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요
최용현(수필가)
蕭寥月夜思何事 (소요월야사하사)
寢宵轉輾夢似樣 (침소전전몽사양)
問君有時錄忘言 (문군유시녹망언)
此世緣分果信良 (차세연분과신량)
悠悠憶君疑未盡 (유유억군의미진)
日日念我幾許量 (일일염아기허량)
忙中要顧煩或喜 (망중요고번혹희)
喧喧如雀情如常 (훤훤여작정여상)
명기(名妓) 황진이가 연인 소세양(蘇世讓)에게 보낸 시이다. 소세양은 황진이의 여러 남자들 중에서 그녀가 연모한 유일한(?) 남자라고 전해지는 사람으로, 조선 중기에 호조 형조 병조 이조 등의 판서와 우찬성을 지낸 문신(文臣)이다. 전북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그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위 시를 우리말로 옮겨보자.
소슬한 달밤이면 무슨 생각 하오신지
뒤척이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님이시여 때로는 제가 드린 말도 적어보시는지
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은 지요
멀리 계신 님 생각, 끝없어도 모자란 듯
하루하루 이 몸을 그리워하시는 지요
바쁜 중 돌이켜 생각함은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
참새처럼 지저귀어도 제게 향한 정은 여전하온지요.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노래의 가사 같지 않은가. 그렇다. 이선희가 부른 ‘알고 싶어요’와 비슷하다. 아니, 거의 똑같다. 가사를 보자.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 주세요
잘 아시다시피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시인이면서 극작가인 양인자 씨, 이 노래를 작곡한 김희갑 씨는 그의 남편이다. 이 부부는 수없이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가히 환상의 커플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 곡 ‘알고 싶어요’를 비롯하여 최진희가 부른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김국환의 ‘타타타’,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트롯과 발라드를 가리지 않고 장르를 넘나들며 주옥같은 명곡을 합작해냈다.
이 부부의 곡은 모두 하나같이 사랑과 이별 등 인생의 편린을 꿰뚫는 격조 높은 가사에, 물 흐르듯 유려한 선율로 이루어진 심금을 울리는 곡들이다.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불후의 고전으로 남으리라.
이 곡 ‘알고 싶어요’는 황진이가 쓴 한시를 양인자 씨가 번안한 것으로 인터넷에 소개된 곳이 있어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이 노래는 양인자 씨가 작사를 한 것이 맞다.
‘소설 토정비결’을 쓴 역사소설가 이재운 씨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청사홍사’의 황진이 편에서 양인자 씨가 작사한 ‘알고 싶어요’를 한학에 밝은 김승종 시인과 함께 운율에 맞춰 칠언율시(七言律詩)로 제조해서 넣었는데, 그 소설의 내용을 사실로 착각한 사람이 인터넷에 황진이의 시로 올리면서 그런 오해가 생긴 것이다.
소세양은 평소 학문을 하는 사람은 여색을 경계해야 한다며, 친구들에게 내가 만일 여색에 빠지게 되면 나를 개(犬子)라 불러도 좋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황진이와 천수원에서 꿈같은 세월을 보낸 후 떠나려 했을 때 황진이가 누각에 올라 시를 읊으니, 차마 떠나지 못하고 ‘나는 사람이 아니고 개다.’ 하며 스스로 탄식하며 다시 며칠 더 머물렀다. 이때 황진이가 읊은 시가 송별소양곡시(送別蘇陽谷詩)이다.
月庭梧桐盡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相盞醉無限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롭구나)
明朝相別後 (내일 아침 그대를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여기서 노란 들국화와 매화는 아무래도 황진이 자신을, 차갑게 들리는 물소리는 떠나야 할 님 소세양을 은유한 것이리라. ‘내일 아침 우리가 헤어지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로 끝맺은 황진이의 호소에 기꺼이 며칠 더 머물기로 마음을 바꾼 소세양도 풍류를 아는 멋진 선비임에 틀림이 없고….
달빛 아래 누각에서, 사모하는 임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황진이의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 않나요? 매화 향기가 묻어나는 피리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 않나요?*
첫댓글
?!
맛깔나는 글 한번에 잘 보았읍니다 . 나 역시
犬子라 불려도 기꺼이 황진이 옆에 있으리 *
동감입니다.
기꺼이 함께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