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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장 강해설교
믿음이 없는 세대 20260712순복음사직교회오후예배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14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없음)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I. 변화하신 예수 그리스도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마 16장 복습
1. 십자가를 거부하는 사람들(1–12절)
2.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13–20절)
3.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 제자들(21–28절)
첫 번째 본문은 변화산에서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예수님이 세명의 제자만 데리고 올라가신 이유는
신명기 19:15 (가장 대표적인 구절)
"사람이 아무 악을 행하였거나 무슨 죄를 범하였든지 한 증인의 말만 가지고는 정죄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개역개정)
앞으로의 증인으로서 이들을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성경에서 해같이 빛나고 희어졌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변화된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모세는 율법, 즉 하나님의 언약을 대표하는 구약의 인물이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말라기 4:5-6 (가장 중요한 예언)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마태복음 11:13-14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7:10-13
제자들이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즉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던 대표적인 인물들과 그 언약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변형된 모습으로 변화산에 보여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이 광경은 황홀하고 경외스럽고 은혜충만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은혜 받은 곳에서 계속 있고 싶어하던 경험이 많이들 있으실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변형된 예수님, 즉 예수님의 영광된 세계를 봄으로써 우리의 헛된 생각들이 무너지고 하나님이 이루실 참된 세계에 마음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여기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보다 하나님이 이루실 세상에 더 마음이 끌려야 합니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제자들이 눈을 들었을 때 모세와 엘리야는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결국 예표되고 대표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30-31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떠나가실 일'**을 말할새." (개역개정)
여기서 **'떠나가실 일'**로 번역된 헬라어는 **ἐξοδος (엑소도스, Exodus)**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변화된 모습을 보이신 것은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결코 낙심하고 절망스런 것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변형된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본 영광의 세계에 머물기를 원했지만 다시 산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앞으로 자신이 본 영광의 세계를 추억하고 자신이 체험한 것을 자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영광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듣는 것은 아들과의 관계에서 살아감을 뜻합니다. 이것이 신자가 하나님이 이루실 참된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계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안다면 세상의 영광은 초라하게 보일 것입니다. 세상을 이런 믿음의 시각으로 보게 된다면, 예수를 믿는 것으로 뭔가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자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본 것은 영광의 세계입니다. 그 영광은 장차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지는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고난도 죽으심도 부활도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제자들은 영광만을 누리려 했으나 예수께서는 고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서만 그 영광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음을 거듭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자의 부활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영광이 무엇인지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로 세상에 증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고난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인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가 예수님의 의를 증거하는 길을 가고자 한다면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예수님의 의를 불편해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불편해 합니다. 에수님의 의는 인간의 의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기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신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성취하실 미래의 참된 생명의 세계에 소망을 주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사람들이 엘리야 즉 세례요한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인것처럼 인자(예수) 역시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임을 예고하셨다.
목회도 성공과 실패하는 잣대로 평가되는 세상에서 참된 성공과 실패는 오직 종말론적으로 평가될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세계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것만이 참된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기준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II. 패역한 세대
14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보통 우리는 믿음을 거의 만능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주님을 믿고 기도하면 해결해 주십니다.라고 말하면서 믿음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즉 믿음에 대해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능력입니다.
그런데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 말씀 앞에서 믿음이 만사형통이라는 말은 틀린 말임이 증명됩니다, 어떤 사람도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명령을 해서, 또는 부탁을 해서 옮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기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질병에 걸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한 사람이나, 자신들은 왜 귀신을 좇아내지 못했는지 물어보는 제자들이나 동일한 것은 예수님을 능력을 행하는 분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실 영광의 나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이것을 믿음이 없고 패역한 것으로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관심을 능력을 행하는 것에 두고 있는 것이야말로 믿음이 없는 것이고 패역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산을 옮길 수 없다면 믿음의 능력은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져서 어떤 능력을 행하고 싶어 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예수님이 이루신 십자가로 이루어진 영광의 나라를 보게 하고 그 나라에 마음을 두고 소망하게 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이루어질 생명의 세계, 예수님으로 인해서 성도에게 입혀질 영원한 영광의 세계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3:12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안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안다면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 믿음은 예수님이 이루신 생명의 세계에 마음을 두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예수님께서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을 하셨지만 당시 제자들에게 다시 살아난다는 말보다는 죽임을 당한다는 말이 귀에 더 생생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자체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을 향해서 다른 세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자는 세상과의 관계도 완전히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십자가로 인해 달라진 세상과의 관계를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말은 세상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뜻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의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예수가 살아가도록 맡기는 삶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근심하게 할까를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를 하나님과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즉 우리는 전혀 가치가 없는 일로 근심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로 인한 영광의 세계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세계의 가치를 아는 것, 그보다 복되고 좋은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자신의 믿음 없음을 깨닫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게 하는줄로 믿습니다.
III. 성전세 문제
2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성전세는 부자라고 해서 더 내고 가난하다고 해서 덜 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반 세겔을 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의 죄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세겔은 죄를 속하기 위해서 성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강자와약자가 없고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25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고대 사회에서 임금은 그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세금을 받는 사람이지 바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임금의 아들 또한 세금을 받는 위치에 속하기 때문에 베드로는 당연히 ‘타인에게서 받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들들은 세를 면한다’는 말씀으로 성전세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베드로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나타내십니다.
성전세를 하나님께 바쳐야하는 의무적인 행위로 여기는 것이 자신을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타인의 관계에 있는 자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것처럼, 헌금을 신앙의 증거물로 여긴다거나 복을 받기 위한 수단쯤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바라보지 않고 타인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계에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계에 있다면 자신의 행위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계에 있음을 아는 성도는 아들이 되거나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 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써 자유롭게 기쁨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모든 면에서 자녀로서 자유롭지만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 많은 배려와 사랑의 수고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27절에서 특이한 방법으로 성전세를 내게 합니다. 이 본문의 의도는 성전세를 바치되 거기에는 인간의 그 어떤 공로나 의도 포함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헌금을 하는 것에도 이 같은 생각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낚시로 건져 올린 고기의 입에서 얻은 한 세겔(4 데나리온)처럼 내 노력으로 얻은 내것이 아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이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헌금하는 것을 신앙적인 행위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아갑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교회에 필요한 것을 담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됩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성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으로 도우면 됩니다. 여기에는 의무적인 아니라 자유와 자발적 의사가 있을 뿐입니다.
건물 성전은 그림자일 뿐이며 예수그리스도 자체가 참된 성전이십니다.
성도가 복음을 위해 헌금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부요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돈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이미 부요하게 되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기쁨으로 헌금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를 면할 완벽한 자유가 있으셨음에도 유대인들이 실족하지않게 하려고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생명의 속전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됨을믿음으로 감사함으로 복음전파를 위해 헌금하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영광의 현현: 변화산 사건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으로, 율법(모세)과 선지자(엘리야)의 증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귀결됨을 선포합니다.
2. 고난을 통한 영광: 제자들은 영광만을 누리려 했으나, 예수께서는 고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서만 그 영광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변화산의 영광은 십자가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실체입니다.
믿음의 재정의: 인간의 욕망을 투사하는 능력으로 삼는 것을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라고 질책하셨습니다.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와 그가 이루실 생명의 세계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3. 속전의 완성: 성전세 문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율법적 의무에서 자유로우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진정한 '생명의 속전'을 지불하실 것을 암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