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의 마지막 주택
주택청약조합저축이라는 게 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분양’인데, ‘분양’을 받으려면 이 저축에 가입한 사람이 당연, 유리하다. 나는 2009년 1월 계룡에 있는 대림 산업의 e편한세상 아파트에 입주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애들이 부모님의 용돈을 주고 싶다고 해서 2015년부터는 그 받은 돈으로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했다. 그런데 2021년 초, 계룡에 자이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때는 그 근처에 대형 할인점 IKEA 매점이 들어온다며 아파트에 입주자가 몰릴 때였다. 마을 미장원에서는 그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 돈벌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아내도 지금 아파트보다는 새 아파트에 옮겨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정든 집을 옮기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1987년 내가 교회 옆의 개인 주택에서 시내의 삼성아파트로 첫 번째 옮긴 것도 아내의 성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인 주택보다는 그때 처음 생기기 시작한 아파트가 훨씬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20여 년 살다 보니 낡은 아파트가 되어 보수할 것도 많고 해서 아예 새 아파트로 옮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 직장도 은퇴한 터여서 2008년 큰마음으로 두 번째 옮긴 곳이 이곳 계룡의 e-편한 세상 아파트다. 지금 14년째 살고 있는데 공기도 좋고 한가하고 필요한 편의시설이 다 있어서 평안한 곳이다.
응모한 아파트는 당첨이 되지 않았다. 주택청약종합저축에도 가입하고 계룡시에 사는 1가구 가족이어서 당첨될 확률이 높다고 했는데 되지 않았다. 아내는 퍽 서운해했지만, 지금은 감사하고 있다. 들어오겠다는 IKEA도 들어오지 않았고 주변에 고층건물이 너무 밀집해 들어서서 이제 그곳은 역세권인 이곳보다 훨씬 불편한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도 90이 넘었고 해서 옮긴다면 지상에서 천국으로 옮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주거지를 천국으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지상에도 묘지를 남겨야 한다. 이것은 자녀들과 부모가 합의해서 정해야 할 징검다리 거주지다.
나는 자녀가 삼남 일녀인데 세 아들은 다 미국에 있고 큰딸만 한국에 있다. 큰딸이 다니는 온누리교회에서 교회 묘지를 사고 교인들에게 그곳 묘지를 분양한 모양이었다. 큰딸은 부모 생각이 나서 묘지 한 구를 오래전에 예약했었다. 이번에 코로나 19로 묶여 있다가 딸과 하룻밤을 지낼 기회가 있어 그 ‘온누리 동산’이라는 곳을 가보았다. 원주시 문막 근처에 있는 충효공원 안에 있는데 교통이 너무 분비고 또 장지가 가파른 언덕에 있어서 이곳이 우리가 천국 가는 징검다리 거처가 된다는 것은, 남아 있는 자녀들에게 불편할 것 같아 결국 예약을 파기했다.
옛날에는 묘소를 갖겠다는 생각이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뿐 아니라 집에 관과 수의를 준비해 두고 나이가 들면 늘 꺼내어 만져보기도 하고 묻힐 땅이 과연 명당자리일까 하고 가서 주변을 둘러보며 다가오는 죽음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의 증가와 고령화로 한가하게 묘지면적을 넓게 잡을 수가 없다. 또한, 핵가족 시대와 출산율 저조로 앞으로 묘소를 찾아올 자녀들도 별로 없는 실정이다. 장례문화는 급격히 변해서 매장보다는 화장이 대세이며 화장 후에는 봉안시설보다 잔디장, 화초장, 수목장 등 작은 규모의 자연장을 권장하며 선호하는 편이다. 내 친구는 병원에 시신을 실험용으로 기증하고 병원이 장례도 대신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 시에서 운영하는 장지 공원도 있는데 거기에는 화장터를 만들어 소음을 지하로 돌려 주리고, 봉안시설로 납골당도 있는데, 자연장은 한 자 평방 정도의 대리석에 이름만 새겨 넣고 15년 동안 관리하게 하고 한번 연장하여 최대 30년간 보유했다가 유골은 흙과 함께 묻혀 묘지의 유효 기간이 30년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어 이 세상에 살게 하셨다. 그러니 죽으면 육체는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거창한 묘소를 만들어도 돌아볼 자손이 없으면 뭘 하겠는가? 요즘은 장례문화도 많이 바뀌어서 문상객도 많지 않다고 한다. 일에 쫓기고 바빠서 찾는 사람이 없고 대부분 조의금으로 대신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장례식장에 급히 갔는데 현금은 없고 카드밖에 없어 난감했는데 두리번거렸더니 ‘무인 조의금 납부기’가 있었다고 한다. 카드로 입금할 뿐 아니라 할부로도 낼 수 있다고 한다. 시대가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장지에 아무도 돌아볼 사람도 없으므로 묘소를 꾸며 놓을 게 아니라 부모의 유골을 진공 밀폐 용기에 보관하여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집에 모이기로 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 요즘은 돈이 되면 무엇이나 하는 회사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화장한 유골로 메모리얼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드립니다.”라고 광고하는 회사도 있다. 로니때 (LONITE’)라는 회사인데 비싸기는 하지만 고인의 유골로 아름다운 보석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영원히 두고 기념할 수도 있고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닐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잘 죽고 싶은 사람(Well Dying)은 아무리 사랑하는 유족이라도 이렇게 끈질긴 인연을 가지고 죽어서도 영원히 지상에 함께 있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 같다. 이 세상의 인연은 말끔히 잊어버려야 천국에서 육신의 삶과 인연을 끊고 평안히 영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딸은 ‘온누리 동산’은 너무 멀다고 자기가 사는 용인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용인공원’에 묘지를 하나 또 예약해 놓았다. 급격히 변해가는 현대인은 아닌 것 같다. 아내는 빨리 그곳 장지를 가보자고 한다. 천국에 가면서 지상에 남겨 놓을 마지막 거처를 보고 싶은 모양이다. 교통은 편리한지, 경치는 좋은지 보고 싶은 모양이다. 찾아올 후손이 몇이나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또 찾아온다 한들 우리는 벌써 유한한 세상과 인연을 끊은 그들을 잊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못 잊고 떠나있으면 그것 자체가 괴로움이고 천국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