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향기 봉사의 향기
육근웅 베다 동서울 Re. 명예기자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 2,15)
서울대교구 자양동성당 바다의 별 Pr.의 조을순 루시아 자매님이 83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시면서 젊은이들이 버린 잡다한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감사’가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루시아 자매님의 봉사정신은 23년간 자양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주방봉사를 하신 일에서 잘 드러난다.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8시에 복지관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고, 오후 3시에 설거지를 마치게 된다. 루시아 자매님은 친지나 교우들과 봉사하는 날인 수요일에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소속된 모임에서 어쩔 수 없이 수요일에 행사를 정하게 되어도 주방봉사를 하시느라 참석을 하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봉사에 전념하셨다. 이런 열정 때문에 구청장과 시의회의장 등으로부터 표창장을 5회나 받게 되어 다른 봉사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조을순 루시아 자매님의 남다른 봉사정신은 우리를 위해 고통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성모님을 본받으려는 참된 신앙인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루시아 자매님이 입교하신 것은 60여 년 전 충북 중원군 노은면의 노은공소였다. 집안에서 아무도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날 성당에 가고 싶어서 시어머님께 성당에 다녀도 좋으냐고 묻자 흔쾌히 그러라고 하여 입교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많은 장미들이 하늘을 뒤덮은 한 가운데에 나타나신 성모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후로 묵주를 손에 놓지 않게 되어 일주일에 350단에서 400단 정도의 묵주기도를 바치기를 60년이 넘었다.
‘저 아픔보다 내 아픔이 더하랴!’
루시아 자매님의 특별한 신앙체험은 차남이 22세의 아까운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난 뒤에 일어났다.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던 아침기도를 며칠 바치지 못하던 어느 날 아침,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더라는 것이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 아픔보다 내 아픔이 더하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면서 아침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다의 별 Pr. 류봉덕 에밀리아나 단장님이 전하는 루시아 자매님의 품성은 인자한 할머니를 넘어선 신앙인의 표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루시아 자매님은 단 한 번도 레지오 단원들과 언쟁을 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단원들 사이에 사소한 시비가 있어도 언제나 중재자의 역할을 잘 하셨다고 전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며느리를 들인 이후에 한 번도 고부갈등이 없었다고 한다. 인쇄업을 하는 장남 원종한 다니엘을 돕느라 매일 출근하는 며느리 대신 83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 보면 짜증도 나고 불만도 많을 터인데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아직도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셨는데, 감사하지!’라는 루시아 자매님의 평생은 그야말로 감사를 실천하는 삶이었다. 아울러 시어머니와의 갈등도, 부부갈등도 없었다는 말에 필자는 고개를 들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시는 루시아 자매님은 그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인이었다.
이웃사랑에서 드러나는 평화와 화해의 정신
이런 평화와 화해의 정신은 이웃사랑에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화양동에 살던 어느 날 이웃 아주머니가 루시아 자매님을 부당하게 헐뜯게 되었는데, 자매님이 노여움도 없이 헤어지자 다음날 그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어제는 미안했노라고 사과를 하였다고 한다. 부군인 원장희 가브리엘 형제님이 선종을 하였을 때에 조문도 오지 않았던 옆집에서 부음을 알려온 적이 있었다. 자매님은 아들에게 “신앙인이 그래서는 안 되지. 네가 좀 다녀 오거라.”라고 하여 이웃사랑을 몸소 보여주었다고 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를 찾아낸 사람들이다.”라는 슈바이처 박사의 말처럼 조을순 루시아 자매님은 봉사를 통하여 행복을 일구어내며 살아온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으로부터 감사를 빼앗아 갈 수 없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은 누구보다도 조을순 루시아 자매님에게 맞갖은 헌사였다.
현대인은 많이 갖지 못해서 우울하다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하다는 심리학자들의 조언보다도 조을순 루시아 자매님이 살아온 과정을 경청하면서 우울함을 씻어낼 수 있었던 하루였다. 루시아 자매님에게서 풍겨나는 향기는 감사의 향기요, 봉사의 향기이며, 화해와 용서의 향기였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테살로니카1서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