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세(49세) 사신(士信?-?)
수성제공의 셋째아드님. 벼슬은 정략장군 용매 만호(定略將軍 容媒萬戶)[1]를 지내고 훈련원 판사(訓練院 判事)[2]를 역임하셨다. 묘는 의령군 칠곡면 초연촌(草延村)으로 자굴산 남쪽에 위치해있다.
배(配)는 공인(恭人) 벽진 이씨로 진사를 지낸 이수남(李水南)의 따님이며, 외아들인 서휘(瑞輝)와 네 딸이 있다. 큰따님(1553-?)은 판사를 지낸 김해, 김우추(金遇秋)에게[3]. 둘째 따님은 진사를 지낸 창령, 성여신(浮査 成汝信)[4]에게 셋째 따님은 합천 군수를 지낸 재령, 이숙(李潚)[5]에게 막내 따님은 현감을 지낸 진양, 강덕룡(姜德龍)[6]에게 각 각 시집을 갔다.
●만호(萬戶)공의 형제
☆ 사충(士忠?-?)
수성제 병사공의 큰아드님. 음직(蔭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숙부인은 함종어씨(咸從魚氏)이다. 서린(瑞麟) 서구(瑞龜1546-1623)) 서붕(瑞鵬) 세 아드님과 정율(鄭嵂)에게 시집간 딸이 있다.
☆ 사침(士忱?-?)
수성제 병사공의 둘째 아드님. 내금위(內禁衛)를 지냄. 배는 분성배씨(盆城裵氏)이다. 서상(瑞祥)과 수근(守根) 두 아드님이 있다.
[관련 주]
[1]▶정략장군 용매만호(政略將軍 容媒萬戶)
정략장군은 서반직(西班職) 종4품의 품계. 만호(萬戶)는 조선조의 각 도의 여러 진(鎭)에 붙은 무관 벼슬의 하나. 용매는 지금 경기도 한강과 임진강이 서해로 유입되는 황해도 해주 근역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용매 갈곶이 있으며 수군이 주둔하였다.
[2]▶훈련원 판사(訓練院 判事)
조선조 때 군사의 시재(試材), 무예의 연습, 병서의 교육과 전진(戰陣)의 훈련 등을 맡은 기관의 종4품의 벼슬
[3]▶김우추(金遇秋)
후손이 현재 창원시 곡목(曲木 주남저수지 근처)에 많이 살고 있으며 박씨 할머니의 출생 연대가 1553년으로 김해 김씨 족보에 기록되어있다.
[4]▶성여신(成汝信1546 - 1632))
호는 부사(浮査). 본관은 창령. 배위는 밀양 박씨 사신(士信)의 따님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구암(龜巖) 이정(李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敬)과 효제(孝弟) 충신(忠臣)의 도를 알고 행하였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향촌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향약을 펴서 주민을 교화하는데 전력하였다. 진양지(晉陽誌)를 편찬하였으며 문집으로 부사집(浮査集)이 간행되어 세상에 전해온다.
부사집(浮査集)에 보면 “부옹 박공 제문(婦翁 朴公 祭文)”이 실려있다. 부사 成汝信은 나의 14대조 諱 士信의 둘째 사위였으므로 浮査가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뒤에 장인의 무덤을 찾아 제문을 지어 올린 것으로 사료된다.
부사집에는 손아래 동서인 장기 현감(長鬐縣監)을 지낸 강덕룡이 임진왜란 당시에 세웠던 무훈담(武勳談)과 행장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편린(片鱗)을 엿볼 수 있다.
[5]▶이숙(李潚1550-1615)
호는 갈촌(渴村) 본관은 재령. 배위는 밀양박씨 사신의 따님이다. 증 병조참판 경성(景成)과 여주이씨에게 태어났으며 모촌(茅村) 이정(李瀞)의 셋째동생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576년 무과에 급제하여 제포만호(薺浦萬戶 현 울산) 합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초에 군자감 판관으로 재직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함안 산인에 봉명정(鳳鳴亭)을 짓고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임난에 군공이 있으며 선무공신으로 함안 도계서원(道溪書院)에 제향 되었다. 갈촌집이 있다.
[6]▶강덕룡(姜德龍 1560 -1627)
자는 여중(汝中). 본관은 진양이다.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참의로 증직된 강심(姜深)이다. 어머니는 단양 우씨로 우탁(禹卓)의 후손이며 배는 밀양 박씨 휘 사신의 따님이다. 스물세 살에 무과에 급제하여 장기현감(경북 迎日郡 長鬐)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에 뛰어난 용력(勇力)으로 많은 무공을 세워 선무공신(宣武功臣)이 되었다.
[관련문헌]
☆▼判事公 士信 遺蹟
祭 婦翁文
成 浮査 汝信 進士 遊 曺南冥 李龜巖門
惟靈 系出 羅初 三性之一身 顯明時 萬戶之秩 凝盆右族 宜鳳巨室 貌 古心古器德 種德 無狀一身 忝行六禮舘我好我許以 晩契 築室居我墻連屋接 拔貧 饒我左 餰右粥 寄我之才 望以揚立 隣我之屈 繼以嗟惜 吉凶 喜得 喪欣慽罔 不與 同無違 無拂 龍蛇亂 離鴻雁中 澤間 關山 阪風 露霜雪靡室靡家 載飢載渴 相隨相友 如手如足 分離姻親情 同顧復光陰幾何 朝露己개 泉路茫茫 九原難作 細想儀形 風嘷松柏 何幸 垂老名 叅蓮籍靈如有知曷 勝欣躍 知耶 否耶 關塞月黑 闍山南畔 有安宅 一盃來奠 雙淚自零 幽明 無間 庶歆 斯馨
餰 죽전 茫아득할망
▶부옹 박공 제문(婦翁 朴公 祭文)
부사 성여신(浮査 成汝信)
신령스러운 조상에 나니 신라 초기 세 성씨 가운데 하나요, 몸을 나타내어 때를 밝히니, 만호(萬戶)의 봉록(俸祿)이라. 응분(凝盆)의 큰 문벌이요 의령(宜寧)의 큰 집안이라. 얼굴도 옛사람이요, 마음도 옛사람이라. 기량도 덕있고 혈통도 덕있었네. 보잘 것 없는 내가 욕되게 혼례를 치르니, 나를 사위 삼아 나를 좋아하시며 만계(晩契)로써 여허(與許) 하셨다. 집을 지어 나를 살게 하시니 담장이 연이었고 집이 붙어 있게 하시며, 가난을 뿌리 뽑아 나를 풍요롭게 하시고, 좌우에서 조석을 보살펴 주시었다. 나의 재주를 기이하게 여기시어, 입신양명하길 바라셨고, 나의 낙망함을 가련히 여기시어 애석한 탄식을 이어셨다.
길사, 흉사, 근심, 기쁨, 얻고 잃음, 기쁨, 슬픔에 더불어 같이 아니한 것이 없었으며, 어기거나 거스럼이 없었다. 임진란에 곤란을 당하니 산 속에서 바람, 이슬, 서리, 눈 등을 맞으며, 집이 없어 주리고 목마름에도 서로 따르고 서로 우애하며 손 같고 발 같았다. 비록 혼인 친척은 다르지만 정은 부모와 같았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느뇨? 아침 이슬 같은 인생 마치길 문득 하시네. 황천길 망망하고, 구천에 가면 오기 어렵도다. 평소의 위의(威儀)와 형용(形容)을 자세히 생각하노니, 송백(松栢)에 바람만 부옵니다. 늙음이 드리운 때에 이름이 진사과에 오르게 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영혼께서 만약 아신다면 어찌 기뻐서 뜀을 이기겠습니까? 아시옵니까? 모르시옵니까? 북녘의 달은 검었습니다.
자굴산 남반에 편한 유택 있으시니 한잔 술을 와서 드리오니 두 줄기 눈물 절로 떨어집니다. 저승, 이승을 사이하지 마시고 바라옵건대 이 향기로운 제수 등을 흠향하시옵소서.(부사집에 있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