 평지처럼 달렸다.
거란군이 모두 머리를 돌려 뒤쫓아 온 당군을 압박하자 당군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소굉휘가 먼저 거란의 공세를 당하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한다. 왕효걸은 끝까지 분전했지만 점점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 뒤가 낭떠러지였다. 신창 이해고가 창을 바람같이 날리자 왕효걸은 그의 창에 찔리며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를 따른 장졸들도 거란의 매복에 걸려 소수를 제외하고 거의 다 목숨을 잃어야 했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그날은 697년 3월 12일이다.
손만영은 왕효걸의 군대를 대파한 후 승세를 타고 거란의 대군을 이끌고 유주로 진격했다.
그러나 유주 동쪽의 계성에 진을 치고 있던 무유의는 왕효걸과 그의 십칠만 대군이 거란군에 거의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떨며 손만영에게 감히 나아가지 못했다.
손만영은 마침내 유주를 점령하고 성을 약탈했다. 손만영이 유주를 포위하고 있을 때, 무유의는 직접 가지 못하고 장수를 파견해 손만영의 거란군을 쳤으나 당군은 대패하고 물러났다.
남쪽에서는 낙무정, 하아소의 거란군이 여전히 종횡무진 각 성들을 차례로 함락하고 재물을 빼앗았다.
거란군은 숫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애당초 어느 성이든 점령할 때, 그 성에 군사를 남겨 성을 지킬 수 없었다. 거란군의 목적은 당나라 땅을 철저히 유린하고 당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거란군은 처음부터 유주와 계성 및 요동고성을 잇는 북위 40도 선 근처를 당과 거란의 국경으로 설정하고 영주를 점령했었다. 소기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으나 요동주와 영주의 옛 고구려 성들은 의외로 몹시 완강하게 저항했다.
한편, 마미성 성주 고질의 계교에 걸려 사로잡힌 고조영과 미시아의 호송인들은 거란군을 완전히 따돌린 후 날이 새기 전에 어디선가 그들을 마차로 옮겨 태웠다.
그들은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마차 안에서 종일을 보내야 했다. 저녁 무렵 그들은 지하감옥인 듯한 곳으로 들어갔다. 오는 도중 제대로 먹지도 못해, 고조영과 미시아는 많이 지쳐 있었다.
“아가씨, 죄송하오. 이 몸이 불민해서 고질의 교활한 술수를 알지 못하고 아가씨에게 이런 고생을 시키는 구려.”
“태자전하!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소녀는 전하와 함께라면 살아도 기쁨이고 죽어도 행복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지 마소서.”
미시아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소.”
고조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번번이 적의 함정에 빠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여러 해 전에는, 하북 순무대사로 이곳저곳을 다닐 때 난데없이 나타난 돌궐인들에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이제 온몸이 결박당한 신세가 되었으니, 동도 낙양성으로 끌려가거나 아니면 죽을 목숨이었다.
고조영이 자책감에 연신 한숨을 내쉬자 미시아가 그를 위로했다.
“태자 전하,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길이 있을 터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소서.”
“아가씨, 저같이 어리석은 자를 그렇게 위로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하오.”
고조영이 재차 그녀에게 사의를 표했다.
그 때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옥문이 열리고 군사 두 사람이 등불을 들고 들어왔다. 그들은 고조영과 미시아를 이끌고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깜깜한 밤이었지만 조영은 웬일인지 이곳이 언젠가 한 번 와본 곳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군사들이 두 사람을 인도한 곳은 거대한 전각이었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한 방 앞에 도달했다.
“나으리! 죄수들을 데려왔사옵니다.”
“들여보내라.”
그들의 말을 듣고서 고조영을 깜짝 놀랐다. 군사들의 말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모두 고려 말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귀에 아주 익은 음성이었다.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가니, 한 건장한 젊은이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영은 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다름 아닌 요동주도독 고구수였던 것이다.
“두 사람의 결박을 모조리 풀라.”
고구수가 군사들에게 명하니, 군사들은 신속하게 차꼬와 결박을 풀어주고 밖으로 나갔다.
“어서 오시오. 고 장군, 그리고 미시아 아가씨.”
고구수가 웃는 낯으로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오.”
고조영은 그제야 마미성의 성주 고질이 자신과 미시아의 신병을 요동고성의 고구수에게 인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고조영이 정신을 차리고 고구수에게 예를 표했다.
“평안이 뭐요? 거란 군에게 포위되어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소.”
“용케도 잘 버티셨습니다.”
“하늘의 도움이었소.”
고구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물었다.
“마미성 성주 고질이 내게 두 사람을 인계하며 편지를 보냈소. 두 분을 동도 낙양성으로 압송해 달라고.”
“···?”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소. 나도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소?”
고구수는 손만영의 거란군에게 혼이 난 후, 자칫하다가는 측천여황의 조정에 의해 버림받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고조영과 미시아를 구해주고 당과 거란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기로 작심했던가?
“고 대인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고조영이 감격해 깊은 사의를 나타냈다.
“뭐, 은혜라고 할 것까지야 있겠소? 고장군은 나와 종친이고 또 후고구려의 태자이신데, 이 정도는 내가 배려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오.”
고구수는 상기된 낯빛으로 새삼 얼굴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데, 축하하오. 어찌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남몰래 혼사를 치를 수 있단 말이오?”
고조영과 미시아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부의 연을 맺다니요?”
“고질 대인이 편지에서 그렇게 말했소. 자신의 집례로 두 분이 마미성에서 혼례를 치르고 합방했다고.”
고조영은 아연실색했다. 마미성 관아에서 고질에게 후한 만찬대접을 받고 잠든 날 새벽 일어났을 때, 자신과 미시아가 벌거벗은 몸으로 한 방에 있었던 까닭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고조영은 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부의 연이 무엇입니까? 고질이 느닷없이 저더러 미시아 아가씨와 혼인하라며 괴팍한 강짜를 부리더니, 우리가 그의 계교에 속고 말았소.”
고조영은 그 때의 정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고구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고질高質(626-697) 장군의 괴벽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오. 늙어서도 그걸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고질적痼疾的이오. 아마도 고질 장군은 두 사람을 혼인시켜 동도 낙양성에서 대대로 볼모노릇을 하도록 만들 심산이었던 것 같소.”
고조영은 가슴이 서늘해져 대답했다.
“아하! 그러니까, 내가 후고구려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낙양성에서 태어날지도 모를 나의 아들은 자동적으로 당나라의 볼모가 되도록 만들고자 했다는 뜻이군요.”
“그 늙은 생강의 속셈을 누가 알겠소? 그냥 추측해 본 것뿐이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오. 아마도 그 늙은이의 괴벽이 돌발해 그런 장난을 친 것 같소.”
고조영은 생각할수록 고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조영과 미시아는 요동고성에 숨어 고구수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심신을 섭양했다. 그 사이 해가 바뀌어 당과 거란의 전세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고조영은 요동고성에 거하는 동안 고구수에게 부탁해, 전에 이진영을 시해하러왔다가 자신의 심복이 된 세 청년, 이른 바 천문삼걸天門三傑과 여미아, 극시아를 손만영의 진영에서 데려오게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천문삼걸은 한인이 아니라 고려인들이었다.
그들이 오자 조영은 천문삼걸을 은밀히 계성으로 보내어 그곳에 진을 치고 있는 건안왕 무유의의 진세를 알아오게 했다. 한 달 후 고조영은 고구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고 대인의 환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때는 정말 우리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으면, 더 이상 원이 없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우리 고려 백성들에게도 두고두고 큰 복이 될 것입니다.”
고구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웃음으로 응수했다.
고조영은 고구수 곁에 머무는 동안 계성의 당나라 무유의 군세를 파악하러 갔다가 돌아온 천문삼걸을, 이번에는 북으로 보내어 말갈군사들을 모으고 있는 사비우와 연락하게 했다. 얼마 후 그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사비우가 말갈군 오천을 모아서 남으로 내려오는 중이라 했다.
용기백배한 고조영과 미시아는 사방으로 파발마를 띄워 고려부흥군을 은밀히 거두어들였다. 그 사이 유주 근방의 여미단군도 요동고성 근처로 모여들었다.
사비우의 군대가 가세하자 고조영의 고려군과 사비우의 말갈군은 도합 일만에 달하게 되었다.
요동고성과 인근의 옛 고구려 성들로부터 군량을 후원받은 고조영과 미시아, 사비우는 손만영의 군대와 긴밀한 연락체계를 갖춘 후 삼월 하순에 이르러 군사를 움직였다.
고려말갈군 일만은 조용히 계성에 주둔한 무유의의 당나라 본진을 에워싸되, 일부러 서쪽의 유주로 가는 길은 비워두었다.
계주(계성)의 당군에서는 기주를 유린하던 하아소와 낙무정의 무서운 경기병이 곧 올라와 고려말갈 부흥군과 함께 계성의 무유의 본진을 요절낼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물론 그것은 고조영의 군대가 퍼뜨린 거짓소문이었다.
겁을 먹은 무유의 본진은 계성에 모든 물자를 놓아둔 채, 손만영이 물러나고 비워둔 유주로 허겁지겁 퇴각하기 시작했다.
손만영의 거란군이 그들을 뒤쫓아 유주를 다시 포위하는 동안 고조영과 미시아, 사비우의 군사는 사월 초순에, 영주 계성에 입성했다. 고구려부흥군이 계성을 접수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곳저곳에서 고려 장정들이 몰려들어 고려부흥군에 합류하고, 고조영과 사비우의 군대는 얼마 후 이만으로 불어났다.
대주의 측천여황은 그 소식을 보고받고 조회 중에 대신들에게 물었다.
“고조영과 사비우란 놈이 제 분수도 모르고 거란군이 반란을 일으킨 사이, 군사를 모아 우리 대주大周 군을 대적하고 있다 하니, 경들은 어찌하면 좋겠소?”
“먼저, 그들을 회유해 그들에게 관작을 내리고 다시 예전처럼 숙위하도록 조처하는 것이 현명한줄 아옵니다.”
한 문관의 말에 무장이 나서며 반박했다.
“그건 아니 될 말이옵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을 철저히 섬멸해 후고구려의 뿌리를 잘라버려야 합니다.”
갑론을박이 오간 후 측천여황이 결론을 내렸다.
“일단 그들을 회유하되, 고조영의 애비 고중상에게는 발해군왕 겸 홀한주도독을 제수하고 고조영에게는 진국공震國公의 관작을, 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의 지위를 주는 게 좋겠소.”
고조영에게 진국공을 제수하겠다 한 것은, 그 때 고중상이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에서 대진국大震國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태백일사/대진국본기>의 기록대로 고중상이 죽었을 때 시호를 진국振國 열황제라 했던 것은 그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당서>는 측천여황으로부터 “진국공”의 관작을 제수 받은 이가 걸걸중상(고중상)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고중상은 당시 이미 후고구려의 왕이었으므로, 그에게 그보다 훨씬 낮은 직위인 “진국공”을 제수한다는 것은 고중상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러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측천여황은 그와 동시 4월 18일에 우금오위대장군 무의종을 신병도神兵道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하가밀과 함께 대군을 딸려 북으로 보낸다. 거란군에 대한 토벌작전이 계속 실패하자, 이번 토벌군에 대해서는 “청변도” 대신 “신병도”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고조영과 사비우에게 보낸 사자가 돌아와 측천여황에게 복명하기를 두 사람이 관작 받기를 거부했다고 아뢰었다.
측천여황은 극심한 노여움을 보인다.
“내가 고조영과 사비우를 얼마나 아꼈는데, 그 자들이 감히 나와 맞서려 하다니, 천하에 배은망덕한 놈들이로고!”
이어서 측천여황은 또 다시 누사덕, 사타충의(?-707) 등으로 하여금 이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북으로 올라가게 했으니 그 날이 697년 5월 8일이라고 <자치통감>은 기록한다.
그 때 유주성을 포위하고 있던 손만영은, 이차에 걸쳐 당나라의 대군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일군을 마미성으로 보낸다. 이번에 마미성으로 간 거란군은 또 다시 그 성을 포위 공격했다. 마미성의 성주 고질과 그의 아들 고자는 당군의 후원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처절하게 싸웠다.
부녀자들까지 나와서 도왔으나 화살은 다 떨어지고 중과부적으로 인해 성이 함락되어 부자는 결국 포로가 되었다.
고질과 고자를 사로잡은 거란 군은 그들을 회유했으나 부자는 끝내 항복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거란 군에게 죽음을 당하니 그 때가 만세통천 2년(697년) 5월 23일이었으며, 고질의 나이 일흔 둘, 고자의 나이 서른셋이었다고 그들의 묘지명은 새기고 있다.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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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5. 8. 30. 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