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gio Clarinet Concerto - 영화'아웃 오브 아프리카' - Gheorghe Zamfir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망둥어 국 -김규성
여든여덟 어머니가 끓여주신 망둥어 국을 먹는다
평소 간간하던 간이 영 싱겁다
짠 것은 내 혈압에 해롭다는 지나친 염려 탓이시다
그런데 아무래도 통 몸통이 보이지 않는다
살점은 손자들 다 주고,
엊그제 큰아들 떠나 하나뿐인 아들에게
설마 뼈다귀만 일부러 골라 먹이실 턱은 없는데,
아, 가뜩이나 어두운 눈에 전기를 아끼느라고
컴컴한 부엌에서 급히 큰 놈을 고르다보니
애먼 대가리만 눈에 밟히셨구나
기막힌 魚頭一味
골라낸 것들을 다시 천천히 발라먹는다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져 마침 간을 맞춰준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단골 냉면집에서 남편과 만나기로 했는데. 냉면집에 도착했을 땐 남편은
이미 혼자 냉면을 다 먹고 난 후였습니다.
하지만 함께 있어 주겠다고 했는데, 부인이 주문한 냉면을 먹으려는 순간
'난 다 먹었고 보는 건 지루하니 먼저 가겠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냉면을 먹는 이 짧은 순간도 기다려주지 못하는데 앞으로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건
힘들 것 같아 이혼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제게도 묘한 버릇이 있습니다.
허겁지겁 밥 먹는 것입니다.
아내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누가 뺏어 먹으로 쫓아 오느냐,
제발 천천히 먹으라고 합니다.
저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지.
다 먹고 나서도 먼저 일어나니 아내로서는 여간 섭섭한 게 아닌가 봅니다.
아무리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해도 입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한 두번 씹고 그냥 넘겨 버립니다.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됩니다.
아내는 제발 다른 사람이 있을 때나,며느리 있을 때는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 합니다.
그래서인지 누구와 식사할 때 저는 항상 긴장합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참 곤욕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촌누이까지 합해 아홉식구.
밥을 먹을 때엔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빨리 먹어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어물어물하다가는 다 빼앗깁니다.
남동생은 아예 밥그릇에 반찬을 숨겨 놓습니다.
그래서 가장 빨리 먹는 방법은 그냥 씹지 않고 먹는 것 뿐이었습니다.
생선찌개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먼저 아버지에게 가운데를 먼저 드리고
그리고 장남에게 줍니다.
그 때까지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전쟁 상태에 들어갑니다.
온통 숱가락은 찌개 속을 헤맵니다.
좀더 많이! 좀 더 맛있는 살코기를 먹으려고.
결국 남는 것은 대가리와 꼬리 뿐입니다.
그것도 재빠르지 못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천만 다행인 것은 먹기가 귀찮아서인지 아니면 먹기가 그래서인지
먹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거라도 천만 다행이어서 재빨리 가져와 이리저리 후비고 빨고 발려 먹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좋아하는 줄 알고
다음부터는 으레 저에게 챙겨 줍니다.
셋째가 대가리와 꼬리를 가장 좋아한다며.
그 후 집안 형편이 좋아졌어도 여전히 대가리와 꼬리는 제 몫이었습니다.
살코기를 먹어봐도 맛이 나지 않습니다.
형제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모임에 가도 역시 대가리는 제 몫이었습니다.
삼촌은 대가리와 꼬리를 좋아 하신다며 슬그머니 제 게 밀어놓습니다.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에게 살코기가 주어지고 저는 항상 대가리와 꼬리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정말 대가리가 가장 맛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꼬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맛있게 먹었던 대가리와 꼬리는 군대 있을 때입니다.
아내의 젖이 안 나온다는 선임하사는 DMZ안에서 잉어를 잡아
대가리와 꼬리를 짤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산모가 먹기에 좀 그래서 였을 것입니다.
마침 그 옆에 있던 저는 내게 달라고 하니 선뜻 주었습니다.
부대에 돌아와 반합에다 고추장을 조금 넣고 끓여 먹었더니 정말 별미였습니다.
아마 그렇게 맛있는 찌개는 처음이었습니다.
중국에서 팔진미에 속한다는 잉미(잉어꼬리).
아마 선임하사는 그런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아직도 저는 생선대가리와 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식구들 틈에 끼여 살코기는 아예 먹어 볼 수 없었던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려 그래도 대가리를 먹을 수 있었고
후에는 가족들의 배려에 마음놓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먹은 날은 가장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이제는 대가리와 꼬리를 먹지 않아도 될덴데도
아직도 저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직도 그만한 맛을 볼 수가 없습니다.
시장 가려고 나서는 아내에게 오늘도 한마디 합니다.
대가리와 꼬리 버리지 말고 가져 오라고.
생선대가리와 꼬리를 먹을 수 있는 행복.
저 만이 느끼는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