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란 도시는 여름 한때가 너무 더웠다. 그 당시 내가 다니는 직장은 서울의 중심부에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은 옥상이어서 여름이면 더욱 더웠다. 거기다 출퇴근 시나 외근 때 자동차 매연과 각 빌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의 열기 등으로 나는 늘 더웠고 지쳐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귀촌을 생각했다. ‘조화로운 삶’을 쓴 ‘헨리 니어링’ 부부나 자연주의자인 ‘소로’ 같은 삶은 아니더라도 그냥 되는대로 시골에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몹시 더웠던 여름 한 날(그날은 하필이면 에어컨도 고장이었다) 나는 부장에게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냈다. 그러자 그는 몹시 화를 내었다.
“이 정도 더위를 못 참아서야 어떻게 서울에서 아이들 키우고 살아갈 수 있겠어?”
“꼭 그 때문이 아니라, 제 아이 병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봐! 강 과장. 물론 아이 문제는 이해는 해. 나도 아이들 키울 때 그럴 때가 있었지. 그러나 서울에 좋은 병원이 한두 곳이야? 계속 치료시켜 봐. 돈이면 안 되는 게 뭐가 있어?”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아이의 병은 이런 도시에서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정답은 자연이었다. 깨끗한 물과 공기 그리고 문명의 이기가 없는 그런 곳만이 완쾌될 수 있는 거였다.
나는 어렸을 때 외가가 있는 시골에서 자랐다. 시골에서는 아무리 더워도 여름 한철, 그때뿐이었다. 그 무더위도 낮에 냇가에서 멱을 감고 밤에는 마당에 있는 우물에서 등목한 뒤에 평상에서 수박 한 덩이를 나누어 먹으면 되었다. 그러면 더위는 가만히 있어도 물러가곤 했다. 그때 내 아이의 병 같은 게 있었던가.
결국 나의 이른 퇴직은 딸아이 문제를 빼면 순전히 여름, 폭염 때문이었다. 가지 않겠다는 아내를 설득하여 결국 우리는 내가 어릴 때 살던 곳과는 많이 떨어졌지만, 여름이면 서늘한 두류산 인근으로 오게 되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렸지만, 다행히 아내가 시골의 초등학교에 계약직 교사로 근무하게 되어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나 또한 어쭙잖은 지 몇 편을 문예지 등에 발표해 받는 원고료와 인근 도시에서 열리는 문예 창작 교실에 나가 받는 강의료 등으로 생활에 보탬이 되었다. 상추 등 반찬은 직접 텃밭에 채소를 키움으로 생활비가 많이 절약되었다.
그로부터 그 사내, 동굴 파는 남자를 다시 보게 된 것은 평일 정오가 약간 지난 시간이었다. 그날따라 너무 더워서 나는 내가 사는 마을 뒤쪽을 넘어가 조그만 계곡에 발이라도 담글 양으로 혼자 넘어간 것이다. 그 계곡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그는 물가에 있는 큰 상수리나무 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오늘은 또 뭘 팔아서 술을 마실까, 생각하니 설핏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한편 오늘도 그가 날 박대하면 어떡하나, 고민하다 짊어지고 간 배낭 속에 내 시집을 생각해 내었다. 나는 얼른 시집을 꺼내 손에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그러자 그는 고기를 굽다 말고 날 쳐다보았는데 예상대로 그는 내 손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손에 든 게 그게 뭐요?”
“아, 네. 제가 쓴 시집입니다.”
“시인이란 말이요?”
“예.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맞으면 맞는 거지. 그렇다고 볼 수 있다는 대답은 또 뭐요? 어쨌든 한가한 사람이구먼. 이리오슈. 술 한잔 합시다.”
계곡 주위는 예상대로 서늘했다. 울창한 숲으로 인해 그늘이 져서 그런지 흐르는 물은 차가웠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흐르는 물 쪽으로 가서 간단히 세수한 다음, 그의 곁에 앉았다. 그는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부어 내게 내밀었다. 내미는 그의 손은 마치 솥뚜껑같이 투박하고 거칠었다.
“오늘은 동굴 안 파십니까?”
“글쎄. 매일 일만 할 수 있나. 오늘은 너무 더워서 마실 좀 나왔수다. 그런데 책 한 번 봅시다. 진짜 시인 맞기나 하는 거요? 요새는 돈만 주고 등단한 엉터리 시인이 많아서 말이요.”
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지방지이긴 하지만 신춘문예 출신입니다.”
그도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내 책을 하나씩 훑어 나갔다.
“좋소. 몇몇 시어가 맘에 들어요. 가짜 시인은 아닌 것 같소. 우리 인사나 합시다. 나는 공팔진이라고 하오.”
나는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만, 먹고 있던 소주를 내뱉을 만큼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발음이 약간 어눌해 그만 ‘팔진’을 ‘발진’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나의 표정에서 그는 그것을 읽었는지 다시 한번 또박또박 ‘팔’, ‘진’이라고 말했다.
“이름이 약간 촌스럽지요?”
“아, 죄송합니다. 고기가 갑자기 목에 걸리는 바람에.”
“하하. 괜찮소. 다들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은 그렇게 웃음이 나온다오.”
“저는 강경후, 라고 합니다. 오늘로 세 번째 뵙는군요. 동굴은 다 되어갑니까?”
“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는지요?”
“아닙니다. 저는 얼마 전 마을 이장에게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는 인간들이 그동안 저질러 놓은 문명의 이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어떤 식으로든지 일어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올여름 아니면 내년쯤,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폭염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그건 어떤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요? 그걸 알고 싶습니다.”
나의 질문에 그는 한동안 말없이 고기만 굽고 있었다. 표정은 엄숙했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아마 올여름에 찾아올 거요.”
“이번에 말입니까?”
“그렇소. 지구온난화라는 게 단순히 지구 전체가 골고루 더워진다는 게 아니라 기후의 균형을 무너뜨려 기후변동이 커지고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지는 걸 말하오. 작년에 강 시인은 어디에 있었소? 아마 도시에 있었겠지요. 지난겨울 이 땅은 한파와 폭설로 꽁꽁 얼어붙었소. 부산은 100년 만에 강추위가 찾아와 해운대 바다가 얼었고, 서울에서는 10년 만에 최저기온기록이 바뀌었소. 비단 한반도만 그런 게 아니오. 미국과 중국에서는 최대 45cm의 폭설이 내렸고 영국에서는 100년 만에 최악의 혹한을 맞았소. 그렇다면 올여름은 어떻겠소? 벌써 이리 더워지고 있으니 짐작은 하겠지만.”
“작년에 겨울 한파가 왔다 해서 올여름에 폭염이 온다는 말입니까?”
“사회과학 용어 중에서 극좌와 대구를 이루는 게 극우지요. 마찬가지요. 한파란 급격한 온난화에 대한 지구의 반작용이지요.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치유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 자연이오. 인간들은 재해라 생각하지만 자연 입장에서는 순환이외다. 순환⋯⋯. 이번의 폭염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거요.”
그는 목이 말랐는지 자신의 잔을 비운 뒤 내게 소주를 가득 채워 내민 다음 말을 이어갔다.
“1912년부터 한반도의 평균기온 상승률은 1.7%인데, 이는 전 세계 평균기온 상승률에 비해 높소. 알다시피, 기온상승의 20~30%는 도시화의 효과로 추정되오. 산업개발을 위한 석탄, 석유, 가스 등의 연소 및 추출, 처리 수송과정에서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대거 발생하였소. 이제 꼭짓점에 오른 거라 보면 되오.”
“이 모든 게 지구온난화로 인한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지.”
“음…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100만 년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됐는데 현재 지구는 1만 년 전 극심했던 마지막 빙하기를 지나 천천히 기온이 올라가는 간빙기에 접어들었소.”
“그렇다면 간빙기 중에서도 유독 기온이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이 지금이라는 말씀이죠?”
“제대로 이해했소. 또한 지구의 공전궤도는 타원형이었다가 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변화하오. 그 말은 지구가 이 시점에 태양과 미세하나마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말이오. 그리고 강시인은 어릴 때 팽이를 돌려봤소?”
“그럼요. 저 역시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렇군요. 지구의 공전뿐만 아니라 자전도 영향을 주는데 자전축은 약 2만 2000년마다 돌아가는 팽이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듯 부르르 떨면서 도는 순간이 있지요. 그 순간 태양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오. 게다가 자전축은 4만 년을 주기로 기울기가 22-24.5도 사이를 넘나드는데 현재는 23.5도 정도 기울어져 있소. 기울기가 커질수록 지표면의 복사열에 영향을 미쳐 기온 차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지요.”
“그 시점이 올여름이다, 이 말씀이죠? 그렇지만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우리나라에는 기상청이나 한전, 원자력 발전소 같은 전문기관이 있어서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선생님은 언제, 얼마 동안 폭염이 시작되고 지속된다고 보십니까?”
“7월 말에 시작되어 빨리 끝나도 9월 초일 거요. 그사이에 아직 준비되지 못한 전력 대책 때문에 도시에는 에어컨 등 냉방장치가 가동되지 않아 노인과 아이들이 먼저 죽어갈 것이며 마침내는 도시 사람들이 계곡이 있는 시골까지 밀려와 아수라장이 될 것이요. 비상전력? 그마저 다 쓰이기 때문에 필요가 없을 거요. 아마 그때가 끝나야 정부나 관계기관에서는 대책을 세울 것이오.”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게 잔을 권했고 또 내게 잔을 돌려받았다. 그 사이에 그는 내게 성경과 관련된 종말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개벽 등 일부 민간 신앙에서 나오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은 조리 있고 정확했으나 아무래도 술에 취함에 따라 결국은 횡설수설한 신비주의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 불확실한 예측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당장 내 딸아이의 병 때문이기도 하고 억지로 우겨 시골까지 왔는데 이곳에서 마저 폭염 때문에 제대로 된 생활을 못 한다 생각하니 한숨만 나왔다. 그러는 사이 술이 다 떨어졌고 나는 일간 그의 동굴을 방문한다는 조건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