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한 해 농사가 아니라 짧게 잡아 이십 년 농사다.
농사야 한 해 흉년이면 다음 해 풍년을 기약할 수도 있지만 수능은 한 번 잘못 치르면 줄잡아
팔십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물론 성적이나 학벌 지상주의를 고집하는 사회구조상
문제점이나 모순과 편견이 오늘날과 같은 악순환에 일조한 까닭도 있겠으나 교육이 혁신되지
않는 한 수능에 대한 잡음은 날로 드세질 전망이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수능집단부정행위 중간수사 발표를 통해 '이 사건 관련자는 모의주도자
22명, 선수 39명, 부정 응시자 42명, 도우미 37명, 방조자 1명 등 모두 141명'이라고 밝혔다.
시험지의 사전 유출, 난이도, 변별력의 실패 등 수능 때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말썽을 빚더니
급기야 집단적 부정행위 파문이 이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더구나 대학 수능시험 부정행위를 주도한 학생들이 다니는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능시험을
치르기 2∼3주 전 휴대전화 부정행위 가담자들한테서 '부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이미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부정행위가 이루어진 것은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통한 부정행위 모의를 사전 인지하고 '부정행위 위험자 명단'까지 확보한 학교와 교육당국의
안일하고 나태한 행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광주 모 고교의 한 학생은 '수능시험 2∼3주 전 학교 학생부장실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기까지 했다.
'당시 학교에서 휴대전화 부정행위 명단에 오른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조사했다'며 학생부장
선생님이 '다 알고 있으니까 빨리 쓰라'고 추궁했으며 담임 선생님도 '그런 짓을 하면 인생을 망친다'고
충고했다는 것이다. 해당학교야 '각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보고 받은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지만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무튼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으로 재발방지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대학수학능력시험 휴대폰 부정행위를 이끈 주동자로 분류한 22명은
특정 중학교 동창생들로 '수능 커닝'을 기획에서 실행까지 총지휘했다.
경찰조사 결과 커닝 모임을 처음 기획한 수험생은 A중 출신의 이모(19)군. 중학교 시절 다리를
다쳐 1년을 휴학한 이군은 지난 8월 '커닝 도사'로 불리던 중학교 동창 김모(19)군을 찾아가
커닝 방법 등을 논의했다. 김군은 학교 주변에서 각종 소문과 설들로 떠돌던 커닝 기법을 알려줬고
이군과 함께 이를 조합해 커닝 수법을 개발했다. 이후 두 사람은 6개 고교에 흩어져 있는 동창생 등
20명을 끌어들여 커닝 모임의 '지도부'를 구성했다.
이처럼 부정행위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데는 지도부 중 상당수가 중학교 재학시절 교내 폭력서클
'일진회' 소속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수사 착수 이후 경찰에는 '가담한 애들이 중학교 시절 싸움을 잘했다' '일부 수험생들이
완력을 사용해 후배 재학생을 동원했다' '수능 커닝으로 성적을 올려 체육대학에 가기로 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제보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인폭력의 온상인 교내
폭력집단 일진회가 합작 연출한 수능 집단 커닝사태는 가히 충격적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행위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또 광주에서 대리시험을 통한 부정행위 사례까지 적발됐다.
광주시교육청은 23일 '지난 수능시험에서 광주 D여고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른 S여고 출신 수험생
J양을 대신해 K양이 시험을 치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K양은 3교시 외국어영역 시험 도중
수험표의 사진과 얼굴이 다른 점을 발견한 감독관이 시험을 모두 마친 뒤 추궁 끝에 꼬리가 잡혔다.
육백 만원의 거액까지 사례금으로 지급된 대리시험에 폭력과 야합한 집단적 부정행위가 활개를
치는 수능시험은 이제 신입생 선발을 대학자율에 맞기는 등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다다랐다. 더욱이 사전조치로 충분히 차단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한 학교와
교육당국의 직무유기는 이에 상응하는 응분의 조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수험당국도 고사장 소지품 반입금지, 시험지 유형의 다양화, 부정행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강화 등으로 피땀 흘린 남의 농사에 재 뿌리며 덤으로 안주하는 못된 부류들을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차제에 '일진회'를 비롯한 교내 폭력서클을 뿌리뽑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choikwangl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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