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바둑동호회 회장
효성 마라톤 동호회 고문
효성 수석부위원장
감포 향우회 총무 14년 역임 현재 감사
남구 육상연합회 자문위원
전국 생태강 살리기 울산지부 기획이사
울산광역시 육상연합회 경기이사
한우리마라톤 회장 역임 현재 고문
수상경력:울산광역시 육상연합이사 재직 당시 전국생활 체육회장상, 울산시장상, 국회의원상, 남구청장상 외 다수
1954년 8월15일 경주시 감포에서 3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의 프로필을 보면
그가 얼마나 나누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사는 사람인지 금방 알 수가 있다.
그의 초년시절은 감포에서 유년을 보내고 크면서 집을 떠나 도회지 생활을 하다
육군으로 군 생활을 할 때도 모범적이고 너무나도 평범한 생활을 함으로써
잘 지내고 있는데 고생스럽게 부모님이 면회를 오는 것조차도 부담스럽울정도로 군생활을 재미있게
성실히 잘하고 만기 전역
그가 울산에 자리를 잡은 것은 군 재대 후 바로 현재의 근무지 효성에 입사를 하면서
부터이며 올해로 30년째 근무를 함으로써 지금은 노조 수석부위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그가 효성에 30년 동안 근무를 하고 있음에도 사소하게 말다툼 한 번 한 적 없으며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번 한적 없을 정도로 그는 항상 현실에서 행복을 찾는
긍정적인 사고가 강한 사람이다. 살면서 어려운 일 수 십 가지 없이 사는 사람어디
있겠는가 만은 모든 행 불행은 본인의 맘속에 있는 것이기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닥쳐도 이정도의 고난 없이 인생을 논 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면
시련도 어려움도 마음속으로부터 극복이 된다고 한다.
마라톤을 하다보면 극한의 상황처럼 힘이 딸리고 고통스러운 구간이 있기도 하지만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회복기를 거치고 나면 다시 다음 구간을 달려 갈 수 있듯이
그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잠시 어려운 고비 넘기면 또 평탄한 길이 나온단다.
24시간 봉사의 즐거움으로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한비야라고 할 만큼 그의 봉사 활동은 몸에 베인 생활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 시설에 가서 봉사하는 것만이 봉사가 아니라 스쳐가는 인연에게
베푸는 것도 봉사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그는 모든 활동에 너무나도 적극적이고
스스로 다가서서 일거리를 찾는 사람이다.
집 밖만 나서면 그의 주변은 온통 그가 해야 할 일들로 널려있다. 고향이 인근이기도
하지만 고향 향우회 총무를 13년 동안 역임해 오면서 그가 남몰래 투자 했던
노력과 시간들은 고행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바깥일에 쫓기고 단체 활동에 적적적인 동참과 열의를 쏟다보니 정작 가장 봉사하고
희생하고 가꾸어야 할 가정에는 소홀하게 되어 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부인 이야기를 하면서 이내 얼굴이 침울해진다.
부인 이태미여사는 매주 일요일 한우리 훈련 마칠 시간쯤이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쁜 걸음 중에도 한우리에 들러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 분이다.
지금은 발부상으로 인하여 운동을 쉬고 있지만 과거엔 누구 못지않은 운동선수였다.
초등학교 때 농구선수, 단거리 선수를 시작으로 해서 근래에는 남구옥동 육상선수.
남구 어머니 축구회 창설 맴버로 회장을 역임하면서 전국방송에도 나올 정도로 매우
활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육상선수 시절에는 100m를 13초에 달려 수차례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수시로 회사 사보에 글을 내어 싣다보니 나중에 내지 않으면 청탁이
들어 올 정도로 글이면 글, 노래면 노래 운동이면 운동 다재다능한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더니 참으로 부창부수다.
한우리 마라톤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낮은 자세로 그러나 흐트러지지 않는 카리스마로
2대를 역임하는 동안 집안 사촌, 처조카 결혼식이 있을 때 마다 걸린 단체대회 때문에
집안 대소사도 못 챙길 정도로 그는 책임감이 강하고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어디 이것 뿐이겟는가? 그의 프로필에서 보듯이 공사다망한 생활로 인하여 거의 집안에는
0점 짜리 남편으로 들어와도 그의 아내는 잔소리 한번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믿어주고 밀어준다고 한다.
그의 늦은 마라톤 이야기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중년이 넘어선 44세 때 우연히 잡지책에 실린 재미교포
이은경의 “3번 풀을 완주하고 나니 일상에 두려움이 없고 자신감이 생기더라” 는 기사를 읽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어 마라톤에 발을 놓게 되었다.
낚시에 바둑을 즐기던 그가 마라톤에 발을 놓기 무섭게 풀코스 신청을 해두고 연습이라고는
집에서 4KM 정도의 거리를 오가는 것이었기에 첫 대회에서 고생도 엄청스럽게 했다.
20KM 이후부터 한계상황을 맞이했지만 4시간37분에 완주를 하여 회사에 사보에 실리기도 했으며
이 후 에도 마라톤과 그의 인생 이야기는 종종 효성공장 내에 화재거리가 되었는데
2004년 가을 경주동아오픈 마라톤에서 그의 나이 52세에 영광의 sub-3를 하였으며
이듬해 서울에서도 합천에서도 연속 sbu-3를 달성함으로써 노익장을 과시했고 이어
올해 2008년 8월 부산 썸머비취 울트라를 완주함으로 인해 또 한 번 영웅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회사 후배들과 술자리에서 울트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중 취중에
저지른 약속이 그만 대회 신청으로 이어져 40일간의 퇴근 주 연습으로 울트라를
완주 한 것이다.
울트라 마라톤을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고 싶으냐는 필자의 질문에 자신의 극복을 위해서
한 번쯤은 도전 해 볼 수는 있으나 이 고통을 남에게 권유하고 싶지는 않단다.
그만큼 힘든 한계점을 건너 온 그는 진정 자심과의 싸움에서 승리자다.
그에게 마라톤의 욕심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SUB-3를 달성하는 것이며
100KM 울트라에 10시간 이내 완주하는 것이라는데 그는 머지않아 또 한 번의 전설을
만들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소중하다
이 말이 그를 지탱 해주는 인생의 좌우명이 아닐까 감히 필자는 말한다.
인텨뷰를 하는 두시간 동안 그는 봉사라는 단어를 족히 100번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 하는 사람은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 할까?
울산광역시 연합회 경기 이사 시절 제 1회 울산시장배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면서
부족한 재정에 각출로 운영 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경품으로는 집에 소장하고
있던 미개봉품 두 점을 낼 정도였다고 하니 어지간하다.
인터뷰를 마감하면서도 한우리 고문님으로써 한우리는 전통적으로 누구나가 다
스스로 회에 참여하고 기여해야 함을 당부하며 훌륭한 장수는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며 회장이하 임원진들이 중심을 잃지 않고
흐트러지지 말고 본인 스스로 회에 흥미와 재미를 가지고 활동하기를 바란다고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인터뷰 내내 과일이며 단호박찜 등 말없이 챙겨주시며 저녁을 먹고 갔는데
또 맛있는 국수까지 만들어 주신 부인 이태미 여사께 감사드린다.
두 분 가정에 행복이 넘쳐 나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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