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레 [여성] 2013-10-21>
“딸아 넌 애 낳지 마라”
이유진 기자
어느날 발 밑에 뚝 떨어진 ‘허망’, 중년이 화났다
딸의 딸, 그리고 그 딸의 딸은 엄마처럼 안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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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 한겨레 사진마을 열린사진가. |
살다보면 화나고 분노하는 일을 자주 겪게 된다. 억울하게 남한테 공격 당하고, 나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분노가 누구 때문인지 잘 모를 때 발생한다. 깊이깊이 화가 잠재해 있을 때, 신경질이 나는데 딱히 원인을 모를 때, 홧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슴팍이 답답하고 쓰라린데 정작 내 일상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보일 때다.
깨진 강화유리 냄비에서 잊었던 나를 봤다
40대 주부 J는 어느날 아침에 밥을 차리다가 실수로 그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던 강화유리 냄비(인지 보울인지)를 깨트렸다고 한다. 곧장 까닭모를 화가 치밀어올라 ‘주부 사표’를 내겠다고 남편에게 선언했다. 20년 동안 묵묵히 아내와 엄마의 일을 열심히 해오던 사람이었던지라,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남편마저 직장에서 일부러 전화를 했다고 한다. “똑같은 냄비를 새로 사주겠노라”고. 냄비가 문제였겠는가. 깨뜨린 그릇 하나를 두고 주변에서는 분석이 잇따랐다. 결혼에 대한 압박감 아니겠느냐, 집안일을 쉬엄쉬엄 해보라는 등 해법이 난무했지만 그의 마음에 쏙 드는 조언은 없었다.
보수적인 집안의 맏딸로 태어난 그는 사실 꿈 많고 재능많던 꼬마였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꽤 잘 해서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도 권위를 인정받았다.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에 철썩 붙은 뒤 졸업하고는 곧장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원을 마치지 않고 결혼을 선택했다. 그 뒤엔 쉴 새 없는 ‘주부 생활’이 시작됐다. 임신, 출산, 육아, 또 임신, 출산, 육아….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뿐인가.
맏딸에 맏며느리라 양쪽 집안의 대소사를 물 샐 틈 없이 챙겨야만 했다. J는 공부를 할 때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 둘을 잇따라 대학에 집어넣으며 좀 한가해지나 했다. 늦었지만 예전의 공부를 이어가겠노라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발 밑에 깨진 냄비가 덩그러니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주부 사표’를 내게 된 짤막한 배경이다.
100점 만점에 100점, ‘살림’의 끝은 말기암
그 못지 않게 열심히 인생을 살던 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남편은 그럴싸한 직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강남의 커다란 아파트와 공부 잘 하는 아들을 둔 친구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주부였다. 집안은 반들반들 먼지 한 톨 없었고, 수건을 폭폭 삶아 각 잡아 넣어두었으며, 남편과 아이들의 팬티 한장까지 다림질해 챙겨입혀 누가 봐도 100점 만점짜리 주부로 빈틈 없이 지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친구는 말기암환자였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직장에 문제가 있었던 남편을 위해서 동분서주 지원사격했고, 학원가 정보를 입수해 아이 성적향상에 열을 올렸다. 절세 비법까지 전수받으며 재정을 꼼꼼하게 관리했으며, 외모를 고급스럽게 꾸몄고, 집을 가족들의 쉼터이자 남들에겐 아름다운 이웃집으로 만드는 데 정성을 쏟았다. 누가 ‘살림’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던가. 그의 남은 시간은 점점 짧아져갔다. 본인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타인에게 다 갖다바친 어느날 그는 누구나 그렇듯, 홀로 떠났다. 생전 그의 속을 무척 상하게 했던 남편은 슬픈 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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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정 엄마>의 한 장면. |
젊어 떠난 오랜 친구의 문상을 다녀온 J는 분노를 삭히지 못했다. 남편과 자식에게 송두리째 바친 여자의 인생, 수십년 간난신고 끝에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중년의 허망함 때문에 화를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남편·자식·늙은 부모·형제자매를 염려하고 뒷바라지하며 열심히 살았건만 자신에게 남은 건 허무감뿐이라는 얘기였다. 점점 자라나 엄마를 분석하기 시작하는 자식, 본인의 분노와 화를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애쓴 시간들이 허망하게 다가온다는 그는 그래서 얼마전, 대학생인 딸에게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조언했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살지 않고 가족의 인생을 지원하는 주부로서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딸아, 너는 너의 일을 하거라. 주변 상황에 이끌려서 무턱대고 덥석 아이를 낳아선 안된다. 이 사회가 아무리 구성원이 필요하다, 고령화 때문에 사회적 부담이 많다, 젊은 여성들이 2세는 꼭 낳아야 된다고 아무리 거듭 강조하더라도 너는 절대 덮어놓고 아이를 낳지 않도록 해라.”
그의 속깊은 충고에 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 나 이기적인 사람이야. 그렇게 쉽게 안 낳아.”
내 딸의 세대는 과연 달라질 것인가? 엄마들의 엄마들과 그 엄마들의 엄마들이 오랫동안 해온 같은 질문이다. ‘나는 엄마처럼 안 살아’라고 엄마의 딸들이 거듭 얘기해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