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 스승님 동상 제막식
전날 밤
이월 열이틀 달이 환희 밝은 한밤중,
스승님 동상 앞에 두 번 절 올리고,
우러러 뵙는 성자의 모습 생시인양 반가와라.
황금색 두루마기에 머리 빗어 올린 환한 얼굴!
왼손에 책을 들고 오른팔 들어 두 손가락은,
선지자 웅혼을 펴서 우리 갈 길 가리키네.
아침
뒷동산에 다시 올라 스승님 내외분 뵙자니,
까치 한 마리 날아와서 반긴다.
되돌아 내려오며 스승님 뒷모습을 뵈왔다.
수우재 안팎 다시 돌며 살으신적 옛일 되새기고,
연못 앞에 서니 아직 봄소식 감감한 백일홍,
산수유 한창 피고 동백 빵긋빵긋 목련은 쫑긋쫑긋!
승운정(勝雲亭) 옆 탱자 고목, 모과 고목 묘비 지켜 서서,
오랜 세월 가꾼 풍류 오늘따라 빛이 난다.
조상님 영이 내려 이씨 가문(집안) 경사 났다 반기시리.
시청 사역들이 동원돼 주차장에 물 뿌리고,
뜨락에 천막 치고 동상에 포장 싸고,
마당에 탁자 의자 놓고 마이크 시설 다 되었다.
제막식
낮 2시 되자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제막식’이다.
시장 인사말씀 ․ 건립 경과보고 ․ 축사 차례로.
효심에 한글 ․ 시조 ․ 고향 ․ 나라 사랑 오늘 영광 누리시네.
‘국문학 개설’과 ‘국문학 전사’로 올과 날을 세우시고,
실력과 고서로 학벌 ․ 인맥 좋은 조윤제와 겨룰 적도,
“난초는 가람이 귀신이다”고 도남 그도 탄복했네.
서민문학에 있어서는 남의 추종을 불허하여,
천하 영재 양주동도 진서 빌어 옮겨써 갔고,
자웅을 겨룰 이 없었으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네.
송강(松江) 후 가람산맥 우뚝 솟아 따르나니 군소봉을,
양 옆에 두 줄 잡고 늘어선 열 사람,
숨죽여 당기니 황금옷 차림 스승님 모습 완연하네.
한 손에 책을 들고 고향 가자 외치시네.
폐허 속 움막 치고 굳은 흙 파고 파서,
메마른 땅 궐구워서 씨뿌려 매고 가꿔 거두잔다.
스승님! 손 모아 비옵나니 이 고장 분네들의 정성과,
온 겨레의 함성을 얼싸안아 받으시어,
이 나라 한글 문화 온 누리에 영겁토록 펴오소서.
축하 잔치
제막식이 끝나자 50여명 하객 님네,
승운정과 천막 안에 앉고 서고 들어차서,
축배를 높이 들어올려 동상 무궁 빌었네.
지킴이 효부가 빚은 술에 안주 차림 얌전해라.
갖은 반찬 구색 맞춘 떡이며 약밥 온갖 과일……
온 마을 아낙들의 인정 속에 정성어린 솜씨여라.
멀고 가까운 손님 서나서나 돌아가고,
일가친척도 시나브로 흩어가고,
우리도 밤 늦기 전에 달을 안고 돌아왔다.
4335. 3. 26. 상오 1시 ~ 4. 4. 낮 1시 50분 ~ 3시 13분, 4. 11. 하오 1시 54분 ~ 2시 56분.
2002. 6. 25. <전북문단> 2002년 초여름(36)호.
2002. 6. 27. <한국신문학> 2002년 봄(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