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에 물을 주면서
2017.8.9
이른 아침 스프링클러를 들고 잔디밭으로 나서는 나의 마음은 몸처럼 무겁다. 일찍 일어났으니 잠에서 덜 깨어 몸은 빠릿빠릿하지 못하다. 하지만, 마음의 중압감은 다른 곳에서 온다.
누렇게 타들어 가는 잔디를 보면 심란하다. 봄내 애써 가꾸어 가지런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던 잔디가 여름의 건조하고 뜨거운 햇볕에 죽어가는 모습이라니. 이런 잔디밭을 보고 있으면 애써 쌓아 올린 탑이 허물어지는 느낌 같은 일종의 허무감이 밀려온다. 아내는 초록빛 잔디밭을 좋아한다. 예쁘고 단정하고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물을 주도록 허용된 시간이면 가끔 호스로 뒷마당 잔디에 물을 준다. 물론 나도 초록 잔디가 말끔하게 자라는 뜰이 좋다. 그런 깔끔하고 잔디가 잘 관리된 마당은 집마저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아내의 바람도 들어줄 겸 잔디에 물을 주러 나섰다.
잔디는 참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꽃이나 농작물 같으면 한 번 누렇게 시들어 버리면 아무리 물을 주고 비료를 주어도 되살아나지 않는다. 반대로 잔디는 여름 땡볕을 못 이기고 가을의 황금 들판처럼 변해 다 죽은 듯이 보이다가도 가을에 내리는 비에 맞춰 부활을 시작한다. 처음 캐나다에 와 살던 해 나는 옆집 사시는 분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저녁이면 나가 호스로 화단과 잔디에 물을 줬다. 거의 매일 1, 2시간씩 물을 주면서 모기에게 착취(?)도 많이 당했다. 덕분에 그 블록에서 우리 집과 옆집 뜰만이 유별나게 건강한 진초록 잔디를 뽐냈다. 하지만, 여름에 물 한 번 안 주었던 앞집 모리아네 잔디도 깊어가는 가을과 더불어 되살아나 생명의 신비를 실감하게 했다. 일단 자리 잡은 잔디는 잎은 타 죽어도 뿌리는 살아있어 이렇게 되살아난다고 한다.
우리 아들은 잔디 같은 정원 가꾸기에 관심이 없지만 이런 잔디의 소생능력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부산을 떨며 잔디에 물을 주는 나를 종종 말린다:
“아빠, 가을이 되면 저절로 되살아나는 잔디에 뭐하러 고생하면서 물을 주세요?”.
나도 이런 아들의 생각과 전적으로 다른 의견을 갖지는 않았지만 정작 내가 잔디에 물을 주면서 갖는 무거운 마음은 그 때문은 아니다. 1 시간에 1톤의 물이 들어간다니 상하수도 요금도 신경이 쓰인다. 그렇지만, 정작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미안함이다. 밴쿠버 일대까지 뽀얀 잿빛으로 대기를 덮으며 연일 뉴스에 오르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내륙의 산불은 끝날 줄 모른다. 여기서 물을 덜 사용한다고 진화 활동을 펼치는 소방수나 이재민이 된 분들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른 이들은 가뭄으로 고통받는데 나는 공연히 쓸데없이 물을 낭비하며 환경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쉬 떨칠 수 없다. 이것이 내 마음이 편치 못한 이유이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다. 그러나, 잔디에 물을 주면서도 밝지 않은 내 마음은 머릿속의 작은 양심과 뜰을 아름답게 유지하고 싶은 욕심 사이의 줄다리기 때문이다. 이런 갈팡질팡하는 나의 마음처럼 우리 집 잔디도 말쑥한 초록빛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 누렇게 변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있다.
* 2017년 9월 9일자 밴쿠버 조선일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