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폭탄테러>
2002년 10월 12일 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꾸따(Kuta)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에서 두 개의 폭탄이 터졌다. 이로써 근 200명이 죽고 3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호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당했다.
폭탄이 터진 사리 클럽(Sari Club)이 소재한 잘란 레기안(Jalan Legian)가는 이 나이트클럽말고도 호텔과 술집과 식당과 디스코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매일 저녁 숱한 관광객들이 붐빈다.
사리 클럽에서의 폭발과 거의 동시에 발리의 수도인 덴빠사르(Denpasar)의 미국 영사관 근처와 북부 술라웨시의 머나도(Menado)에 있는 필리핀 영사관 근처에서도 폭탄이 터졌다.
발리에서의 폭탄테러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메가와티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는 발리는 메가와티의 한 중요한 정치적 기반이다. 그녀의 할머니는 발리 출신이다. 세속적 경향을 갖는 메가와티의 정당은 총선 때 발리에서 기록적인 득표율을 올렸다.
발리는 종교적으로는 비무슬림적, 정치적으로는 세속적인 지역으로, 인도네시아 이슬람주의자들의 눈에는 항상 거슬리는 곳이었다. 게다가 서구 관광객들이 향락을 추구하는 발리 특히 이번 테러의 현장인 꾸따는 테러리스트들의 눈에는 서구의 퇴폐적 문화의 상징으로 비쳤을 것이다. 한 마디로 꾸따의 사리 클럽은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서구적 비도덕성과 퇴폐성을 공격하는 데 적합한 목표였던 것이다.
사건 직후, 몇몇 언론들에서는 테러가 인도네시아 내부의 정치적 세력분쟁의 결과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번 폭탄테러가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불안을 원하는 어떤 세력, 예컨대 현재 중앙권력에서 밀려난 군부가 조종하여 일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도네시아의 여러 이슬람 단체들과 정치인들은 그동안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빈번하게 그래 왔던 것처럼 각종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한 가지 괴상망칙한 음모론은 미국 정부가 인도네시아에서 미군 주둔을 강화하고 안보정책 차원에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오래 지속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해 폭발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은 물론 그와 같은 근거 없는 억측을 하지 않는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분명히 테러 집단의 소행이며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폭탄테러로 인도네시아의 안전이 얼마나 위협을 받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국방부장관 마또리 압둘 잘릴(Matori Abdul Jalil)은 발리 테러가 심지어 뉴욕 9ㆍ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의 소행이라고 단정을 지어, 인도네시아 정치계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사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도네시아에 테러 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극구 부인해 왔다. 그러나 이 번 사건에 사용된 폭발물의 종류 그리고 여러 폭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는 사실과 특히 폭발로 인한 파괴의 규모가 엄청났다는 점은 이번 테러가 매우 잘 훈련된 집단에 의해 행해졌으며, 그러한 테러집단이 인도네시아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미국 정부와 호주 정부는 그동안 동남아시아의 몇몇 무슬림 조직들과 알카에다 간에 상당히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누차 경고해 왔다.
이번 테러로 인도네시아에서 혐의의 시선을 받는 폭력적인 이슬람 단체로는 라스카르 지하드(LJ: Laskar Jihad “聖戰의 戰士”), 프론트 뻠벌라 이슬람(FPI: Front Pembela Islam “이슬람수호전선”), 저마 이슬라미야(JI: Jemaah Islamiyah “이슬람 공동체”) 등 세 조직이 있다. 흥미롭게도 발리 테러 후 며칠 지난 다음 위의 단체 중 하나인 LJ는 10월 12일 한 주일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앙조직의 지령에 따라 자진 해체되었다고 발표했다. LJ는 말루꾸 지역에 기독교 국가가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00년 1월 30일 족자카르타에서 창립된 조직으로 그동안 인도네시아에서의 기독교도-무슬림간 분쟁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 LJ의 발표가 있은 지 며칠 후에는 FPI도 자체적인 조직 해체를 발표했다. 두 단체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사회가 벌리는 반(反)테러 투쟁의 와중에서 범죄적 조직으로 낙인될 것을 두려워 했을 것이다.
LJ와 FPI는 그 이후 테러 혐의와 관련하여 언론에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당국의 조사는 곧 JI에 집중되었다. 이 단체의 지도자 압둘 바카르 바쉬르(Abdul Bakar Basyir)는 발리 폭탄테러의며칠 후 인도네시아 경찰에 체포되었다. 64세의 노인으로 중부 자바의 한 이슬람 기숙학교(“뻐산뜨렌”)의 교장이기도 한 그는 그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여러 테러 행위들에 대해 당국이 JI에게 던지는 모든 혐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저마 이슬라미야라는 단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실제로 JI의 존재가 확고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다. JI는 사무실과 훈련원과 교육센터와 자체적인 인터넷 사이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LJ와 FPI처럼 유니폼을 입고 거리에서의 시위나 무력행동에 동원될 수 있는 수천 명의 회원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JI는 추측컨대 그 멤버들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여러 나라들에서 은밀히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그 목적은 테러행위를 통해 몇몇 정부들을 전복시키고 그 대신 이슬람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발리 폭탄테러의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여러 관측통들은 테러 폭탄을 놓은 자들이 JI나 뉴욕 테러의 알카에다에 연계된 자들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발리 폭탄테러로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세력들의 힘이 약화될 것인가? 메가와티 정부가 반테러 정책을 추구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심지어 그동안 이슬람 세력들의 이해관계를 존중해 온 아민 라이스(Amien Rais)조차도 테러 퇴치에 협력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무력적인 이슬람 단체들에 대한 전쟁은 인도네시아의 민주화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대테러 투쟁과 관련하여 메가와티 대통령은 헌법 제22조에 따라 법 대신 조례를 선포할 권리를 사용한다. 이로써 군부와 경찰이 매우 위험한 방식으로 새로운 활동의 장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테러리즘의 개념이 확대 해석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인도네시아의 분리주의 운동이나 반정부 활동가들이 테러리스트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발리 폭탄테러는 한편 인도네시아의 관광산업과 외국 투자자들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신뢰에 큰 타격을 미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외국인들의 관광으로 매년 약 50억 US$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로써 관광산업은 석유와 천연가스 다음으로 인도네시아 최대의 외화수입원이다. 관광산업 부문은 800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특히 주민의 반이 관광산업으로 먹고 사는 발리는 이번 폭탄테러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