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47> 서장 (書狀)
장사인(張舍人)에 대한 답서
공부엔 반드시 뚫림의 체험 필요
“정식(情識)을 부수지 못하면, 마음의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바로 이러한 때를 만나면 다만 의심하던 화두(話頭)를 드십시오. 예컨대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니 조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들고서 깨어 있기만 해야 하고, 왼쪽으로 가서도 안 되며 오른쪽으로 가서도 안 됩니다. 또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려서도 안 되고, 들어 올리는 곳에서 받아 맡아서도 안 되며, 현묘(玄妙)한 깨달음의 꾀를 지어서도 안 되고, 있음과 없음으로 헤아려서도 안 되며, 참된 없음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일 없는 속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되며, 불꽃이 튀기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곳에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마음을 쓰지 않아서 마음 갈 곳이 없을 때에, 공(空)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곳이 바로 좋은 곳입니다. 이 때에는 문득 늙은 쥐가 소의 뿔 속으로 들어가 바로 막혀 멈추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화두에 매달려 놓치지 않고 정진하면
생각의 장막 걷히고 새 길 뚫리기 시작
육식(六識)의 물결은 한 순간도 잠잠한 때가 없다. 바람이라는 인연을 만나 일렁이는 물결 같기도 하고, 스스로 불타오르는 장작불 같기도 해 쉼이 없다. 우리는 물결에 속아서 물이 무언지를 알지 못하고 불꽃에 속아서 불이 무언지를 알지 못하듯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육식에 속아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물을 알고자 하고 불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물결을 일으키는 인연인 바람을 제거하고 불꽃을 사그라들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람을 제거하여 물결이 잠들면 이번에는 거울 같이 고요하고 잠잠한 수면에 속아서 물을 알지 못하고, 치성하게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면 아예 불이 없다고 여기고 만다. 이들은 물결 속에서 물을 보아야 하고 불꽃 속에서 불을 보아야 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이쪽으로 치우쳤다가 저쪽으로 치우쳤다가 하는 것이다.
마음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치성하게 타오르는 육식의 물결과 불꽃을 피하기 위하여 억지로 생각을 막아 일어나지 못하게 하지만 그 고요하고 텅 빈 의식에 속아서 마음을 알지 못하고, 정작 경계에 걸림 없는 곳에 당도하게 되면 오히려 아무것도 없다는 두려움에 뒤로 물러나고 만다. 그리하여 있다거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공의 체험에 실패하고, 여전히 육식에 의존하여 자신의 존재를 육식 위에서 찾게 된다. 그러나 육식은 무상한 것이므로, 육식에 의존하는 삶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화두는 물결의 흔들림을 통하여 문득 물결을 잊고 물의 존재를 파악하고,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문득 불꽃을 잊고 불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개발된 방편이다. 화두를 든다는 것은 화두를 앞에 두고 깨어 있다는 것이다. 육식의 어떤 경계가 앞에 나타나더라도 그것들 위에 화두를 들고 깨어 있어야 한다. 화두를 통하여 경계 위에서 깨어 있는 것이다. 화두를 참구(參究)한다는 말은 화두 앞에서 깨어 있다는 말이지, 화두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화두를 해석하여 의미를 탐구하는 일은 결국 하나의 경계를 만드는 일일 뿐이므로 본래 머뭄 없는 마음자리에 계합하지는 못한다.
경계 위에서 화두를 잡고 늘 깨어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따라 펼쳐지는 육식에 따라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면서도 모양이 없는 마음에 직접 접하게 한다. 늘 하나의 화두 위에 깨어 있음으로써 달리 마음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마음은 점차 어디에도 발붙이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무엇도 붙잡지 않게 되면 마치 허공 속으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데, 이 때가 공부가 잘 되는 때다.
바로 이 때에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놓치지 말고 밀고 나아가면, 어느 순간에 앞을 가로막았던 생각의 장막이 녹아내리고 길이 뚫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뚫림의 체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제 길을 찾은 것이고, 남은 일은 그 길을 놓치지 말고 한발 한발 나아가는 보림(保任) 뿐이다. 공부에는 반드시 이러한 뚫림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뚫림의 체험이 없으면 결국 어떤 경계에 머물러서 그것을 공부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서장통한 선공부' 목차 바로가기☜
첫댓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