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텃밭시인학교 심찬용 동인 회장 인사말씀
바람은 시의 노래
밥 딜런(Bob Dylan, 1941년 ~ )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지구 한 켠 조그만 대구에서도 들썩거린 문학적 사건이었다. 10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밥은 미국 음악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낸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그는 싱어송라이터, 시인, 화가로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명이자, 1960년대의 저항 음악의 아이콘이다. 시적인 가사에 삶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담아낸 그의 노래,〈불어오는 바람 속에 Blowin' in the Wind〉, 〈세상이 변하고 있네 The Times They Are a-Changin'〉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곡이다. “딜런의 노래는 ‘귀를 위한 시’다.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리듬을 만들었고 인내를 승화시켰으며 획기적인 사고를 보여줬다. 5000년 전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와 여류 시인 사포가 쓴 시적인 텍스트는 공연이 됐는데 이는 딜런과 같은 방법”이라며 한림원은 수상 이유를 밝혔다. 아마 이번 노벨 문학상은 ‘노래와 시’가 태초에 한 몸이었음을 증거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2천 5백 년 전에 써진 호메로스와 사포의 시를 지금까지 읽고 우리가 그것을 즐긴다면 밥 딜런 또한 읽을 수 있고 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겠다.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삶, 그 자체이다. 지구에 와서 저마다의 말로 자신의 노래를 힘껏 부르다 가면 된다.
올해도 김동원 시인님의 지도로 어김없이「텃밭시학」5집을 낸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가면을 벗는 작업이자, 사실의 세계를 관통해 진실의 세계에 닿는 고해의 길이다. 이번 동인집은『텃밭시학』5주년 특별 기획으로 꾸몄다. 류인서 시인의 권두 수상, 김상환 시인의 권두 시론 ‘비(悲)의 시학’, 기획 특집으로 김동원 시인의 ‘문인수 시의 감상과 해설’을, 동인 수상 특집으론 2016년『문장21』여름호 신인상 수상자 이화윤 회원, 2016년『문장21』겨울호 신인상 수상자 민진식 회원, 2016년『대구문학』신인상 수상자 예경해 회원의 장으로 꾸몄다. 이번 호 특집 코너 ‘시집 깊이 읽기’에선 ‘이진흥 시집『이디에도 없다』’를 통해, 시인의 자작시 해설의 진수를 맛볼 것이다. 초대 시는 대구 시인님들의 귀한 대표시를 실었다. 지금까지 텃밭시학은 11명의 회원이 시인의 관冠을 썼다.
지난 ‘봄 문학기행’은 팔공산 능성동 복사꽃 길을 걸었다. 자두꽃밭과 능선위의 푸른 하늘은 그대로가 한편의 시였다. 나비와 벌들이 다투어 꽃들 주위로 나는 모습은, 자연이야말로 시어이자 아름다운 행간이었다. 박터진흥부네식당에 둘러앉아 청국장한식을 먹으며 나눈 시담(詩談)은 즐거웠다. 연이어 자리를 옮겨 박소유 시인님을 모시고 들은 특강은 감동이었다.「지금 여기에 시가 있다」란 주제를 통해, ‘현실의 세계와 시의 세계 사이에서 시인이 살고 있다면 시인의 할 일은 시가 지나가도록 통로가 되어주는 것’임을 새삼 깨닫곤, 시인의 세계가 이토록 엄중하다는 것을 회원들은 새삼 인식했다. 아울러「텃밭시학」에 늘 따스한 마음을 보태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회 : 권효정 회원

이진흥 전 대구시인협회장님의 축사 말씀





이춘호 가인의 노래





2016 여름호『문장21』신인상 수상 / 이화윤 시인
수상작
사닥다리 외 4편
별까지 가려면 달빛 창문에
오늘 밤 사닥다리 놓아야 겠네
땅거미 꺼진 앞산 위로
돋아난 샛별 곁에
불면하나 걸어야 겠네
밑도 끝도 없는 늙은 생각은
한밤중 또렷한 기억 되어
어둠의 소파 위에 혼자 앉는다
텅 빈 거실 유리벽에 움직이는
그 무수한 바람 그림자
촛불을 켜면, 밤의 입술 새로
수다처럼 풀려가는
그 옛날 어머니의 색실 뭉치
풀었다 되감았다 새벽녘까지
잔 생각 오고 가면
어느새 무릎 위에 잠든 어린 꿈
그 아이 별에서 내려오려면,
이 밤 또, 달빛 창문에 사닥다리 놓아야 겠네
하늘의 귀
거기에 바다가 있었다
절벽 위의 한 그루 노송
아찔, 불거진 혈관처럼 얽힌
바위를 감고 버틴 뿌리
먹고사는 일은
절벽도 나무도 고독했다
물안개 너머로 튕겨 나온
갈매기 한 마리
하늘의 귀를 물고
구름 위에 올려놓았다
바람의 손
참 아픈 하늘이었다
너를 부르면, 참 아픈 구름이었다
밤마다 달은
물속에서 꽃처럼 숨 몰아쉬는데
마음 한 자락 잡을 수 없는
바람의 손, 차마 찾지 못해
언제나 돌아서던
골목의 빈 그림자
참 아픈, 겨울이었다
자꾸만 너는 펄럭거리는데
가시나무 무릎 속 고개를 묻고
어둠은 바람 인양 쳐다본다
자꾸만 멀어지신다, 아버지
자꾸만 멀어지신다, 아버지는
어둠 속 빈 골목처럼
자꾸만 멀어진다, 꿈속 아버지
오신 길 헛딛지나 말아야 할 텐데,
엄마가 좋아하던 복숭아를 싸 들고
달빛 강을 무사히 건너야 할 텐데,
아버지는 자꾸 멀어지신다
새벽녘 안개 속 들풀처럼 지워지신다
평양 곰탕
흑백필름 속에 멈춰버린
피란 길 기차 지붕 위 다섯 식구
부산 시립병원 담장 뒤로
데려가던 시체들 보며
온종일 허기져 구름만 뜯어 먹었지
아버지 운길 열려
공장 간 오라비 야간 학교 남학생 되고
나는 공민학교 여학생 되어
분홍 모란 인양 꿈에 부풀었네
오라비 서울대학교 합격한 날
어머니 무쇠솥에 평양 곰탕 끓였지
둥근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 얼굴
고향 마당 환하게 핀 함박꽃 같았지
허허 허허 아버지는
봄밤이 그렇게 좋으신 가 웃으시고
어머닌 그저 빙그레 반달이 되시고
동생과 난 덩달아 별 되어 신바람 났지
당선소감
몸이 시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시론 강의를 듣기만 하다가 시 창작에도 관심이 깊어져 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숭숭 구멍 뚫린 내 가슴 한켠이 시상으로 가득 메워져 옴을 느꼈다. 읽고 쓰는 기쁨이 이렇게도 벅차고 아름다운지 그전엔 까맣게 몰랐다. 기억에 덮인 슬픈 내 유년 시절의 작은 이야기들을 시로 불러낼 땐, 그야말로 내 몸이 시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당선의 소식을 듣고는 정말, 꿈속인지 꿈밖인지, 그저 정신이 아득하여 천 길 벼랑 위에 선 것 같았다. 지난 수 년 간 밤낮을 잊고 쓰고 고치던 내 뒷모습이 영화 속 필름처럼 차르르 돌아간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언제까지나 맑은 정신으로 시의 꽃밭을 만들어 가고 싶다.
늘 안개 속에 헤매던 몽롱한 나의 시어들을 꽃나무로 키워 주신 텃밭시인학교 김동원, 이승주, 두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만날 때 마다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 주신 장하빈, 이자규 시인님께도 고맙다는 인사 올린다. 무엇보다 고락(苦樂)을 같이해 온 텃밭시학 동인들에게 고맙다는 말로 꼭 껴안고 싶다. 그리고 남편과 가족에게도 감사하며,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끝으로 부족한 저의 시를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부끄럽지 않는 시인이 될 것을 약속드린다.
이화윤: 평북 신의주 출생. 숭실대학교 종교철학과 중퇴. RECREATION 강사, 죽음 교육 강사. 광음크로마하프 교실 운영. 텃밭시학 회원.

2016 겨울호『문장21』신인상 수상 / 민진식 시인
수상작 꽃시장 외 5편
꽃시장
웃음으로 부딪쳐야 해
어스레한 새벽 나를 팔겠다고 모여든 장터
하루를 짊어진 어깨가 무거운데
아픔은 속으로 감추며
누가 어서 불러 달라고
갖가지 사연으로 모인 삶의 겨울 마당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서로가 낯설어도 마음은 하나
오늘은 땀 흘리며 일하고 싶어
두 손 모아 빌어보는데
한 송이 두 송이
몇몇은 무리지어 떠나가도
자리만 지키는 꽃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마음만 시들고
얼어붙은 세상,
어딘가 봄바람 불고 있겠지
찬바람 맞아도 울면 안 돼
내일 다시 웃으며 피어야 해
수소풍선처럼
오늘이지
설날 집에 가자던 약속 헤아리며
출입문 바라보다 목만 길어지고
살아 있다는 무료함에 지친 풍선들
거친 숨소리만 적막을 깨뜨리는
8인용 병실의 설날
통증보다 모진 외로움
열에 들떠 허우적거리며
가늘고 질긴 실에 매달려
조금씩 빠지는 바람에 사그라지는 혼
저 문만 나서면
수소풍선처럼 두둥실 날아가
푸른 허공에 묻히고 싶어
기다리는 가족은 오지도 않는데
꿈속인 듯 생시인 듯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선들
갠지스*
갠지스,
무슨 기원이라도 동화마냥 풀어질 듯 검푸른 신비에 싸여
수많은 게시 담은 성스러운 해 잉태하면
대지는 태고의 침묵에 잠겨 새벽을 연다
강물에 한평생 죄 씻는 사람들
카트 위에 한줄기 연기로 영생에 이른 장례식
갖가지 경 읽는 소리와 어우러지면
무심한 여행자도 옷깃을 여민다
삶과 죽음이 마주하고
어제와 내일이 교차하는 어머니 강물 위로
오늘의 소원 담은 꽃배 하나 띄울 때
가슴마다 젖어드는 침묵의 소리
정성스레 바치는
순례자들의 명상기도 생명의 합창으로 강물에 스며
한 교향악으로 어우러질 때
지평선 위로 눈부신 해가 솟는 갠지스
* 갠지스 : 인도 북부를 남동으로 흘러 벵골만으로 들어가는 강
힌두교인들의 성지
내공
속으로 쌓은 내공이 얼마인데
옆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나서더니
어쩌라고
때늦은 봄눈인가
옛 등걸 햇볕 바른 가지에
한 점 봄이 떨고 있어
한낮 도타운 햇살에 가슴 부풀어
속절없이 터뜨린 흰 눈 속 붉은 사랑
하수상한 세월,
곳곳마다 겨울 품은 봄이라
빙판길 들어서도 제 몫이라고
함초롬히 웃는 매화 한 송이
아지랑이 협상
제멋대로 찾아오는 불청객
시도 때도 없이
같이 놀자고 흔들어대면
흐릿한 기억이 맴을 돌 듯
생각과 몸 따로 논다
다잡아 당길수록 중심은 무너져
눈앞에 아른대는 현란한 무늬들
봄 징검다리 건너듯 아지랑이 아른대고
귓가를 울리는 겨울 물소리
고개 돌리면 발아래 빙판 되어
아찔한 두려움에 주저앉지
애써 한 발작 도망가면
두 걸음 앞서가 기다리는
길들일 수 없는 소용돌이 어지럼증
돌아서도 피해갈 수 없다면 협상이지
적당한 거리 두며 친구 하자고
당선소감
시의 꽃씨 하나가 싹트고 있었나 보다
한 때는 그냥 시가 좋았다. 커피를 마시며 혼자 읊조리며 시의 행간을 따라다니는 것이 좋았다. 좋은 시를 찾아 바르게 읽어 의미를 느끼며, 아름답게 살고 싶은 소박한 마음으로 시에 입문했다. 그러나 조금씩 시공부의 마력에 끌려 나도 모르게 더 잘 써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지난 4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른다. 밤낮없이 설익은 시어를 다듬으며, 나는 시 쓰기의 즐거움과 퇴고의 괴로움을 함께 맛보았다. 문우들과 토론하는 시의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기 좋아하는 나의 새로운 여행지가 되었다.
넉넉한 가을 햇볕 쬐며 어제 쓴 시 퇴고하다 거짓말 같은 전화를 받고, 순간 온 몸이 전율하듯 떨림으로 할 말을 잊었다. 신인상 당선이라니! 꿈인지 생시인지, 끝내 웃음이 나왔다. 뒤늦게 만난 시가 이런 기쁨을 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읊으시던 뜻도 모를 한시 가락에 취해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 살면서 문득 생각이 한 곳에 머물며 나를 끌어당기던 어떤 힘, 무언지 몰라도 내 속에 작은 시의 꽃씨 하나가 싹트고 있었나 보다.
시로의 여행을 앞에서 이끌어 주신 김동원, 이승주 시인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시론 강의를 들을 땐 눈앞에 보이던 언어들이 막상 쓸려고 하면 어디로 숨어들어 허덕일 때, 찬찬히 길을 비춰 주시던 열정에 작은 보답이 되기 바라며, 힘든 순간마다 버팀목 되어 함께 걸어준 텃밭시학 동인들과 기쁨의 축배를 들고 싶다. 인생 2막 가는 길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부족한 저의 시를 뽑아 새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더욱 열심히 시와 함께 하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민진식: 1950년 경남 진주 출생. 전 초등 교사. 대봉문학아카데미, 텃밭시학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