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친정이고 학교를 고등학교까지 거기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인들이 서울로 이동하여 활동을 하고있고,
어머니 사시는 곳도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가족이 다 가서 지내기는 눈치가 보여
이제는 부산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무척이나 줄어들었습니다.
서면에서 안과로 개업하고 있는 동창이 가끔 병원 바로 앞에 있는 롯데 호텔을 잡아
주기도 하는데 그러니 더욱 폐만 끼치는 것 같습니다.
우리사이에 뭐 그렇게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느냐고 하는데 그래도 제 마음은 좀 그렇네요!
그 친구의 주선으로 지금은 부산에서 가장 모던하게 발전하여 라스베가스를 육박할 듯한
관광지이자 중상류층들이 모여 삶으로써 교육환경으로서도 곽광을 받고 있는 해운대에서
네명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피서객으로 피크를 이룬 몇몇 주말은 백사장 전 지역에 걸쳐
대여하는 파라솔과 쏟아진 피서객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대다
바람으로 인해 입욕이 금지되는 바람에(그 정도의 바람으로 입욕을 금지한다면
우리가 사는 보르도 근처의 대서양에서는 하루도 수영이 가능할 날이 없을 거라는
브노와의 예리한 판단 내지는 불평!) 좀 불편하기는 한 해운대였지만...
모인 사람은 안과의사, BEXCO에서 300석이 넘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경영주,
그리고 서울에서 요리경영으로 출강을 하고 있는 강사 그리고 저를 포함해 넷이었는데,
다들 제 분야에서 잘 활동을 하고 있는 놀라운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중 두 친구는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보았으니 33년만일텐데도 저를 보고는
별로(!) 안 변했다고 하니 우리가 나이를 먹어 가도 어릴때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나 봅니다.
저는 그 두명이 같은 반 친구들이 아니었어서 전혀 얼굴 기억이 안 나 좀 미안한 마음 아니면
불안한 마음(혹시 치매 초기는 아니겠지!)이 들 수 밖에 없었죠.
근데 그 중에 한명이 하는말이 그 당시 동기들이 저에게 관심은 있는데 접근하거나 사귀기가
쉽지않아 그 후 커서 가끔 멀리서 볼 기회가 있을때도 별로 말을 건네지 못하고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이해되지 않는게, 아침 조회시간이면 매일 아이들이
삥 둘러 이야기하는데 잘 끼이지 못해 안타까왔고,
좀 더 커서는 아무도(좀 과장해서!) 따라오거나 교제하자는 사람이 없어 약간의
컴플렉스에 걸려 있었는데 다른 애들이 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왜
지금에야 이야기 해 주는건지...!
항상 혼자서 다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제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다 뭉클해지는군요??!
이것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지금이나마 이렇게 소꿉동무들이 다시 모여 6학년때 알고 있던 애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토론의 주제로 아이들 교육 내지는 고차원적인 사회, 정치,경영문제를 논할 수 있었으니
저로서는 찰나적인 짜릿한 긴장감과 흐뭇한 동지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초등학교 동기회도 임시로 만들어 가장 많은 동기들의 소식을 알고 있는
BEXCO CEO 친구를 임시회장으로 추대하고 다음 모임을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기들을 위해
제가 출국하기 직전인 8월13일에 서울에서 다시한번 모임을 갖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네트워크가 힘인 지금의 세상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07/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