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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해, '설'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우리 것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아 정리하여 올린 글 입니다. 2017년 '설'에도 올라 올 것 입니다. >
설
‘설’은 순수한 우리말로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인 의미가 담긴 한 해의 첫날이다. 우리 설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룻날(1월1일)이고 봄의 첫날이며 최초 명절이다. 차례, 성묘, 새해인사를 하며 떡국을 끓여먹는다. 다른 이름으로 정조(正朝), 원조(元朝), 원일(元日), 원신(元辰), 원단(元旦), 연시(年始), 연수(年首), 연두(年頭), 세수(歲首), 삼원(三元), 민속의날(民俗-), 구정(舊正), 원정(元正), 세시(歲始),라 한다. 또한 근신(謹愼)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으로 신일(愼日)·달도(怛忉)라고도 한다.
한편 설을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 씩 더 먹어 설을 한 번 쇠면 1년, 두 번 쇠면 2년이 되는 이치를 따라 사람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난다.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 또한 설을 설 명절이라고도 하는데 설 명절은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설을 설 명절이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설, 세시풍속은 삼국시대에도 이미 상당히 있었지만 고려에 와서 더욱 다양하게 정착 되었으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설은 신성성을 담보 하지 못하며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도 퇴색되거나 단절되어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은 정월에 국가 세시의례인 천지신과 조상신 제사를 지내고 신하들은 왕에게 신년을 축하하는 예를 올렸다.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정월 초하루 원정(元正)을 전후하여 관리들에게 7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또한 팔관회와 연등회 등 불교 세시풍속이 강세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설 차례를 비롯한 조상제사가 중시되는 등 유교 세시풍속이 더 힘을 발휘 했다 할 수 있다.
고려 속요(俗謠) 동동(動動)을 비롯하여 동문선(東文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양촌집(陽村集), 가정선생문집(稼亭先生文集), 도은선생문집(陶隱先生文集), 등 개인문집에 기록된 시(詩)에는 정월 초하루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나누는 새해 인사, 연하장 보내기, 악귀를 쫓기 위해 부적을 문에 붙이기,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등의 세화(歲畵) 보내기 등의 여러 가지 세시명절과 풍속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이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어원(語原)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새해 첫 달의 첫 날, 그래서 아직 낯설기 때문에 ‘설다’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 설음' 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선날' 즉 개시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 음화 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 한다.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이다.
유래(由來)
설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설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은 7세기 중국의 역사서 수서(隋書) 와 구당서(舊唐書) “매년 정월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의 신라 관련 기록에 설날의 면모가 나타난다.
고려사(高麗史)에 설날(원정元正)은 상원(上元)·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와 함께 9대 속절(俗節)로 정월 초하루에 정조(正朝) 축하의식을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한식·단오·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였다.
그러나 설 명절이 역법체계에 따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주 오래 전 부터 ‘설’이 존재했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가령 3세기 중국의 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의 제천의례에 대한 기록에서 은정월(殷正月) 같은 표현 이다. 은정월은 은나라의 역법으로 오늘날로 치면 음력 섣달이기에 역법을 통해 각 달을 가늠하고 한 해의 시작으로 세수(歲首)인 ‘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라에 따라 설을, 또는 정월을 언제로 설정하는가의 차이는 있다.
의례(儀禮)
의례는 풍농의 기원과 예축, 풍흉을 점치는 점세(占歲), 농공 내지는 풍농,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어업과도 관련된 감사하는 내용이 담겨있고 신이나 초월적인 힘을 대상으로 제의(祭儀)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설날 세시의례(歲始儀禮))는 전통적으로 농사를 중심축에 놓고 행하여졌기에 ‘농경의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그만큼 농사가 약화되고 농경을 위한 세시풍속도 약화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왕은 정월에 국가 세시의례인 천지신과 조상신 제사를 지내고 신하들은 왕에게 신년을 축하하는 예를 올렸다.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정월 초하루 원정(元正)을 전후하여 관리들에게 7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의정대신들이 임금에게 정조하례를 드렸다. 이는 궁중의례이면서 왕에게 올리는 세배의 성격 이었다.
가정에서는 설날 아침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는 종손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4대조까지 모시고 그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신다. 차례를 마치고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하는데 근래에는 설을 전후하여 성묘를 한다. 한편 정초에 무당과 같은 전문적인 단골을 집으로 불러 고사보다 규모가 큰 안택(安宅) 굿을 하여 집안의 평안을 빌기도 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홍수매기(횡수막이)라 하여 주부가 단골무당을 찾아가 비손을 하거나 집에 불러다가 비손 형식의 굿을 했다. 홍수매기는 횡수를 막는 의례로서 가족 가운데 그해 운수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각별하게 의례를 행한다. 홍수매기를 지낸 후에 짚으로 ‘제웅’을 만들어 뱃속에 액운이 든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종이와 돈을 넣어 삼거리나 사거리에 버린다. 이는 액운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가 있다.
속신(俗信)
민간에서 행하는 점, 금기, 민간요법, 주법(呪法) 따위의 미신적인 신앙 관습으로 설을 전후하여 세시풍속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속신이 있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는데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신이 있다. 설날은 섣달그믐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 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다. 끝과 시작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끝나면서 동시에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설날에는 세찬(歲饌)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속설도 있다. 복을 끌어 들인다는 복조리 풍속도 속신으로 볼 수 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에서는 세화(歲畵)라 하여 수성(壽星),선녀(仙女),직일신장(直日神將) 등 액을 쫓는 신(도교적인 신)을 그려 임금에게 올렸다. 또한 도끼를 든 장군 상을 그려 대궐문 양쪽에 붙였는데 이를 문배(門排)라 한다. 민간에서는 용(龍)자와 호(虎)자를 한지에 써서 대문에 붙였는데 이는 모두 궁중의 세화나 문배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서 일정한 방향 없이 돌아다니다가 방향에 관계없이 소리를 들어본다. 이때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조이고 까마귀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고 한다. 설날 밤에는 야광귀라는 귀신이 하늘에서 내려 와서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고 가는데 신발을 잃은 사람은 그해에 재수가 없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에 이런 세시를 행하고 또는 열엿새를 ‘귀신 날’이라 하여 이날 밤에 신발을 감추거나 엎어 놓는다. 귀신을 쫓는 방법으로 체나 키를 지붕에 매달아놓거나 혹은 저녁에 고추씨와 목화씨를 태워 독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정초에 널을 뛰면 그해에 발에 좀(무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섣달그믐 무렵부터 즐기던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까지 한다. 대보름이 되면 액연(厄鳶)이라 하여 연 몸통이나 꼬리에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자를 써서 멀리 날려 보낸다. 예전에는 대보름 이후에도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으면 고리백정이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액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정초 십이지일(十二支日)을 유모일(有毛日)과 무모일(無毛日)로 나눈다. 정월 초하루가 유모일, 곧 털 있는 십이지 동물의 날이면 그해에는 풍년이 들고 무모일이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유모일 가운데서도 소·토끼·호랑이날이 그 중 좋다. 이는 주술적인 사고에 따른 것으로 이때의 털을 곡식의 성장에 비유했다.
첫 쥐날인 상자일(上子日)에는 모든 일을 금하는데 일을 하면 쥐가 곡식을 축낸다고 한다. 쥐가 쏠고 갉아먹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칼질이나 바느질을 삼간다. 마소를 먹이기 위해서 여물을 썰면 쥐가 벼나락, 짚 등을 쏠아버린다고 하며 길쌈을 하거나 옷을 지으면 쥐가 옷감을 쏠아 못쓰게 한다고 금한다. 반면 이날 주머니를 만들어 차면 재수가 있다고 한다.
첫 소날인 상축일(上丑日)에는 소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도마질을 하지 않는다. 쇠고기를 요리할 때에는 으레 도마질을 해야 하는데 소의 명절인 상축일에는 이와 같은 일을 삼가는 것이다. 쇠붙이 연장도 다루지 않는다. 이날 연장을 다루면 쟁기의 보습이 부러지고 방아를 찧으면 소가 기침을 한다. 또 이날은 곡식을 밖으로 퍼내지 않는다. 퍼내면 소에게 재앙이 온다는 것이다.
첫 호랑이날인 상인일(上寅日)에는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여 놀았다. 또 짐승에 대하여 나쁜 말도 하지 않으며 외출도 삼간다. 이날 여자들이 외출하여 남의 집에서 대소변을 보면 그 집 가족이 호랑이에게 잡혀간다는 말도 있다.
첫 토끼날인 상묘일(上卯日)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출입하면 재수가 없다하여 금한다. 그래서 남자가 먼저 일어나서 대문을 열고 불가피할 경우 누구라도 남자가 먼저 출입한다. 이날 여자들은 실을 짜거나 옷을 지으면 장수(長壽)한다 하여 베틀이 있으면 한 번씩 올라가 베를 짜본다.
첫 용날인 상진일(上辰日) 새벽에는 여자들이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온다. 이날 새벽에 용이 내려와서 알을 쓸어놓고 간다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물을 길어다 밥을 지으면 그해 농사가 대풍이 든다고 한다. “동국세시”에는 이것을 용알뜨기(憦龍卵)라 하여 대보름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용물뜨기’라고도 한다. 또 이날은 긴 물건을 다루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는다. 뱀이 나온다고 하는데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뱀처럼 몸이 길어 같은 동물로 여겨 꺼리는 것이다. 반면 머리카락이 잘 자라지 않는 사람은 이날 머리를 감아 곱고 길게 잘 자랄 것을 축수한다.
첫 뱀날인 상사일(上巳日)에는 머리를 빗거나 이발을 하면 뱀이 나타난다 하여 금한다. 그 밖에 빨래도 삼가고 바느질도 하지 않으며 땔나무를 부엌에 들이지 않는다.
첫 원숭이날인 상신일(上申日)에는 부엌에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일어나서 비를 들고 부엌의 네 귀퉁이를 쓴다.
첫 닭날인 상유일(上酉日)에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고 하여 금한다.
첫 개날인 상술일(上戌日)에는 일을 하면 개가 텃밭을 해친다고 금하고 이날 풀을 쑤면 개가 평소에 잘 토한다하여 금한다.
첫 돼지날인 상해일(上亥日)에는 콩가루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희어진다고 한다.
첫 말날인 상오일(上午日)은 유모일에 속하며, 소와 함께 중요한 가축이었던 말에게 제사지내고 찬(饌)을 주어 위로하였으며, 이날에는 장 담그는 일,(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의 원료이기 때문에 좋다는 것과 말의 핏빛처럼 장 빛깔이 진하고 맛이 달게 된다) 고사지내는 일 등을 하였다. 지금은 말을 부리고 기르는 일이 드물어져 첫 말날의 풍속은 거의 없어졌다
말날에 된장 담그는 일은 전국 공통의 풍속이며 제주도에서는 ‘정불굴수(井不窟遂)’라 하여 이날 우물을 파지 않았다. 전남에서는 말날을 길일로 여겨 고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첫 양날인 상미일(上未日)은 유모일에 속하며, ‘첫 염소날’이라고도 한다. 염소는 온순한 짐승이기 때문에 이날 무슨 일을 해도 해가 없다하여 특기할 만한 민속은 거의 없다. 다른 정초 십이지일은 주로 ‘ ~해서는 안 된다, ~삼간다, 등 근신하고 조심하는 풍속이 많은 데 비해, 이날만은 비교적 좋은 날로 여겨, 여러 가지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하는 날로 되어 있다.
양의 날, 전남 바닷가 일부 지역에서는 출항을 삼가는 곳도 있다.( 염소는 그 걸음걸이가 방정맞고 경솔하여 바다에 나가서 해난을 만난다.) 제주도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여 환자라 해도 약을 먹지 말라고 한다.(양‘未’자가 아닐 ‘미’자 이기 때문에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 )
“ 염소 띠는 부자가 못 된다 ” 속담은 염소는 반듯이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어 염소 띠 사람은 염소처럼 너무 정직하여 부정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지 못 한다는 것이다.
복식(複式)및 절식(節食)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한다. ‘경도잡지’에는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 ‘열양세시기’에는 세비음(歲庇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설날에 무색(물색,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데 특히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명절뿐 아니라 돌과 같은 기념일에도 색동저고리를 입는데 돌에 남아들은 남색 띠를 두르고 여아들은 자색 띠를 둘러 구별했다.
설에 먹는 절식으로 우선 꼽히는 것은 설날의 떡국이다. 떡국의 기본 재료는 가래떡이다. 떡을 먹지 않아서 밥으로 차례를 지낸다는 가정도 있으나 설날과 떡국이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떡국에는 만두를 빚어 넣기도 하며 흥미로운 사실로 “동국세시기” 떡국에 대한 기록에 예전에도 시장에서 시절음식으로 떡국을 팔았다, 한다.
세찬(歲饌)은 차례 상에 오르고 명절에 시식하는 음식이다. 가래떡을 썰어 넣고 끓인 떡국은 대표적인 설음식이며 그 외에 시루떡도 있다. 고사를 지낼 때에는 붉은 팥 시루떡을 쓰지만 차례를 지낼 때에는 붉은색이 조상을 쫓는다하여 거피를 낸 팥을 사용하여 떡을 찐다. 세주는 맑은 청주를 쓴다. 차례 상에 오르고 산뜻한 봄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이 함께 마신다.
놀이
설을 전후하여 세시풍속이 집중되어 있는 까닭은 정월이 농한기이며, 한 해가 시작되는 신성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기간에는 인간의 기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설의 놀이는 이미 섣달그믐 무렵부터 시작된다. 연날리기는 섣달그믐 무렵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즐긴다. 보름날의 연은 액연(厄鳶)이라 하여 멀리 날려보낸다. 원래 보름날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않는다. 그 밖에 설날 무렵 윷놀이·널뛰기·승경도(陞卿圖)놀이·돈치기 등을 한다.
윷놀이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이 집 안에서도 하고 밖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하는 정초의 가장 보편적인 놀이다. 윷의 종류도 장작윷과 밤윷이 있고 놀이 방법도 다양하다. 윷놀이를 통해 그해 운수를 점쳐 보기도 한다. 윷놀이와 윷점에 대해서는 『경도잡지』에도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널뛰기는 여자들이 즐기는데 역시 『경도잡지』에 놀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승경도(陞卿圖)는 승정도(陞政圖)·종경도(從卿圖)·종정도(從政圖)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주로 양반 가문의 젊은이들과 여자들이 즐겨 놀던 실내놀이로 관직이나 학업의 등급을 차례로 기입하고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끗수대로 승진하거나 후퇴하는 방식으로 한다.
돈치기는 정초에 청소년들이 동전이나 동전 모양의 쇠붙이를 가지고 노는 놀이인데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대보름」편에 기록되어 있다.
설의 구비전승으로 설날과 대보름의 속담을 찾아볼 수 있다. 설날의 명절음식인 떡국에는 쇠고기나 닭고기를 넣는데 원래는 꿩고기를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꿩고기가 구하기 어려워지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닭고기를 넣게 되었는데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 이래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금기(禁忌)
예로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날은 특별히 삼가고 조심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여겨졌다. 이것을 통칭해서 후일 만들어진 말이 금기(禁忌)이다. 어떤 날에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않아야 재앙을 막고 풍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금기의 공통적인 양상인데 설날에 나타나는 금기의 특징은 여자들에 대한 행동 규제가 가장 큰 특징이다.
설날에 전해지는 금기의 대표적인 것은 여자들의 출입에 대한 금기이다. 여자들의 출입에 대한 금기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통하던 것이었다.
대체로 여자들이 설날 혹은 정초에 바깥출입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집 주인이 싫어하기 때문’, ‘단순히 부정타기 때문’, ‘한 해 동안 재수가 없기 때문’, ‘재수가 없다고 여겨서 세배를 하지 못하기 때문’, ‘그 집 닭(병아리)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 ‘농사가 잘 안되기 때문’ 등 지역별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이 남자들과 섞여 들어가거나 남자 뒤에 들어가는 것은 좋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할 사람이 남의 집에 왕래하면 남녀 어느 한쪽의 운이 나빠진다고 여긴다(충북 괴산). 이것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금기이다.
한편 남자들에 대한 금기도 있는데 설날에 ‘상가(喪家)에 다녀온 남자’, ‘개고기를 먹은 남자’는 부정이 들기 때문에 남의 집에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이 같은 여성에 대한 출입 제한 때문에 양반가의 여인네들은 설날 남의 집에 인사를 갈 수 없어서 몸종을 대신 보내기도 했다.
바느질을 하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이날 바느질을 하면 안 되는 이유로 ‘생인손을 앓기 때문’, ‘손에 가시가 들기 때문(손독으로 덧남)’, ‘곡식 뿌리가 삭기 때문’, ‘손가락을 다치기 때문’, ‘손가락이 아리기 때문’, ‘저승에 가서 홀어머니가 되기 때문’ 등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날은 옷이 헤어져도 바느질을 하지 않았다(경기 남양주, 경북 구미·칠곡).
문을 바르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설날에 문종이를 바르면 안되는 이유로 ‘단순히 재수가 없기 때문’, ‘재수 구멍·여수 구멍(돈 구멍)을 막기 때문’, ‘복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 등의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설날이나 정초에 문을 바르는 것을 피하고 8월 전에 문을 발라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 이것을 어기고 섣달그믐 전까지도 문을 바르지 못하면 정월 한 달 동안이 몹시 춥다고 한다(전북, 충남 예산·홍성).
재를 치우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대체로 재를 재물(財物)로 여기는 관념의 표현이다. 이날 만약 재를 치우면 ‘집안의 복(재물복)이 나간다.’, ‘곳간에 있는 곡식이 줄어든다.’, ‘곡식이 모이지 않고 집안의 복이 빠져 나간다.’,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를 집 밖으로 절대 가져가지 않으며 설날이 되기 전날인 섣달 그믐날 미리 치우기도 한다(경남).
곡식을 밖으로 내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이날 만약 곡식을 팔거나 남에게 주면, ‘집안의 복이 나가서 재산이 줄어든다.’, ‘그해 수확량이 줄어든다.’, ‘돈을 빌려주면 복이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곡식이나 돈을 빌려주려면 섣달 스무날 전에 미리 빌려주기도 한다(부산 기장·경남 밀양).
이 외 설날의 금기 사항으로는 ‘개고기 먹지 않기(경기 이천, 충남 천안)’, ‘늦잠 자지 않기(제주도)’, ‘머리 감지 않기(경기 김포, 의왕)’, ‘물동이 지지 않기(제주도)’, ‘물이나 쓰레기 버리지 않기(경기 이천, 전북 익산)’, ‘물질하지 않기(충남 아산)’, ‘방망이 소리 내지 않기(제주도)’, ‘배에 여자 태우지 않기(경북 울진)’, ‘봉사한테 점치지 않기(제주도)’, ‘비질하지 않기(제주도)’, ‘빨래하지 않기(전남 목포)’, ‘새벽에 물 길어오지 않기(전북 진안)’, ‘성냥 사지 않기(경기 이천)’, ‘손톱 깎지 않기(제주도)’, ‘족제비 보지 않기(제주도)’, ‘풀 쑤지 않기(제주도)’ 등이 있다. 이들 행위를 금하는 세부적인 이유가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한 해의 농사와 개인의 운수와 관련되어 있다.
인접국가 설
설이 언제인가는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일상력이 기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1월 1일부터 일상력으로 그레고리력인 태양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통사회에서는 음력으로 일컬어지는 태음태양력을 사용했다. 따라서 설날은 태음태양력에 의한 정월 초하루였다. 이는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는 1월 1일부터 5일을 춘절(春節)이라 하여 명절로 보낸다.
일본에서는 음력의 날짜를 그대로 양력으로 사용, 양력 1월 1일은 국민의 축일(祝日)이라는 이름으로 명절화 되었다.
동양적 색채와 유럽적 색채가 동시에 존재하는 러시아에서는 새해가 되면 ‘윗가(vodka, 보드카)’라는 술을 마시면서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프랑스에서는 지금의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전에는 세수가 4월 1일이었다. 1567년 국왕 샤를르 9세 때 세수를 1월 1일로 옮겨 오늘날에 이르렀다. 설날에는 에트렌느(Etrenne, 길조의 선물)라는 선물을 교환하며 덕담을 나눈다.
이스라엘은 유대달력에 따라 양력 9월에 설날을 맞는다. ‘로쉬 하사나’로 불리는 설날에 서로 덕담을 하면서 꿀에 담근 사과나 대추를 먹는다.
헝가리에서는 설날 점심 때 콩을 넣은 음식을 먹으면서 부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멕시코에서는 1월 1일이 되는 시점인 자정에 시계탑 종이 열두 번 울리는 것에 맞추어 포도알 열두 개를 먹으며 새해 12개월 동안의 소원을 빈다.
이란에서는 시르(마늘)·세르케(식초)·십(사과) 등 이란어로 ‘시’로 시작하는 7가지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든다. 이 음식은 풍요와 건강·행복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설날에 온 가족이 마당에 모여 냄비에 우유와 쌀을 넣고 죽을 끓인다. 죽을 끓이면서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데, 죽이 잘 끓지 않거나 냄비가 깨지면 불행이 닥친다고 한다. 죽이 잘 끓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데 이 죽을 무화과잎에 싸서 친지들에게 선물한다.
베트남에서는 설날 전에 수박을 준비했다가 설날에 손님들이 모이면 수박의 가운데를 가른다. 가른 수박 가운데 빨갛게 익은 정도를 보고 한 해의 길흉을 점친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였을 때 녹두와 돼지고기를 넣은 찹쌀떡인 ‘바인 쯩’을 바나나 잎에 싸두었다가 손님들한테 대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