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조씨 시조 중서공 휘 지수(漢陽趙氏 始祖 中書公 諱之壽)
* 카페 회원님이신 문석님께서 한양조씨 시조묘 이하 묘소를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홍성에 가실일 있으면 한번 방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조씨성의 관향이 35본이나 된다. 특히 한양은 더욱 성문(盛門)이다. 공은 즉 거룩하신 시조이시다. 공의 휘는 지수(之壽)요. 관(貫)은 고려조순대부 첨의중서사(高麗朝順大夫 僉議中書事)요 독자를 두시니 휘(暉)는 쌍성총관이요. 손자 양기(良琪)는 2대 총관 겸 동정군 부원수요. 증손 림(琳)은 3대 총관 겸 용천부원군이요. 돈(暾)은 삼중대광 용성부원군이요. 현손 소생(小生)은 4대 총관으로 후손이 전하지 않으며 인벽(仁璧)은 삼중대광 용원부원군 시호는 양렬공이요. 인경(仁瓊)은 검찬성으로 후손이 없고 인규(仁珪)는 검한성윤이요. 인옥(仁沃)은 개국 1등공신 이조판서 시호는 충정공이다. 5대 이하는 많아서 기록하지 않는다. 공의 묘는 함경도 영흥면 은곡동에 모셨다고 족보에 전해지고 있으나 실전(失傳)하였으니 명호(鳴呼)라, 통탄하도다! 왕년에 자손들이 위선(僞先)하는 정성으로 누차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주민에게 물으면 조씨선산이 이 산중에 있었다고 하나 어느 곳인지 몰라 뜻을 이루지 못하여 후손들이 백세(百世)의 한을 풀지 못하였다. 이에 예손 준식(양경공파)등이 도모하기를 조상의 묘소를 잃으면 설단(設壇)하고 향사(享祀)해서 그 은혜심을 베풀 수 있다 하고, 고종 광무5년에 설단입비(設壇立碑)하여 그 정성을 표하여 왔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어 구릉(丘陵)을 첨망(瞻望)하고 단하에 분향하는 것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남 제손들이 울읍한지 어언 50여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종회에서 분단이후 두번째 족보를 발간하려 함에 첨종(僉宗)이 협의하여 이곳 이남에도 따로이 설단하여 향화하는 것이 도리라 하여 찬동하지 않는 이가 없음으로 이에 공의 주손 지중추공 휘증의 묘역인 충남 홍성군 홍북면 대인리 매산 제각곡에 2004년 4월 17일 후손 광주전남종친회장 일형(양절공파)등이 설단입비하여 매년 음력 3월 1일 제향을 받들고 있다.
<<자료출처 : 한양조씨양절공파홈페이지 내용 참고>>









첫댓글 저희 조상 묘소를 등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시조묘소가 단이네요. 잘봤습니다.
제목 : 충서공--->중서공
수정하였습니다. 아주 큰 실수 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ㅎㅎ 별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