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언제나 그랬다. 내가 비웃었던 사람들이 도리어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날이 온다. 니들이 흰고래의 검은 눈동자를 봤어? 깨닫고도 허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너의 흰 속살, 검은 눈동자 - 국도운
나는 거대한 흰고래가 토해낸 사람이다. 대구에서 고향 삼척으로 가는 길, 차창을 열고 해안을 끼고 달리는 나는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낀다. 정말 몰랐었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리라 할 만큼 바다를 사랑했던 내가 이 갑갑한 도시에 갇혀 살게 될 줄은. 기독교 방송에서 <요나의 기도>라는 복음송이 흘러나온다.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여 선원들에 의해 풍랑 가운데 내던져져 고래 뱃속에 삼켜진 사나이. 회개하자 고래가 해변에 토해낸 성경 속 인물, 요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가 나인 듯 몰입된다. 초등학교 5학년, 돋보기를 씌운 햇살이 작열하는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수업을 마치고 한 무리의 친구들과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었다. 학교에 신설된 수영반 친구들이 수영 자랑을 늘어놓았다. 강변에 사는 녀석들이 대부분 수영부원이었다. 바다에 가서 수영 연습을 하자고 했다. 가소로워서 물었다. “바다 수영은 해봤어?” 아니란다. 강변에 사는 촌놈들이 바다를 논해? 그래 같이 한번 가보자. 나는 바다에 가서 수영 잘한다고 위세를 떠는 녀석들의 콧등을 납작하게 해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4학년 여름, 나는 처음으로 바다 수영에 푹 빠져 살았다. 외가가 있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외사촌과 함께 방학 내내 종일 바닷물과 모래사장을 오갔다. 낮이면 바다에 빠져 지냈고 저녁이면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푹 빠져 지냈다. 밤이 되면 ‘내일은 분명 흰고래, 모비 딕을 볼 수 있을거야.’ 하는 기대감으로 잠이 들곤 했었다. 30여 분을 걸어 드디어 바닷가에 도착하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날씨는 이리 좋은데, 지난밤 태풍 때문인지 파도가 무척 높았다. 그때 어린 나는 성난 파도를 몰랐다. 그저 지난여름 내내 몸을 같이 비비고 놀았던, 다정한 그 바닷물로만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뜨거운 태양을 조롱하듯, 바다에 뛰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은 큰 파도 앞에 벌벌 떨었다. 해변 가까이에서 간신히 파도 하나를 넘고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큰 소리로 외쳤다. “니들 거기서 뭐해, 이리 넓은 바다로 나와, 왜, 강에는 파도가 없냐?” 나는 거대한 파도를 타 넘으면서 평영과 자유형을 번갈아 하면서 녀석들의 얼어 있는 표정 앞에서 여유만만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야, 위험해, 돌아와.” 귓등으로도 안 들렸다. 나는 처음 타보는 파도의 황홀함을 느끼며 신나게 앞으로 나갔다. 한참 파도 타기 수영에 빠져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한 번 파도를 탈 때마다 물속에서 뭔가가 나를 끌어다가 자꾸 깊은 바다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백여 미터나 해안에서 멀어져 있었다. 안간힘을 다해 해변 쪽으로 가려고 발버둥쳐 봤지만 그럴수록 점점 힘이 빠졌다. 친구들의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바다를 모른다고 조롱했던 녀석들이 저 멀리 안락한 육지에서 한 점이 되어 버렸다. 소금을 탄 사이다 같은 물을 잔뜩 먹고 힘이 다 빠지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발버둥을 치면서 파도 속에 잠겼다가 뜨기를 반복하는 동안 죽음을 직감했다. 모비 딕에 작살을 꽂은 에이햅 선장의 목이 작살 줄에 감기면서 흰고래는 그를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나는 지금 집채만 한 흰고래를 잡을 수 있으리라 당당했던 에이햅 선장이 되어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든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만화에서 보았던 물에 빠져 죽는 장면 속 그 사람들처럼 아, 나도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저것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가장 거대한 검은 파도가 흰 거품을 토하며 바로 앞에서 덮치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가장 그리웠던 것이 나타난다 했던가. 나는 그때 분명 보았다. 먼 바다의 깊고 검푸른 물결을 타고 오는 거대한 고래의 흰 속살, 코앞에서 부서지며 톱니 모양의 하얀 이빨을 벌리고 나를 덮치려고 뛰어온 흰고래의 검은 눈동자를. 나를 이곳으로 끌고 온 녀석이 바로 너였구나. 나도 이제 에이햅 선장처럼 죽는구나. 그 순간, 거짓말처럼 청천벽력 같은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다. ‘파도를 타고 나와라.’ 에이햅 선장은 작살 줄에 몸이 묶여 모비딕이 끄는 대로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지만 내 몸은 자유로웠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이 그것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나는 온몸에 힘을 완전히 빼고 모비딕의 등에 올라탔다. 한꺼번에 십 미터 이상씩 모비 딕은 나를 해변으로 인도했고, 마침내 나는 모래사장 위에 요나처럼 토해졌다. 주위에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드라마 속 장면처럼 꼭 그랬다. 하늘이 하얗고 얼굴만 모여든 친구들이 맴맴 돌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이제 살았구나.’ 하며 정신을 잃었다. 인생이 언제나 그랬다. 내가 비웃었던 사람들이 도리어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날이 온다. 니들이 흰고래의 검은 눈동자를 봤어? 깨닫고도 허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고향으로 가는 차창 밖 아득한 수평선 위에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흰고래의 등이 보인다. 어머니는 사람이 태어난 것이 마음대로 안 되었듯 살아가는 일도 그렇다고 하셨다. 흰고래는 왜 나를 해변에 토해냈을까. 자신이 사는 청정바다에 같이 있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하지 않아서일까. 알 수는 없지만 살면서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 순간을 떠올렸고, 파도를 타 넘듯이 힘을 빼고 운명이란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긴다. 분명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거겠지. 세상에 남겨야 할 이야기, 나만이 아는 먼 바다 흰고래의 검은 눈동자, 그대들은 보았나. 지금도 아주 가끔은 죽음의 순간 보았던 그 거대한 흰고래와 먼 바다에서 함께 헤엄치는 꿈을 꾼다.
고향이 강원도 바닷가라서 대구에 살면서 늘 바다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수필이 그랬습니다. 언제나 수평선 저 멀리 그리운 기억 속에서 밤마다 꿈결을 파고드는 애잔한 손짓이었습니다. 수필은 제게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하늘의 신성을 말하는 수평선이었습니다. 또한, 그 하늘의 신성과 맞닿아 있는 빙충맞았던 내 삶이었습니다. 바다 깊이 수몰시켰던 미워했던 사람들의 모습 어디쯤엔가 내 모습이 있고, 어쩌면 그 안에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그 바다 위에 나무를 심고 싶었습니다. 숫접게 반성하는 내가 달린 그 나무를 읽고 조난한 누군가의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다를 소재로 한 글로 신인상을 받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수필이라는 긴 그리움의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책을 읽고 계실 아버지와 일평생 시장에서 못난 자식을 위해 고생하셨던, 내 문학의 감수성이신 어머니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인생이 언제나 그랬다. 내가 비웃었던 사람들이 도리어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날이 온다. 니들이 흰고래의 검은 눈동자를 봤어? 깨닫고도 허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너의 흰 속살, 검은 눈동자 - 국도운
나는 거대한 흰고래가 토해낸 사람이다. 대구에서 고향 삼척으로 가는 길, 차창을 열고 해안을 끼고 달리는 나는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낀다. 정말 몰랐었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리라 할 만큼 바다를 사랑했던 내가 이 갑갑한 도시에 갇혀 살게 될 줄은. 기독교 방송에서 <요나의 기도>라는 복음송이 흘러나온다.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여 선원들에 의해 풍랑 가운데 내던져져 고래 뱃속에 삼켜진 사나이. 회개하자 고래가 해변에 토해낸 성경 속 인물, 요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가 나인 듯 몰입된다. 초등학교 5학년, 돋보기를 씌운 햇살이 작열하는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수업을 마치고 한 무리의 친구들과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었다. 학교에 신설된 수영반 친구들이 수영 자랑을 늘어놓았다. 강변에 사는 녀석들이 대부분 수영부원이었다. 바다에 가서 수영 연습을 하자고 했다. 가소로워서 물었다. “바다 수영은 해봤어?” 아니란다. 강변에 사는 촌놈들이 바다를 논해? 그래 같이 한번 가보자. 나는 바다에 가서 수영 잘한다고 위세를 떠는 녀석들의 콧등을 납작하게 해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4학년 여름, 나는 처음으로 바다 수영에 푹 빠져 살았다. 외가가 있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외사촌과 함께 방학 내내 종일 바닷물과 모래사장을 오갔다. 낮이면 바다에 빠져 지냈고 저녁이면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푹 빠져 지냈다. 밤이 되면 ‘내일은 분명 흰고래, 모비 딕을 볼 수 있을거야.’ 하는 기대감으로 잠이 들곤 했었다. 30여 분을 걸어 드디어 바닷가에 도착하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날씨는 이리 좋은데, 지난밤 태풍 때문인지 파도가 무척 높았다. 그때 어린 나는 성난 파도를 몰랐다. 그저 지난여름 내내 몸을 같이 비비고 놀았던, 다정한 그 바닷물로만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뜨거운 태양을 조롱하듯, 바다에 뛰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은 큰 파도 앞에 벌벌 떨었다. 해변 가까이에서 간신히 파도 하나를 넘고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큰 소리로 외쳤다. “니들 거기서 뭐해, 이리 넓은 바다로 나와, 왜, 강에는 파도가 없냐?” 나는 거대한 파도를 타 넘으면서 평영과 자유형을 번갈아 하면서 녀석들의 얼어 있는 표정 앞에서 여유만만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야, 위험해, 돌아와.” 귓등으로도 안 들렸다. 나는 처음 타보는 파도의 황홀함을 느끼며 신나게 앞으로 나갔다. 한참 파도 타기 수영에 빠져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한 번 파도를 탈 때마다 물속에서 뭔가가 나를 끌어다가 자꾸 깊은 바다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백여 미터나 해안에서 멀어져 있었다. 안간힘을 다해 해변 쪽으로 가려고 발버둥쳐 봤지만 그럴수록 점점 힘이 빠졌다. 친구들의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바다를 모른다고 조롱했던 녀석들이 저 멀리 안락한 육지에서 한 점이 되어 버렸다. 소금을 탄 사이다 같은 물을 잔뜩 먹고 힘이 다 빠지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발버둥을 치면서 파도 속에 잠겼다가 뜨기를 반복하는 동안 죽음을 직감했다. 모비 딕에 작살을 꽂은 에이햅 선장의 목이 작살 줄에 감기면서 흰고래는 그를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나는 지금 집채만 한 흰고래를 잡을 수 있으리라 당당했던 에이햅 선장이 되어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든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만화에서 보았던 물에 빠져 죽는 장면 속 그 사람들처럼 아, 나도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저것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가장 거대한 검은 파도가 흰 거품을 토하며 바로 앞에서 덮치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가장 그리웠던 것이 나타난다 했던가. 나는 그때 분명 보았다. 먼 바다의 깊고 검푸른 물결을 타고 오는 거대한 고래의 흰 속살, 코앞에서 부서지며 톱니 모양의 하얀 이빨을 벌리고 나를 덮치려고 뛰어온 흰고래의 검은 눈동자를. 나를 이곳으로 끌고 온 녀석이 바로 너였구나. 나도 이제 에이햅 선장처럼 죽는구나. 그 순간, 거짓말처럼 청천벽력 같은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다. ‘파도를 타고 나와라.’ 에이햅 선장은 작살 줄에 몸이 묶여 모비딕이 끄는 대로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지만 내 몸은 자유로웠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이 그것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나는 온몸에 힘을 완전히 빼고 모비딕의 등에 올라탔다. 한꺼번에 십 미터 이상씩 모비 딕은 나를 해변으로 인도했고, 마침내 나는 모래사장 위에 요나처럼 토해졌다. 주위에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드라마 속 장면처럼 꼭 그랬다. 하늘이 하얗고 얼굴만 모여든 친구들이 맴맴 돌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이제 살았구나.’ 하며 정신을 잃었다. 인생이 언제나 그랬다. 내가 비웃었던 사람들이 도리어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날이 온다. 니들이 흰고래의 검은 눈동자를 봤어? 깨닫고도 허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고향으로 가는 차창 밖 아득한 수평선 위에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흰고래의 등이 보인다. 어머니는 사람이 태어난 것이 마음대로 안 되었듯 살아가는 일도 그렇다고 하셨다. 흰고래는 왜 나를 해변에 토해냈을까. 자신이 사는 청정바다에 같이 있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하지 않아서일까. 알 수는 없지만 살면서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 순간을 떠올렸고, 파도를 타 넘듯이 힘을 빼고 운명이란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긴다. 분명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거겠지. 세상에 남겨야 할 이야기, 나만이 아는 먼 바다 흰고래의 검은 눈동자, 그대들은 보았나. 지금도 아주 가끔은 죽음의 순간 보았던 그 거대한 흰고래와 먼 바다에서 함께 헤엄치는 꿈을 꾼다.
고향이 강원도 바닷가라서 대구에 살면서 늘 바다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수필이 그랬습니다. 언제나 수평선 저 멀리 그리운 기억 속에서 밤마다 꿈결을 파고드는 애잔한 손짓이었습니다. 수필은 제게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하늘의 신성을 말하는 수평선이었습니다. 또한, 그 하늘의 신성과 맞닿아 있는 빙충맞았던 내 삶이었습니다. 바다 깊이 수몰시켰던 미워했던 사람들의 모습 어디쯤엔가 내 모습이 있고, 어쩌면 그 안에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그 바다 위에 나무를 심고 싶었습니다. 숫접게 반성하는 내가 달린 그 나무를 읽고 조난한 누군가의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다를 소재로 한 글로 신인상을 받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수필이라는 긴 그리움의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책을 읽고 계실 아버지와 일평생 시장에서 못난 자식을 위해 고생하셨던, 내 문학의 감수성이신 어머니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당선소감에서마저 선생님의 글 한편을 읽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