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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대담 선지식을 찾아서
‘이청’이라는 소설가가 성불의 길, 불국토의 길을 만나기 위하여 춘천 현지사의 만현 스님을 만나뵈러 왔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지사 도량이 앉은 자리가 참 특이합니다. 한쪽은 북한강을 끼고, 한쪽은 속세인 마을을 끼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 도량을 자리한 까닭이 있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4년 전에 안착을 해서 공부를 할 때를 물색했습니다. 그 동안은 깊은 산에서도 시가지에도 수행을 하다가 일정한 곳이 있었으면 생각을 해서 잡은 곳이 이곳입니다. 여기가 좋다고 봤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도량의 역사는 짧고 규모도 크진 않습니다만, 정진하시는 스님들의 열기는 어느 도량보다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몇 분의 스님이 계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스님들이 아홉 분에서 열분 정도 됩니다. 다만 공부만 하는 것이 여기 모토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 공부를 옆에서 가르치실 때 어떤 것을 강조하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여기 스님들은 대단히 훌륭한 분들입니다. 또 뜻을 같이 하고 있고 열심히 내가 하는 염불선 경전 읽고 염불해서 선으로 들어가는 그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선은 간화선 그 개념이 아닙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넓은 의미의 선, 염불에서 선으로 들어가신다고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 조금 더 나중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은 만나 뵙기 참 어려웠습니다. 옛날에 총무원에 계셨던 분이신데, 오랫동안 대중들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다가 한 30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셨는데,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스님이 된 해는 60년 정도로 그러니까 23~4살 때 그 때 스님이 되었습니다. 우리스님은 율사입니다. 부산의 유 석암스님이 저의 은사스님입니다. 그래서 계율의 소중함을 알았고, 통도사 경봉스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간화선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전라도 토굴로 가서 정진을 한지 한 10년 정도되어 나름대로 득력한 것이 있습니다. 화두타파를. 그 다음에 70년도 정도에 총무원으로 와서 무진장스님과 중앙상임포교사로 임명 받은 것이 청담스님 입적 무렵입니다.
몇 년 동안 법상에 올라가서 30대 초반에 조계사 행사에 설법을 하고 그러는 중에 간화선에 대한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염불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그러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간화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어마어마한 그 위신력을 법화경이나 화엄경을 통해 나름대로 느꼈습니다. 염불수행을 한지 한 30년 정도 됩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러면 간화선의 한계를 느끼시고 염불선으로 방향을 전환하시면서 그 동안 혼자 수행을 하신 셈이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주로 산으로 가고 토굴로 가서 혼자 수행했습니다. 70년대 초만 해도 간화선 이외에는 발 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도 못하고 남 모르게 열심히 한편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러면 다시 30년만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이시고 이렇게 설법을 하시게 된 인연은 어떻게 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에 제가 책을 한 권을 썼습니다. 21세가 붓다의 메시지라는 책인데요. 여기에 자세히 나옵니다. 30년 동안 은거하다가 여러 사부대중 앞에 서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작년 3월경 도올 김용옥씨가 MBC TV매체 통해 불교를 형편없이 폄훼하는 방송강의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꼭 한마디 충고, 고언을 해야겠다 싶어서 원고를 써서, 부산에 있는 대한불교 신문사로 보내었더니, 특별 기고형식으로 개제한 것이 계기다 되었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도량을 세우고 설법을 시작한 것은 그 이전이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거의 법회를 사양했습니다. 꼭 필요할 때 TV 한 두 번, 라디오 한 세 번 정도 그리고 내가 충분히 공부를 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 아니면 말을 않으리 하고 거의 묵언으로 말을 삼가고 공부만을 한 편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도량은 언제 세우셨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으로 4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때 별로 돈도 없고 그랬지만 그저 신념 하나로 1800평 구입해서, 또 나를 아껴주고 믿어준 스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크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도량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곳은 대단한 황량한 아주 황량한 벌판이었습니다. 흙을 도두고 집을 짓고 도량정비를 했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 발언의 이면에는 간화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의 선을 제자리에 놓으시겠다는 이런 큰 원이 있었던 것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론이죠. 이 책에는 몇 가지 큰 테마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이 가신지 2500년이 되다 보니까, 정법이 많이 묻혀있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정법을 온전히 그 불교의 몸통을 드러낸다면, 지금 이 불교로서도 세계적인 대단히 위대한 종교라고 평가를 받지만, 이 불법이 정말 정법이 온전한 불법이 드러난다면 대단히 위대한 종교라는 것을 여러 많은 이교도들도 아마 긍정 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이 책의 부제가 염불 삼매 속에서 나는 이와 같이 보고 들었다. 이렇게 부제를 달 정도로 염불선에 대한 많이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인연을 여기서 말하자면 1959년인가에 중학생 때 부산 대각사에서 청담스님의 설법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청담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미타불을 지성으로 평생에 걸쳐 10번만 외우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지금까지 거의 50년 가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늘 청담스님과 인연이 있으신 스님께서 좀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번만, 십념이죠.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게 그렇게 안됩니다. 그건 말이 안됩니다. 그건 말이 안되구요. 정토는 극락세계를 위시한 정토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정토가 서방극락세계, 동방약사부처님께서 계시는 정유리정토(淨琉璃淨土)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방정토극락을 가려면 10번 염불이 아니라 아미타경에 있는 그 부처님 말씀이 있습니다. 1일에서 7일정도로 한결같이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도 않고 일념으로 염불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서 일주일간을 일념으로 나간다는 것은 아마 참선하는 스님들도 그건 불가능할 거라 생각 할 것입니다. 우리도 참선을 해봤지만은, 1분도 아니고 10초도 못 갈 겁니다. 생각이 그저 일어났다 없어졌다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망상이 그렇습니다. 망상이 그렇게 따라붙기 때문에 일념이라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루에서 일 주일이라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내가 보니까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은 합니다. 아까 경에서 말씀했듯이 1일에서 7일 정도의 일념이 된다면 그런 수행자라면 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자, 거사님 지구에서 로케트을 쏘아 올릴 때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난다는 것은 대단한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눈을 떠보니 인간세계 위 하늘이 있습니다. 하늘세계가 부처님께서는 54등급으로 해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18하늘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54하늘이 있는데 9등급을 묶어서 한 하늘로 묶어서 부처님을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아래하늘을 육하늘 그 위에 5하늘, 4하늘, 3하늘, 2하늘, 1하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이 인간 몸을 버리고 6하늘에 태어나는 것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54등급을 넘어서 그 넘은 곳이 윤회를 벗어난 하늘입니다. 그러니까 화두타파해서 혹은 위빠사나를 해서 도를 깨쳐서 보림을 잘 해서 증득하면 거기가 아라한입니다.
아라한은 죽어서 윤회를 벗어난 세계에 난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그 하늘을 성중하늘이라고 합니다. 성중하늘에만 난다면, 아라한인데 정말로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런데 거기 위가 도솔정토입니다. 미륵부처님께서 계신 도솔정토이고, 그 위가 또 꽃 비를 내리게 하는 천녀하늘이 있고 그 위가 극락입니다.
그러니까 극락을 간다는 것은 십념으로는 힘들고, 그건 인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이고, 진실한 말씀은 1일에서 7일간 간단없이 일념 정진한다면 갈수 있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54하늘을 넘어 성중하늘을 넘어 도솔정토를 넘어 천녀정토를 뛰어 넘어 극락세계가 있는 데 그곳에 간다는 것은 보살 8지라야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뵙는 모든 부처님의 똑같은 말씀이고 부처님 세계에서는 하나의 상식입니다.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간 분들이 있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러면 우리 불교가 위대한 면이기도 하고 단점이고 한 것이 해석이 가지가지이고 많은 해석을 할 수 있다 보니 극락이라고 방금 말씀하셨지만 극락도 내 마음 속에 있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있는 일종의 허무주의 같은 견해가 있는데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 견해는 윤회를 벗어난 세계, 극락세계를 보지 못한 수행을 깊이 깊이 들어가서 그러한 성과를 얻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경전 가지고는 안됩니다.
십념이면 왕생한다고도 하고 달리 말하기도 하고. 또 죄송합니다만 선불교를 이야기를 해서, 극락이나 지옥을 마음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가령 번민으로 차있는 그 자리가 지옥이고 만족,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 그 자리가 극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성품을 아미타라고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경봉스님에게 내가 그랬죠. 문하에 있을 때, 경봉스님은 매우 자비하고 참 공부를 많이 한 학자이시고, 나를 예뻐하고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스님 정말 진짜로 대답 좀 해주시오.
지옥이나 극락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부처가 있는 거요? 없는 거요? 그러니 머리를 딱 때리시더니 망상 피우지마, 없어. 몇 번 물어봐도 항상 그 대답이니까 내가 나중에 뛰쳐나와서 토굴로 들어가서 득력을 해봐도 안보이더라고요.
지옥이나 극락이. 나는 지금 이 입장에서 분명이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지옥이나 극락은 있습니다. 차별세계에서는 있습니다. 그건 공세계에서 보면 없습니다만 진리 입장에서는 없지만, 거기서 한걸음 나와 차별세계에서 볼 때는 인간계 축생계도 있죠?
분명이 지옥세계도 있고 하늘세계도 있고 하늘세계를 벗어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초월의 세계 극락세계가 있습니다. 극락세계 볼 정도는 붓다의 경계에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역사에서 볼 때 보살 정도도 안 보입니다.
더구나 아라한의 경지에서는 전혀 안보입니다. 지옥이나 하늘세계가 안보입니다. 극락세계는 더더구나 안보입니다. 그래서 칸트라는 학자가 인식의 한계가 있다고 한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큰 위신력을 입지 않고는 인간의 한계로서는 형이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걸 나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칸트의 인간인식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허무주의자에게도 이용될 수 있고, 이상주의자에게도 이용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에서는 마음이 부처고 마음속에 지옥과 극락이 있는 것이지 마음밖에 라는 말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조계종 자체에서도 한국 불교 자체에서도 간화선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고, 젊은 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위빠사나라든지 다른 선에 대한 도입,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시점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스님께서 굳이 말씀 안 하실 필요도 없으시고, 간화선에 대해 어떤 한계를 느끼셨다면 지금 거기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간화선은 그 선 수행을 깨달음을 대단히 소중히 합니다. 깨달음을 다 된 것으로 봅니다. 심지어 불교는 깨달음이 있어서 위대한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깨달음은 붓다 이루어가는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입니다. 이건 크나큰 선언 입니다. 깨달은 후에 보림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아라한이 됩니다. 깨달았다 해서 공을 체험했다 해서 상당한 경전과 뜻이 계합한다해서 막행막식하고 있는데,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깨달으면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깨달음이 무엇이냐 정의에 따라 달라지지 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깨달음의 정의는 그렇습니다. 깨달음은 본성이라고 하고 자성이라고 하며 일체우주 만물의 근원자리 법성이라 하는 그 자리를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 경험상 그리고 많은 화두타파한 분들의 이야기로 볼 때 부처님의 말씀으로 볼 때 그 깨달음의 경계가 죽을 때가지 계속된다면 됩니다.
하지만 그 청정 무구한 단계가 그 경계가 드러나게 되는 데, 그 경계가 드러나는 것이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한식경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 이유는 우리가 억겁을 통해 살아오면서 많은 업을 짓고, 따라서 습이 붙고 기가 생기고 그럽니다.
고것이 완전히 소멸되어야 계합이 되는 겁니다. 원래 생각이전자리와 나가 뚫기는 뚫었지만 뚫는 것이 깨달음인데, 그 청정무구한 본성과 나라고 하는 것이 계합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람의 속에 잠재되어있는 삼독심 모든 번뇌가 다 뿌리채 뽑혀져야 합니다.
순수가 되어야 합니다. 또 습이나 기라든지, 나쁜 인연까지도 찌꺼기까지도 완전히 소멸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불가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깨달음이 종착점이 아닙니다.
시작입니다. 이제 깨달아서 나를 생각을 죽이는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걸 두타행이라고 합니다. 가장 좋은 공부는 두타행입니다. 두타행으로 나가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권하는 것이 바로 두타행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합니다. 왜그러냐하면 깨닫고 나서도 유지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면 진정한 깨달음은 아니지 하는가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요. 깨달음 이후에 보림을 하는 것이 바로 그 경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본성과 계합하기 위해서 삼독을 녹이고 습을 녹이고 기를 녹이려고 보림을 합니다. 그러나 보림을 한다 하더라도 결코 정화는 일부 될 수 있을지언정 소멸은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깨달음은 그런 찌꺼지가 완전 불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집착이나 상이 뚝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수행을 잘하다 하다 보면 그 자리까지 갑니다. 아라한 자리. 그러나 보살이나 붓다는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 화두타파를 통한 깨달음은 그 자체가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계속 보림과 수행 통해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향상시켜야 하는데 반드시 염불로 가야 합니다. 삼독과 습과 기를 완전히 진멸(殄滅)해야 하는데 그래야 우주와 계합이 되는데 그걸 소멸할 길이 없습니다. 수행과 참회로는 정화밖에 안됩니다. 절대 소멸은 안됩니다. 그래서 붓다를 찾아야 합니다. 염불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실상염불도 있고 관상염불도 있고 칭명염불 등이 있는데, 나는 칭명염불을 아주 강조하면서 권해주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거사님, 가령 우리 몸 속에 들어있는 내가 있습니다. 요건 거짓 나구요.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가는 데 나가는 놈이 진짜고 허물은 가짜입니다. 그와 같이 이 몸뚱이가 집입니다. 이 몸은 거짓 옷 입니다. 빠져나가는 놈이 있습니다.
명이 다해서 혹은 비명해 죽더라고 나가는 놈이 있습니다. 그걸 나는 영체라고, 영혼체 근데 그 영혼체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하는데 힌두교 쪽에 상당히 언급했습니다. 영체는 4개로 겹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천고의 비밀인데 생의 비밀인데 이걸 모르면 여러 가지로 풀리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가령 불교에서 무아설과 윤회의 주체사이의 관계, 이건 아마 영원히 수수께끼이고 풀리지 않을 겁니다. 이 영체설을 알아야 합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러면 그것이 해결되지 않아 부정적인 견해들도 많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말씀 나온 신김에 이 책의 주요 내용과 의미에 대해 간단하게 집어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시간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큰 테마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전에도 없고 역사적으로 밝히지 못한 영체에 관한 법설이 있고요. 불교에서는 완벽한 생사관이 없습니다. 다만 힌두교나 차이나교에서 불교에서 육도육회까지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육도에서 벗어나버린 아라한 아라든지 보살이나 불과를 이루는 분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일체 언급이 없습니다. 그것까지 파헤친 것이 이 책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이란 어떤 분이냐에 대해 깊이 파헤쳤습니다.
부처님이란 소승, 대승가에서 부처님은 보살이 지니지 못한 18가지 불공법(不共法)이, 위대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 삼신에 대한 구체적인 이것이 가장 핵인데, 부처님은 아 그래서 그렇게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구나 라는 것을 삼신설을 들어보면 수긍이 됩니다..
삼신설에 대게 깊이 파헤친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바로 계율인데 왜 계율이 중요하는지 담아놓았구요. 염불선의 중요성에 대해 등 여러 테마에 대해 담아 놓은 책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의 말씀을 너무 방대해서 잘 제가 다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도 궁금한 것은 깨치고 나서 그리고 화두를 평생 가지고 있으면서 오매일여(寤寐一如) 삼매에 들어서 계속해서 깨침의 세계를 이어가는 그런 공부가 있고, 지금 스님께서는 깨친 후에 염불로서 칭영염불로 해가는 것, 이 둘 가지가 전혀 다른 것인지.』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깨쳐서 죽도록 오매일여 상태로 계속 보림을 해도 끝이 아라한입니다. 끝이 아라한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보살과를 증하려면, 성중하늘로 갔다가 사람 몸을 받아와서 보살과를 증하는데, 보살, 붓다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붓다의 크신 위신력을 입어야 가능합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지난 30년동안 스님께선 칭명염불선으로 수행 하셨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득력한 이후로 방향을 바꾸어 칭명염불로 하였습니다. 잘한 겁니다. 잘한 겁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래서 지금 지금의 경지는 스스로 어떠하다고 생각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내가 말할 수 없고 책에 나와있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의 은사 스님께서는 바로 율사스님이신데, 율사스님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이직도 남아 있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율사스님 이전에서 계율을 굉장히 존중시 하였고, 부처님께서는 첫째도 계율, 둘째도 계율, 셋째도 계율입니다. 그런 줄 아십시오. 율사스님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계를 지킨다는 것이 보살행의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전에 어떤 사람이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계를 받지 않으면 파계도 없다 상당히 허무주의적이 표현이지만 곧 계라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뒤집어 보면 이런 뜻으로도 됩니다. 하나의 방편인가? 그 자체가 우리 그 불성을 지키고 완성해나가는 길인가?』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 그렇죠. 그렇습니다. 도를 구하는 수행승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음계를 파하게 되면 삼매에 들 수 없고, 결코 들 수 없고, 거듭 강조합니다. 삼매에 들어가지 못하면 해탈 할 수 없습니다. 해탈은 삼매에서 옵니다. 생사를 자재한 것 역시 삼매에서 나옵니다. 삼매는 대단히 소중합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책을 보니까 스님께서는 경전공부를 열심히 해라 그리고 염불을 열심히 하고 계를 잘 지켜라 이 세가지에 역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을 본 것이 있는데요. 우리 중생은 이 세가지를 잘 지키면 극락에 이르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 효가 빠졌습니다. 틈틈이 연지대사의 말씀처럼 1년 아니라 죽을 때까지 정성을 대해 천도를 하여야 할 겁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아까 스님께서 불성에 대해 말씀하실 때 워낙 아득해서 감을 잡기 어려웠는데, 그렇다면 우리 불도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성불일진데, 궁극에 이르는 길이 지금 말씀하시는 염불선과 효, 계, 경전을 공부하고, 이런 공부를 통해 저희가 궁극에 이르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룰 수 있습니다. 우선 아라한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윤회를 벗어나야지요. 아라한과를 이룬 다음에 보살과를 이루기 때문에, 아라한 성과만 얻어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선불교를 나는 대단히 칭찬합니다. 그 깨달음 보림만 잘하면 아라한 자리로 갑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 말씀은 선불교의 깨달음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작일 뿐이고, 그곳에서 한걸음 더 나야가야한다. 그 방법을 여러 가지로 제사하고 계신 것이 지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칭명염불을 하면 보살지까지 갑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지금 우리불교도 급변하는 세계처럼 상당히 변화하고 있고 문화적인 바탕 위에서 여러 가지 흐름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간화선의 한계를 말씀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스님께서 말씀해주시고 계시는데 그 간화선의 한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여기서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으니까, 그 실천 방법으로서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셨다. 이렇게 저희는 알아듣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칭명염불을 권합니다. 계율 음계 지키고 효를 다하고 경전도 금강경이나 법화경 화엄경이나 부모은중경은 정말 우리가 봐야됩니다. 특히 금강경 정도는 하루에 한 번씩 독송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