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년 육군 재직 시절의 남편
1972/10/07(토) 10월 유신이 발표된지 얼마 지나지않아 우리 둘은 결혼을 했다.

왼쪽 위의 쪽지는 그 당시 영남일보에 실린 청첩

신부 대기실에서 성당으로~~~


폐백실에서

신혼여행지인 유성 온천장 앞에서
나는 남구청에서, 남편은 울진면사무소도 아닌
울진군 울진면 죽변리(現 울진군 죽변읍) 출장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죽변리 출장소 앞에서
신혼임에도 그놈의 10월 유신 땜에 말단 공무원들은 너무 바빠서 집에도 못 갔었고,
결혼한지 한달이 되도록 남편은 대구에 나를 보러 오지 못 했다.
그래서 11월 첫 토요일, 퇴근 시간에 맞추어서
울엄마가 신혼여행 때 들고 갔던 여행 가방(그때 캐리어는 택도 없었고)을
남구청으로 갖고 오셨기에 오후2시에 출발하는 울진가는 막차를 겨우 탈 수 있었다.
울진에서 내려 죽변가는 버스를 바꿔타고 8시간 만에 죽변리 버스 정류소에 도착하니,
남편은 나를 기다리다 지쳐 동료 직원과 나눈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무척 성이 났었고, 허름한 식당에서 지금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 메뉴의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는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파도소리만 철썩이는
죽변 방파제로 나를 데려갔다.
신혼 여행 때 입었던 미니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비포장도로를 8시간 남짓 달려온,
피곤에 쩔은 나에겐 그 멋진 풍광도 다 꽝~!
밤바닷바람이 너무나 차가왔고, 울퉁불퉁한 돌길 위를
내 손을 꼭 잡고 비틀거리면서 화난 나를 달래주기 위해서 그가 불러 준 노래!
"사랑해~ 사~랑해요~~
당신을~ 당~신만을~~
이 생명 다 바쳐서~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토록 당신만을 사~랑~해~~
가지 마오~ 가지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미스터 트롯"에서 찬원이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내 눈 앞에는 그날 밤 죽변 방파제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또 찬원이가 부른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18세 순이",
영웅이의 "배신자" 등도 보소의 18번곡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여러 채널에서 몇차례나 재방송되는 미스터 트롯에 푹~ 빠졌는지도.......
같은 해 봄에 우리 시숙이 결혼했기에 한해에 두번 신행하는 법은 없다고 해서
울진 시댁에는 갈 엄두도 못 냈었고,
그날밤 호텔도 아닌(그 시절 울진엔 호텔도 없었지만) 지금의 여인숙보다 못한 곳에서
밤을 보냈고, 그날 밤에 우린 큰딸을 만들었다.ㅋㅋ
그 덕분에 큰딸의 출산 예정일은 정확하게 계산 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시댁에는 못 들어가도 어머님께 인사도 드려야겠고,
또 어머님께서 대구에 보내실게 있으시다고
나를 울진 정류소에서 기다리라하고는 남편은 어머님을 모시러 본가로 뛰어 갔다.
잠시 후 헐떡이면서 달려와서는 어머님께서 집에 안 계신다고 투덜거리더니,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계신 분을 보고는 "어무이예~!" 하는게 아닌가?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고, 양가에 우리 사귀는거 알리고 두어달만에 결혼하느라
결혼전 한번 뵙고, 결혼식 때 뵈었는게 다였으니 고부 간에 못 알아보는 불상사가....
옆에 있던 떡장사 아줌마가 하는 말!
"저 새댁이 며느린교? 아까부터 두 사람 같이 있더구먼!"ㅎㅎ
그러느라고 남편 오면 가방 맡기고 화장실 가려다가 화장실도 못 간 채
대구가는 막차를 타 버렸다.
참다 참다가 겨우 어느 정류소 옆집 변소에 급히 들어 갔는데,
나오려고 하니 변소 문 앞에서 커다란 개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버스에선 빨리 오라고 빵빵 거리지, 개는 날뛰면서 짖고 있지....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눈을 질끈 감고 펄쩍 뛰어나와 버스로 정신없이 달려 갔다.
그 결과 다음날 부터 며칠 동안 나는 방광염으로 고생했고,
과로하면 몇 차례나 재발하곤 했었다.

1989/07/28(금)~30(일) M.E 60차 교육 때 나눈 남편의 편지 일부
남편 세상 떠난 후에 다시 읽어 봤더니
바로 이것이 남편이 남긴 유언장이었다.

2008년 8월 고교 동기회 카페 행사에서 끄적거렸던 詩

범물성당 신자 형님께서 빈소에 연도 오시면서 써 오신 詩
10주기를 지내고 유교식 제사를 없애면서,
10년 동안 해마다 빠짐없이 직원들을 대동하고 남편 추모미사에 참례해 주신
청운신협 이사장님께도 "이젠 제발 그 사람을 잊어 주십사"고 당부 드렸다.
며칠전 "이사장님 기일을 모른척 하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찜찜해서
산소에 가서 절이라도 올려야 마음 편하겠으니 같이 가실 수 있으시냐?"
고 전화가 왔길래 그 당시 지산지점장을 맡았던 여직원과 함께
비가 곧 쏟아질 것만 같은 잔뜩 찌푸린 날씨인 기일 전날 다녀 왔다
코끝이 아리도록 추웠고, 때 아닌 눈발이 뿌리던 2014년 봄,
現 이사장 취임식날 아침에도 전무님과 나와 함께 보소 산소에 가서 절을 올리더니....
"이능우 이사장님은 제 인생에 영원한 멘토랍니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現 청운신협 김상수 이사장님!
남편 먼저 떠나보낸 다른 친구들은 남편 얘기를 잘 안 하는데
나는 왜 모든 얘기가 "기, 승, 전, 남편" 으로 가는걸까?ㅎㅎ
남편 얘기는 그만 하자고 수없이 다짐해 왔었는데....
이제는 남편 얘기를 정말 그만 해야겠제?

2013/07/20(토) 청운신협 강당에서 열린 보소 5주기 추모 미사
(보소 신협 근무 時 신협 근처 복자성당 주임신부님이셨던 김정한미카엘 신부님 집전)


추모 영상


2018년 조카들과 함께 추석 성묘 때

청운신협 이사장실에 걸려있는 역대 이사장님 모습

산소 상석 밑에 둔 방명록과 유품들

아직도 못 없애버린 남편 유품들
첫댓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나도 1972년도 5월9일에 결혼했습니다.
나와 비숫한 시기에 결혼했지만 ,,,,,,,
슬픈 사연입니다. 자녀들 생각하시며 힘 내십시요.
나도 73년생 딸과 75년, 77년 아들이 이제는 아이들 애미,애비가 되었고
나는 할배가 되었네요. 세월 참 빠르네요.
아름답고 슬픈 사랑. 마음에 늘 품고 계시니 함께 늙어가는 거얘요.
79년도 부터 울진까지 고속도로 생긴 걸로 압니다만....그곳과 저도 인연 있어요. 죽변 바닷가,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회관도 가고.ㅎ.ㅎ.망양정에 가끔 갔고...지금은 엄청 발전했답니다. 결혼 사진 보니 미남미녀네요. 천상남자 천상여자이셨네요.
그곳 참 좋죠?
이 사람 역시 울진 예찬론자!ㅎㅎ
1972년 봄에 약혼 사진삼아 억지로 사진관에 델꼬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자칭 신성일!ㅋㅋ
언니 완전 애부가 네요 낭군님사랑이 넘쳐 흐릅니다 예쁜추억 영원히 함께하세요
쑥스럽구먼!ㅎㅎ
가슴이 아립니다
날씨조차 장마철이라서...
12년이라면 제법 시간이 흘렸는데
이렇게 애절한 맘...
남편분은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다소곳한 혜란님 모습속에 이런 애뜻한 사연이 있었네요
지난번에 공연으로 친정아버님의 우리나라 최초 희곡작품도 감상했구요
청운신협은 저도 오래전부터 애용하고 있습니다
박 재년지점장과는 삼십년 넘게 모임도 하고 있습니다
멋진 추억을 영원히 소중히 간직하십시요!
가곡 첫사랑 들어야 겠네요
다음주 영어시간에 ...
바쁘신 중에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쓸데없는 추억에 매달려서 허송 세월?ㅎㅎ
담 영어시간에는 제가 결석하는데...
8월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