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은 수요일 오전7시 20분. 앞으로 3시간이 지나면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1일이 여삼추(如三秋)가 아니라 1시간이 여삼추 같은 느낌이다. 군대시절의 휴가 때도 이러
지는 않았는데, 이번 여행은 왜 이다지도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일까.
6월 8일부터 6일간 40년 지기(知己) 6명은 중국의 성도와 황룡·구체구를 다녀왔다.
모처럼 친구들과 하는 외국여행이라 설렘과 함께 철없던 젊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인천공항
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국적기(國籍機)에 탑승하자 곧바로 상승하더니 고도를 잡는다.
장시간 비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맞게 되는데, 어느 정도 시간
이 지나면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지루함과 불편함이 밀려들기 시작하며 마치
18세기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가는 배안에 갇힌 노예처럼 비좁은 공간에 갇혀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우리들이 감수했기에 불평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쉽게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의 교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군(軍)을 막 제대하고 결성된 모임은 별 탈 없이 순조롭게 여태껏 지속되어 왔고 만나면 가물
가물한 기억을 맞추어가며 옛일의 전말(顚末)을 복원하고 복기하는 일이 재밌기도 했다.
여느 여행이나 대등소이 하겠지만 특히 중국여행은 날씨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여행기간 날씨는 최상이었고 일행들은 유월의 설산(雪山)을 구경하였으며, 그날그날
걷는 트래킹코스는 모자라는 운동량을 보충시켜주기도 했다. 천하의 절경은 아마도 세속과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심산(深山)에 꼭꼭 숨은 모양이다. 아직까지 가장 높이 올라가본 곳은 지
리산 천왕봉(1915m)인데 4100m 고산(高山)을 오를 때. 겁을 주는 가이드 말에 몇몇은 예방약
을 구입하여 먹는 사례가 있었지만 우리는 고산지역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쉽게 수긍이 가기
도 했고 영화 '히말라야'에서 봤던 고산병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고산병이란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나타나는 신체의 급성반응을 말하는데, 해발 2400m에서
3000m정도까지는 중등고도라 하며, 3000m에서 5500m까지는 상위고도라 하고 동맥의 산소포
화도가 떨어지면서 저산소증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5500m 이상의 고도를 초 상위 고도라
하여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고도를 말한다.
옛 시조 중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라는 시조가 있다. 풍파가 무서워서 배를
파는 사공만이 있다면 인간은 영원히 바다로 진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풍파를 두려워하지 않
는 사공, 그리고 풍파를 이기기 위해 더욱 노련한 기술과 더욱 큰 배를 만들려고 한데서 비로
소 인간의 문명은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인간의 형태는 두 가지로 나
타난다. 하나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피하는 일이다. 우리의 형태는 대체
로 후자에 속할 때가 많다. '군자는 위험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만 해도 그렇다. 위
험을 피하기보다 그 위험을 이기고 넘어서는 것이 참된 군자가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각종 현안마다 전문적 지식은 못 갖춰도, 들으면 이해할 수준의 식
견(識見)이 아쉽고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나? 아무튼 6일간 여행은 60대 중늙은이들
이 저지른 생산적인 신명풀이이자 건강한 일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