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항땅과 같이 친숙했던 우즈벡에서의 12일.. 두번째 이야기, " 튀니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고향 같이 친숙 했던 우즈베키스탄"
지난 9월10일 지긋 지긋한 ^-^;; 튀니지를 떠나 터키의 이스탄불을 거쳐 부터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도착해 12일동안 머물다 튀니지로 돌아 왔습니다.
사실 우즈베키스탄에 있었던 12여일 동안 단 이틀, 사마르칸트를 여행 한 것 이외에는 다른 지방 도시를 가보지 못했기에 거창하게 우즈벡 여행기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기에 그냥 우즈벡에서의 짧았던 생활 뒷풀이를 정리 하는 글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
우즈베키스탄은 같은 아시아 대륙이고, 튀니지는 아프리카 라는 먼 대륙에 있어서인 까닭 이겠습니다만, 우즈벡에서 지낸 짧은 시간은 저에게는 순간 순간 고향을 떠올릴수 있는 향수를 충분히 자극 했습니다. 튀니지에서는 전혀 느껴볼수 없었던, 바로 그 그리운 저희 나라에 대한 향수 말이지요.
사진을 정리 하며 다시금 떠올려 보다 보니, 아마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제가 우즈벡을 고향 땅과 같이 생각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즈벡 여행 이야기 두번째로 몇자 적어 봅니다.
◆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많은 먹거리들
우즈벡 수도 타슈켄트에는 수많은 한국 식당 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곧 한국 사람들의 방문이 많다는 뜻이겠고, 많은 교민들이 거주 하고 있다는 것이 겠지요. 실제로 우즈벡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제결혼과 비즈니스 사업 차 그리고 기독교 단체의 선교 활동 등으로 매우 활발히 한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국제 결혼으로 우즈베키스탄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네, 그래서 인지 이곳 우즈베키스탄은 타슈켄트는 물론 이고 지방이자 관광지인 사마르 칸트 에서도 한국 식당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농작물 채소 야채등을 손쉽게 구매 할 수 있어 한식당 들이 튼튼하게 자리 매김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 지네요
여하튼 이 모든 것들이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광경 이었이지요. ^-^; 덕분에 머무는 동안 정말 그 동안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들을 실컷 먹으며, 고향 땅을 떠올렸답니다.
◆ 곳곳에 눈에 띄이는 한국 경차들과 간판들
외국에 나온 것 같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한국의 음식 들을 접할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특징 말고도, 저를 착각 하게 만든 다른 광경은 바로 도로의 절반 이상을 누비는 한국의 경차들의 모습이였습니다. 신형 마티즈 부터 구형 마티즈 , 다마스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티코들 까지 모조리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_@ 많은 한국의 차들을 보며 제 눈은 휘둥그레 졌었지요.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한국 어 간판 또한 이 곳이 외국인가 하는 착각을 아주 잠시 동안 하게 해주었습니다.
역시 이 모든 모습이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광경 이었이지요. ^-^;
◆ 친숙해 보이는 고려인들
튀니지 사람들만 보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니 아... 정말 사람들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마치 한국에 온듯한 느낌이였지요.. "어. 저사람 한국 사람아니야? 하기를 속으로 수차례.." ^-^;; 그만큼 머리가 검고 이목구비가 저희와 비슷한 고려인들과 우즈벡 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가는 날 까지 우즈벡인과 고려인들을 구별 하지 못해 친구에게 구박을 맞았던 기억이 나네요.
여하튼 저희 와 비슷한 생김새의 친숙함 때문인지 튀니지를 떠나 이 곳 우즈벡에서 좋은 편안함을 느낄수 있었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2760만 6007명(2009년 추정치)이며, 13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고 합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 민족의 이슬람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러시아 인들과 다른 소수 민족들의 입지에 대한 불안 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고, 옛 소련의 다른 나라에서 우즈벡족이 돌아오고 있어서, 소수 민족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통계에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35%였으나, 2005년에는 3.7%로 대폭 감소하였다. 그리고, 민족 구성에서 특이한 점 한 가지는 고려인인데요.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이 인구의 1%에 해당하는 1990년대까지 22만명이 거주하였으나, 상당수가 러시아로 이주하여 현재는 약 15만 명 정도만 살고 있다고 합니다.
2005년에 전체 인구 중 우즈벡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가장 많으며 그 밖의 타지크인(5%), 러시아인(3.7%), 카자흐족(3.6%), 타타르족(0.61%), 고려인(0.6%)이랍니다. - 출처 및 참초 위키백과사전.
◆ 친절한 사람들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
우즈벡에 짧게 나마 머물며 우즈벡 인들은 한국에 대해 굉장히 많은 호감을 보이고, 고려인은 물론 이거니와 한국 말을 할 줄 아는 우즈벡인 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말을 듣는 다니 아..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니까..?
가히. 튀니지 에서는 또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지요. ^-^;
나중에 들은 이야기 지만 우즈벡인들은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코리아 드림이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실제로 많은 우즈벡 인들이 한국에 와서 노동자로 일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가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 곳에 파견된 한국어 교육 분야의 국제협력단 봉사 단원도 가장 많다고 합니다.
때문에 튀니지에서 거리를 지나 다니며 듣게되는 칭챙총~! 재키찬~! 고찌니와~! 자뽀녜~! 라는 신기함에 놀리는 말들은 전혀 들을 수 없었고, 간혹 한국말을 지나가다 언듯 언듯 들을 수 있었던 우즈벡!! 아.. 정말..^-^; 어찌나 편안하던지... 히.
◆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조경의 타슈켄트
1966년 타슈켄트에는 7.5도의 지진이 강타, 사상자가 수 만명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 동 재해 이후 구소련 전역의 거국적인 복구 지원으로 불과 2~3년후 타슈켄트는 현대적 도시로 재건되었다고 하네요. 재건 당시 잦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도시는 계획적으로 건설이 이루어 졌으며 수많은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우즈벡의 수도 타슈켄트는 정말 깨끗하고 푸르름이 가득한 조경 모습을 흔히 감상 할 수 있었습니다. 도로 마다 거리 마다 빼곡히 들어선 울창한 나무들 그리고 잔디들등.. 정말 어느나라 수도에서도 볼 수 없는 푸르름이 도심 곳곳에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잔디가 있는 장소 마다 설치된 스프링 쿨러였습니다. 황량한 대륙 한가운데에 있어 물이 부족할 것 같은 우즈베키스탄에 이게 웬? 스프링 쿨러 시설인가 보고는 다소 의아 했지만, 그 만큼 뛰어난 관개사업과 도심의 조경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을 알고 우즈벡에대해 긍정적이고 높게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허허.. 이 또한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광경 이었이지요. ^-^;
(튀니지는 조경이라.. 나무는 대부분이 야자수 아니면 올리브 나무들.. 게다가 수도에는 큰 공원이 하나 밖에 없는... )
아마도 이러한 점들 때문에 튀니지에서 있으면 고향 생각에 다소 지쳐있던 제가 우즈벡에서 편안하게 고향 땅과 같은 느낌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사실 음식의 영향이 제일 큰 거 같지만요..^-^;)
아래 부터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의 모습들을 조금 올려 봅니다.
<우즈벡 타슈켄트의 거리 모습 - 어디를 가나 나무와 잔디등이 곳곳에 푸르르게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버스는 보시는 거와 같이 아담한 마을 버스 같은 버스가 있었고 굉장히 크고 세련된 벤츠사의 버스도 눈에 띄였습니다.>
<타슈켄트의 가장 큰 놀이공원 옆에 있는 리프트? 같은 것을 타며 주위를 둘러 보았습니다.>
<타슈켄트의 가장 큰 놀이공원 옆에 있는 리프트? 같은 것을 타며 주위를 둘러 보았습니다.>
<니보이 국립극장 근처의 공원에서..>
<우즈벡 타슈켄트의 한 시장의 모습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대부분의 시장들이 이렇게 커다란 지붕의 구조 라고 합니다.>
<타슈켄트의 TV타워 라는 곳에서 전망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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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튀니지살이. 원문보기 글쓴이: 자발적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