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시 : 2026년 4월 19일(제16주) 오전 11:00
장소 : 인천은혜교회당
본문 : 에스겔 1:1-3
제목 : 하늘 문이 열리는 성도
시편 78:23-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23 ...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삶에서 영적인 하늘 문이 열리기만 한다면 신령한 축복과 땅의 기름진 축복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늘 문은 열려있습니까? 하늘 문이 열린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영의 눈이 열린 것을 의미합니다(계 4:1). 요한 사도는 밧모 섬에서 하늘의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요한에게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은 그의 영적 눈이 열린 것으로써 그는 열린 하늘 문을 통하여 말세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9:11절 말씀에도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은 영적 세계를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영의 눈이 열린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는 어느 시대보다 영의 눈이 열리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요 3:3, 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는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엡 1:17-18).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옷 입어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보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늘 문이 열린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구원의 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0: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양의 문에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그러나 이 구원의 문은 한번 닫히면 아무리 두드려도 절대 열리는 법이 없는 문입니다(눅 13:25). 그러므로 우리는 문이 닫히기 전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그러므로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더욱 힘쓰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린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쌓을 곳이 없는 풍요의 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말 3:10). 하늘 문이 열리면 쌓을 곳이 없을 만큼 차고 넘치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만사가 형통하며 모든 일들이 마음에 원하는 소원대로 성취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늘 문이 열림으로 쌓을 곳이 없을 만큼 풍요한 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회개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사 59:2).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죄의 담과 벽을 허물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죄 사함을 얻는 회개의 문을 열기에 힘써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역사이며 은총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노력이 요구되는 신앙행위입니다. 자기의 죄를 인식하고 안타까워하면서 돌이키기를 힘쓸 때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주십니다(사 57:15). 그 때 비로소 회개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② 기도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마 7:7)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늘 문은 기도로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살전 5:17, 행 2:24, 골 4:12).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수단이며 방법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약 5:17). 하나님의 역사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눈물어린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지금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③ 감사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시편 100:4절을 보면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고 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그의 문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 문은 바로 구원의 문이요 하늘의 문입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자는 구원의 복을 받습니다(시 50:23). 이처럼 감사가 끊어지지 않는 성도에게는 하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하늘 문을 여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감사가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로 하늘 문을 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감사’ 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찬송한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베푸신 여러 가지 선물에 대한 인간편의 좋은 반응을 감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일을 당하던 어려운 일을 당하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범사, 즉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성도는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잘되는 일이든 안 되는 일이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간에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 3:8절을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열린 문의 복을 두었다고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하늘 문이 열리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문은 저절로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 속에서 회개의 문, 기도의 문, 감사의 문을 열 때 하늘 문은 열릴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복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나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위대한 분과 함께 하는 순간이 아닐까요?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힘이 없고 약해도 힘 있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십니다. 길을 잃어버릴 때 길을 알려주십니다. 알지 못할 때는 알게 해주십니다. 위험할 때는 막아주십니다. 어려울 때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어서 극복하게 해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서 믿음이 큰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부자는 손끝에 있고, 큰 부자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을 시작하는 1절을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1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때 하늘 문이 열리고 신령한 은혜가 에스겔 선지자에게 임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 말씀을 듣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3절 하반 절에 보면 “...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시고, 여호와의 권능을 부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들에게도 하늘 문이 열리고, 여호와의 권능이 우리들 위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에스겔 선지자처럼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 주시고 권능을 부어주실까요?
봉독한 말씀을 가지고 “하늘 문이 열리는 성도”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누구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실까요?
1. 사명자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첨단과학의 발달로 인공지능시대, 즉 AI시대라고 합니다. 인간의 기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입니다. 인공지능으로 화가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저자들보다 책을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의사들보다 병의 원인을 더 잘 찾고 치료한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공장에도 이제 근로자가 아니라 로봇이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바로 위기의 시대가 아닐까요?
위기의 원인은 다른 어떤 것보다 사명부재에 있습니다. ‘사명부재’란 ‘개인의 일과 삶의 방향과 장기적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 결정과 행동이 목적이 없이 흘러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사명부재로 이제 개인과 가정, 사회에 혼란이 오고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명, 자녀의 사명, 대통령의 사명, 공무원의 사명, 교사의 사명, 성도 각자의 사명이 있는데 이제는 AI가 다할 수 있게 되어갑니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도 교회만큼은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8절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무슨 일이든 사명 감당하고자 힘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명이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사명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을 때에 목적과 뜻이 없이 인간을 지으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분명히 있고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과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사명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붙잡아야 합니다. 마지막에는 사명을 위해 생을 불태우고 사명을 완수할 때 가장 복되고 성공한 인생,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오늘의 시대정신은 사명감을 가진 자를 필요로 합니다. 첫째, 믿음생활도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이 어떤 것이든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합니다. 목사면 목사의 사명을, 장로면 장로의 사명을, 집사면 집사의 사명을, 권사면 권사의 사명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헌신하면 모든 공동체는 역동적으로 창대할 것입니다. 어떤 시대라고 할지라도 사명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통해 아름답고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둘째, 사회생활도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합니다. 사명감을 가진 자는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환영 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회사를 일으키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셋째, 가정생활도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우리 가정을 세우기 원하십니다. 부모로서의 사명, 자녀로서의 사명을 갖고 살면 은혜로운 가정,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복된 가정이 될 것입니다.
비록 한 사람은 작고 부족하지만 철저하게 사명감을 가진 한 사람이 일을 하면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사명을 발견하고 사명을 감당할 때 모든 위기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목숨을 걸고 감당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이 땅을 변화시킬 것이고, 또한 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여 사명 감당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실까요? 사명 자에게 열어주십니다. 그러면 사명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사명자’는 성경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을 ‘보내심’으로 실천하며 공동체와 세상을 섬기는 사람을 뜻합니다. 사명자의 삶을 위로·헌신·겸손한 협력, 하나님과의 동행, 그리고 ‘사명’의 확신과 책임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자의 핵심 요소는 부르심과 보내심입니다. 부르심을 받았는데 보내심이 없으면 ‘허위’로 보며, 보내심이 없는 사역은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사명자는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사명자는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사명자와 공동체와의 관계는 위로·헌신·겸손한 협력으로 공동체를 섬기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태도가 강조됩니다. 사명자의 삶의 실천은 위로와 헌신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재산을 나누는 등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는 삶이 사명자의 예로 제시됩니다. 사명자에게는 겸손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모세의 대를 이어 가나안 정복 같은 큰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동역자를 찾는 자세가 강조됩니다.
사명자는 하나님 중심의 확신이 있습니다.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확신과 떳떳함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명자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보내심 없는 부르심입니다. 부르심만 있고 보내심이 없으면 ‘이단’ 또는 ‘삯꾼’처럼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일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본문 1절을 다시 보면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세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발 강가’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포로가 된 유다 백성들을 한곳에 모아 정착시킨 곳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사로잡힌 자 중에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사역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살 때에 하늘 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 세 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을 ‘사명자’ 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사명은 그 자체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사명’(mission)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이 임했다. 하나님의 뜻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그 사명자가 바로 ‘성령의 파견자, 하나님의 대사’ 라는 뜻입니다.
대통령이 대사를 각 나라로 보낼 때에 임명장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의식주와 모든 신변보호에 대한 것, 또 각 나라 대통령과 고관을 만날 수 있는 신임장까지 다 부여해줍니다. 자녀들의 교육까지 다 책임을 져줍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우리들을 이 시대의 사명자로 세우셨는데 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왜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겠습니까? 한 국가의 사명을 맡은 자에게도 반드시 국가에서 책임을 져줍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주실 것을 믿습니다. 건강에 대한 책임도 져주시고, 물질의 책임도 져주시고, 신변보호의 책임도 져주실 것입니다. 진정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일에 대해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영광도 받으시고, 한없는 은혜를 부어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사명을 가진 사람의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은 ① 어떤 일에도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후서 4:1에 보면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낙심을 잘하는 사람은 사명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일에도 낙심하지 않고 그 사명에 대해서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면 끝까지 지속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큰일을 맡을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② 감사한 마음으로 임해야 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 1:12에서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직분을 맡게 됨을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는 정말 그 직분이 더 빛나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인생을 바꾸고 생명을 바꿉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더욱 좋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일에 땀 흘리고 수고할 때 더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남보다 더 큰 일을 많이 할 때 더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일에도 수고의 대가가 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더 큰 하나님의 상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일하는 자는 감사한 마음이 넘쳐야 합니다.
③ 반드시 끝까지 맡은 직분을 이루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4:17에 보면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누구라도 주님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하다가 힘들다고 끝맺음도 없이 포기합니다. 결과도 없이 흐지부지합니다. 자기 일에 권태를 느껴서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낙심이 되어서 중도에 포기하도 합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아니라 두려움이 될 것입니다.
성도는 끝까지 맡은 사명에 충성해야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상급을 예비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건전한 믿음이라면 하나님의 일이 기뻐지고, 하나님의 일이 기다려집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하나님 앞에 자원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일에 대해서 주인정신을 갖습니다. 긍지를 갖게 되고,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열의가 있게 됩니다. 열심을 품고 교회에 다니고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열심이 식어지고 나중에는 주님도 멀어지고 교회도 멀어지게 됩니다. 다시 한 번 하늘 문이 열리는 사명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늘 문이 열리는 사람 두 번째는,
2.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실까요? 첫 번째는 사명자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기도하는 중에 신령한 영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게 하니 살아 일어나서 큰 군대가 되는 환상이었습니다. 또 에스겔 47장에 보면 기도하다가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이 사해 골짜기의 황무지를 기름진 땅으로 변화시키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기도하는 사명 자에게 신령한 문을 열어 주십니다. 신령한 영안이 열리게 하십니다. 신령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신령한 마음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참여하게 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받은 사명을 가지고 ① 기도할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3:3절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더 큰 비밀한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보여줌을 받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기도할 때 환난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이 세상은 어느 곳에든지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환난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환난이 있어도 성도는 이길 수 있습니다. 시편 50:15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어떤 환난을 만나도 그 환난 자체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보호자시요 응답자이십니다. 혹 건강의 환난, 물질의 환난, 관계의 환난 때문에 힘드신가요? 환난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잘 아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33절에서 제자들에게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환난을 당하면 쪼그라듭니다.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환난을 당해도 담대할 수 있을까요? 그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환난 날에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기도하면 불같은 환난이 와도, 어떤 시험이 와도, 하나님의 건져 주심을 받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을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11:13에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받기 원하시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바로 인도하고, 영적세계를 지배한 사람은 다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의 공통점은 다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임하였습니다. 성도가 마음을 합하여 주님께 기도하고, 마음을 합해서 주님을 잘 섬기게 되면 주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서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리빙스톤은 철야기도 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스펄젼은 무릎을 꿇고 땀방울이 나오기까지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던컨 제임스는 하루에 13시간씩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챨스 피니 는 시간만 있으면 숲속에 들어가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산 속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체험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을 받고 나니까 말에도 권세가 나타나고, 손과 발에도 권세가 나타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늘의 불이 떨어 졌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 만나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성도에게 가장 큰 일을 맡겨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기도를 기뻐하시면 기도하는 자에게 가장 큰 성령을 선물로 주실까요?
우리들 중에 아직도 기도의 무릎이 뻣뻣하거나, 기도의 입이 뻣뻣하거나, 기도 의 혀가 아직도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기도의 은사를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는 말을 잘 엮어나간다고 그것이 응답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받으시기 때문에 차라리 기도가 안 나오면 억지로 인위적으로 사람의 귀를 의식해서 하지 말고 ‘주여’ 하고 주님만 불러도 하나님이 응답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여’ 하고 부르는 한마디 속에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이고, 하늘 문이 열려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주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부를 때마다 응답해주 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습니다. 기도로 하늘 문을 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대언자
‘대언자’는 말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대언자는 ‘타인을 대신해 변호하거나 뜻을 대신 전하는 자’라는 뜻으로, 성경에서는 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신해 말씀을 전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는 역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대언자 즉, 선지자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라는 선언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것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와 같은 선언으로 그 출처를 분명히 합니다. 이때 선포의 핵심은 ‘자기 말을 섞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자세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거짓 대언자와 참 대언자에는 구분이 있습니다. 거짓 대언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임의로 말하거나 다른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그 대언의 말이 성취되지 않으면 ‘방자히’ 한 말로 판단하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거짓 대언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더라도 불법을 없애지 않는 등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여된 상태로 묘사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대언(예언)한 주요 인물은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나단,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미가, 나훔, 하박국, 스가랴, 말라기 등 구약의 선지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성경의 중심이 되며, 바울 사도가 이 신약성경의 절반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가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첫째가 사명자였습니다. 둘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에스겔 3:17절에 보면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주시고 그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이제 주님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복음의 나팔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 입을 통해서 가장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말이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예수님은 당신의 구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보호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치료자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외칠 때 그 말씀에 책임져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옥중에서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길고 아름다운 말, 그리고 어려운 미사여구를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한 마디 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한 마디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자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내 본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업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때와 장소가 관계가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4:2절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는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지 찾아갈 수가 있고, 누구에게든지 외칠 수가 있고,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을 나타내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든지 우리와 동행해주시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0:19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코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너희’라는 말은 제자들로 전도자를 가리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주는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뱀과 전갈을 밟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원수 마귀를 정복할 수 있는 주님의 능력을 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대언하는 성도로 하늘 문이 열리는 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하늘 문이 열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늘 문이 열린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하늘 문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떤 일에도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끝까지 맡은 직분에 충성하기를 바랍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같이 부름 받은 자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