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 백일의 시간을 품은 나무
여름이면 유난히 마음이 끌리는 나무가 있다. 백 일 동안 피고 진다는 예쁜 분홍빛 배롱나무다.
대부분 오래된 산사 대웅전이나 서원의 좌우에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침묵하던 배롱나무는, 여름이 되면 그 화려한 입술을 열기 시작한다. 곡선으로 온몸을 휘감고 좌우로 뻗어 나가는 형상 속에서도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다. 천천히 한 장의 꽃잎을 열어가는 모습은 그윽하면서도 깊고, 또 화려하다.
이맘때 고창 선운사에 가면 어김없이 대웅전 앞에서 수문장을 자처하는 배롱나무를 보게 되는데, 나는 꽃보다 먼저 수형(樹形)을 바라본다. 세월이 새겨 놓아 껍질이 벗겨져 가는 무늬는, 마치 누군가 내 다리에도 지도를 그리고 있는 듯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선운사까지 갈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려 이른 아침 논산 명재고택으로 향했다. 그런데 뜻밖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각임에도 농촌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차들로 가득했고, 배롱나무는 막 무대에 오른 오페라의 여주인공처럼 분홍빛 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 명재고택과 노성향교가 나란히 자리한 풍경은 정중동(靜中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고즈넉한 한옥과 향교의 고요함 위로 배롱나무는 화려한 색을 더했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누르는 소리가 추임새처럼 이어졌다. 단아한 원피스 차림에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인들과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저마다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느라 분주했다.
명재고택 배롱나무의 아름다움은 때맞춰 피어오르는 백련과 근사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그 뒤편에서 말없이 연못을 지키는 수련은 한 걸음 물러나 풍경을 완성하는 조연이었다. 하얀 연꽃과 수련, 그리고 사이사이로 미소를 던지는 분홍빛 배롱나무 꽃잎이 어우러진 여름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잘 닦인 장독대와 오래된 향교, 푸른 하늘과 흰 구름까지 더해지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연산의 돈암 서원이었다. 예학의 대가 김장생 선생이 후학을 길러낸 곳이다. 정찬주 작가의 『다인 기행』을 통해 알게 된 김장생의 차(茶) 사랑을 확인해 볼 겸 찾아갔다. 비록 차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찾지 못했지만, 예를 배우고 사람을 기르는 공간에는 차의 정신 또한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으리라
돈암서원의 배롱나무는 오래된 가지가 땅에 닿지 않도록 든든한 철 기둥 받침에 의지하고 있다. 아래에는 먼저 떨어진 꽃잎들이 모여 분홍빛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꽃 한 장은 작고 가벼웠지만, 수없이 쌓인 꽃잎은 하나의 감동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 작은 것들을 모으고 안아서 커다란 아름다움을 이루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자유로운 도서관이었을까. 사방으로 활짝 열린 문과 책상, 의자, 그리고 여러 가지 책이 꽂힌 서가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빼내어, 여름 매미 소리를 배경 삼아 배롱나무를 앞에 두고 글을 읽는 사람을 상상해 본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그 둘을 이어 주는 책. 이 셋은 서로 균형을 이루며 하나의 삶을 만들어 간다. 선조들이 공부하는 공간을 자연 속에 두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공부가 일상이 되고, 일상이 곧 배움이 되는 삶. 그것이 오늘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탑정호 가까이 자리한 충곡서원이었다. 마을 어귀부터 길게 늘어선 배롱나무가 찾아온 손님을 먼저 맞아 주었다. 서원의 문을 하나씩 열 때마다 또 다른 배롱나무가 모습을 드러냈고, 한낮의 햇살 아래 분홍빛 꽃과 푸른 하늘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눈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에 담기 위해 분주했다. 부부와 연인, 사진가들이 서로 자리를 양보하며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나무 그늘에 섰다. 조금 떨어져 바라보니 오히려 더 깊은 풍경이 보였다. 아름다움은 가까이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전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의 여행은 순례를 닮아 간다.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낯익은 얼굴을 다시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서 계절과 풍경에 이끌린 사람들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다시 만난 그들은 배롱나무만큼이나 반갑고 정겨웠다.
배롱나무는 그저 백 일 동안 꽃을 피우는 나무가 아니라. 피고 지기를 거듭하며 한 계절을 완성하는 나무였다. 나 또한 세 곳의 서원을 걸으며 단심의 꽃을 본 것이 아니라, 한 계절이 익어가는 시간을 천천히 걸어 나온 것이었다.
유난히도 뜨거워지고 있는 우리의 여름이 분홍빛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2026. 7. 27. 송 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