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소외된 이들의 '수호천사'
| ▲ 김지현씨가 세탁해야할 어르신들의 이불을 보따리에 싸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씨는 “어르신들이 나를 보고 기뻐할 때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에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104마을’이 있다. 50여 년 전 서울 도심에 살던 철거민들의 이주지로 조성된 이 마을은 당시 주소(중계동 104번지)가 이름이 돼 ‘104마을’로 불린다. 104마을 어르신들이 ‘달동네 천사’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달동네 천사’는 매일같이 마을 어르신들 집을 방문해 말벗이 돼주고 청소도 해준다. 몸이 편찮은 어르신은 병원에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어르신들은 하루라도 ‘천사’가 보이지 않으면 허전해 하며 그의 소식을 궁금해한다. 환하게 웃으며 김씨 반겨 지난 5월 22일 아침, 마을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달동네 천사’ 김지현(체칠리아, 63) 씨에게 전화하자 “수산나 할머니가 체하셔서 죽을 쑤어드리고 있다”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10분쯤 지나자 김씨가 환하게 웃으며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왔다. 김씨는 “수산나 할머니가 어제 갑자기 아프다고 하셔서 밤늦게까지 돌봐드리다가 집에 왔는데 걱정이 돼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면서 “아침 일찍 다시 찾아가 죽을 끓여드리느라 좀 늦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김씨의 하루는 아침 8시에 시작된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홀몸 어르신들을 방문해 아픈 곳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핀다. 쌀이 떨어진 어르신에게는 주민센터에서 쌀을 타다 주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목욕을 시켜드린다. 어르신들이 전화로 도움을 청하면 밤낮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어르신들은 몸이 아파도 전화하고, 천장에 비가 새도 전화한다. 김씨와 104마을의 인연은 20여 년 전 시작됐다. “1990년대 초 레지오 마리애 활동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104마을을 찾아 어려운 어르신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집에서 멀지 않았는데도 이런 마을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죠. 이 집 저 집 방문하면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이 있으면 주민센터에 추천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어르신들을 찾았던 김씨는 10여 년 전부터 아예 매일 방문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가면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더 자주 보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하루가 멀다고 집에 찾아와 이유 없이 친절을 베푸는 김씨에게 거리를 두는 어르신도 있었다. “이렇게 일하면 돈을 얼마나 버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김씨는 그때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돕고 싶은 마음에서 나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씨는 꾸준히 어르신들을 보살폈고 시간이 흐르면서 김씨를 향한 경계의 시선은 어느덧 눈 녹듯 사라졌다. 마을이 있는 한 함께 김씨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현영자(마리아, 78) 할머니는 “10년 넘게 매일 같이 찾아와 말벗이 돼 주고 집안일까지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참 부지런하고 봉사도 많이 하는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04마을 어르신들은 김씨를 친딸 이상으로 생각하고 의지한다. 세상을 떠나기 전 “김씨를 꼭 만나고 싶다.”고 청하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치매에 걸려 아무도 못 알아보는 어르신이 김씨 얼굴만 알아본 일도 있었다. 104마을은 몇 년 안에 재개발돼 아파트 단지로 바뀌게 된다. 김씨가 어르신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김씨는 “104마을이 사라지는 날까지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봉사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어르신들이 정말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가 찾아뵈면 좋아하시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어르신 모습을 볼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껴요.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하느님이 불러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르신들에게 ‘체칠리아가 이 동네에 살아서 정말 든든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