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서 마지막 말 한마디 남기고 간 눈물의 어느 검정고시 합격 수기........
오늘 우연히 우리 상록학교 지난 졸업생들의 앨범을 정리하다가 철 지난 어느날 마지막 말 한마디 남기고 간 어느 검정고시 합격 수기를 눈물 지으며 살며시 저의 품안에서 꺼내 보았습니다........
절망속의 보석 캐기.....
구미상록학교 000
저는 가난한 농가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상급학교의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지만 언니의 희생이 그나마 중학교의 졸업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언니는 실질적인 우리 집 가장으로써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하였습니다. 당시 시골의 부업거리였던 홀치기 총대를 비롯해서 가마니 짜기, 화장품판매, 품앗이등등...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부모님께서는 한입 들기도 하고 가정살림에 보탬이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결국 언니를 서울의 어느 집 가정부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겨울날의 언니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추위에 꽁꽁 언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 온 언니는 혼이 빠진 정신병자 같은 몰골이었고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한 마리 새와 같아 어린 제 눈에도 무척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주인의 학대와 폭행, 고된 노동은 있었지만 월급도 주지 않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자 가족생각밖에 나지 않아서 도망쳐 나왔다고 하면서 밤새 울었습니다.
그때 부모님께서는“그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하셨지만 가난한 농촌의 살림살이에 달리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졸업했는지도 모르게 중학교를 마치고 바로 대구의 한 섬유공장에 취직하여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나랑 언니의 희생으로 하나뿐인 오빠는 학업을 계속한 결과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이젠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저는 학력은 짧지만 다행스럽게 전자 회사에 취직하여 돈도 모았고 결혼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잘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시간을 내어 중학교 졸업자도 할 수 있었던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받아 자격증을 가지고 요양보호사로 재취업하여 성실하게 근무하여 직장에서도 신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 깊숙이 숨겨둔 비밀스런 나의 꿈을 꺼내 보곤 하였는데 그건 바로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되는 어릴 적 나의 꿈이었습니다.
아무도 몰래 학원에 전화를 해 봤더니 지원 자격이 고등학교 졸업이상인자라고 해서 절망하며 다시 그 꿈을 숨겨 두었습니다. 그리곤 ‘학력이 뭐가 중요해 능력만 있으면 되지’하면 모자란 나의 학력을 합리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30년 만에 구미로 내려와 고향 친구를 만났는데 상록학교에 자원봉사 한다면서 나에게도 학업을 권했지만 나는 억지로 태연한척하며 거절하였습니다. 솔직히 공부는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기에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였는데 그날 밤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후 조용히 과거를 회상해 보았더니 직장에서의 인정, 행복한 가정, 자녀의 바른성장, 아쉽지 않은 물질등 정말 많은 것을 가졌지만 가족도 모르는 나의 학력은 언제나 중졸이었고 이력서에 기입할 때 마다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환경이 허락할 때 도전해 보자는 이상한 오기 같은 것이 생겨서 한번 도전해 보기로 결단하고 구미상록학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새롭게 하는 공부는 어려워서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무척 재미있고 새롭게 다가와서 삶의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격려와 가족의 열화 같은 지지에 힘입어 정말 열심히 하였지만 한 달 만에 본 첫 번째 검정고시는 실패를 하였습니다.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포기하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선생님들의 격려는 물론이고 너무 쉽게 합격하며 세상을 우습게 볼 수 있기에 겸손하라고 떨어졌다며 충고해 주는 친구, 실패후의 성공은 더욱 빛나는 거라는 남편의 위로에 다시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역시 공부는 정직한 것 같았습니다. 자꾸 책과 접하면 출석을 열심히 하였더니 서서히 앞이 보이는 것은 느꼈고 2016년 4월에는 무난히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분을 솔직히 표현 한다면 소 잡고 닭 잡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모두 먹이고 싶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책가방 메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우리들만의 감정일 것입니다.
검정고시 합격 후 나의 삶이 이렇게 달라지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직장생활은 상사의 확실한 신뢰를 받고 있고 야간에는 가슴속에 숨겨 둔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간호조무사자격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고졸검정고시 합격의 경험으로 인하여 간호조무사 공부도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꼭 합격하여서 나 같은 형편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주었으며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절망속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그 속에는 보석이 있는데 그것을 캐는 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오직 자기 자신이 캐야 한다는 것을 꼭 알려 주고 싶습니다.
구미상록학교에서 검정고시의 합격은 나에게 큰 세상으로 비상하는 꿈을 한보따리 안겨 주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가 있을까요?
이런 기쁨을 누리면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구미상록학교 정태하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무보수로 자원봉사하시면서 수고하신 여러 선생님 그리고 같은 처지를 서로 보듬고 격려하며 함께 공부한 모든 학우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검정고시 합격을 계기로 저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모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위 글을 남기고 그녀는 그토록 소망하든 구미대학교 사회복지과 진학을 눈앞에 둔체 어느날 무슨 연유인지 스스로 구미 어느 저수지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떠난 어느날 저는 말없이 생을 마감한 호숫가를 찻아 한없는 슬픔을 품고서 밤 하늘을 향해 밤새 울분을 토하고 말았습니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요..................
우리 모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주세요..........
구미상록학교장 정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