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로 아직 지정되지 않은 유묵과 그 밖에 사본으로만 알려진 유묵 25. 志士仁人殺身成仁 : 지사와 어진 사람은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 폭 40cm, 길이 150cm.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묵은 중야태웅(中野泰雄)교수가 사진본을 보내와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논어에 "志士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仁을 이룩한다"라는 孔子의 말을 인용한 글귀이다. 안의사는 유가의 4가지 덕목 중 가장 '義'를 중시하였지만 '仁.禮.智'에 관한 유묵도 남겼다. 이는 바로 成仁에 대한 안의사의 심회가 담긴 글귀이다.
26. 戒愼乎其所不賭 :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근신한다. 폭 40cm, 길이 150cm. 일봄 정심사(靜心寺) 소장이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수감시 본원사(本願寺) 소속의 진전해순(津田海純) 승려가 감옥의 근무했던 인연으로 입수.전승된 것 같다. 중용(中庸)에 "군자는 보이지 않는데를 경계해서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곳을 두려워한다"는 구절에서 인용한 말이다. 하늘의 이치는 잠시도 쉬지않고 운행하기 때문에 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 들리지 않는 곳에서 조차 감히 소홀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고 도리어 경계해서 삼가야 된다는 뜻이다.
天堂之福永遠之樂
27. 天堂之福永遠之樂 :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이 유묵은 일본 동경 이생미술관 소장으로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는 19세 때 부친을 따라 천주교에 귀의 세례를 받은 후 32세 때 여순에서 순국할 때까지 일편단심 모든 것을 천주께 바치는 깊은 신앙으로 일관되었다. 천당의 존재와 신앙에 대해서 자서전 <안응칠역사>에서 "상은 천당의 영원한 복이요,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으로서, 천당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한번 정하고 다시 변동이 없는 것이요"라고 확신하고 있다. '천당영복' 의 말은 안의사가 순국 직전 모친과 부인, 홍신부 등에 보내는 유서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28. 釰山刀水慘雲難息 : 검산과 칼물에 처참한 구름조차 쉬기 어렵다. 폭 30cm, 길이 102cm. 침략전쟁을 일삼는 국제정세를 풍자한 글이다. 안의사의 자부 정옥녀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본이 전시되고 있다.
29. 喫蔬飮水藥在其中 : 나물 먹고 물 마시니 그 속에 낙이 있다. 폭 26.5cm, 길이 133cm.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묵은 현재 안의사기념관에 사본이 전시되고 있다. 논어 편에 "거친 밥을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굽혀 벼개삼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못한 부귀는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에서 인용한 글이다.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는 탈속의 심사다 표현된 글이다. 안의사의 온 생애를 보더라도 부귀는 한낱 뜬구름에 불과하였다.
30. 貧而無諂富而無驕 :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폭 32cm, 길이 137cm. 일본 덕부노화기념관에 소장되고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논어에 자공이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라도 공자에게 묻자 공자는 "옳다. 그러나 가난하면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고 부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대답한 대목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등보다도 예악의 도덕을 강조한 명구이다. 유묵 상편 왼쪽 여백에 안중근씨가 이 말을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31. 弱肉强食風塵時代 : 약한 자를 강한 자가 잡아먹는 풍진시대다. 일본에서 국제한국연구원 원장 최서면이 확인,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을 보내와 전시되고 있다. 제국주의의 약소국 침략을 풍자한 글귀라 할 수 있다.
32. 白日莫虛度 靑春不再來 :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폭31cm, 길이 145cm. 정석수 소장,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성실한 인생철학을 나타낸 글귀로 해석된다.
33. 黃金百萬而不如一敎子 : 황금 백만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폭35cm, 길이 150cm. 일본에서 재일교포 김주억이 확인, 사진본을 보내와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명심보감에 "황금한 궤짝이 자식에게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과 같다. 안의사의 문장표현의 뛰어남을 엿보이는 글귀이다.
34. 言語無非菩薩 手段擧皆虎狼 : 말은 보살 아닌 것이 없건마는 하는 짓은 모두가 사납고 간특하다. 일본에서 최서면이 확인, 안의사기념관에 사진을 보내와 전시되고 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위협하여 러.일전쟁 이래 체결한 한일의정서를 비롯 을사오조약, 정미칠조약 등 일련의 외교적 침략행위가 다 겉으로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인민의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표방하면서도 내용은 한국을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고자 자행된 침략행위였음을 비판하고 있는 글귀로 생각된다.
35. 年年點檢人間事 惟有東風不世情 : 해마다 세상일 헤아려보니 다만 동쪽바람만이 세태를 따르지 않도다. 조선총독부 관리를 역임한 일본인의 후손이 간직하고 있는 것을 최서면이 확인, 사진본을 보내와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조국이 위태로워가는데 동풍이 불어 친일파만 늘어만 가는 세정을 한탄한 글귀로 여겨진다.
36. 日通靑話公 : 청나라말을 할 줄 아는 일본인 통역관. 폭 37cm, 길이 41.1cm. 소재가 불명한 이 유묵은 오른쪽에 '증청전선생'이라고 기입되었다.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37. 日出露消兮 正合運理 日盈必昃兮 不覺其兆 : 해가뜨면 이슬이 사라지나니 천지의 이치에 부합되도다 해가 차면 반드시 기우나니 그 징조를 깨닫지 못하는도다. 폭47cm, 길이 143cm. 안중근의사순모회 황명수 이사가 일본에서 확인하고,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우주순행의 원리를 비유하여 침략전쟁을 감행한 일제의 패망을 예언한 풍자시이다.
38. 臥病人事絶 嗟君萬里行 河橋不相送 江樹遠含情 : 나는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는 만리 먼길 떠나가는가. 다릿목에 같이나가 보내길 없고 강언덕 나무숲에 정만 어렸도다. 일본에서 최서면이 확인, 사진본을 보내와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국 唐나라 시인 宋之問의 <別杜審言>에서 인용한 구절로 宋之問과 두보의 종조부인 杜審言간의 우정과 이별의 심정을 5언절구로 표현하였다. 여순옥중의 안의사의 심회와 일치하여 휘호하였을 것이다.
39. 山不高而秀麗 水不深而證淸 地不廣而平坦 林不大而茂盛 :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 물은 깊지않으나 청결하고 땅은 넓지 않으나 평탄하고 숲은 크지 않으나 무성하다. 폭 34.5cm, 길이 136cm. 공창교가 재일교포로부터 인수, 송장하고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금수강산 조국을 6언절구로 읊은 시이다.
40. 貧輿賤人之所堊者也 : 가난하도 천한 것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폭 42cm, 길이 120cm 가량. 안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 소장으로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빈부귀천에 대한 올바른 생활철학이 간결하게 표현된 유묵이다. 논어에 "부귀는 누구나 탐내는 것이나 올바른 도리로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말며 사람마다 가난과 천함은 싫어하는 바이지만 그 道로 얻음이 아니더라도 버리지 말고 감수하라"라고 한 글귀에서 인용된 것이나 간결한 재구성의 표현이 돋보인다.
41. 敬 天 : 폭 67cm, 길이 34.5cm. 부산 자비사 박삼중 주지가 일본에서 확인, 국내에 소개한 것이다. 경전의 '경천애인'에서 인용한 것으로 일제의 침략을 질타하는 뜻이 담겼다.
42. 百世淸風 : 국내에 사진본이 소개되고 있다. 안의사 고향에도 암각되어 어릴 때도 보았던 '백세청풍'이란 문구는 정의로운 세계가 실현되기를 바랐던 안의사의 염원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43. 自愛室 : "스스로를 아끼는 집"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진본만이 유전되어 소재가 불분명하다.
44. 一勤天下無難事 :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것이 없다. 안의사의 순국일인 1910년 3월 26일자 <만주일일신문>에 사진본으로 보도되어 안의사 유묵으로는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원본의 전래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안의사의 성실한 인생관이 투영된 휘호이고 '백민당중유태화'와 짝을 이루는 글귀라고 할 수 있다.
45. 人類社會代表重任 : 인류사회의 대표는 책임이 무겁다. 안의사의 자서전 <안응칠역사>와 미완의 <동양평화론>의 필사본을 간직한 칠조청미(七條淸美)의 딸 앨범 속에 사진본이 전하는 휘호이다.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46. 不仁者不可以久處約 : 어질지 못한 자는 궁핍한 곳에서 오래 못 견딘다. 폭40cm, 길이 150cm. 일본 정심사(淨心寺) 소장이다. 논어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안의사의 어진 성품과 인내심을 엿보이게 하는 휘호로 평가된다.
47. 敏而好學不恥下問 : 민첩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 폭 40cm, 길이 150cm. 일본 정심사 소장이다. 논어에서 인용하였다. 상무의 기질을 갖은 안의사이지만 학문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주는 글귀이다.
48. 日韓交誼善作昭介 : 한 일 간의 교의는 소개가 잘 되어야 한다. 안의사의 하얼빈의거 직후에서부터 여순순국시까지 모든 통역을 전담하다시피 한 통역에게 써준 휘호임을 알 수 있다. 원목(園木)이 소장하였던 안의사관련 신문스크랩철 및 관련사진과 함께 그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 국제학국연구원장 최서면이 확인, 보도되었다. 원본의 전래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49. 通情明白光照世界 : 통정을 명백히 하면 세계를 밝게 빛일 것이다. <여순안주일일신문> 1910년 3월 27일에 사진본으로 게재, 세상에 소개되었다. 원본의 전래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50. 澹泊明志寧靜致遠 : 담백한 밝은 뜻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오래 전수된다. 조선일보사 조사부에 사진본이 소장되고 있다. 유묵소재와 진부여부를 확인중이다.
51. 臨敵先進爲將義務 : 적을 맞아 먼저 전진하는 것이 장수의 의무이다. 명주천에 휘호된 이 유묵은 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군지휘관의 의무를 간결하게 표현한 글귀이다.
52. 臨水羨魚不如退結網 : 물에 다달아 고기를 부러워함은 물러가서 그물을 뜨니만 못하다. 구관동도독부법원 율사집안에서 최서면이 확인, 사진본이 공개된 것이다. 안의사의 '실천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글귀다. 이 글귀가 휘호된 사실은 계봉우의 <만고의 시 안즁근젼>에서도 확인된다.
53. 長歎一聲 先弔日本 : 장탄 일성으로 먼저 일본의 명망을 조상한다. 일본 구대만총독부 관리를 역임한 집안에 전래하는 유묵으로 근래 김광만이 확인, 국내에 사진본이 소개된 것이다. 진부 여부와 전래과정 등을 확인중이다. 폭 40cm, 길이 230cm 가랭의 명주천에 내용도 특이하게 '일본 멸망을 조상'하는 뜻을 담고 있다.
獨 立
54. 獨 立 : 폭 63cm, 길이 33cm. 일본에 소재, 국내에 소개된 것이다. 상세한 것은 확인중이다. 안의사는 구국운동 중 동지 11인과 함께 '단지동맹'을 통해 단지동지회를 결성할 때에도 태극기에 '大韓獨立'이라 혈서 하였었다. 안의사는 한국의 '獨立'과 동양의 '平和'를 위해 헌신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