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륜(河崙, 1348년 1월 22일(1347년 음력 12월 22일) ~ 1416년 11월 24일(음력 11월 6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진주(晉州).[1] 자는 대림(大臨) 또는 중림(仲臨), 호는 호정(浩亭)이다.
아버지는 부사 하윤린(河允麟)이며, 권문세족인 이인임의 조카 사위이다. 이인복, 이색의 문인이다. 고려 말 정몽주, 남은, 권근 등과 함께 신진사대부를 형성했고, 처음에는 역성혁명에 반대하다가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참여했다. 정도전과 함께 한양 천도를 적극 주장했고, 1393년 정도전이 쓴 표전문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홍무제가 문책하자 직접 명나라에 가서 사태를 해결하였다. 1398년 충청도 도관찰사로서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정안대군 이방원을 도왔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당시에도 이방원을 도왔다. 태종 즉위 후 좌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1416년 관직에서 은퇴 후 객사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나머지, 자료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B%A5%9C
하륜과 오방재에 대한 자료는 동영상을 만들어지면 올려 드릴게요.
조선의 성리학과 풍수의 이기학을 선봉한 인물중에 한분이며, 천도 관련된 많은 상소문과 분쟁의 중심에 있엇던 인물.
현, 시대의 이기학을 조정 대신들에게 전파하며, 천도하는 부분에 많은 반대적 입장을 취한 그 하륜도.
자신과 그의 선영에서는 형기학적으로 안치 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기학, 물형론을 배척하기 보다 2,3차적인 부분에서 인용되어야 할것이라 알립니다.
조만간에 이런부분에 더 많은 학식을 지녔던 그때의 자료를 동영상과 과거 역사에서 발췌한것을 알려 드릴게요.
아래 이미지는 일차적으로 작은 이미지로 알려 드립니다.
자세한 용세의 흐름은 현대풍수지리연구소 동영상의 설명과 함께 올려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