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 이야기 – 9
아래사진 우두성, 뒤 정진오,천명준,김송식,백순기,유판열, 최동기,백성주
오전에 많은 비가 오더니 오후엔 눈으로 바뀌어 폭설이 내렸다.
우리는 동면하는 반달곰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면굴 주변을 감시하기로 했다.
그 동면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불무장등으로 올라가다가 연동골로 가거나.
칠불사 아래에서 연동골 계곡으로 가는 길이 있다.
기상청에서 17년 만에 많은 눈이 왔다고 발표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려서
산에는 눈이 많이 쌓였다.
곰의 족적을 발견했던 농평마을의 이점암(1951년생, 목사님과 함께 불무장등 등산을 갔다가 눈 위를 걸어간 곰 발자국 발견) 씨에게 혹시 모르는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는 것이 보이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곰의 동면용 굴을 발견했다는 것이 소문나면 혹 누군가가 곰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을 우려하였다.
몇 마리 남지 않은 곰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우리는 칠불사 쪽 연동골과 농평마을을 순찰하기로 했다.
1월15일 이점암씨에게서 뒷산에 개 발자국이 보인다고 전화가 왔다.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자재를 가져다 놓기 위해 산에 갔는데 여러 마리의 개 발자국이 보였다는 것이다. 농평마을에는 개를 데리고 산에 간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개를 데리고 산에 간 사람이 곰을 집으로 간 것은 아닌지 곰이 동면하고 있는 지역을 순찰하기로 했다.
1월 16일은 회원들이 모두 일이 있어서 산에 갈 사람이 없었다.
백춘기 회원이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백춘기 씨는 힘이 장사였다. 키도 180cm가 넘고 구례장날이면 화물차가 구례에서 서울로 가는 장짐을 싣고 가는데, 화물차에 쌀, 밤, 고사리 등 농산물을 차에 싣는 일을 하였다.
당시에는 화물을 하나라도 더 실으려고 사다리를 놓고 짐을 어깨에 메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데 구례에서는 가장 뛰어난 짐꾼으로 활약한 분이다.
오전 10시경에 구례 피아골 농평마을까지 차로 태워다주고 내려올 때는 농평에서 산 너머 골짜기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 목통 마을로 내려오기로 했다.
핸드폰을 가지고 혼자 출발하였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전화를 하기로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당시에는 산에가면 핸드폰이 잘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보통 4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인데 눈이 많이 쌓여있으니 5시간쯤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착오였다.
오후 3시쯤이면 목통 마을로 내려오리라 생각해서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갔는데 도착해서 전화를 해봐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4시가 넘어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
임병길, 정진오, 우두성.백춘기
백춘기 씨는 플래시도 가지고 가지 않았으니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플래시를 가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계속 전화를 하였다.
약 10분쯤 올라가니 전화가 왔다. 내려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어둑어둑해서야 내려왔다.
백춘기 씨는 우리를 보자 눈물을 글썽였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바위틈에서 빠졌는데 빠져나오기 힘들어서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고 길을 찾지 못해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했다.
혼자 산행을 한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반달곰이 동면하고 있는 지역 부근에는 사람 발자국이나 개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날 목통 마을에 가서 탐문을 해보니 농평마을 위에서 보인 개 발자국은 목통 마을에 사는 사람이 고로쇠 채취를 위한 자재를 가지고 불무장등 쪽으로 개를 데리고 간 것이 확인되었다.
우리는 겨우내 3~5일에 한 번씩 농평마을과 목통 마을에 가서 낯선 사람들이 산에 가지는 않았는지 탐문하고 순찰하였다.
3월 3일 우두성, 손영배, 정진오, 권병이, 백춘기 반달곰 동면굴에 갔다. 만약 밀렵꾼이 동면하는 곰을 잡아갔다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을 텐데 특별한 흔적은 없었다.
4월11일 우두성, 정진오, 유판열, 김인동이 곰 동면굴로 다시 갔다.
시기적으로 동면했던 반달곰이 굴에서 나왔을 것으로 생각하여 동면굴의 내부를 보고 싶었다. 굴 입구에 도착해서 소리도 질러보고 나무 지팡이로 굴 입구를 때려보아도 기척이 없었다.‘
굴 입구는 큰 바위가 깨져서 바위 사이로 반대편이 보였다. 김인동 씨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무슨 소리가 나나 듣고 있다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플래시를 비추고 좁은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바위가 갈라진 길이가 폭이 70cm 길이가 약 2.5m쯤 되었다. 김인동 씨는 갈라진 바위 중간쯤에서 왼쪽 큰 바위 밑으로 굴이 있다고 했다. 유판열씨도 플래시를 가지고 따라 들어갔다.
10분쯤 지나서 나왔다.
굴은 사람 3~4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인데 굴에서 안쪽으로 조금 내려가는 굴이 이중으로 있었고 그 바닥에는 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으며 윗굴에는 신갈나무 낙엽이 많이 깔려있었고 곰이 누워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 세 곳이 있었고, 곰 배설물이 여러 곳에 있었으며 배설한 지 얼마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 물똥도 있었다고 했다. 나올 때 곰 배설물과 곰 털 몇 올을 가지고 나왔다.
그 곰은 동면을 잘 마치고 나온 것이다.
4월15일 환경부 선우영준 과장님과 남사무관 한혜정 사무관이 오셔서 곰 동면굴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16일 회원들이 남 사무관과 한혜정 사무관을 모시고 갔는데 한혜정 사무관은 여성이지만 곰 굴에 직접 들어가서 조사를 하였다.
산에는 곳곳에 설치된 밀렵구가 산재해 있었으며 밀렵꾼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해도 기설치된 밀렵구는 회수 하지 않으면 야생동물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니 수색을 하면서 밀렵꾼의 활동이 있는지 순찰도 해야 했다.
4월24일 우리는 불무장등의 피아골 쪽 사면을 정밀 수색하였다. 노고단으로 올라 삼도봉까지 가서 불무장등 피아골쪽 사면을 집중적으로 수색하였다.
.삼도봉에서 약300m쯤 내려오니 키가 큰 조릿대 군락지가 넓게 있었다. 7명이 횡대로 서서 조릿대 숲을 뚫고 갔다, 조릿대는 키보다 커서 매우 힘들었다. 유판열씨가 올가미를 한 개 발견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조릿대 숲이 끝나는 지역이었다. 우리는 흩어져서 수색하였다 조릿대가 듬성듬성 있는 지역에 나무를 베어 눕혀서 야생동물의 이동을 차단하고 사이사이에 와이어 올가미를 설치해 놓았다. 그때까지 우리가 지리산에서 발견한 밀렵구 설치 지역 중 가장 정밀하고 지능적으로 밀렵구가 설치된 지역이었다.
처음으로 코일스프링을 이용한 와이어 올가미도 발견되었다.
와이어 올가미의 내경을 1m50cm쯤 만들어서 나무에 코일스프링을 묶어서 와이어와 연결해 놓았는데 와이어 올가미로 곰의 몸통이 들어가면 스프링 올가미가 작동하여 올가미를 조이게 만든 것이었다. 우리는 작동이 잘되는지 시연도 해봤는데 아주 잘되었다.
나무를 베어 반달곰의 이동을 방해하고 올가미가 설치된 곳으로 유도하는 작업을 했는데 최소 2명 이상의 인원이 했을 것으로 보였다. 한 곳에서 멧돼지나 반달곰이 올가미에 걸려서 벗어나려고 힘을 쓰니 올가미가 나무를 조여서 나무가 깊이 패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멧돼지나 반달곰이 아니면 나무를 파고 들어갈 만큼 조인 흔적이 남을 수 없다. 와이어는 녹이 심하게 슬어 있었고 커터기로 잘려져 있었다. 밀렵꾼이 멧돼지나 반달곰을 잡아간 흔적이었다. 이 흔적을 와이어가 심히 녹슬어 있고 와이어에 의한 나무에 난 상처의 상태로 봐서 4~5년 전에 잡아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지역은 2명 이상이 약 5년 전부터 밀렵구를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매년 나무를 베어 반달곰의 이동로를 차단하고 새로운 와이어 올가미를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5월1일 우리는 다시 삼도봉 아래 조릿대 숲 밀렵구 설치 지역을 정밀 수색하여 9개의 와이어 올가미를 제거하였다.
MBC의 9시뉴스 담당 임병길 기자님이 취재를 여러 번 왔었는데 반달곰을 무인 센서 카메라로 촬영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우리는 MBC 임병길 기자님과 함께 비디오 무인 센서 카메라 5대를 만들어서 반달곰의 흔적이 많은 곳에 설치하기로 했다.
5월25일 빗점위 반달곰 배설물이 있었던 곳에 MBC 비디오 무인 센서 카메라 1대를 설치하였다. 5월26일에는 연동골 반달곰 동면굴 옆에 1대를 설치하고, 동면굴에서 불무장등 쪽으로 약 100m 올라가서 카메라 1대를 설치하였다.
카메라마다 자동차 밧데리를 메고 가서 전원으로 사용하였다.
카메라는 야생동물의 열이 감지되면 1분이 촬영되고 꺼지며 다시 열이 감지되면 1분씩 촬영되도록 해 놓았다. 5~7일만에 한 번씩은 가서 카메라 테이프를 교환해 오고 작동은 잘 되는지 점검하였다. 연동골 동면굴과 불무장등 카메라는 최천권(1952년생)씨가 확인을 하기로 했고 삼정위 산벚나무 군락지와 빗점위는 유판열, 김인동씨가 확인을 하기로 했다.
우두성, MBC임병길기자, 최천권
최천권씨는 구례출신인데 20초에 지리산악회에 가입하여 산악활동을 많이 했었다. 서울로 상경하여 자영업을 하다가 여의찮아 구례로 내려와 있었는데 배가 나올 정도로 살이 쪄서 옛날처럼 산을 잘 다니지 못했다. 필자의 학교 1년 후배이고 지리산악회 활동에 함께 해서 매우 친해서 반달곰 보호 활동을 같이 하자고 권했다.
1997년 3월부터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였다.
무인 센서 카메라에는 청설모나, 어치,맷비들기,까치, 고라니, 멧돼지 등이 촬영되었으나 정작 반달곰은 촬영되지 않았다.
6원 14일 빗점 위 카메라 설치 지역과 멀지 않은 반달곰의 식이 흔적이 많았던 산벚나무 군락지에 버찌가 많이 열려서 카메라 1대를 설치하였다. 곧 버찌가 익을 것이기에 반달곰이 버찌를 먹으러 올 것으로 판단하여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위사진 한상훈박사, 일본반달곰연구소 마이타.가츠히코소장, 아래사진 한상훈 박사
7월31일 환경부에 생태조사팀장으로 들어온 한상훈 박사님이 야생동물 이동통로 문제로 방문하였다.
마침 최천권씨가 연동골 반달곰 동면굴에 설치한 카메라 점검하러 산행을 가는 날이어서 한 박사님이 함께 가보고 싶어 해서 함께 갔다.
그날은 산에 조금 올라갔을 때 이슬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비에 다 젖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녀왔다.
한상훈 박사님은 일본 북해도 홋카이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환경부에 취직했는데 야생돔물 조사를 많이 한 경험이 있어서 산도 잘 타고 체력도 좋아 보였다.
한상훈 박사님이 우리와 협력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