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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의 이상한 계산법
아파트경로당의 회장입니다. 봄나들이 갑니다. 긴긴 겨울을 어렵사리 이겨냈으니 버스 한 대 마련하여 회원님들을 다독거리며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 일대로 길을 나섰습니다. 훌훌 겨울을 털고 봄을 담아야지요. 그래야 고목나무에도 새싹이 돋고 꽃 피우지요. 어린 나무의 앙증스러운 꽃도 좋지만 무뚝뚝한 고목나무에 가까스로 핀 꽃에서 경외감이 돋보입니다. 진솔한 삶의 의미가 묻어나고 세월의 무게감과 함께 중후한 연륜이 느껴집니다. 봄 소풍에 설레는 마음은 마찬가집니다. 비록 몸은 다소 불편하고 마음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아도 기분만은 하늘 높이에서 출렁거립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날들이 꾸역꾸역 기어 나오며 감상에 젖기도 합니다. 나도 한 때는 괜찮았는데. 누구 부럽지 않게 잘 나갔는데. 그간 누릴 대로 누렸고 시간이 갈 만큼 갔습니다. 이제 이런 날이 아니면 누가 쉽게 나서 여행길에 함께해 주겠나. 잔잔하게 젖어드는 눈시울에 살짝 얼굴이 씰룩거립니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벌써 장사꾼이 용케 냄새를 맡고 차에 올라 한바탕 분주합니다. 어르신들에게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파스’랍니다. 옆구리가 절릴 때 딱 한 장만 이렇게 붙여주면 끝이랍니다. 유명 백화점에만 납품하던 물건으로 상품만은 틀림없는데 요즘 회사사정이 다소 어려워 당분간 고속도로휴게소에서 판매한답니다. 그러나 납품 가격보다도 훨씬 싼값으로 판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마음을 삽시간에 흔들어 놓았습니다. 한 봉지에 20매씩 들어 있으며 5,000원씩 납품하던 것을 두 봉지씩 드리고 10,000에 다섯 봉지를 준답니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어르신들이고 하니 두 봉지를 더 얹어 일곱 봉지를 드린답니다. 그러면 140매나 되니 이만하면 아마 1년을 써도 될 거랍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 합니까 아프지 말아야지요. 만 원 아끼다 팔다리 겨린데도 파스 한 장 못 붙이면 뭐합니까.
말 한마디 한 마디로는 어디 하나 틀리거나 흠 잡을 구석이 없지요. 여기저기서 주머니를 뒤적거립니다. 눈치가 빠른 우리 기사님, 차 떠난다고 그만 내리라고 합니다. 아쉬움과 야속함이 교차합니다. 이제 한참 흥이 돋는데 찬 물을 끼얹은 겁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매상을 많이 올렸는지. 기사님 하나 써보시라고 슬쩍 한 봉지 밀어놓고 내립니다. 잠시 시장바닥에 다녀온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 고속버스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옆에서 두런거립니다. 본래 20개 한 봉지가 5,000원인데 10,000원에 일곱 봉지를 샀으니 이게 어디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5,000원x7개=35,000원으로 35,000원짜리를 10,000원에 샀으므로 25,000원이나 남았으니 횡재한 것이랍니다. 나들이가면서 하루 일당을 번 셈이랍니다. 과연 계산이 정상적으로 된 것일까요? 맞는 것일까요? 단순하게 계산하면 틀린 것 같지 않은데 기분이라도 좋으면 됐지요.
그런데 어디 세상사 살아가면서 이런 식의 계산대로 되던가요.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아도 고개가 갸웃갸웃 석연치가 않습니다. 꼭 필요하면 모를까 절대로 현혹되지 맙시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합니다. 먹고 또 먹고 많이 먹으라고 합니다. 큰 것을 먹으라고 합니다. 공짜면 양잿물도 큰 덩이를 찾는다 합니다. 그러나 지나쳐서 그냥 곱게 똥이나 누우면 다행 중 다행인데 남는 것은 배가 아파 후회막급합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계산법이 있지요. 돌아서 속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웃음을 혼자 웃기도 하지요. 별 것도 아닌데 화를 내기도 하고 마냥 즐거워하기도 하지요. 곁에서 보면 아리송합니다. 그래서 세상 요지경이라 하지 싶습니다. 하지만 K씨, 순간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이상한 계산법에 빠져들지 맙시다. 미리 준비된 악마 같은 웃음에 혼쭐날 수 있답니다. 공짜 같은 과식 과욕으로 남는 것이 아닌 후유증에 후회만 남습니다. - 2019.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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