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팀목과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
- 의정부영락교회 고영표 장로
국어사전은 버팀목을 ‘물건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 세우는 나무’ 또는 ‘외부의 힘이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견딜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근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유럽 사회는 천민과 상류층의 벽이 무너졌다. 상업과 금융업을 이용해 기하급수적은 자본을 축적한 유대인들을 지켜 본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 Wever)는 유대인들이 자본주의에 힘입어 종교 또는 사회의 특이적인 지위는 상승했으나 그들의 천민자본주의가 자본주의 문화를 후퇴시켰다고 주장했다.
이후 천민자본주의는 건전한 자본주의 문화가 아닌 탐욕과 이기심으로, 공정한 자유경쟁 및 경제혁신을 뒤로 하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문화를 만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현상이나 그러한 제도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 등과 같은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질서와 조화를 보장해주는 인간의 성품은 어떤 것일까?
18세기 영국에서는 이 화두에 접근하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인간의 이성에서 사회질서의 원리를 찾는 흐름과 인간의 선천적인 도덕 감정에 주목하는 흐름 등이다. 국부론의 자자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도덕 감정의 핵심을 인간이 갖고 있는 동감(同感) 능력으로 보았다. 동감(同感)이란 관찰자가 상상에 의한 역지사지를 통해 행위자와 감정의 일치를 이루는 상태라고 아담 스미스는 주장했다.
그는 인간에게는 이기적 충동에 지배되는 행위자로서의 자기와 상상에 의해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며 반성하는 자기가 있다. 관찰자로서의 자기는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 감정과 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또 다른 자기이다. 스미스는 이러한 추상적 존재를 '가상의 공평한 관찰자' 혹은 '마음속의 이상적 인간'이라 표현하였다. 자신의 감정과 행위는 이와 같은 관찰자의 동감에 의해 도덕적인 것으로 승인받게 된다.
그는 이러한 공감(共感)의 원리를 통해 자기의 행동이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느냐 여부와, 자기를 타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기 행동을 시인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사회적인 행위의 규준이 된다고 주장했다. 도덕 감정론은 성숙한 자본주의 문화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으로 발전했다. 이기적인 개인이나 개별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합리적으로 경제 활동을 수행하고, 정부는 외적의 방어, 사회 질서의 유지, 공공시설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일 등의 자유방임 정책을 수행하면 경제는 가격의 자동 조절 기능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한다며 그는 국부론(國富論)에서 주장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는,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행위. 그러나 천민자본주의로 인한 개인주의가 극대화 되면서 공동체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유익이 우선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버팀목 세대의 앞날은 암울하다. 가계 경제의 주된 수입원으로 부모와 자식을 모두 부양해야 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였으나 정작 본인을 위한 노후준비는 소홀한 상태에서 은퇴시기를 맞는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버팀목이 없다.
협력하여 선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협력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시대로 시대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성경은 협력하여 선(善)을 이룬다고 말한다. 같은 목적을 향하여 협력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는 것을 즐거워한다. 자원하여 스스로 버팀목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는 이기적인 사회가 아닌 이타적인 사회이다.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며 선(善)한 행위가 선순환 되는 사회를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도덕감정론>에서 주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