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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Clouds of Sils Maria >
'영겁을 회귀하는... 자연에 대한 니체의
사상적 수사만큼 유려한, 구름처럼 다가오는
시간과 존재에 대한 성찰'
여기,
세월의 흔적에도 여전히 빛나는 한 중년
여배우의 내면 속 질투와 도발, 상실과 절망,
그리고 체념에 대한 지적인 은유를 담아낸
서사가 있지요.
마치 3막의 연극처럼 펼쳐지는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입니다.
1부와 2부, 에필로그로 엮어지는 영화는,
'헬레나와 시그리드' , '마리아와 발렌틴',
그리고 '마리아와 조앤 ', 이들 서로의
오묘하고도 사유적인 치환의 관계를...
잡을 수 없는 젊음,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부러워하고 갈망하는 중년의 톱 스타
마리아를 중심으로 풀어가지요.
18세라는 꽃다운 시절, 극작가 빌헬름
멜키오르의 연극 < 말로야 스네이크 -
Maloja Snake > 에서,
연상의 상사인 헬레나를 유혹해 자살로
몰고 가는 눈부신 젊음과 치명적인 매력의
타이틀롤 시그리드 연기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던 여배우
마리아 앤더슨(줄리엣 비노쉬 분)...
그녀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젊고
재능있는 연출자 클라우스(라우스 아르딩거
분) 로부터 이 연극의 리메이크 버전에 출연
제의를 받게 됩니다.
한데... 여전히 빛나는 미모와 연기력으로
유명 감독들로부터 경쟁적으로 러브 콜을
받고 있는 뮤즈인 그녀에게 돌아온
역할이란,
다름아닌 시그리드의 상대 역으로 늙고
구겨진 채 상처받아 초라하기 짝이 없는
헬레나였지요.
마리아는 빌헬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알프스의 외딴 지역인 ‘실스마리아’ 의
별장을 매니저와 비서를 겸하는 발렌틴
(크리스틴 스튜어트 분)과 함께 찾아갑니다.
그녀는 연극 대본을 연습하는 동안
어느 샌가 현실로 침윤(浸潤)해 온 허구의
존재를 통해,
그토록 본인이 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정체성과 맞딱드린 채,
관객들의 기억 속에 단순한 배역 그
이상이었던 '영원한 젊음의 시그리드' 로만
남고 싶다는 욕망에 끊임없이 부딪히게
되지요.
게다가 마리아는... 새롭게 시그리드역을 맡게
된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뉴 제너레이션이자,
뜨거운 스캔들 메이커 조앤(클로이 모레츠
분)의 발칙하게도 도발적인 아름다움과
맞서게 됩니다.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에는
미묘한 세 가지 관계의 서사들이 중첩되며
펼쳐지죠.
첫 번째 서사는 영화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연극 < 말로야 스네이크 > 의 두 주인공
헬레나와 시그리드의 스토리입니다.
이 연극 직후 차 사고로 사망한 헬레나 역의
여배우 수잔 로젠버그가 실제로 극중
헬레나의 자살 시놉시스와 무관하지 않다며,
마리아는 집요한 우울함으로 회상하지요.
마리아는 이 헬레나의 역할을 리허설하면서,
자신의 과거(20년 전의 시그리드)와
자신의 현재(지금의 헬레나)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질곡에 빠져들게 됩니다.
두 번째는 마리아와 조앤의 서사죠.
'현재의' 젊은 여배우 조앤은 새로운
시그리드로서 캐스팅되어 이제는 헬레나가
된 마리아 앞에 당당하게 등장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대척점에 서있는, 현실의
시그리드 그 자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조앤을,
슈퍼 헤로인 물의 만화 캐릭터 같은 역할
일색인 프로필에... 예의없고 통제불가능한
할리우드 악동이라고만 풍문으로 전해
들었을 뿐이죠.
마리아는 악성 기사같은 건 해탈한지
오래됐다며 거침없이 파파라치를
몰고다니는 가십 메이커 조앤을 향해,
"그녀의 뇌세포가 죽어가는 게 마음에
와닿는다" 고 악평할 정도로 극단적인
비호감의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조앤은 '차원을 달리
하는 고품격 클래스의 존경하는 여배우의
롤 모델' 이라고, 대선배 마리아를 한껏
치켜세워주죠.
아울러, 직접 만나 뵙게 돼 큰 영광이라고
찬사를 건네는 솔직하고도 역동적인
그녀에게서 마리아는 아이러니한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아찔한 경계와 매혹의 사이에서 마리아는
시그리드였던 자신의 과거와의 싸움 뿐만
아니라,
지금 눈앞에 나타난 현재의 시그리드와도
부딪혀야 하죠.
세 번째론 마리아와 발렌틴의
이야기입니다.
극중 누구보다도 마리아와 밀접한 존재로,
탄탄한 청춘의 발렌틴이 속해 있는 세계는
마리아 혹은 헬레나가 아닌... 조앤 혹은
시그리드의 영역에 가깝죠.
알베르티의 '파반느' 를 배경 음악으로
드러나는,
20대 발렌틴의 탄탄한 몸매와 가혹한
세월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펑퍼짐하게
늘어진 40대 마리아의 육체....
이들이 가감없이 대비되는 호수에서의
수영 장면에서도 은연중 표출되고 있지만,
마리아는 발렌틴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또 한명의 시그리드를 힘겹게 상대해야만
합니다.
파멸할 줄 알면서도 자신을 배신과 광기의
늪에 빠뜨리는 조앤의 SF 영화 출연
역할을,
'제 정신이 아닌, 거지같은 캐릭터' 로
깎아내리는 마리아를 향해 발렌틴은
조목조목 반박하죠.
"오락영화에서 캐릭터의 모호함 속에
과감히 뛰어들며 그 어두운 면을 파고드는
진정성과 진지함은,
무방비 상태의 감성적 매력이 넘치는,
또 자기 욕망에 충실한... 나름 용기가
필요한 요소에요."
마리아가 배우이고, 발렌틴은 매니저일
뿐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둘의 관계는
역전되는 모양새로 변용됩니다.
마리아는 극중 헬레나처럼, 어느새 자신의
시그리드가 되어버린 발렌틴의 나이와
생각을 시샘하고 또 욕망하며 그녀에게
기대게 되지만,
결국 발렌틴은 마리아 곁을 홀연히
떠나가고 말죠.
헬레나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발렌틴이 선사한 마지막
극약처방였던 셈입니다.
(연극 속의 '시그리드 - 헬레나의 관계' 가
영화 속에선 '발렌틴 - 마리아의 관계' 로
재구현된 것이죠)
한때 시그리드였고, 여전히 시그리드이길
바라는 여배우 마리아의 고통스런 자기
인식의 과정을 그려낸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영화는 젊음에 눈이 먼, 어느 나이 든
여배우의 뒤늦은 깨달음의 이야기만이
아닌,
어찌할 도리없이 그 실패의 여정을 껴안으며
자리매김할 수 밖에 없는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애잔한 헌사이자 고백으로
울려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계속 달라질 수 밖에 없을진대...
마리아는 젊은 여배우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며 마치 자신의 몸을 뱀이
휘감는 듯한 느낌을 받지요.
이러한 마리아의 외로운 슬픔과 절망의
시선이 연극 < 말로야 스네이크 > 로
절묘하게 암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발렌틴은 "글은 물체와 같아서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목청을 높이며,
"시그리드의 20년 후가 헬레나로, 둘은 같은
상처를 지닌 끌림의 인물" 이라고 마리아를
설득하다 급기야 지쳐버리죠.
그녀는 마리아를 향해 되묻습니다.
"이미 뛰어난 배우잖아요. 그런데 젊음의
특권에 왜 그리 집착하세요?"
마리아는 베테랑답게 자신의 본심을 슬쩍
숨겨 보지만,
여전히 청춘의 화신 '시그리드' 역에 집착한
채 늙어감에 불안해 하는 그녀 자신에게
어쩔 수 없는 자괴감을 느끼게 되지요.
결국은 '헬레나' 와 '시그리드' 가 동일한
캐릭터였음에도,
이제는 결코 손에 잡을 수 없는 젊음에 대한
욕망을 차마 놓지 못하고 있었던 마리아...
그녀는 연극의 내용이 지금 자신의 모순되고
헝크러진 자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괴로워합니다.
마리아는 특별한 날에만 볼 수 있었던
'말로야 스네이크' 의 신기루적 환영을 볼 수
있길 그토록 소망했지만,
그 구름 아래, 언제나 그 자리에 펼쳐져 있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놓쳤던 것이 아닐런지요.
인생은 지금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 일진대...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는 그렇게...
'나이듦과 젊음' 이라는 테마 안에서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여가는 마리아의
내적 성장담으로 귀결됩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정체성의
혼란으로 가득 찬 인생 속 배우와 연기를
소재로,
영화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짚어가고 있지요.
하여... 연극은 삶을 모방하며 삶은 연기를
투영해내고, 결국엔 현실과 충돌하고 마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인생의 서사를 통해,
주역 배우의 역할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교체되어 버리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
바뀜' 의 처연하고도 씁쓸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그런 여배우의 민낯을 이토록
몽환적이면서도 서글픈 빛깔로 그려내고
있는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실스마리아' 는 거대한
산맥과 드넓은 호수의 조화가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으로 펼쳐지죠.
이 아름다움과 불안함의 묘한 공존은, 곧
안개와도 같은 늙음과 죽음의 그림자가
슬며시 스며드는 영화 속 마리아의 심리
상태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시그리드로 남고 싶다" 는 마리아의
말에서 여배우라면 언젠가 겪을 시련과
번민을 공감하기란 어렵지 않지요.
생전에 연극 < 말로야 스네이크 > 의
속편을 구상하고 있었던 빌헬름은,
스무 살 무렵의 마리아에게 이십 년 후
시그리드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미래의 시그리드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마리아였건만,
맞아 떨어진 예언처럼 이십 년 후 그녀가
맡게된 헬레나는 성장한 시그리드로
돌아온 셈이죠.
이제... 클라우스에 의해 재구성되며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는 연극 < 말로야
스네이크 > 를 통해,
마리아는 이십 년의 시간을 통과한
시그리드를 자못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시그리드가 완전히 페이드 아웃되고
헬레나가 우울하게 페이드 인되는 스토리가
아니었죠.
두 인물이 고통스럽지만 연속적으로
분열되고 어우러지는 과정 속에서
더 깊은 ‘나’ 에게 도달하는 프레임였던
겁니다.
연습 막바지 대본에 삽입된 새로운
한 장면을 마리아가 사전에 읽지도 않고
무대 리허설에 오르는 시퀀스는,
과거라는 정해진 삶의 대본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탈각(脫却)하려는 의도의 연출일
것이죠.
자유로이 흐르는 말로야 스네이크처럼 그냥
흘러가는대로 자신을 맡기는 그녀에게서,
나이듦을 악천후의 징후로 보지 않고
또 다른 가능성의 변곡점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그 와중에 조앤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급기야 그 남자의 아내가 자살을 시도하는
대소동을 겪습니다.
마리아와 클라우스도 조앤을 둘러싼
파파라치 추격전에 휘말리게 되지요.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마리아는 헬레나를
받아들이는... 놀라운 변화를 보이게
된 겁니다.
드디어 무대에 오른 마리아의 얼굴에는
젊은 시절 다 풀어내지 못한 욕망과 회한,
그리움, 그 모든 감정들의 응어리가
내밀하게 배어있죠.
깨지고 조각난 사금파리에서 새어 나오는
얼룩진 빛이 황금으로 변해버리는 순간의
고통과 기쁨이 모두 아우라져 있는 겁니다.
마리아는 대기실에서 스물다섯 살 젊은
감독이 제안한 23세기 배경 SF 영화
뮤턴트 역에 출연하기로 결정하죠.
나이든 자신이 그런 젊고 현대적인 영화의
주연으로 적합하겠냐는 마리아의 질문에,
감독은 이 역은 나이를 초월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조앤같은 청춘 배우보다 당신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단언합니다.
"그녀에게는 나이가 없어요. 아니 모든
연령대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죠.
그 여자는 현대적이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그런 식의 현대적인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녀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인 거죠."
연극이 시작되기 전... 마리아는 조앤에게
어렵사리 부탁을 건넵니다.
" 헬레나가 떠나가는 시그리드에게 날
버리지 말아달라고 붙잡으며 무릎꿇고
애원할 때 잠깐 멈췄다 가면 어떨까?
헬레나의 고통에 더 길게 여운이 남을테니
말야..."
그러나 조앤은 마치 마리아가 헬레나인 듯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한, 가시돋힌
말로 차갑게 거절합니다.
"그 시점에서 누가 헬레나에게 신경을 써요?
이미 볼 장 다 본 불쌍한 여자일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마리아는 쓸쓸한 체념조의 웃음을 지은 채
머리를 끄덕이죠.
고개를 넘어오는 실스마리아의 구름처럼
연극과 영화, 그리고 현실의 삶 간 경계를
감성적인 시선으로 넘나드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그는 '현실과 허구', '연기자와 역할' 이
종과 횡으로 엮이는 대비적 구도를 통해,
여배우의 내적 세계에 대한 지적인 메타포를
은밀한 터치로 직조(織造)해내고 있습니다.
'연기자로서 자신을 보는 법을 알게 해주는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덧붙이죠.
"잉마르 베리만적인 색깔의 이 영화를 통해
인생의 공허를 들여다보며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는 일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다" 고
말입니다.
감독은 마리아를 단지 과거를 되돌아보는
여성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보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으로
되새김하죠.
해서... 그는 마리아를 인생의 공허를
반추하는 동시에, 20년 전 자신의 모습을
갖춘 젊은 여인 발렌틴을 들여다보는 중년
여배우로 그려냈습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되뇌죠.
마리아의 마음은 아직 변하지 않았지만
주변 세상은 이미 바뀌었고,
세상을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함께 했던
그녀의 고결하고 순수했던 젊음은 이제
사라져버렸다고...
한편으론 '원래의 자신' 과 '가상의 공인으로서
자신', 그 둘 사이에 있던 간극을 서서이
지워나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트 무비답게 화면 속에는 헨델의
'라르고' 로부터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에
이르기까지,
실로 청아한 클래식의 향연이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어우러지죠.
영화 후반부에 흐르는 헨델의 '소나타 2번
d단조' 를 들으며 ,
조앤은 연인 앞에서 "바로크 음악은
아름답긴 하지만 덧없다" 는 코멘트로
젊음의 미학과 허무함을 동시에 포착해내는
듯한 메시지를 건넵니다만...
'인간의 보편적 언어인 음악' 으로 특별한
울림을 전해주는 조르디 사발과 그의
에스페리옹 21이 연주한 알베르티의
'파반느' 역시,
극중 '헬레나와 시그리드' 의 감성을
명징(明澄)하게 살려주고 있습니다 .
반면 스코틀랜드 밴드인 프라이멀 스크림
(Primal Scream)이 1997년 발표한 앨범
'Vanishing Point' 중 '코왈스키(Kowalski)'의
혼돈스러운 일렉트로닉 록 사운드는,
짙은 안개 속에 험한 산 길을 헤메며
구토해대는 젊디 젊은 발렌틴 나름대로의
메스꺼움과 고뇌의 삶을 음악적으로 잘
대변해주고 있지요.
또한 헨델의 오페라 < 세르세 : Serse -
Xerxes > 1막 중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쉬고 있던 페르시아 왕 세르세가
"너만큼 정답고 달콤한 그늘을 드리운
나무는 없도다" 며 부르는 아리아,
'그리운 나무 그늘 아래'(Ombra mai fu)를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라르고' 는 2부의
오프닝과 엔딩을 함께 하는데요.
‘말로야 스네이크’ 의 장관을 아름답게
장식해주며 그야말로 관객들을 최고의
정신적 경지로까지 고양(高揚)시켜줍니다.
한편, 우리의 삶처럼 속절없이 되풀이되는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은 에필로그의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음악으로
흐르는데요.
같은 멜로디를 다른 악기로 바꿔가며,
시대를 넘어 바리아시옹되는
'캐논'(Canon)...
바로 10대와 20대 , 그리고 40대,
분명 서로 다르지만 자세히 보면 닮아 있는
세대별 삶의 악기들이라 할 수 있는 그녀들은,
'따로와 또같이' 의 영감어린 판타지적
앙상블로 드라마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를 찬연(燦然)히 불타오르게
해줍니다.
영화 속 연극 < 말로야 스네이크 > 의 막이
오르며 비로소 자신의 알터 에고(Alter Ego
: 또다른 자아)와 맞닥뜨리게 된 마리아...
젊음의 욕망에 사로잡혀 현재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던 그녀가 과연 무대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런지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짐짓 관객의
몫으로 살포시 돌려줍니다.
마리아는 담담하게, 그저 묻지요.
"객석은 어때요?"
에필로그에 무연한 색깔의 돌림조로 흐르는
'캐논 변주곡' 을 뒤로 하며,
영화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충만(full)' 한,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 없이 '만원(full)' 인
무대의 막을 내립니다.
1. 영화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Clouds of Sils Maria > 예고편
https://youtu.be/6MWZJUjgED4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는 연기자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력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표출하는
마리아의 깨달음에 대하여 다루고 있죠.
진부한 스토리도 바꾸어버리는 게 배우이고,
그런 배우의 특유성을 끌어내는 게 감독의
재능일 것입니다.
'배우' 라는 계곡이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세월을 견디며 버티고 있으면,
거기에 '감독' 이라는 구름이 밀려들어와
'말로야 스네이크' 라는 절경을 만들어내죠.
배우 마리아에게 헬레나 역을 제안한
클라우스 감독 덕분에,
자기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
마리아는 헬레나를 새롭게 재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클라우스와 발렌틴은 마리아의 이런
면모를 알아보았지만...
정작 마리아 본인은 청춘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게죠.
다른 두 캐릭터가 서로에게 거울 이미지로
비쳐지며 하나의 캐릭터로 포개지는
마리아와 발렌틴의 관계는,
잉마르 베리만의 < 페르소나 >(1996) 속
배우 엘리자베스(리브 울만 분)와 그녀 앞의
간호사 알마(비비 안데르손 분)을 떠올리게
합니다.
배우 지망생의 분신관계를 다룬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도
이런 맥락의 작품이죠.
두 여성, 특히 나이 든 여성과 젊은 여성
사이의 치명적인 관계 변화 또한 영화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의 주요
테마입니다.
아카데미 2회 연속 수상에 빛나는 조셉
멘케비츠 감독의 < 이브의 모든 것 >
(1950)이 대표적으로,
후반부에 역전되고 마는 스타 마고(베티
데이비스 분)와 비서인 이브 (앤 박스터 분)간
권력 관계의 뒤바뀜을 통렬하게 끄집어내고
있습니다만...
파스빈더 작 < 페트라 폰 칸트의 비통한
눈물 >(1972)의 성공한 디자이너 페트라
(마르키트 카르슈텐젠 분)와 젊은 비서
카린(한나 쉬굴라 분)의 관계도 그러하죠.
https://youtu.be/NhDMdrXrTEU
극중 연극 < 말로야 스네이크 > 가 ‘서로를
잡아끄는 힘에 대한 관계’ 즉, 관계에서의
힘의 우위를 다룬 작품이라고 여기는
마리아...
젊은 여자와 나이 든 여자는 확연한
대립구도인데다,
극중에서 헬레나가 자살한 것처럼,
'젊음’ 에게 밀려난 ‘중년’ 으로서는 몰락의 길
밖에 없다고 그녀는 우려하는 것이죠.
거기다 이십 년 전 헬레나를 연기했던 배우
수잔이 공연 후 갑작스럽게 죽은 사실은,
그녀에게 ‘나이듦’ 이란 마치 불길한
징후처럼 각인돼 버렸습니다.
무대에서 빛나 보이는 역할은 무모하지만,
그만큼 빛나는 젊음이라고 마리아는
생각하죠.
그러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시그리드에 비해,
자신의 아픈 상처를 끄집어내서 말하는
헬레나가 오히려 순수하고 인간적이라며,
그런 헬레나를 다시 바라보라고... 발렌틴은
마리아를 설득합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아무리 인간적이라고
해도 헬레나가 싫다며 감독 클라우스에게
말하죠.
"지금 내가 헬레나 나이대라고 해서 그 역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죠. 나는 여전히
시그리드예요!"
그녀는 시그리드 역을 할 할리우드의
사고뭉치 배우 조앤의 치기어린 열정마저
질투하는 듯합니다.
그렇죠. 마리아는 결코 시그리드를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육체는 몰락의 징후를 드러내지만, 조앤의
당돌하리만치 튀는 자신감은 한 때 마리아가
당당히 소유했던 것들이 아닐까요?
마리아의 생각 속에 헬레나는 그저 늙은
패배자일 뿐입니다.
어쩌면 시그리드는 마리아에게 존재의
진실에 반대되는 '에고' 일지도 모르죠.
마리아는 할리우드의 SF 오락영화의
캐릭터들이 진정성이 없다고 빈정대며
젊은이들의 인터넷 문화가 충동적으로
소비된다고 여기면서도...
카지노에서 판돈을 다 걸고 배팅을 하는,
스스로 충동적이고도 무모한 행태를
보입니다.
그런 혼란스러운 모습에서 그녀 안에
시그리드와 헬레나가 공존함이 느껴지죠.
결국 두 여성이 실은 하나의 인물이라는 걸
마리아가 자각할 때까지,
그녀 안에서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이
폭죽처럼 분열하는 것도 감지됩니다.
발렌틴은 마리아가 품고있는 무의식의
한 부분을 이루죠.
이는 상대역(시그리드 배역)으로 대본 리딩
연습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마리아의 젊음이
직접적으로 투사된 분신으로 점점
드러납니다.
그로 인해 실제의 언어와 연극의 대사는
계속 교차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점점
허물어 가죠.
드라마 속 갈등이 현실 속 발렌틴과 마리아의
갈등으로 전이되는 것입니다.
'관계에서의 힘의 우위’ 가 어느 순간
마리아에게서 발렌틴에게 기울어지는 것도
연극 속 관계 역학과 비슷하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나가는 발렌틴에게
마리아가 묘한 질투심을 보이는 것 역시,
동성애를 다룬 연극의 에로스적인 긴장감을
연상시킵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고통스럽지만 과거의
자신과 대면하죠.
"과연, 난 누구인가?"
2-1. 헨델 오페라 < 세르세 - Xerxes> 중 1막
아리아 '그리운 나무 그늘 아래'(Ombra mai fu)
-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 숄
https://youtu.be/N7XH-58eB8c
- 몰몬 테버내클 합창
https://youtu.be/R0I5REnTnTs
2-2. 오케스트라 편곡 '라르고'(Largo)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youtu.be/Rm8lM1BC5x4
이 영화 제목인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실스마리아' 지방에서 특별한 날에만 볼 수
있는 '말로야 스네이크' 라는 기상 현상을
이르는 것인데요.
'말로야 스네이크' 란 구름이 산의 봉우리를
타고 바다의 파도처럼 내려오면서 또아리를
틀어대며 '뱀' 과 같은 형상으로 계곡을 가득
채우는...
마치 한 폭의 엄숙하고도 경건한 종교적인
풍경화처럼 매혹적 절경인 구름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곳 사람들은 이토록 놀랍도록
장중한 자연 현상을 '악천후가 올 것이라는
징후' 라고 에둘러 얘기하죠.
김수는 이 영화에 대한 평문(씨네21 987호)
에서 이 장면을 글의 화두로 삼으며,
“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몽환적 연출을 통해
'실스마리아의 구름’ 을 '말로야의 뱀' 으로
승화할 만한 여유와 상상력이 결여돼 있는
마리아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면화했다”
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3. 파헬벨 '캐논(Canon) D장조'
- RTVE (Adrian leaper) Orquesta
sinfonica Navidad 2008
https://youtu.be/OFfYGoVstgc
https://youtu.be/JvNQLJ1_HQ0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실스마리아
지역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 가장 큰 모티브가
됐다는 작품 '말로야의 구름 현상' 은,
영화 역사의 초창기였던 1924년, 산악
사진의 개척자 중 한명이었던 아르놀트
팡크가 촬영한 흑백 필름 영상입니다.
중국의 고전 그림들처럼 산봉우리와
구름과 바람이 추상적으로 섞여 있어,
거의 한 세기의 시간차를 지니고 있는데도
그 공간은 자신만의 주관성을 통해 저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며,
그는 그 영상 속의 풍경이 가리키는 바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차별없이
표출해 세상을 재창조하는 문제,
혹은 무언가를 제거하는 것만큼 또 반드시
드러나는 문제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지요.
마리아와 발렌틴, 두 사람 사이에 연극
연습이 시작되면서 대본과 현실,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는 점차 흐릿해집니다.
감독은 이러한 스토리 라인이 이번 영화의
흥미를 강력하게 돋우는 요소로 작용한다며,
"연극은 삶과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에
연극이 삶보다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우리가 꿈꾸는 최고와 최악의 상황들에
대한 장막을 연극이 종종 벗겨준다는
것이다" 라고 설명해주죠.
- 李 忠 植 -
첫댓글 발렌틴의 다음 대사 속에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의 화두가 담겨 있죠.
"글은 물체와 같아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져요."
대본은 문자로 고정되어 있으나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스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극과 영화에서 배우의 존재감이 갖는 가치는
작품의 근본을 바꾸어 버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영화를 두 명의 다른 배우가 따로
만든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스토리가 되어
버립니다.
제작 초기에 저는 발렌틴 역으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아니라 미아 와쇼우스키를 먼저
생각했지요.
만약 미아를 캐스팅했더라면 완전히 다른 역학을
갖춘 스토리의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 'Eye for film' 과의 인터뷰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예고편
https://youtu.be/NhDMdrXrTEU
PLAY
헨델 오페라 < 세르세 -Xerxes > 중
'라르고'(Largo)
https://youtu.be/uMlxM69ZJFA
PLAY
파헬벨의 '캐논'
- RTVE (Adrian leaper) Orquesta
sinfonica Navidad 2008
https://youtu.be/OFfYGoVstgc
PLAY
헨델 오페라 < 세르세 > HWV. 40 중
1막 아리아 '그리운 나무 그늘 아래'
(Ombra mai fu)
-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 숄
https://youtu.be/N7XH-58eB8c
PLAY
-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https://youtu.be/OdeOyrLHdSg
PLAY
- 몰몬 테버내클 코러스
https://youtu.be/R0I5REnTnTs
PLAY
헨델 오페라 < 세르세 > HWV. 40 중
1막 'Ombra mai fu'
- 카운터 테너 필립 자루스키
: 바실리 페트렌코 지휘 베를린
콘체르토하우스 오케스트라
https://youtu.be/MQm2C5UrERg
PLAY
수퍼 히어로 영화에 대해 마리아 역의 줄리엣
비노쉬의 생각이 바뀌는 시퀀스 역시 영화가
부여하는 주요 포인트 중 하나이죠.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Vice.com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히어로물을 보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히어로물을 만드는 건 완전 다른 문제죠.
스크린과 CC작업, 후속 작업 등등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엄청나게 지루한 작업이거든요.
인내심만 충분하다면 저도 환타지 영화에
도전했을 겁니다."
대본 연습을 하며 마리아와 발렌틴은 치열한
논쟁을 이어갑니다.
"온통 시그리드의 빛나는 대사들 뿐이야!"
"전 그렇게 생각안해요. 헬레나가 훨씬
인간적이에요. 자기 아픔을 숨기지 않잖아요."
"아무리 인간적이라 해도 난 헬레나가 싫어!"
화려하고 이기적인 스무 살을 지나 어느덧
불혹의 언저리에서 영원히 그 시절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은, 한 여배우의 얘기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영화는 배우 줄리엣 비노쉬의 삶을 모티브로
한데다,
그녀가 직접 출연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는데요 .
프랑스 대표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
출신인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1985년 앙드레 테시네 감독이 시골에서 온 배우
지망생 니나의 이야기를 담은 < 랑데뷰 -
Rendezvous >의 각본을 쓰던 당시,
스무 살의 젊은 주연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를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 후 그들은 갑자기 사망한 어머니의 유품을
둘러싼 세남매의 갈등을 그린 영화 < 여름의
조각들 >(2008) 에서 재회했는데,
줄리엣 비노쉬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영화
인생에서 놓친 기회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모두 본질로 회귀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얘기했다고 전하는데요 .
이 말에 올리비아 아사야스 감독은 세월의
무게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의 영감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배우들 사이에서 '훌륭한 배우들의 감독
(a great actor's director)' 으로 불렸으며,
우디 앨런이 '뉴욕 필름메이커의 정수' 라 칭송한
시드니 루멧 감독.
그는 저서 < 영화를 만든다는 것 > 에서 '배우론' 을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삶을 훌륭하게 모방할 줄 아는 배우는 많다.
모든 세부사항이 정확하고 아름답게 관찰되고
완벽하게 재현된다.
그러나 한가지가 빠졌다. 인물은 살아있는게
아니다.
난 삶이 스크린에 복제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삶이 창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차이는 배우가 얼마나 스스로를 잘
드러내느냐에 달려있다."
스크린에 모방이 아닌, 창조의 삶을 투영해내는
배우... 바로 '줄리엣 비노쉬' 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