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신농(神農)의 말을 실천하는 자인 허행(許行)이 초(楚)나라에서 등(藤)나라로 가서 (궁궐의) 문에 다다라 문공(文公)에게 아뢰기를, “먼 곳의 사람이 임금께서 인정(仁政)을 행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집 자리 하나를 받아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자, 문공(文公)에 그에게 거처할 곳을 주니, 그 제자 수십 명이 모두 갈옷을 입고는 신을 삼고 자리를 짜서, 그것으로 양식을 마련하였다. 02 진량(陳良)의 제자 진상(陳相)이 그의 아우 신(辛)과 함께 쟁기를 지고서 송(宋)나라에서 등(藤)나라로 가서 말하기를, “임금께서 성인(聖人)의 정치를 행하신다고 들었으니, 이 또한 성인이시니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03 진상(陳相)이 허행을 보고 기뻐하여, 자기가 배운 것을 버리고 그에게 배우더니, 진상이 맹자(孟子)를 보고 허행(許行)의 말로써 거론하기를, “등(藤)나라의 임금은 진실로 현군(賢君)입니다. 비록 그러하니 도(道, 농가학파의 학문)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현자는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밭 갈아서 먹으며, 손수 밥 지어 먹으면서 다스립니다. 지금 등(藤)나라에는 창름(倉廩)과 부고(府庫)가 있으니 이는 백성을 괴롭혀서 자기를 봉양한 것이니, 어떻게 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神農’(신농) ; 고대의 염재 신농씨를 말하는데,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후대에 그를 받들고 농업을 중시하는 학파가 형성되었는데 이를 농가학파라 한다.
중국 고대의 삼황(三皇)은 일반적으로 ‘복희씨(伏羲氏)’과 신농씨(神農氏) 그리고 여와씨(女媧氏)를 말하며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또는 泰皇)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또한 삼황 가운데 여신인 여와씨 대신 수인씨(燧人氏)와 축융씨(祝融氏)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경우도 있다.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었으며, 신농씨는 농사법을 전해주었다.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사마 천(司馬遷)은 3황의 전설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사기(史記)》의 기술을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부터 시작한다.
· ‘踵門而告文公曰’에서 ‘踵’(종)은 ‘발꿈치’, 여기서는 동사로 ‘발꿈치가 닿았다, 이르렀다’.
· ‘則是厲民而以自養也’에서 ‘以’의목적어는 ‘厲民’. ‘自’는 ‘養’의 목적어인데 앞으로 나옴.
* [강 설(講說)] —————
등문공(滕文公)이 맹자에게 영향을 받아 훌륭한 정치를 하자, 현자(賢者)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는데, 그 중에서 유가(儒家)의 진상이 농가(農家)인 허행(許行)에게 감화되어 농가(農家)로 변신, 맹자에게 질문한 것이다.
* [등문공·상](제4장) — ② 농가학파를 따르는 진상에게 질문하는 맹자
05-04-04 孟子曰 許子 必種粟而後 食乎 曰然許子
必織布而後 衣乎 曰否 許子 衣褐 許子
冠乎 曰冠 曰奚冠 曰冠素 曰自織之與 曰否 以粟易之
曰許子 奚爲不自織 曰害於耕 曰許子 以釜甑爨 以鐵耕乎
曰然自爲之與 曰否 以粟易之
05 以粟易械器者 不爲厲陶冶
陶冶亦以其械器易粟者 豈爲厲農夫哉
且許子 何不爲陶冶 舍皆取諸其宮中而用之
何爲紛紛然與百工交易 何許子之不憚煩
曰百工之事 固不可耕且爲也
04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허자(許子)는 반드시 곡식을 심은 뒤에 먹는가?” / “그렇습니다.” / “허자는 반드시 베를 짠 뒤에 입는가?” / “아닙니다. 허자를 갈옷을 입습니다.” / “허자는 모자를 쓰는가?” / “씁니다.” / “무엇을 쓰는가?” / “흰 비단으로 된 모자를 씁니다.” / “스스로 그것을 짜는가?” / “아닙니다. 곡식을 가지고 바꿉니다.” / “허자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짜지 않는가?” / “밭갈이에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 “허자는 가마솥과 시루로써 밥을 지으며, 철기로써 밭을 가는가?” / “그렇습니다.” / “스스로 그것을 만드는가?” / “아닙니다. 곡식을 가지고 바꿉니다.” /
05 (맹자께서 물으셨다) “곡식을 가지고 연장이나 그릇을 바꾸는 것은 질그릇 굽는 자나 대장장이를 해치는 것이 되지 아니하니, 질그릇 굽는 자나 대장장이 또한 그 연장이나 그릇을 가지고 곡식과 바꾸는 것이 어찌 농부를 해치는 것이 되겠는가? 또 허자는 어찌 질그릇을 굽고 풀무질을 하여 다만 모두 자기 집안에서 그것을 만들어 쓰지 아니하고, 무엇 때문에 어지러이 백공(百工)들과 교역(交易)하는가? 어찌하여 허자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아니하는가?” /
자기가 쓰는 물건을 모두 직접 만들어서 쓰고, 먹는 것을 모두 직접 만들어서 먹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 제4장 4~5절에서는 맹자에 물으심에 진상이 대답한 것이다. 제4장 6절 이하는 진상이 말한 허행의 학설에 대한 맹자의 논설이다. 자급자족을 내세우는 농가학파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농가학파는 편협하므로 이단의 학문이다.
* [등문공·상](제4장) — ③ [或勞心 或勞力]을 말씀하시는 맹자
05-04-06 然則治天下 獨可耕且爲與 有大人之事 有小人之事
且一人之身而百工之所爲備 如必自爲而後 用之
是率天下而路也
故曰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 治人 勞力者 治於人
治於人者 食人 治人者 食於人 天下之通義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만은 유독 밭 갈면서 할 수 있는 것인가? 대인(大人)의 일이 있고 소인(小人)의 일이 있으니, 또한 한 사람의 몸으로서 모든 기술자가 하는 것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해서 만약 반드시 스스로 한 연후에 쓰게 한다면 이는 천하의 사람을 이끌어 길에 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혹 마음을 쓰는 경우가 있고, 혹 힘을 쓰는 경우가 있으니,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하였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서 먹여지는 것이니, 천하에 공통된 도리이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有大人之事’에서 ‘大人’은여기서는 ‘정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
· ‘且一人之身而百工之所爲備’에서 ‘備’(갖추다) 타동사의 목적어는 ‘百工’이다.
· ‘食人’에서 ‘食’(사)는 ‘먹여주다’는 뜻이 사역동사, ‘食於人’에서 ‘食’(사)는 ‘먹여진다’ 피동
* [강 설(講說)] —————
농사(農事)을 지으면서 다른 기술자들이 하는 일을 겸할 수 없듯이, 정치(政治)나 교육(敎育) 등 마음을 쓰는 일도 다른 일과 겸할 수 없는 것이다.
주자(朱子)가 말했다. “군자는 소인이 없으면 굶주리고 소인은 군자가 없으면 혼란하니, 이것을 가지고 교역함은 바로 농부와 도공·야공이 곡식과 계기를 가지고 서로 교역함과 같으니, 이는 서로 구제하는 것이요, 서로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가 어찌 반드시 밭을 갈고 또 다스려야 하겠는가?(君子無小人則飢 小人無君子則亂 以此相易 正猶農夫 陶冶 以粟與械器相易 乃所以相濟 而非所以相病也 治天下者 豈必耕且爲哉)”
07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요(堯)의 시대에 천하(天下)가 여전히 평정되지 못해서, 큰물이 옆으로 흘러 천하에 범람하여 초목이 번창하고 무성하며, 금수가 번식하여 오곡이 익지 못하며, 금수(禽獸)가 사람을 핍박하여 짐승의 발자국과 새의 발자국이 다니던 길이 나라 한 가운데서 교차하거늘, 요(堯)가 이를 걱정하여 순(舜)을 등용하여 다스림을 펴게 하시니, 순(舜)이 익(益)으로 하여금 불을 담당하게 하셨는데, 익(益)이 산과 늪에 불을 질러 태우자, 금수가 도망하여 숨었다.
우(禹)가 구하(九河, 모든 강)를 소통하되, 제수[濟]와 탑수[漯]를 터서 바다로 흘려보내고, 여수[汝]와 한수[漢]를 트고, 회수[淮]와 사수[泗]의 물을 뽑아 양자강으로 흘려보내시니, 그런 후에야 나라 한 가운데는 (곡식을) 얻어서 먹을 수가 있었다. 이때에 우(禹)가 8년 동안 바깥에 있으면서 세 번이나 자기 집의 문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못했으니, 비록 밭 갈고자 하나 할 수 있었겠는가?”
· ‘瀹濟漯而注諸海’에서 ‘瀹’(약)은 ‘소통하다’, ‘漯’(탑)은 산동성에 있는 도해하의 지류.
* [강 설(講說)] —————
정치하는 것이 매우 바빠서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할 수 없음을 우(禹)의 예(例)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 그런데『서경』우공(禹貢)과 지금의 물길을 근거로 해보면, 오직 한수만이 양자강으로 들어가갈 뿐이요, 여수와 사수는 회수로 들어가고 회수를 따로 바다로 들어간다. 여·한·회·사의 네 물이 모두 양자강으로 들어간다고 말한 것은 기록자의 잘못된 것이다.(據禹貢 及今水路 惟漢水入江耳 汝泗則入淮 而淮自入海 此謂四水 皆入于江 記者之誤也)
* [등문공·상](제4장) — ⑤ 천하를 경영하는 방훈[요]과 후직, 설 ; 밭 갈 틈이 있겠는가?
05-04-08 后稷敎民稼穡 樹藝五穀 五穀熟而民人育
人之有道也 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
聖人有憂之 使契爲司徒 敎以人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放勳 曰勞之來之 匡之直之 輔之翼之 使自得之
又從而振德之 聖人之憂民如此 而暇耕乎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후직(后稷)이 백성들에게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을 가르쳐서 오곡을 심고 기르게 하니, 오곡이 익고 만인(萬人)이 길러졌다. 사람은 도(道)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먹는 것을 배불리 하고 입는 것을 따뜻하게 하여 편안히 거처하고 가르침이 없다면 금수(禽獸)에 가까워진다.
성인(聖人)이 이를 근심함이 있어서 설(契)로 하여금 사도(使徒)로 삼아 인륜을 가르쳤으니, 부자(父子)간에 친(親)함이 있으며, 군신(君臣)간에 의(義)로움이 있으며, 부부(夫婦)간에 구별함이 있으며, 장유(長幼)간에 차례가 있으며, 붕우(朋友)간에 믿음이 있는 것이었다. 방훈(放勳)이 말씀하시기를 ‘위로하고 오게 하며, 바로잡아주고 펴주며, 도와주고 가리워주어 스스로 얻게 하고 또 더 나아가 떨쳐 일어나 실천하게 한다’ 하셨으니, 성인(聖人)이 백성을 걱정함이 이와 같으니, 밭 갈 틈을 낼 수 있겠는가?”
* [자구(字句)의 해석] —————
· ‘后稷’(후직) ; 농업을 관장하는 관리. 주(周)나라의 선조인 기(棄)가 후직이었다고 한다.
· ‘后稷敎民稼穡’에서 ‘敎’는 ‘~에게 ~을 가르치다’, ‘~을 하게 하다’의 사역동사.
‘放勳’은 본래 사신(史臣)이 요(堯)를 ‘공덕이 크다 하여’ 칭찬한 말인데, 맹자께서 이로 말미암아 요(堯)의 호(號)로 삼은 것이다.(放勳 本史臣贊堯之辭 孟子因以爲堯號也)
· ‘又從而振德之’에서 ‘從’의 목적어는 ‘之’. ‘德’은 여기서 ‘덕[본마음]을 실천하게 하다’. 혹은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그 사람의 특성이나 장점, 실천능력’을 말한다.(손기원)
· ‘勞之來之 匡之直之 輔之翼之 使自得之 又從而振德之’는 지도자의 역할의 중요한 덕목으로 한 마디로 하면 사람들에게 ‘동기부여(動機附輿)’를 하는 것이다.
‘동기부여’에 해당하는 주역의 코드는 (16) 뇌지(雷地) 예괘(豫卦)이다. 특히 사효(四爻, 九四)가 ‘동기부여(動機附輿)’를 하면 전체가 기뻐하는 상황을 말한다.
雷地豫
[기 쁨]
豫, 利建侯行師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형국이다.
九四, 由豫, 大有得, 勿疑, 朋盍簪
구사는 기쁨이 (자기로) 말미암는다. 크게 얻음이 있을 것이니,
의심하지 않으면 벗이 뜻을 합하여 몰려들 것이다.
* [강 설(講說)] —————
물과 땅이 잘 다스려진 후에 농사짓는 일을 가르칠 수 있고, 의식이 풍족한 뒤에 교화를 베풀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言水土平然後 得以敎稼穡 衣食足然後 得以施敎化) 그리고 정치나 교육 등을 담당하는 일이 농사일을 겸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후직(后稷), 사도(司徒), 요(堯)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지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일이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륜(五倫)을 가르치는 일 등은 매우 중요한 일이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요(堯)임금의 정치방법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참다운 삶을 직접 제시하여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백성 스스로가 그것을 터득하도록 하되, 부족한 부분을 뒤에서 보조해 주는 역할만 하고, 또 백성들이 참다운 삶을 터득하였을 때는 그것을 분발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 성인(聖人)이 백성을 걱정함이 이와 같으니, 밭 갈 틈을 낼 수 있겠는가? 방훈의 말씀을 한 마디로 하면 동기부여(動機附輿)를 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 [등문공·상](제4장) — ⑥ 요·순의 천하 경영 ; 어찌 밭 갈 틈이 있겠는가?
05-04-09 堯以不得舜爲己憂 舜以不得禹皐陶爲己憂
夫以百畝之不易爲己憂者 農夫也
10 分人以財 謂之惠 敎人以善 謂之忠
爲天下得人者 謂之仁 是故以天下與人易 爲天下得人難
11 孔子曰 大哉 堯之爲君 惟天爲大 惟堯則之
蕩蕩乎民無能名焉 君哉 舜也 巍巍乎 有天下而不與焉
堯舜之治天下 豈無所用其心哉 亦不用於耕耳
09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요(堯)는 순(舜)을 얻지 못함을 자기의 근심으로 삼으셨고, 순(舜)은 우(禹)와 고요(皐陶)를 얻지 못함을 자기의 근심으로 삼으셨으니, 백묘(百畝)가 다스려지지 못함을 자기의 근심으로 삼는 자는 농부(農夫)이다. 10 남에게 재물(財物)을 나누어주는 것을 혜(惠)라 이르고, 남에게 선(善)을 가르쳐주는 것을 충(忠)이라 이르며, 천하에 사람들을 위하여 인재(人才)를 얻는 것을 인(仁)이라 이른다. 이 때문에 천하(天下)를 가지고 남에게 주는 것은 쉽고, 천하를 위하여 사람을 얻는 것은 어렵다.
11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위대하도다. 요(堯)의 임금노릇하심이여! 오직 하늘만이 위대하거늘 오직 요임금만이 이를 본받았으니, 넓고 커서 백성들이 이름 붙일 수가 없도다. 임금답도다! 순(舜)이여! 우뚝하여 천하를 소유하고도 거기에 관여하지 않았다.’ 하셨으니, 요순(堯舜)이 천하를 다스림에 어찌 그 마음을 쓰신 바가 없겠는가마는, 역시 밭가는 데는 쓰지 않으셨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皐陶’(고요); 순(舜)임금의 신하 ‘형벌을 관장하였다’.
· ‘夫以百畝之不易爲己憂者’에서 ‘易’(이)는 ‘다스린다’.
· ‘蕩蕩乎民無能名焉’에서 ‘蕩蕩乎’(탕탕호)는 ‘넓고 큰 모양’.
· ‘巍巍乎’(위위호)는 ‘우뚝한 모습’.
· ‘有天下而不與焉’에서 ‘與’는 관여하다. ‘焉’ ‘거기에, 거기에서’ 등 장소와 대상을 나타냄.
* [강 설(講說)] —————
정치의 역할은 우선 백성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의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후계자를 찾아내야 한다. 경제적인 부(富)의 증진, 도덕의 확립, 후계자 양성의 일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없는것이다. … 주자가 말했다. “요순이 백성을 걱정한 것은 일마다 걱정한 것이 아니요, 먼저 해야 할 일을 급히 했을 뿐이다. 백성을 걱정한 것이 이와 같이 크다면 단지 밭을 갈 겨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굳이 밭을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堯舜之憂民 非事事而憂之也 急先務而已 所以憂民者其大如此 則不惟不暇耕 而亦不必耕矣)”
천하에 사람들을 위하여 인재(人才)를 얻는 것을 인(仁)이다. 사심이 없이 세상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지도자를 얻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천하(天下)를 가지고 남에게 주는 것은 쉽고, 천하를 위하여 사람을 얻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오직 요(堯)가 순(舜)을 얻고, 순(舜)이 우(禹)와 고요를 얻은 것과 같이 하여야 이른바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는다는 것이어서 그 은혜가 광대하고 교화가 무궁한 것이니, 이 때문에 인(仁)이 되는 것이다.(惟若堯之得舜 舜之得禹皐陶 乃所謂爲天下得人者而其恩惠廣大 敎化無窮矣 此所以爲仁也)
인(仁)을 실천하는 사람은 남과 자기를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왕이 되더라도 남을 지배한다는 의식이 없다. 그러므로 순(舜)은 모든 백성의 위에 있으면서도 백성을 지배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았다. 요순처럼 백성과 하나되어 백성을 인도하였던 훌륭한 임금은 백성의 일을 두루 살피고 마음을 쓰지만, 직접 밭을 갈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 [등문공·상](제4장) — ⑦ 농가학파는 오랑캐의 학설이다!! 스승을 배반한 진상
05-04-12 吾聞用夏變夷者 未聞變於夷者也
陳良 楚産也 悅周公仲尼之道 北學於中國
北方之學者 未能或之先也 彼所謂豪傑之士也
子之兄弟事之數十年 師死而遂倍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夏, 中華)의 법(法)을 가지고 오랑캐의 법(法)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들었으나, 오랑캐에게서 변화를 당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진량(陳良)은 초(楚)나라 태생이니, 주공(周公)·중니(仲尼)의 도(道)를 좋아하여 서울에 가서 북쪽의 공부를 하였는데, 북쪽의 학자들이 간혹이라도 그를 앞설 수 없었으니, 그는 이른바 굳세고 걸출한 선비이다. 이제 자네 형제가 수십 년 간 섬기다가 스승이 죽자 드디어 배반하는구나!”
· ‘夷’(이); 동이(東夷)는 원래 중국의 동부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과 그 나라를 일컫는 고유명사였으나,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변방을 일컫는 말로 일반화되었다. 주(周)나라는 은(殷)을 멸망시키고 성립한 나라인데, 은(殷)이 이(夷)의 문화를 근거로 한 나라이므로, 은(殷)의 문화를 격하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이(夷)를 변방지역 또는 오랑캐 등의 의미로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이기동) 맹자 또한 당시의 일반화된 용어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中國’은 ‘수도’ 즉 ‘서울’이라는 뜻이다.
· ‘未能或之先也’에서 ‘之’는 ‘先’과도치되어 있다. ‘간혹이라도 그를 앞설 수 없었으니’
· ‘彼所謂豪傑之士也’에서 ‘之’는 관형격조사의 역할을 한다.
· ‘師死而遂倍之’에서 ‘倍’는 ‘배반하다’의 뜻.
* [강 설(講說)] —————
이 이하는 진상(陳相)이 스승을 배반하고 허행(許行)을 배움을 꾸짖은 것이다. 진량(陳良)은 화하의 가르침을 써서 오랑캐를 변화시켰는데, 진상(陳相)은 오랑캐에 변화 당함을 말씀하신 것이다.(言陳良 用夏變夷 陳相變於夷也) 문화(文化)의 수준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진상(陳相)이 유학(儒學)을 버리고 농가(農家)의 학설을 추종하는 것은 이와 반대인 것이다.
* [등문공·상](제4장) — ⑧ 농가학파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南蠻鴃舌之人]의 학설
05-04-13 昔者 孔子沒 三年之外 門人 治任將歸
入揖於子貢 相嚮而哭 皆失聲然後 歸
子貢 反築室於場 獨居三年然後 歸
他日 子夏子張子游 以有若似聖人 欲以所事孔子事之
彊曾子 曾子曰 不可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
14 今也 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 子倍子之師而學之
亦異於曾子矣
13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옛적에 공자(孔子)께서 돌아가시자, 삼년 뒤에 문인(門人)들이 짐을 챙겨(시묘를 마치고) 돌아갈 적에, 자공(子貢)의 처소에 들어가 읍(揖)을 하고 서로 향하여 소리 내어 울어서 모두 목이 쉰 뒤에 돌아가거늘, 자공(子貢)은 다시 돌아와 마당에 집[廬幕]을 짓고 홀로 3년을 거처한 뒤에 돌아갔었다.
후일에 자하(子夏), 자장(子張), 자유(子游)가 유약(有若)이 성인(聖人)과 닮았다는 것을 가지고 공자(孔子)를 섬기던 바로써 그를 섬기려 하여 증자(曾子)에게 강요하자,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안 된다. 강한(江漢)으로 씻은 것과 같으며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과 같아서 희고 희도다. 그보다 더할 수는 없다’ 하였다.
14 지금 남만(南蠻)의 때까치 혓바닥을 가진 사람이 선왕(先王)의 도(道)를 비난하거늘 자네가 자네의 스승을 배반하고 그것을 배우니 또한 증자(曾子)와 다르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三年之外門人’에서 ‘外’가 시간개념으로 쓰일 때는 ‘후(後)’, ‘內’는 ‘전(前)’이다.
· ‘治任將歸’에서 ‘任’은 ‘짐’, ‘治任’은 ‘짐을 다스리다’, ‘짐을 지다’
· ‘入揖於子貢’에서 ‘入’의 목적어는 ‘於子貢’인데중복되기 때문에 생략했다.
· ‘皆失聲然後’에서 ‘失聲’은 ‘소리를 잃는다’ 즉 ‘목이 쉬다’
· ‘反築室於場’에서 ‘場’은묘 앞의 마당을 말한다.
· ‘有若’ ; ‘有子’『논어(論語)』학이편 제2장에 나온다.
· ‘南蠻鴃舌之人’의 ‘鴃’(격)은 ‘때까치’ ‘鴃舌之人’는 때까치처럼 형편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
· ‘非先王之道’의 ‘先王’은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등의 옛 성군들.
* [강 설(講說)] —————
공자(孔子)의 덕(德)은 양자강 물이나 한수(漢水)와 같은 물로 깨끗하게 씻고 가을의 태양 아래에서 말려서 깨끗하게 된 것처럼 완벽하다고 생각한 증자(曾子)는, 공자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스승으로 섬길 수 없었는데, 진상(陳相)은 스승이 죽자 때까치 같이 형편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으니 잘못됨이 많은 것이다.
* [등문공·상](제4장) — ⑨ 문화 퇴행의 농가학파 ; 성인의 응징을 받아야 할 이론
05-04-15 吾聞出於幽谷 遷于喬木者 未聞下喬木而 入於幽谷者
16 魯頌曰 戎狄是膺 荊舒是懲 周公 方且膺之
子是之學 亦爲不善變矣
15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컴컴한 골짜기에서 나와서 높은 나무로 옮긴다는 것은 들었어도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컴컴한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16 노송(魯頌)에 이르기를, ‘융(戎)과 적(狄)을 공격하여 형서(荊舒)를 징계하였다’ 하였으니, 주공(周公)도 그들을 거부하고 응징하셨거늘, 그대는 그것을 배우니 또한 좋게 달라지지 못한 것이로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出於幽谷 遷于喬木者’은『시경(詩經)』소아(小雅) 벌목지시(伐木之詩)
‘伐木丁丁 鳥鳴嚶嚶 出自幽谷 遷于喬木’ (나무를 쩡쩡 베는데 새는 앵앵 울도다.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간다.)
· ‘魯頌’ ;『시경(詩經)』노송(魯頌) 비궁지편(閟宮之篇)을 말한다.
· ‘戎狄是膺’에서 ‘是’는 ‘戎狄’과 ‘膺’이 도치되었음을 나타냄. ‘膺戎狄’
· ‘荊舒是懲’에서 ‘是’는 ‘荊舒’와 ‘懲’이도치되었음을 나타냄, ‘懲荊舒’
‘荊’(형)은 楚나라의 본래 칭호이다. ‘舒’(서)는 초나라에 가까이 있는 나라이다.
· ‘方且膺之’에서 ‘方’은‘거부하다’인데 목적어 ‘之’가 중복을 피하여 생략되었다.
· ‘子是之學’에서 ‘之’는 ‘是’와 ‘學’이 도치되었음을 나태냄.
* [강 설(講說)] —————
오랑캐의 학문은 주공(周公)도 거부(拒否)하고 응징(膺懲)하는 것인데 진상(陳相)은 유학(儒學)을 하다가 도중에 오랑캐의 학문을 하였으니 잘못된 것이다.
* [등문공·상](제4장) — ⑩ 농가학파의 허점(虛點)을 비판하는 맹자
05-04-17 從許子之道則市賈不貳 國中 無僞
雖使五尺之童適市 莫之或欺 布帛長短 同則賈相若
麻縷絲絮輕重 同則賈相若 五穀多寡同則賈相若
屨大小同則賈相若
18 曰夫物之不齊 物之情也 或相倍蓰 或相什伯 或相千萬
子比而同之 是亂天下也 巨屨小屨同賈 人豈爲之哉
從許子之道 相率而爲僞者也 惡能治國家
17 (진상이 말하였다) “허자(許子)의 말을 따르면 시장의 가격이 다르지 않으므로 나라 안이 거짓이 없어질 것이니, 비록 오 척(五尺) 되는 아이로 하여금 시장에 가게 하더라도 그를 속이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포백(布帛)이 길이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으며, 삼·올실·명주실·솜 등이 무게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으며, 오곡(五穀)이 양(量)이 같으면 값이 서로 같으며, 신이 크기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을 것입니다.”
18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물건이 똑 같지 아니함은 물건의 실상이니, 혹 (값의 차이가) 서로 간에 배(倍)가 되고 다섯 배가 되며, 혹은 서로 간에 열 배가 되고 백 배가 되며, 혹은 서로 간에 천 배가 되고 만 배가 되거늘, 그대는 이것을 나란히 하여 똑 같이 하려하니, 이는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좋은 신과 나쁜 신이 값이 같다면 사람들이 어찌 (좋은 신을) 만들겠는가? 허자(許子)의 방법을 따르는 것은 서로 다투어 거짓을 하게 하는 것이니 어떻게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 [자구(字句)의 해석] —————
· ‘從許子之道則市賈不貳’에서 ‘賈’(가)는 ‘가(價)’와 통용. ‘貳’는 동사 또는 형용사를 부정하는 말(不) 다음에 왔으므로 ‘貳’는 동사 혹은 형용사. ‘貳’는‘다르다’, ‘일(壹)’은 ‘같다’.
· ‘莫之或欺’에서 ‘之’는 ‘或欺’와도치되었다. ‘莫或欺之’
· ‘物之情也’에서 ‘情’은 ‘사물의 실상’
· ‘或相倍蓰’에서 ‘倍’는 ‘배’, ‘蓰’(사)는 다섯 갑절.
· ‘或相什伯’에서 ‘什’은 10배, ‘伯’은 ‘백(百)’과 통용, ‘백배(百倍)’
· ‘巨屨小屨同賈’에서 ‘巨·小’는문맥상 ‘품질이 우수하다·나쁘다’의 뜻이다.
* [강 설(講說)] —————
허행(許行)은 직접적이고 외형적인 것만 따지기 때문에, 상품에 있어서도 크기·무게·수량·길이 등이 같으면 값을 모두 같게 할 것이다. 이는 일견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상품의 품질을 도외시 한 것이므로 실질적으로는 불공평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품질이 나쁜 상품을 만들게 되므로 모든 면에서 퇴보하게 될 것이다.
맹자(孟子)가 중시한 것은, 학문(學問)을 달성하는 것, 학문의 내용을 실천(實踐)하는 것, 해로운 이단(異端)의 학문을 배척하는 것이다. 첫째 학문을 달성하는 내용에 관한 설명은 <공손추장구·상> 제2장에, 둘째 학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인 왕도정치의 실현에 관한 설명은 <양혜왕장구·> 제7장에, 그리고 셋째 해로운 이단의 학문을 배척하는 내용은 이 <등문공장구·상> 제4장에서 가장 자세하고 풍부하게 개진되어 있다.…♣
첫댓글 가야할 길은 하나 뿐
어려운 길 돌아가나
쉽게 곧장 찾아가나
그 길 찾아가면 되리
가야할 길은 하나 뿐
엉뚱한 길 잘못 들어
헤매다 골목 막다르면
어찌할꼬 어떻게 할꼬
가야할 길은 하나 뿐
이왕이면 바르게 난
그 크고 밝은 길 따라
가야하리 가야만 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