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각별한 기행
주제 : 토종견(犬)문록
2020년 9월 14일(월) ~ 2020년 9월 18일(금)
반려견 인구 천만의 시대.
집집마다 말티즈, 푸들, 포메라니안...
지금은 반려견인들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품종들이 외래 견종이지만,
20여 년 전만해도 동네에 가장 흔한 개는 바둑이와 똥개, 발바리였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친숙했던 그 견종들은 보기 힘들어졌다.
우리와 가깝게 지내던 그 옛 개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진돗개를 필두로 특정 지자체마다 뒤늦게
특이할만한 형질을 갖고 있는 종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지만,
이미 많은 수가 사라진 후였다.
완도 개라고도 불리는 해남 개는 이미 멸종되었고,
거제 개와 밀양 개 또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진돗개와 풍산개, 삽살개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토종 견부터
낯설지만, 오랜 시간 우리 곁에서 같이 호흡해 온 토착견까지...
넘치는 해학과 풍자로 반려동물만을 그려온 독보적 한국화가,
곽수연 작가와 함께 그 각별한 기행을 떠나본다.
1부. 삽살개
소란스러운 도심지를 벗어나 도착한 송정고택.
소나무 자연 속에서 시끄러웠던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자연의 새소리만 들리는
고택 안으로 들어가면 삽살개 한 마리가 반갑게 맞이한다.
송정고택의 마스코트 복돌이다.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다는 뜻을 가진 삽살개는 예로부터
가사와 민담, 그림 가운데 자주 등장해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감행된
대량 도살로 인해 크게 희생을 당하고 멸종의 위기까지 가지만
경북대학교 하지홍 교수의 노력으로 3,500마리까지 늘어나게 됐다.
1992년엔 천연기념물 제 368호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한편, 고즈넉한 송정고택의 주인인 정진철, 심증옥 부부와 복돌이의 인연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선이 타고 다니는 구름 같은 털을 휘날리며 고택 안을 뛰어다니는 복돌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 속에서 행복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2부. 진돗개
서울에서 다섯 시간. 남도 끝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
명견의 고장 진도에 사는 진돗개는 약 7백 여 마리.
한 집 걸러 한 집 진돗개를 키운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천연기념물 제 35호인 진돗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명성을 갖고 있다.
현재까지 혈통심사를 통과해 진돗개로 인증 받은 수만 해도
7천 마리가 넘는다고.
진돗개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진도 사람들은 각별한 노력을 쏟는다.
그 덕분에 진돗개는 세계 명견으로 등록까지 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 바다 건너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까지
매료시킨 코리안 진도 (Korean Jindo)
‘돌아온 백구’ 일화로도 유명한 진도군 의신면.
66세의 김신덕 할머니는 수십마리의 진돗개들과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가 수많은 진돗개를 기르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데...
할머니 혼자서 많은 진돗개들을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다고 한다.
김신덕 할머니와 함께 사는 9세 진명이.
진명이는 천재견으로 유명하다.
화려한 묘기는 물론 그림까지 그리기 때문이다.
곽수연 작가도 놀라게 만든 진명이의 그림부터
남은 여생을 진돗개와 함께 할 것이라는 김신덕 할머니의 이야기까지.
환상의 짝꿍, 김신덕 할머니와 천재견 진명이의 끈끈한 교감을 느껴보자
3부. 동경이
매달 둘째 주 토요일이 되면 동경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여든다.
그곳은 바로 동경이 훈련 학교다.
사람을 잘 따르고 영리한 동경이는 훈련사가 시키는 훈련들을 금세 잘 따라한다.
경주를 지키는 꼬리 없는 개 ‘동경이’는 경북 경주를 대표하는 개다.
5~6세기 신라시대의 능에서 동경이 모양의 토우가 발견될 정도로
우리나라 토종개 중에서 문헌기록상 가장 오래된 개다.
멸종 위기까지 갔던 동경이는 2005년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2012년에 천연기념물 제 54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동경이는 꼬리가 아예 없거나 짧아야 토종 동경이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 대곡 1리 마을은 특이하게 동경이만 사는 마을이다.
2018년, 동경이 보존 마을로 선정되어 마을 주민들이 꼬리 없는 동경이를 키운다.
마을 주민인 송길중 할아버지는 동경이를 어딜가나 데리고 다닌다.
그놈의 개 좀 그만 놓고 고추 따는 것을 도와달라는 할머니의 구박에도
할아버지는 굴하지 않고 동경이와 모든 곳을 동행한다.
동경이와 함께라면 무더운 여름도 즐거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4부. 풍산개
호랑이도 잡는다고 알려져 있는 개.
풍산개는 북한의 대표적인 토종개로 추위와 질병에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한 기질은 사냥개로서의 능력에 부합하는 것으로
풍산개 두 마리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말은 옛 사람들에 의해 공공연히 쓰여 왔다.
예로부터 호랑이가 살았다는 깊은 산골짜기.
지명도 ‘호랑이 울음소리’라 해서 ‘호음로’라 불리는
강원도 화천의 심심산골에서 풍산개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곽용식 씨.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 산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멧돼지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키우기 시작한 것이
그가 풍산개 가족을 이루게 된 계기.
아니나 다를까. 풍산개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산짐승에 의한 골칫거리가 말끔히 사라졌단다.
한 마디로 그에겐 풍산개는 없어선 안 될 존재.
뼈있는 생닭도 와그작 씹어먹는 풍산개의 모습에
깜짝 놀라는 곽수연 작가.
구불구불하며 가파른 산속에서 버섯과 약초들을 캐는 곽용식 씨를
안내하며 지켜주는 건 오직 그만의 보디가드 풍산개들.
직접 채취한 솔잎들 위에 고기를 구워 풍산개들과 함께 나눠먹으면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초록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
곽용식 씨와 풍산개 셋이 함께 가꾼 행복한 야생의 숲으로 들어가 본다.
5부. 불개
충북 괴산군 사리면의 인적이 드문 외딴 마을에 가면
‘쉬이 보지 못하는 개’를 볼 수 있다.
그 개는 바로 불개.
구전에 따르면 불개는 소백산 근처에 살던 늑대가 집개와 교배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영주 지방에선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던 견종이었다.
근대에 들어선 멸종 직전까지 갔는데 먹으면 몸에 좋다는 미신 때문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불개를 복원한 고승태 교수에게 받은 불개를
지금까지 번식, 유지하는 충북 괴산의 이정웅 할아버지.
계곡에선 가재를 잡고 산에선 독사를 잡으며 자연에서 살아가는 불개 패밀리.
그야말로 ‘자연견’이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에 방문한 손녀들과 불개 패밀리가 특별한 피서를 떠난다.
나무들로 빽빽한 산골짜기와 시원한 물이 내려오는 계곡들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는 불개들을 보면 더위 때문에 답답했던 마음도 뻥 뚫린다.
불개는 나무를 타고 땅굴을 파는 등 야생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말 그럴까?
전북 정읍에서 불개를 기르는 문정업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불개들은 사다리도 타고 땅굴을 탄다고 한다.
소수만 남아있는 불개들과 함께 사는 이들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해보러 함께 떠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