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길이 길로 이어지는 곳 일상의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
대청호오백리길 7구간 부소담악길은 호수에 솟은 바위산의 모습이다.
대청호오백리길
소양호, 충주호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큰 호수인 대청호는 군산 앞바다로 흘러드는 금강의 중간 기착지다. 충북 옥천군에서 흘러드는 실개천들이 지류를 타고 모여들어 호수를 만들었다.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일대에는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계곡 사이사이를 따라 흐르는 물길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모습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사람의 손길이 차단됐다. 그 덕분에 대청호는 지극히 자연적이고 환경친화적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청호 주변으론 볼 만한 것이 많다. 왁자지껄하거나 자극적인 볼거리는 아니지만 자연이 주는 소소한 감동들이 더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대청호오백리길은 그런 소소함이 주는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둘레길이다. 대전광역시(동구, 대덕구)와 충청북도(청주, 옥천, 보은)에 걸쳐 본선 21개 구간과 지선 5개 구간으로 구성된 총 250㎞의 걷기 코스로, 호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나지막한 야산과 수목들이 호수와 어우러져 기가 막힌 경관을 뽐내고 있다. 호수 주변을 따라 대청호물문화관, 대청호조각공원, 대청호미술관, 대청호자연생태관, 청남대, 문의문화재단지, 정지용 생가, 육영수 생가 등 역사문화 관광지가 산재해 있다. 길이 길로 이어지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여행으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대청호오백리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4구간 코스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물안개가 아름다운 문의면 과거길
대청호 북쪽의 초입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이다. 초겨울 이른 아침이면 안개와 서리가 호수 주변을 뒤덮는다. 문의면 나루터에 들어서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초겨울 호반의 정취를 더욱 맛깔나게 만들어준다. 태양이 동쪽 산 허리춤에서 솟아오르면 대청호의 수면은 가스 불 위에 올려놓은 라면 물처럼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볼품없던 작은 물안개는 삽시간에 온 사방을 뒤덮으며 한 치 앞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몸집을 불린다. 그리고는 기어코 허공에 올라앉은 태양마저 집어삼켜 버린다. 오리떼와 황새들은 그 분위기에 걸맞은 우아한 자태로 물안개 속을 휘저으며 날아오른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온 세상을 빨아들일 것처럼 요란했던 물안개가 태양을 중천으로 내뱉고 나면 호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함을 되찾는다. 아침 햇살을 머금고 하얀 솜털을 나부끼는 갈대숲과 어부가 손을 놀릴 때마다 파문을 일으키는 호수의 풍경은 대청호의 아침을 생기 있게 한다. 대청호 건설로 수몰된 마을을 재현한 ‘문의문화재단지’에서 시작하는 20구간은 높낮이가 거의 없고 호수 주변의 데크길을 따라 걷기 때문에 편안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종착지인 문의면 노현리 습지공원은 2024년 4월까지 비점오염 저감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라 공원 관림은 불가능하지만 주차는 가능하다.
19구간은 이곳에서 청남대에 이르는 구간인데 코스의 이정표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아 도로를 따라 위험하게 걷는 곳이 많으니 트레킹보다 드라이브 코스로만 이용하는 것이 좋다. 노현리 주변에는 작은용굴이 있다. 열 마리의 이무기 중 아홉 마리는 용이 돼 승천하고 덕을 쌓지 못하고 남은 이무기는 결국 호수 물이 마르면서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조명들이 어우러져 사진촬영 장소로 인기 있다.
찬샘마을에서 관동묘려까지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찬샘마을길)은 찬샘마을이라 불리는 충북 충주시 직동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찬샘마을은 냉천수가 많이 나와서 붙여진 이름인데 아이들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을 안쪽의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가면 성황당 고개를 넘어 바로 찬샘정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성치산성을 한 바퀴 돌아서 찬샘정으로 이어진다.
인적이 드문 성치산성 둘레길은 수북한 낙엽이 깔려 호숫가의 운치를 더한다. 막다른 길까지 2㎞ 정도 걸으면 부수동에 닿는다.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모양의 명당자리가 있는 곳이라는 뜻의 한자 ‘연화부수(蓮花浮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청호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수몰된 후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둘레길은 성치산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정상 부근에 둘레 약 160m 규모로 석축을 쌓았던 성치산성은 거의 다 허물어져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다. 길은 다시 성황당 고갯길로 이어지고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찬샘정까지 가면 된다.
찬샘정에서 등산로를 따라 10분 정도만 오르면 노고산성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특이하게 종 하나가 걸려 있어 특별한 분위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찬샘정에서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계속 걸으면 3구간인 호반열녀길로 이어진다. ‘양구래’라 부르는 곳을 걸어 ‘마산동산성’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푸른 대청호가 시원하게 기다리고 있다.
냉천골 삼거리를 지나 관동묘려를 향해 20분 정도 걷다 보면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사당을 만날 수 있다. 대청호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관동묘려는 ‘관동에 있는 묘를 돌보는 집’이란 뜻으로 대전시의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열녀문을 하사받은 ‘류씨 부인’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류씨 부인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평생 정절을 지키면서 시어머니를 모시다 82세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재실까지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관동묘려를 둘러보고 잘 포장된 길을 따라 다시 돌아 나오면 바비큐 레스토랑에 닿는다. 식사도 맛있지만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촬영 장소로 인기 있는 곳이다.
문의문화재단지는 대청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을 복원한 곳이다.
대청호오백리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4구간인 호반낭만길은 대청호오백리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코스다. 바비큐 레스토랑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늦가을부터 아름다운 갈대밭이 펼쳐져 낭만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이 구간 중에서 명상정원 코스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2005년 드라마 ‘슬픈연가’를 시작으로 ‘7년의 밤’, ‘살인소설’, ‘창궐’ 등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됐을 만큼 호수 뷰의 끝판왕이다. 대전시는 몸이 불편한 관광 취약계층도 편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2023년 국비 5억 원을 들여 개량 공사를 해 무장애 관광지로 만들었다. 내륙의 바다처럼 구불구불한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무장애 데크길이 이어져 대청호의 진면목을 느끼며 걸을 수 있어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찾는다.
바람이 잔잔한 날에는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호수인지 모를 만큼 매력적인 반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겨울철에는 봄 가뭄에 대비해 호수의 몸집을 최대한 키우기 때문에 다른 계절보다 한층 수위가 높아진다. 무장애 데크길은 명상정원을 지나 ‘추동습지보호구역’에서 마치게 되는데 습지 주변이 온통 갈대로 뒤덮여 바람 따라 일렁이는 은빛 파도를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추동자연생태관을 지나 연꽃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랗고 특이한 모양의 황새바위가 시선을 끈다. 리아스식 해안을 연상시키는 추동의 호숫가는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4구간의 종착지인 신상교 아래 둘레길은 물이 많으면 길이 잠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미리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대청호오백리길 13구간에서 만나는 한반도 지형의 모습이 경이롭다.
대청호오백리길 19구간에 있는 작은용굴.
구간마다 보석 같은 자연이
13구간의 시작은 옥천군 안남면사무소다. 그 옆의 안남초 앞을 지나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독락정(충북문화재자료 제23호)이 서 있다. 독락정을 지나 오른쪽의 둔주봉(등주봉)을 끼고 호수 가장자리의 비포장도로를 걷게 되는데 이 구간만을 특정해서 ‘전설바다길’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겨울철엔 대청호 수위가 높아져서 이 길이 물에 잠길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확인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는 둔주봉 등산로를 이용하면 된다. 안남읍 안남초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말이 등산로이지 사실 산책길에 가까운 코스다. 안남초에서 ‘둔주봉으로 가는 길’이라는 푯말을 쫓아 800m를 가면 점촌고개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산길이 시작되는데 널찍한 길이 걷기에 좋다. 길쭉길쭉한 리기다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길 위로 소나무 잎들이 쌓여 발이 편안하다. 한껏 솔향기에 취해 20여 분 걷다보면 번듯하게 지어진 정자가 보이는데 이곳에 서면 뒤집어놓은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볼 수 있다.
굳이 기이한 형태의 물돌이를 구경하는 게 목적이 아닐지라도 편안한 등산 코스는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여기서 300m를 더 가면 둔주봉 정상인데 조망이 좋지 않아서 시원한 맛은 떨어진다. 내려가는 길은 피실, 금정골, 그리고 고성으로 향하는 세 가지 코스가 있다. 어디로 가더라도 결국은 ‘전설바다길’로 연결된다. 13구간은 한반도 전망대에서 내려와 점촌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 점촌마을(연주 4길)로 들어선 후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인포리를 지나 현리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나온다. 대부분 산길이어서 조금 힘든 코스가 될 수 있다. 13구간은 둔주봉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갈대밭이 아름다운 5구간 백골산성 낭만길, 병풍바위로 불리는 7구간의 부소담악길, 안터마을에서 시작되는 10구간의 낭만호수길 등 대청호오백리길은 가는 곳 모두가 보석 같은 트레킹 코스다. 겨울이어도 좋다. 대청호가 품은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걷다보면 계절조차 여행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박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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