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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재중_묵은 땅을 갈아엎을 때가 되었다.
호세아 10:11-15
11. 길든 암소처럼 곡식 밟기나 좋아하던 에브라임의 귀여운 목덜미에 나는 멍에를 메웠다. 에브라임에게 쟁기를 메웠다. 유다는 밭을 갈게 하고 야곱은 써래질을 하게 하며 이렇게 일러주었다.
12.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어라. 사랑의 열매를 거두리라. 지금은 이 야훼를 찾을 때, 이 야훼가 너희를 찾아와 복을 내리리라."
13. 그런데 너희는 밭을 갈아 악을 심었으니, 거둘 것이 악독밖에 더 있겠느냐? 속임수로 살았으니 이젠 네가 속을 차례다. 너희가 병거를 믿고 군인이 많다고 우쭐대지만,
14. 바로 그 때문에 너희 가운데서 반란이 일고, 요새가 모조리 함락되는 것이다. 베다르벨이 살만 왕에게 깨어지던 날, 어미와 자식이 함께 박살나지 않았느냐?
15. 내가 이스라엘 가문을 그 모양으로 만들리라. 너희의 엄청난 죄를 그대로 두겠느냐? 때가 되면 먼동이 트듯 이스라엘 왕은 영락없이 망하리라.
지난 월요일(24일) 대전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15번째 월요기도회였습니다.
이날 사제단은 수해로 수십 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어도 해외 순방 중 귀국하지 않은 대통령과 잔고증명서를 위조해도 1년형밖에 선고받지 않은 대통령 장모 등을 언급하며 "불공정과 몰상식이 판을 치는 시대"고 작금의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이 세웠으니 언제든지 국민이 허물수 있다"며 정권 퇴진과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죠.
이날 미사를 집전한 김용태 신부(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는 강론을 통해 "부정하고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가 들어서면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 죽는 사회적 참사가 벌어진다"며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청년은 이태원에서 참사를 당했고, 이태원 검은 리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커버 사진으로 올린 청년은 오송 지하차도에서 유명을 달리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김 신부는 "자연 현상도 더이상 윤석열 치하에서는 공정하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은 것으로 변했다"면서 "어떤 사람은 늘 다니던 지하차도에서 질식해 죽어갈 때, 어떤 사람은 명품 쇼핑에 진심인 부인과 함께 예정에도 없던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생즉사 사즉생'을 외쳤다"면서 "이게 나라냐, 인간이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제단은 "윤석열 퇴진, 탄핵은 이 시대의 당위성"이라며 "혹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고 말하지만, 가능성과 상관없이 인간이면 마땅히 실천하고 추구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강타한 극한 호우로 지난 24일 기준, 인명 피해는 사망자 47명, 실종자 3명, 부상자 35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재민은 1만 8,418명, 시설물 피해는 1만여 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죠. 농경지 피해 등 정확한 통계는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중 14명이 숨진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누가 보더라도 인재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 규명과 처벌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수해의 책임도 이태원 참사 때와 같이 하급관리자 몇 명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적 재난에 우리 정부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법률 위반이 아니니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판결합니다. 이상민 장관의 탄핵심판에 전원 일치 판정으로 기각한 것이죠.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헌법적 책임'은 무시하고 '위법' 여부만 따진 결과로 보입니다. 판결의 근거로 재난안전법에는 중앙기관의 책임·역할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재난의 모든 책임은 현장 기관에만 귀속되어 정부나 중앙기관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죠. 이로서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명목상 헌법 조문에만 존재하는 사족(蛇足)이 되어 버렸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기구가 아닙니다. 법률의 위헌 여부 및 공직자의 헌법 위배를 따지라고 만들어 놓은 기관입니다. 이것이 법원과 구별되는 헌재의 고유한 기능인 것이죠. 때문에 헌재는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헌법적 책무'에 더 무게를 두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번판결은 이상민 장관의 현행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만 정밀하게 따졌을 뿐, 국가 재난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의 장으로서의 행정안전부 장관의 헌법적 의무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번 헌재의 기각 결정은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에서 국가가 해야 할 헌법적 의무는 없다"라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겠습니다. 이는 헌재가 '국가 재난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전면 부정했다는 말이 됩니다. 뭐가 캥겨서 이런 판결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 판단에 대한 책임을 언젠가는 져야 할 것입니다.
최배근 교수는 전두환-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포함 윤석열 정부 등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부'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2023. 7. 23 민들레/ 최배근 통찰/ 존재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는 정부).
윤석열 권부를 '사악함에서 이명박 정부, 무능함에서 박근혜 정부, 그리고 기괴함에서 전두환 정부를 능가한다'고 표현한 유시민 작가도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정부의 권력자들은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일들은 "돈 받고 일하는 공무원 노동자가 할 일"이지 선출 권력자인 자신들의 역할이 아니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송참사 등이 벌어져도 "내가 거기 있어도 바뀔 것이 없다"고 발언할 수 있었다는 거죠.
또 다른 것은 이들의 권력획득은 공공 자원의 사유화와 그를 통한 사적 이득(축재) 추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양평고속도로 사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이용해 축재하려는 모습이나 자신들의 불법이나 비리 등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 등이 그것이라는 거죠.
그러니 최배근 교수의 주장은 전두환-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는 모두가 권력을 사유화 하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사적 이득을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히 생각하지 못할 전 근대적인 제왕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 국민을 개, 돼지로 보고 법 위에 군림하며, 백성들을 향해 마구잡이 칼춤을 출 수 있는 거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인 B.C. 8세기경 북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시절 활동하던 호세아에게 내린 야훼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구원하신다’는 이름을 가진 예언자 호세아는 여로보암2세(B.C. 793-753년경) 통치 말기에 시작해서 북이스라엘 마지막 임금인 호세아 왕 때(B.C. 732-722년경)까지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1:1; B.C. 753-722년경). 아모스 선지자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의 멸망 직전까지 대략 40여 년간 활동한 것이죠.
여로보암2세 때 북이스라엘은 정치,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됩니다. 당시 앗시리아는 북방 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에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틈을 타 여로보암2세는 국방력을 강화하며 영토를 확장합니다. 다윗과 솔로몬 때 차지했던 영토를 거의 회복한 것이죠. 경제적으로도 대외교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번영은 종교적,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물질 만능주의와 현세 지향적이며 극단적인 이기심이 팽배해져 사회를 혼란으로 끌고 가죠. 권력자들과 가진자들은 마음껏 가난한 동족을 괴롭히며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여로보암2세 사후 북이스라엘은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습니다. 능력주의가 판을 치고 차별이 난무합니다. 정치, 종교적 지도자들은 그들이 누린 번영을 자신의 능력으로 과시하였고, 국가적 위기가 닥쳐도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뇌물과 조공으로 어떻게든 회피하려고만 하였습니다. 백성들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쫓았으며, 이를 위해 바알 신 숭배는 물론 이방의 각종 우상들을 섬기는 가증한 행위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 또한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죄를 범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이런 연유로 정정(政情)은 불안해져 쿠데타 등으로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정권으로 바뀌면서 북이스라엘 왕국은 점점 쇠락하죠, 불과 20년 동안의 일입니다. 그러다 결국 호세아 왕 때 앗시리아에게 패망 당하고 맙니다(B.C. 722년).
호세아서에 의하면 호세아 선지자는 행실이 단정치 못한 음녀 고멜과 결혼하여 장남 이스르엘과 딸 로루하마, 그리고 차남 로암미 등 2남 1녀를 낳습니다(호 1:2-9). 하지만 아내 고멜은 집을 나가 음행을 일삼았고, 그때마다 호세아는 아내의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데려와 가정을 재건합니다.
호세아 가정의 이런 운명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의 자녀들 이름이 그 운명을 예견케 하죠.
첫 번째 아들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뿌리신다’는 뜻이고(호 1:3-5) 두 번째 딸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는 뜻입니다(호 1:6). 세 번째 아들에게 하나님은 ‘로암미’라는 이름을 주시는데 그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는 말입니다(호 1:9).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을 하라 명 하시죠.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를 통해 이스라엘의 운명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호세아에게 하나님의 역할을 주시고 고멜에게는 이방과 짝해 사는 북이스라엘의 역할을 주신 거죠. 즉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대적했고 앞으로도 대적할 음란한 족속이었고 이들의 자손들 역시 음란한 자녀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첫번째 자녀의 이름의 뜻인 ‘하나님이 뿌리심’과 같이 이스라엘 족속들과의 관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결국 두 번째 자녀의 이름인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가 되었고 마침내 세 번째 자녀의 이름인 ‘내 백성이 아니다’로 끝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온갖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 그리고 은과 금을 주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줄을 알지 못하였고,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이 의지하는 나라들로부터 온다고 말하며 외세와 짝했습니다.
아니 그들은 하나님이 풍성한 재물을 공급해 줄수록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였습니다(호 4:7, 10:1, 13:6).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그들로부터 곡식과 포도주를 되찾고 양털과 삼을 빼앗기로 결심합니다(호 2:9). 이스라엘 족속이 풍요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등졌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고난’이라고 말하며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다시 그 관계를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희망을 전합니다. 호세아가 계속 집을 나가는 고멜을 애써 찾아와 다시 가정을 회복시키려는 것처럼 말이죠.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그들에게 주셨던 축복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래서 결국.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의 이름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될 것이고(호 1:7, 2:1) ‘내 백성이 아니다’는 이름은 ‘내 백성이 될 것’(호 1:10, 2:1)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가정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럼에도 그때마다 이스라엘과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며 용서의 끈을 놓치 않았던 자신의 사랑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회복하는 일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정의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길든 암소처럼 곡식 밟기나 좋아하던 에브라임의 귀여운 목덜미에 나는 멍에를 메웠다. 에브라임에게 쟁기를 메웠다. 유다는 밭을 갈게 하고 야곱은 써래질을 하게 하며 이렇게 일러주었다”는 말이 나오죠.
여기서 하나님은 멍에를 씌우고, 쟁기로 밭을 갈게 할 사람으로 세 사람을 꼽습니다. 에브라임과 유다, 그리고 야곱이죠.
야곱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지파 동맹을 맺을 때 그 지파를 총칭하는 인물입니다. 야곱의 12지파가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죠. 야곱의 12지파는 야곱의 12 아들들로 인식되지만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12지파에는 야곱의 아들인 요셉이 빠져 있습니다. 대신 요셉의 뒤를 이은 차남 에브라임이 대신 들어가죠. 유다는 야곱의 4째 아들로 형제들이 요셉을 죽일 궁리를 할 때 그를 만류한 인물이고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이주 협상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니 11절에 언급된 세 인물은 새 이스라엘을 세울 때 꼭 필요한 각성된 리더십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담당해야 할 일은 묵은 땅을 갈아엎는 일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심어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일이죠. 그리고 그 일은 야훼를 찾아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12절 말씀은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어라. 사랑의 열매를 거두리라. 지금은 이 야훼를 찾을 때, 이 야훼가 너희를 찾아와 복을 내리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실현되려면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을 찾고 그에게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명령과 계율에 따라 그간의 모든 잘못을 청산하고 정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묵은 땅을 갈아엎는 일입니다. 묵은 땅이란 그간 이스라엘 족속들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입니다. 진리를 멀리하고, 외세를 우상으로 섬기며, 돈과 재물을 위해 동족을 고통으로 빠뜨리는 등 모든 악행을 의미하죠. 그리고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고와 악한 마음도 갈아엎어야 할 묵은 땅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족속이 해야 할 일은 정의를 심는 것입니다. 정의는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씨앗입니다. 억압과 차별, 빈익빈 부익부 등의 뿌리는 사회정의의 부재로 인한 것입니다. 정의라는 잣대가 사라지면 불공정과 몰상식이 판을 칩니다. 그런 사회는 하나님의 경고대로 멸망이라는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범했던 모든 일의 끝도 멸망입니다. 그 멸망의 시간은 점점 가까와 오고 있습니다. 회복과 멸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돌이키라고 명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회개하고 돌이킨 미스라엘에게 주실 복을 말씀하신 뒤 그간 그들이 저질러 온 죄악을 다시 상기시켜줍니다. 돌이켜 삶의 태도를 바꾸기만 하면 복이 앞에 놓여있으니 결단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너희는 밭을 갈아 악을 심었으니, 거둘 것이 악독밖에 더 있겠느냐? 속임수로 살았으니 이젠 네가 속을 차례다. 너희가 병거를 믿고 군인이 많다고 우쭐대지만, 바로 그 때문에 너희 가운데서 반란이 일고, 요새가 모조리 함락되는 것이다. 베다르벨이 살만 왕에게 깨어지던 날, 어미와 자식이 함께 박살나지 않았느냐? 내가 이스라엘 가문을 그 모양으로 만들리라. 너희의 엄청난 죄를 그대로 두겠느냐? 때가 되면 먼동이 트듯 이스라엘 왕은 영락없이 망하리라.(13-15절)”
오늘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도 지금 호세아 시대와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0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 속에 심어진 악의 씨앗 때문에 온갖 불공정과 몰상식한 세상이 지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윤석열 정권을 통해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와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돈과 권력, 검찰권 등 공권력을 믿고 우쭐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처럼 멸망할 거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엄청난 죄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죠.
지난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이었습니다. 북이스라앨이 외세와 짝하여 저지른 범죄처럼 우리도 일제와 미군정을 지나며 외세와 짝하여 지은 범죄로 분단의 아픔을 지닌채 고난의 역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세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살만에셀에게 멸망당합니다. 우리도 그런 운명이 되지 않으려면 묵은 땅을 갈아엎고 새롭게 정의의 씨앗을 뿌려야만 하겠습니다.
그 일을 결행해야 할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년 4월 총선이 그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민중들의 슬기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의 씨앗을 뿌려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놀라운 혁명의 기운이 힘차게 솟구쳐 오르길 축원합니다.
<202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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