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에는 푸름이 가득하다. 전일리의 아름드리 팽나무 숲과 웅치의 솔숲, 대한다원 입구의 삼나무 숲은 차 밭보다 두세 걸음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 제암산 자연휴양림은 사철 푸름을 머금은 곳이다. 급할 것 없다고, 조금 쉬었다 가도 된다며 보듬어주는 더늠길과 편백 숲은 언제 찾아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글 정혜정 사진 보성군청, 한국관광공사 DB
데크가 넓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기 편리하다.
나무 위를 걷는 듯 숲이 우거진 더늠길
휴식 같은 친구, 친구 같은 휴양림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이름이 있다. 모르고 지낸 날보다 알고 지낸 날이 많은, 쉼터 같은 친구다. 1년에 고작 두세 번 만나도 그들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 일상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 충전이 필요할 때 언제라도 부담 없이 만나고 기댈 수 있는 친구, 휴양림이다.
휴양림은 걷기를 선호하지만 계단은 싫어하고, 물을 좋아하지만 온몸이 젖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당한 장소다. 슬리퍼를 신고 계곡에 들어갔다가 자박거리는 걸음으로 숙소로 들어와 아무 생각 없이 해넘이를 보노라면 발가락에서 기분 좋은 간질거림이 느껴진다. 경사가 완만한 숲길이 두어 시간 이어지고,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에 바다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방문을 열면 싱그러운 편백 향이 맞아주고, 문 앞을 서성이는 다람쥐도 반갑다.
더늠길 중간중간에 쉼터가 있다.
양쪽 데크의 높낮이가 달라 숲을 관찰하기 좋다.
‘해피500’을 따라 뻗은 편백
곳곳에 친절하게 적힌 푯말
휠체어를 타고도 오르내리기 쉬운 더늠길
제암산에 자연휴양림이 들어선 것은 1996년. 휴양림 부지는 원래 국가 소유였다. 보성군이 군유지와 국유지인 휴양림 부지를 교환하는 노력을 들인 끝에 산림청으로부터 160ha를 대부받아 자연휴양림 문을 열었다. 지난해 7월 소유권 이전 등기를 완료하면서 현재는 보성군의 소유가 되었다. 지금은 숲 속의 집과 휴양관 등 숙박 시설 47실, 계곡 물놀이장, 야영장, 등산로와 모험 시설 등을 해마다 보완·확충하는 과정이다. 휴양림 내 시설이 유난히 깔끔하고 새것 같은 데는 이런 노력이 숨어 있다.
제암산 자연휴양림에서 특별한 것을 말하라면 더늠길이 첫 손에 꼽힌다. ‘더늠’은 판소리 명창이 갈고닦은 자신의 특징 있는 가락을 일컫는다. ‘제암산에서 가장 좋은 길’이라는 의미에서 더늠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능선을 넘나드는 숲길이 울창하고, 7km에 이르는 전 구간을 평평한 데크로 만들었다. 경사가 완만하고 턱이 없어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까지 유모차나 휠체어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지난 2013년 개장한 이래 많은 탐방객의 사랑을 받는다.
더늠길은 휴양림 중턱에 위치한 숙박 시설(물빛 언덕의 집, 차 향기 가득한 집) 입구에서 시작한다. 따스한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초입의 경사로를 지나면 데크가 이어진다. 너비가 넉넉해서 휠체어를 탄 사람과 동행인이 나란히 걸어도 충분하다. 제암산은 해발 807m지만, 더늠길은 정상에서 조금 못 미치는 500m 고지까지 이어진다. 길이 사면을 따라 5~8°로 완만하게 이어져 휠체어로 올라도 그리 힘들지 않다. 등산이라기보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숲을 즐기는 느낌으로 걸으면 된다.
데크만 잘 닦인 것이 아니다. 안전을 위해 아래쪽은 난간 기둥을 높였다. 사면은 기둥을 낮춰서 숲이 더 잘 보이고 나무 위를 걸어가는 듯하다. 길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붙은 이름표나 곳곳의 쉼터, 널찍한 교행 구간도 인상적이다. 전망 데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편백 숲길이 1.9km가량 이어진다. 길 끝에는 ‘해피500’이 기다린다. 해발 500m가 사람이 숨 쉬기 가장 좋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해피500을 지나면 내리막길인 치유로, 햇살로, 청춘로, 사랑로를 지나 다시 전망 데크가 나온다. 속삭이는 새소리를 벗 삼아 숲을 한 바퀴 돌아오니 처음 본 물빛 언덕의 집이 다시 맞아준다. 올라갈 때는 남의 집처럼 낯설던 지붕이 정겹다.
균형 감각과 모험심을 키워주는 에코 어드벤처
저수지 너머로 건너가는 스릴 만점 짚라인
여름철이면 피서객으로 가득한 제암산 자연휴양림 계곡
짜릿하고 신나는 에코 어드벤처
더늠길이 어른에게 힐링을 제공한다면, 물놀이장과 에코 어드벤처는 아이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휴양림 입구에 있는 물놀이장은 자연이 선물한 2단 계곡이다. 섬진강 발원지에서 흘러내려 물이 맑고 시원하다. 수심 50cm 정도의 높이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기 좋다. 수영장 양쪽 데크에는 돗자리를 깔 공간도 있어 한참 놀다가 식사하고 낮잠을 자기도 적당하다.
아이가 나무에 매달리거나 뛰어놀기 좋아한다면 에코 어드벤처가 필수. 인디아나 존스를 꿈꾸는 어른도 참여 가능하다. 2015년부터 운영 중인 에코 어드벤처는 선진국형 친환경 공법으로 만든 숲 속 체험 시설이다. 한 코스를 정복할 때마다 성취감이 상당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이용하기 좋은 펭귄 코스, 청소년에게 적합한 팬더 코스, 어른이 이용하는 버팔로 코스로 구성된다. 교육 후 안전 장비를 완벽히 착용하고 안전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진행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 가끔 올라가서 겁먹고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안전 요원의 지도 아래 내려오면 된다. 지나친 장난을 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경고 후 탈락 처리되니 주의할 것.
넓은 담안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왕복 637m 짚라인도 스릴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환영받는다. 에코 어드벤처의 마지막 구간에 짚라인이 있지만, 저수지를 가르는 짚라인에 비하면 재미가 떨어진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일수록 속도가 빨라진다는 사실. 워낙 인기가 많은 시설이라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하기 힘들다.
펜션 같은 숲 속의 집 전경
장애인 객실로 설계된 숲 속 휴양관
휠체어 이동이 용이한 객실 내부
더늠길 입구 물빛 언덕의 집 앞에는 장애인 주차구역이 넉넉하다
보행 약자를 배려한 휴양림 숙소 시설
몸이 불편한 이들이 제암산 자연휴양림을 찾는 데는 숙소의 영향도 크다. 저수지 주변에 조성된 숲 속 휴양관은 일부 객실을 장애인용으로 설계했다. 문턱을 없애서 휠체어나 유모차가 드나들기 편하고, 생활 보조봉을 설치하고 장애인용 욕실도 갖췄다. 휠체어를 밀고 발코니로 나가서 저수지 전망을 맘껏 즐길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화·목요일에 운영하는 산림 교육 전문가의 숲 생태 체험도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