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요르단에 갔을 때는 의욕이 넘쳤던 것 같습니다.
복사해 보관하던 선교편지를 다시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점차 잊혀지는 추억들을 글로 남기면, 의식이 있는 동안 회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나더 또드락거려 봅니다.
ㅡ觀ㅡ
(암만 6써클 근처 움다이나의 집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약 2미터 높이에 족히 20미터 길이가 되는 삭막한 울타리가 눈쌀을 찌푸리게 합니다.
가뜩이나 메마른 나라에서 앞을 막고있는 시멘트 벽이 숨막히게 합니다.
수돗물이 꼭 일주일에 한번씩 공급되는데, 물이 귀해서 화초를 가꾸는 일은 대단한 공력과 투자가 필요 합니다.
그래서 집 주변을 새파랗게 꾸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벼르고 별러서 수성페인트를 사다가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4가구가 살고있는 연립주택인데 어린아이들이 5명이나 있기 때문에 신데렐라, 위더너푸, 포켓몬, 정글북 등 만화의 주인공들이 담벼락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랫쪽으로는 바다 속 풍경이 펼쳐집니다.
매일 섭씨 30도를 웃도는 여름 날씨에 바닷속 풍경은 아주 그럴듯 합니다.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조개가 하품을 하고, 해초가 너울거리고, 문어가 손짓 발짓을 하며 깔깔거립니다.
솜씨는 없지만, 아이들과 더불어 보는 이의 눈이 즐겁도록 채색을 넣어서 붓을 움직여보는 것입니다.
옆집에 하리수(심부름 하는 집사)로 있는 아부 왈리드가 가끔 찾아와서 그림의 진척 상황을 점검(?)합니다.
하루는 벽화를 보고 "굳, 베리굳!" 하며 찬탄을 합니다.
그래서 영어를 잘 하느냐고 물었더니, 어깨를 추스르며 두손을 위로 활짝 펴 보입니다.
아부 왈리드는 영어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국어는 두말할 것도 없지요.
그는 아랍어도 제대로 쓸 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랍어를 꽤 잘합니다. 왜냐고요? 물론 아랍인이기 때문이지요.
이집트를 아랍어로 '미스르 혹은 마시르'라고 일러 줍니다. 자기 나라는 마시르 라는 겁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태어난 베두인(Bedouin)입니다.
마깔루베(아랍 음식의 하나)를 만들어 오거나 차를 끓여오는 둥 대접을 잘 합니다.
우리에게만 아니라 지나가는 환경미화원도 잘 대해줍니다.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베두인들의 오랜 전통이며 습관인 듯 합니다. 아주 몸에 배어 있습니다.
창18:2~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베두인은 아랍어로 유목민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했는데, 아랍 베두인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 베두인들의 삶의 특징은 가동성(可動性) 혹은 기동성(機動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막 생활을 하던 성경의 족장들 모습을 그려보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그들은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함으로 단순하게 살아야 했고, 현대의 도회풍(都會風) 생활처럼 물건을 사 모은다거나 치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물질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유목민 적인 삶은 거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연의 환경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협동과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삶의 기본전인 필요는 상호간 이해에 따라 서로서로 자유롭게 분담하고 보완했습니다.
중동의 베두인은 낙천적인(easy going)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인샬라(=하나님의 뜻이라면)" 라는 인삿말이 생겼을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아주 빈번하게 들을 수 있는 인삿말입니다.
베두인들은 정착민들이 아니기에 교육을 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지금도 싯딤 골짜기나 시내산 순례를 할 때에, 혹은 이스라엘이나 요르단 광야에서 베두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어린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합니다.
아부 왈리드도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부 왈리드는 나에게 아랍어를 가르치려고 정성을 다합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인간적인 유대가 이루어졌다는 증거이거나 베두인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집앞을 지나가는 차도 옆에 앉아서 손가락질을 하며 아랍어로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색깔을 분별해 주거나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이름들을 일러줍니다.
그가 적어준 몇 마디의 기록을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는데 정말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체입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나의 아랍어 실력으로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습니다.
아랍어의 첫 인상이 뱀이 기어가거나 어떤 추상화가의 작품과도 같은데다가 자기식으로 표현을 하다보니 자기만 제일 잘 알아볼 수 있는 글씨를 적어준 것입니다.
하루는 책 한권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아랍어 대역 영어성경이었지요. 내가 크리스천인 것을 알고 나에게 선물로 들고온 성경! 자기는 글을 모르니 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 이 기묘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부 왈리드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아랍권에서 살고자하는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명제가 되었습니다.
외국어를 말 하거나 특히 그 외국어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좀 틀려도 괜찮은 벽화를 그리듯이 그렇게 쉽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분발(奮發)해야겠습니다! ㅡ觀ㅡ
덧글: 아부 왈리드는 담석증의 고통으로 괴로워 하다가 얼마 후에 이집트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 벽화 그리기를 싯점으로 요르단에서 자칭 혹은 타칭으로 문화선교사라며 여기저기 벽화를 그리며 살다가 돌아왔다. ㅡ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