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가비와 담배
화폐는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화폐가 발달하는 데는 기술적인 돌파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순수한 정신적 혁명이었다. 여기에 얽혀 있는 것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새로운 상호 주관적 실체였다.
화폐는 주화와 지폐가 아니다.
화폐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사람들이 기꺼이 사용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 목적은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는 데 있다.
돈이 있으면 각기 다른 물품(사과, 신발, 이혼)의 가치를 쉽고 빠르게 비교할 수 있고,
하나를 다른 것과 쉽게 교환할 수 있으며,
가장 친숙한 것이 주화, 즉 무언가가 새겨진 표준화된 금속 조각이다.
하지만 주화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화폐는 사용되엇다.
금속이 아닌 다른 물건을 사용해서 번영한 문화는 많았다.
조가비, 가축, 가죽, 소금, 곡식, 구슬, 천, 약속어음...,.,별보배고등 겁데기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전역에서 약 4천 년간 화폐로 쓰였다.
20세기 초 영국령 우간다에서는 별보배고등 껍데기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도 가능했다.
▲ 고대 중국문자에서 별보배고동 껍데기 기호(조개 패貝)는 돈을 나타낸다.
'팔다' '상' 같은 단어에서 그렇게 쓰였다 .(위 그림 중 괄호 안의 한자는 옮긴이가 추정한 후대의 한자이다.
현대의 교도소나 전쟁포로 수용소에서는 담배가 돈의 역할을 한적이 종종 있었다.
심지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수인들도 담배를 지불수단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다른 모든 재하와 용역의 가치를 담배로 계산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한 사람은 수용소에서 사용된 담배 화폐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화폐가 있었고 누구도 그 가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담배엿다. 모든 물품의 가격은 담배로 제시되었다
.'평상'시, 그러니까 가스실에 입장할 후보들이 정기적으로 계속 들어오는 기간에는
빵 한 덩이는 담배 열두 개비 값이었다.
3백 그램짜리 마가린 덩어리는 30개비, 시계는 80~2백 개비, 알코올 1리터는 4백 개비였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주와와 지폐(은행권)는 화폐의 유형으로서는 드문 것이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액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이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돈의 90퍼센트 이상,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푸터 사이버에만 존재한다.
그에 따라 대부분의 상거래는 하나의 컴푸터 파일에 들어 있는 전자 데이터를 다른 파일로 옮기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실제로 돈을 주고 받지는 않는다.
가령 집을 살 때 가방에 가득 찬 지폐로 지불하는 것은 범죄자밖에 없다.
사람들이 전자 데이터를 받는 대가로 재화와 용역을 기꺼이 거래하려 하는 한,
그것은 바짝이는 주화나 빳빳한 지폐보다 낫다.
더 가볍고 부피가 더 작고 기록하기도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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