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수필문학의 역할
시대를 선도하는 수필문학과 수필인
장사현
jangsh3227@hanmail.net
이양하 선생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때맞추어 수필「무궁화」를 발표하였다. 한 편의 수필이 국화(國花)에 대한 미덕과 민족의 끈기, 그리고 새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염원하는 글이었다. 「무궁화」라는 수필이 그 당시에는 시대적 기능, 사회적 기능, 교시적 기능의 역할을 하였으며 지금에 와서 볼 때는 역사적 기능도 갖고 있다. 수필문학의 이러한 역할을 볼 때 우리 수필인은 통일시대를 대비한 시대적 사명을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볼 때 고조선 이후 분단과 통일이 반복되어 왔다. 세계정세를 보더라도 같은 민족 간에는 통일이 되는 것은 필연이다. 지금 남과 북의 분단은 일시적이다. 통일 시기는 예측할 수 없으나 21세기 초반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통일은 이념과 정치적인 문제로만 돌릴게 아니라 각 분야에서의 사전 역할이 필요하고 통일이 되었을 때 역할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문학에서 역할을 생각해보자. 과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는 한 편의 시와 소설이 공분을 일으키거나 국민의 마음을 달래어 주었고, 국가 재건과 경제 성장기에는 한편의 시가 피지배계층에 위로와 결집의 역할을 하여왔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사회는 이념의 갈등이나 계층 간의 문제가 별로 없기에 체험의 소재를 진솔하게 듣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수필시대이다. 문학의 양식이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때 현대라는 과학문명의 시대에 적합한 기술 양식은 수필이다. 이제는 가공보다는 사실, 주관보다는 지성에 기초한 합리주의적인 증명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일을 대비하는 시대적 사명
수필은 시대상이나 사회상을 담는 그릇과도 같다. 비록 역사서나 기록물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읽어보면 그 시대의 여러 가지 사회현실이나 인간의 심리와 모습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수필은 역사와 시대에 대한 작가의 건전한 비판의식과 삶에 대한 균형 잡힌 철학과 예지가 필요하다. 또 그러한 기능을 문학성과 예술성이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요구된다.
민족적 대업이라는 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는 이 시대에 수필인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시대정신을 예견하고 포착하는 것은 작가의 사명이다. 수필이 앞서가는 문학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를 이끌어가는 등불과 거울이 되는 공시성(共時性)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통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수필문학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분단 이후 북한의 실상과 북한 문학의 연구가 필요하다. 얼마 전 어느 블로그에서 탈북자가 쓴 간증 수필「순대국밥」을 읽은 적이 있다. 북한에 살 때 있었던 끔찍한 사건이다. 북한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굶어 죽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하면서 탈북자가 살던 동네에 어떤 가정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다가 아이 두 명을 죽여 순대국밥을 만들어 자기들도 먹고 장마당을 펼쳐 팔았다는 것이 뒤늦게 발각되어 그 부모가 총살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회고를 볼 때 북한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잘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이 해방 때 까지는 같은 국어와 언어를 사용하였고 문학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북한에는 공산주의 사상이 지배하면서 이데올로기 체계로 급격히 변화하였다. 이후 한국전쟁과 분단이 된 이후 60년 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북한에는 국어와 언어의 변질은 물론 사회제도와 삶의 방식이 모두 바뀌어졌다. 문학의 형식도 사회주의 현실을 토대로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형식으로 틀이 짜여있다.
2009년 1월 31일자와 2월 9일자《로동신문》에 발표된 북한의 수필을 살펴보자.
창조와 비약으로 수놓아지는 올해의 하루하루를 대할수록 1월에 대한 생각이 가슴을 치군 한다. 얼마 전 이해의 첫 달을 돌이켜보며 전력공업성의 일군이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올해 첫 달이야말로 우리의 1월이 담고 있는 참의미를 짙게 새겨주는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초에 수력발전소를 찾으신 사실을 돌이켜 보느라니 지난해 정초 례성강발전소 건설장을 현지지도 하셨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두 해전 1월 태천4호 청년발전소를 찾으셨던 일도 말입니다.
순간 나의 마음을 세차게 달구며 솟구치는 생각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일 동지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어이 해내고야맙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10여 년 전 눈보라 사나운 1월 자강도안의 발전소들을 현지 지도 하시였던 그때로부터 최근 몇 해 사이에 곳곳의 발전소건설장들을 련이어 찾으시여 로동계급을 고무격려해주신 위대한 헌신의 자욱자욱을 잊을 수 없다.
두 해전 온 나라 군민이 승리의 신심 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갈데 대한 공동사설의 과업을 받들고 산악같이 떨쳐나섰던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로 건설된 태천4호 청년발전소를 찾으신 것이 바로 1월 이였다.
그에 이어 새해를 조국청사에 아로새겨질 력사적 전환의 해로 빛내일 군민의 열의가 하늘땅을 진감하던 지난해 위대한 장군님께서 또다시 례성강발전소 건설장을 찾으신 때도 1월이였다.
수필「우리의 1월」서두(출처: 이용웅 교수의 북한문예 산책)
력사의 땅 강선에서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지펴주시고 온 나라에 기적과 혁신의 불길로 다 번지도록 진두에서 이끌어 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우리 인민모두를 선군혁명총진군대오의 떳떳한 성원으로 키워주시려, 강성대국의 그날을 하루빨리 안아오시려 뜻 깊은 올해의 첫날부터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헌신의 로정을 따라 천만군민이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거세차게 지펴가고 있다.
기적과 혁신, 비약의 숨결 높은 내 조국의 현실을 가슴 뜨겁게 안아보는 우리의 머리속에 는 문득 올해의 정월대보름달은 특별히 크고 밝게 보이게 될 것이라던 국가과학원 평양천문대의 한 과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결코 하나의 자연현상으로만 안겨오지 않았다.
령도자와 인민이 하나의 마음, 하나의 지향으로 굳게 뭉쳐 강성대국의 령마루로 질풍같이 내달리는 내 조국의 위대한 모습을 쟁반 같은 달 속에 그대로 뚜렷이 새기고 싶어, 위대한 장군님 따라 우리 인민이 달려갈 강성대국건설의 대통로를 더 밝고 환하게 비치고 싶어 뜻 깊은 올해의 정월대보름달은 그리도 크고 밝은 것이 아니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 높은 강선의 하늘가에 둥실 뜬 달도 이렇게 속삭이며 밝은 빛을 아낌없이 뿌리는 것만 같았다.
수필「강선의 밝은 달빛」결미 부분
두 편의 수필에서 보듯 문학의 형식이 달라졌고 국어와 언어 사용이 변질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적 역할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의 주류문학과 비주류문학의 특성을 파악하여 문학 작품을 통한 계도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통일문학의 길을 틔우기 위하여 나라밖의 한글문학 현황을 파악하고 한민족 문학의 통일을 모색하여야 한다.
또한 북한 출신의 작가 김억·김소월·이광수·주요한·김동환·양주동·노천명·김광균· 한흑구·유경환·구상·황금찬 등과 월북 작가 정지용, 북간도 출신 윤동주 등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산문으로 재조명하여 계도용으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금강산, 백두산 같은 명소에 대한 기행수필을 비롯하여 테마별 퓨전형태의 수필을 통하여 언어와 사상적 계몽이 필요하다.
통일시대의 수필문학의 역할
통일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통사적(通史的)민족문학사의 재정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민족문학사는 대부분 시와 소설을 중심으로 정립이 되어왔다. 이제는 수필도 민족문학사에 포함하여 통일시대에 대비한 민족문학사를 총체적으로 재정비를 하여야 한다.
우리민족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민족분단의 비극을 경험하면서 민족 자주성의 회복과 통일된 근대국가의 수립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그에 걸맞게 문학을 비롯한 제반 문화운동에서도 민족적 과제와 근대문학의 수립문제가 첨예하게 인식되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양적인 국민문학 개념이 그다지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전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내포하는 문학의 독자적인 이념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민족문학의 개념은 한국 민족의 독자적인 문학 이념으로 제기·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민족문학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6· 25전쟁과 민족분단으로 황폐화되었던 한국문단은 4· 19혁명 이후 역사적 생명력을 회복해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노력이 1960년대 참여문학론, 민중문학론, 농민문학론, 시민문학론, 리얼리즘 문학론 등을 거쳐서 1970년대에 높은 수준의 문학이념으로서의 민족문학론으로 종합되었다. 백철·김병걸·구중서·임헌영·김용직·염무웅 등이 문제를 제기했고, 이어서 백낙청이 이를 체계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정립된 민족문학론을 기반으로 2000년대에 왕성하게 전개되는 수필문학을 포함한 통사적(通史的)민족문학사의 재정리를 추진하여야 한다. 아울러 수필인들은 국어와 언어의 통일성을 위한 계몽적 수필과 수필론을 쓰는 등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여야 한다.
장사현
o 경북 봉화 출생
o 시인, 수필가, 수필평론가
o 전국 주요문예지 신인상 심사위원
o 저서《수필문학의 이론과 창작기법》등
o 청하문학상 수상, 한국문인 수필문학상 수상
o 영남대학교 사회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강의
o 계간『영남문학』발행인
첫댓글 수필이 앞서가는 문학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를 이끌어가는 등불과 거울이 되는 공시성(共時性)이 있어야 한다는말 가슴에 담깁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