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법.
자연스런 별리(別離) 현상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부득이한 헤어짐도 꽤 많다.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을 방문중이던 이희호 영부인께서...
이화여고 은사이시던 김지한 선생님을 만났다.(2000.6.14)
당시 78세이셨던 이희호 여사는 1939-1944년까지
이화여고 수학교사였던 김지한선생님(85세)을 만나면서
60여년의 헤어짐 끝에 30여분의 짧은 만남을 이루었다.
떠나는 이 마음도... 보내는 그 마음도...
사실...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직 그 숱한 말들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서로 읽게 만드는 고귀한 통한(痛恨)의 눈물 뿐이다.
북한의 할아버지가 차창에 기대어
계속 흐느끼는 남한의 손자를 보고 있다.
차창의 한계를 느끼지 못한 것일까?
비록 창문에 막혀서 전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당신의 분신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손수건보다 뜨거운 심정이려니...
남한의 어머니를 다시 이별해야 하는 순간...
이산가족의 문제는 우리 민족의 커다란 숙제 중의 숙제이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얼마나 주고 싶은 정도 많았을까?
매달리다시피 오빠의 품에 안긴 동생의 모습은 너무 애처러웠다.
지학순 주교께서 북한의 동생과 만나는 장면(1985.9.20-23일)
이 한장의 사진... 오빠 학순(70세), 누이동생 용화(61세)의 포옹...
남과 북(南北), 성과 속(聖俗)의 차이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역사적 사건.
각기 다른 두 영역에서 살고 있기에 삶의 현실이 다르지만...
인간의 감정은 동일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함께 성당 다녔던 여동생이
"우리 수령님이 하느님이요, 우리 공화국이 바로 천당인데
왜 오빠는 천주교를 믿느냐"고 면박하는 사건 발생...
이런 발언 배후에는 우여곡절이 있겠으나...
주교는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35년 만의 만남... 그리고 또 다시 헤어지는 아픔...
지 주교(1921.9.9 - 1993.3.12)는 돌아와서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였으며...
너무나 많이, 그리고 자주 울어 '눈물의 주교'라는
별칭까지 얻었고, 조용히 지내시다가... 결국에는
이 땅에서 누이동생을 더이상 만나지 못했다.
고향 평안남도 중화에서 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주교님과 여동생의 얼굴 자태는 세월 흐름 속에서도
그대로 읽을 수 있을 만큼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여러 이유들 때문에 만남을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는
시간과 열정과 여유가 지금 바로 우리에게 필요하다.
첫댓글 아주 오래전 기억(매스콤) 속에서... 아련히 떠오릅니다 남과 북으로 헤어져 있던 오누이의 상봉! 그러나 재회도 잠시.. 다시 헤어져아만 되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비극! 그러네요 돌아보면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 하며 살아가는지..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남긴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모양 저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이겠죠? 아 ! 지금 알게 된 것을 그 때 알았었더라면...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