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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겸손한 신앙
그때에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루카 9,46-50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예로니모 성인은 347년 무렵 달마티아의 스트리돈(현재 보스니아의 그라호보 근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공부한 다음 트리어에서 정부 관리로 일하였으나,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379년 사제가 되어 382년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번역하였는데,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가 그것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그는 성경 주해를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기고 420년 무렵 베들레헴에서 세상을 떠났다.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오늘의 전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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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둥근달을 보셨는지요? 언젠가 읽은 글입니다. ‘우리의 만남이 햇볕에 바라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 추석에 음미해보고 싶은 글입니다. 과학이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모든 것을 분석하고, 규정하려하지만 인류는 과학 넘어 신화의 세상을 늘 동경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의 날개와 더불어 신화의 날개를 함께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월인천강지곡’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처님은 한분이시지만 그 가르침과 뜻이 온 천하 만대에 이르는 것은 달은 하나이지만 천개의 강에 비추이는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람의 몸으로 한 시간과 공간 속에 계셨지만 그분은 죽음을 넘어 부활하심으로써 그분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전에 한 형제님이 제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을 믿지 않는가?, 로마 가톨릭은 유대인들을 탄압했는가?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종교들이 있는가?’ 강의 주제는 ‘성사론’이었는데 질문은 좀 다른 것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답변을 하기에는 주제가 참 다양하고, 넓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것을 ‘성사’라고 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참 많은 성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일곱 가지 성사도 있고, 교회도 성사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면 나 또한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휴게소에 들러서 간단한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일을 보기도 하고, 차에 기름을 넣기도 합니다. 같은 값이면 친절하고, 시설이 좋고, 음식이 맛있는 휴게소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면 미련 없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서 떠나기 마련입니다. 누구라도 휴게소가 좋다고 거기서 며칠씩 머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종교는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나침판과 같은 지침을 준다면,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준다면,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준다면 사람들은 그러한 종교를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종교는 최종 목적지는 아닌 것입니다. 그 끝은 ‘깨달음, 진리, 해탈, 하느님나라, 영원한 생명’과 같이 저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참된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늘 겸손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대한민국은 휴게소가 많은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다른 종교를 비난하거나, 탓하기 전에 지금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참된 진리를 향해서 치열하게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에 등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불빛이 보이는 항구로 배들은 모이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험난한 파도에 돛단배처럼 떠다니는 배가 굳이 우리 항구로 오지 않더라도 어떻습니까? 어차피 항구에 도착한 배는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막지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조재형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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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목표는 절실하게(‘좋은생각’ 중에서)」
독일의 어느 대학 철학과에서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백지를 주고 10분 동안 목표를 적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도 학생들은 한숨만 쉴 뿐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교수가 말했다.
“여러분의 생명은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버킷 리스트를 써 보세요.”
그러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백지를 채웠다.
교 수가 앞서 말한 목표와 버킷 리시트는 비슷한 개념인데 왜 결과가 달랐을까? 단어 하나의 차이에서 비롯된 심리적 반응 때문이다. 사람들이 목표는 막연하게 언젠가 이루고 싶은 무언가로,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해야 할 무언가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절실한가? 어느 쪽을 더 빨리 이루고 싶은가?
이 실험은 철학자 하이데거가 ‘본래적 자기를 찾는 방법’으로 권한 방식으로 시간제한이 목표 설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절실하게 자신의 목표를 찾아보세요. 더욱 더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지를 잘 쳐주고 받침대로 받쳐 준 나무는 곧게 잘 자라지만, 내버려 둔 나무는 아무렇게나 자란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남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말을 잘 듣고 고치는 사람은 그만큼 발전한다(공자)>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루가 9,46-50)
「わたしの名のためにこの子供を受け入れる者は、
わたしを受け入れるのである。
わたしを受け入れる者は、
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を受け入れるのである。
あなたがた皆の中で最も小さい者こそ、
最も偉い者である。」
(ルカ9・46-50)
“Whoever receives this child in my name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the one who sent me.
For the one who is least among all of you
is the one who is the greatest."
(Lk 9:46-50)
聖ヒエロニモ司祭教会博士記念日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ヌグドンジ イ オリニル ネ イルムロ バダドリミョン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ナル バダドリヌン コシダ。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루가 9,46-50)
「わたしの名のためにこの子供を受け入れる者は、
와타시노 나노 타메니 코노 코도모오 우케이레루 모노와
わたしを受け入れるのである。
와타시오 우케이레루노데 아루
わたしを受け入れる者は、
와타시오 우케이레루 모노와
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を受け入れるのである。
와타시오 오츠카와시니 낫타 호오오 우케이레루노데 아루
あなたがた皆の中で最も小さい者こそ、
아나타 가타 미나노 나카데 못토모 치이사이 모노코소
最も偉い者である。」
못토모 에라이 모노데 아루
(ルカ9・46-50)
“Whoever receives this child in my name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the one who sent me.
For the one who is least among all of you
is the one who is the greatest."
(Lk 9:46-50)
Memorial of Saint Jerome, Priest and Doctor of the Church
Lk 9:46-50
An argument arose among the disciples
about which of them was the greatest.
Jesus realized the intention of their hearts and took a child
and placed it by his side and said to them,
"Whoever receives this child in my name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the one who sent me.
For the one who is least among all of you
is the one who is the greatest."
Then John said in reply,
"Master, we saw someone cast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prevent him
because he does not follow in our company."
Jesus said to him,
"Do not prevent him, for whoever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2024-09-30「あなたがた皆の中で最も小さい者こそ、最も偉い者である。」
+聖ヒエロニモ司祭教会博士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聖ヒエロニモ司祭教会博士記念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天の元后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聖ヒエロニモ、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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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教会の重要なラテン教父であるヒエロニモは、ダルマチア(現オーストリア)の裕福なキリスト信者の家に生まれた。恵まれた環境と豊かな才能によって、短期間でギリシャ語とラテン語を習得し、ローマに留学して8年間修辞学を勉強した。
そのころ、修道生活に入ることを望み、アクィレアで隠修士の仲間に入り、その後東シリアの荒野に行き、聖書を研究しヘブライ語を学んだ。そしてアンチオキアに戻ってから司祭に叙階され、380年ころ司教とともにコンスタンチノープルに行って、ニッサのグレゴリオなどと親交をもった。
382年から385年まで教皇ダマソ1世に仕え、聖書をヘブライ語からラテン語に翻訳したブルガタ聖書を完成し、聖書の注釈書も著わした。教皇の死後、ヒエロニモの反対者によってローマを追われ、仲間とともにベトレヘムに行き、男子と女子の修道院を創立し、また聖地巡礼者のための宿泊所も建てた。晩年は、民族大移動時代と重なり、多くの困難に見舞われたが、修道院を守り抜き、著作活動に励んだ。
現在もカトリック教会で使われているラテン語訳聖書は、彼によるものである。ヒエロニモは、大学、神学科の守護の聖人とされている。(聖人カレンダー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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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あなたがた皆の中で最も小さい者こそ、最も偉い者である。>
そのとき、9・46弟子たちの間で、自分たちのうちだれがいちばん偉いかという議論が起きた。47イエスは彼らの心の内を見抜き、一人の子供の手を取り、御自分のそばに立たせて、48言われた。「わたしの名のためにこの子供を受け入れる者は、わたしを受け入れるのである。わたしを受け入れる者は、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を受け入れるのである。あなたがた皆の中で最も小さい者こそ、最も偉い者である。」
49そこで、ヨハネが言った。「先生、お名前を使って悪霊を追い出している者を見ましたが、わたしたちと一緒にあなたに従わないので、やめさせようとしました。」50イエスは言われた。「やめさせてはならない。あなたがたに逆らわない者は、あなたがたの味方なのである。」(ルカ9・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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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日の黙想文はキエット大司教様の黙想文「選択と決断」でした。)
チョ・ゼヒョ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中秋のお月様をご覧になりましたか?いつか読んだ文章です。「私たちの出会いが日差しに照らされると歴史になり、月明かりに染まると神話になる。」中秋に味わいたい言葉です。科学が玉ねぎの皮をむくようにすべてを分析し、規定しようとしますが、人類は科学を超えた神話の世界を常に憧れて生きてきたようです。だからこそ、私たちは科学の翼とともに、神話の翼も必要としているように感じます。かつて『月印千江之曲』という文章を読みました。主な内容はこうです。「仏様はお一人ですが、その教えと志が全世界の万代に及ぶのは、月が一つであっても千の川に映し出されるのと同じ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もまた、人として一つの時間と空間の中におられましたが、彼は死を越えて復活することで、イエス様を信じ従うすべての人々とともにいることができます。
先日、ある兄弟が私に質問をしました。「なぜユダヤ人はイエスを信じないのか?ローマ・カトリックはユダヤ人を弾圧したのか?世の中にはなぜこんなに多くの宗教があるのか?」講義のテーマは「秘跡論」でしたが、質問は少し違ったものでした。短時間で答えるには話題がとても多様で広かったです。神の愛が示されるのを「秘跡」と呼ぶことができるならば、世の中には本当に多くの秘跡があるのです。私たちが言う七つの秘跡もあり、教会もまた秘跡です。私たちの言葉と行動が神の愛を示すならば、私たちもまたとなるのです。
高速道路には休憩所(サービスエリア)があります。人々は休憩所に立ち寄り、簡単な食事をしたり、用を足したり、車にガソリンを入れたりします。同じ値段ならば、親切で、設備が良く、食事が美味しい休憩所を求めることでしょう。しかし、人々はしばし休息を取ると未練なく定められた目的地を目指して旅立っていきます。誰もサービスエリアが良いからといって、そこに何日も滞在す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私は宗教は高速道路上のサービスエリアのようなものだと思います。
人生の羅針盤のような指針を与えてくれるならば、孤独な現代人に慰めと喜びを与えるならば、永遠の命へと導いてくれるならば、人々はそのような宗教を選ぶでしょう。しかしやはり、宗教は最終目的地ではないのです。その終わりは「悟り、真理、解脱、神の国、永遠の命」のように、それぞれ表現は違っても真の真理なのです。だからこそ、イエス様は常に謙遜であることを求めます。それが人々の心を動かす力だからです。
多様な宗教が共存する我が国は、休憩所が多い高速道路に似ています。他の宗教を非難したり、責めたりする前に、今自分が信じている宗教が真の真理に向かって熱心に方向を示す羅針盤となるように努力するべきでしょう。そして、暗い時代にあって灯となるようにすべきです。光が見える港に船は集まるものです。今、荒波に浮かぶ小舟のように漂っている船があえて私たちの港に来なくても、どうなのでしょうか。いずれにしても、港に到着した船はまた、どこかに向かって旅立つのです。
「人の子は仕えられるためではなく、仕えるために、多くの人の身代金として自分の命を捧げるために来た。やめさせてはならない。あなたがたに逆らわない者は、あなたがたの味方な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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清くて謙遜な幼子のようなキリスト者となって敵を作らず主の宣教のためみんなの味方となれ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