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사의 자취 11월 수정 글
낡은 책의 헤진 모서리처럼 옛 기억의 페이지가 가물가물한 20세기 1978년 내 나이 스물 한
살이었다.
엇발을 동동 아무리 얼러도 5개월 된 딸 아기가 밤낮 울어 보채면 엄마도 울먹울먹 하던 한 칸 방 살이였다.
발 부리에 채여 걸리는 널브러진 기저귀와 두장 넣는 연탄 난로 둘레에 친 사각 철망이 온 방을
차지했었다.
이사 가는 날을 잡고 챙겨 갈 살림살이를 두루 눈 여겨서 손수레 한짐으로 이사 갈 방에 옮겨가면 될 정도였다.
셋 방 살았던 집은 함석 스레트 지붕에 누런 빛이 흐리게 새어 드는 프라스틱 골판을 사이사이에 간간히 얹었다.
비 바람에 케케묵은 추녀의 골판은 기울고 비틀려서 집 둘레에 음음한 그늘을 드리우고 곧 내려 앉을 듯 했다.
안쪽엔 흙이고 그 위에 얇게 시멘트 바른 벽은, 바람막이 판자로 구석구석 가려서 꽉 막힌 ㄷ자로 빙 둘러져 있었다.
밖으로 트인 곳은 집 밖을 못 보는 허름한 창고 였거나, 사계절 내내 얼키설키 방치된 잡목림 거처지 였을까 싶다.
손바닥 손금 보듯이 한 눈에 보이는 세멘 마당은 여기저기 금가고 패여서 쏟아 내버리는 구정물에 진흙이 엉겨붙었다.
벽의 절반쯤 가린 추녀의 골판을 투과한 누른 하늘빛은 마당에 종지 간장물 엎은 듯 얼룩 덜룩 흔들려서 대낮에도
폐광 안에 들어선 듯 음침했다 .
네 다리가 휘뚜루 삮아 푹 꺼진 툇마루에 풍상에 틀어진 격자무늬 창호지 너머 헛까래같은, 안 채 두 칸 방은 주인이 살았다.
곁붙은 셋방 너~댓 채는 방 한 칸에 방문 앞 신 벗는 곳에 쪽마루 만큼 판자 칸 막이 댄데가 연탄 아궁이 부엌이었다.
찬장은 없이 석유 곤로 하나, 연탄불, 양은 냄비 두어 개, 종지 그릇 몇 개, 숟가락 젓가락 단벌이 부엌 살림의 전부였다.
남은 연탄 열 댓장에 연탄 집게 연탄통, 빨간 다라이통 물에 담가 둔 애기옷, 똥기저귀는 물기만 꽉 짜서 가져가면 되었다
일산역 가까운 집 주위로, 푸릇푸릇한 논 밭 떼기와, 사루비아 개망초 국화 민들레 채송화 피고 지는 꽃밭 천지였다.
봄~가을까지 벌 나비 윙윙 대고, 뙤약볕 여름 벌판 혼곤한 바람이 불어서 하얀 억새 풀섶이 흔들렸다. 손짓하는
흰 포말에 이끌려 가노라면 노른한 황토를 베고 긴 구렁이가 늘어진 낮잠을 자 듯 한가롭게 기차 레일이 숨어 있었다.
아기를 포대기에 싸 업고 즐거운 고무줄 놀이 하듯이 긴 레일을 폴짝 폴짝 뜀뛰기를 했다. 기차가 머-언 들판으로
구릉을 몰고 역마처럼 오는것을, 지평선 아득한 뭉게구름에 오르듯이 쳐다봤었다.
방 들창에 비쳐든 아침 뽀얀 햇살이 퍼져서야, 밤새 악다구니로 울어댄 애기가 지쳤는지 엄마 가슴팍에서 포시시 잠 들었다.
사락사락 종잇장같은 엄마 가슴은 애기가 선잠 갤까봐 손사래로 햇살을 가리워 숨 죽여 토닥였다.
부디 아가야~ 호랑나비 노랑나비 가뿐사뿐 날아 다니는 오색 꽃밭을 방긋방긋 꿈꾸어다오.
한 길로 난 창문에 중천의 빛은 물결처럼 들이치고 깜빡 파리 잠 든 틈새로 밖이 군악 행진처럼 왁자지껄 해졌다.
겨우 곤히 잠들던 아기가 화들짝 놀라 깨며 자지러지게 경끼 든 듯 숨차게 또 울어댔다
방 한쪽 벽 모서리 밖은 녹슨 경첩에 오랜 말굽쇠 같은 문고리로 여 닫는 끼-이익 소리 나는 판자 대문 한쪽이었다.
허리춤을 약깐 웃도는 허름한 판자문을 싸리 문발 밀치 듯 나가면, 큰 길 건너에 늘 열려 있던 일산 국민학교 정문이었다.
눈 앞에는 너른한 운동장에 끼리끼리 아이들이 올망 졸망 대는게 보였고, 청회빛 바다 물결 흔들리듯 아른아른 거렸다.
매일 등 하교에 큰 돌주먹 박혀 있고 씨알 감자 같은 싸래기 자갈돌 걷어 채며 흙먼지 풀풀한 큰 길로, 학생들의 우르르 뜀박질,
쪼롱쪼롱 귓전을 때리는 쌈박질, 자박자박 조막발 걸음새가 싸리비 장대비 쓸고가 듯 긴 대열로 포승처럼 연달았다.
세 든 집 판자 대문 한 쪽에 개미 구멍 숭숭 뜷린 야트막한 흙벽 한 담을 같이 쓰는 구멍가게 겸한 문방구가 있었다.
큰길에서 보면 움푹 꺼져 앉은 집 채에 숯검댕 무명치마 늘어진 듯 잿빛 추녀에서 서까래가 시루떡처럼 채곡채곡 내려앉았다.
움막같은 흐미한 유리문을 드르륵 열면 머리, 어깨, 등짝, 신발에 잿빛 서까래를 후루루 맞고도 아랑곳 않는 고만한
조무래기 패들이 진종일 구겨진 보자기처럼 꾸역꾸역 들어갔다. 십촉 전구에 아른대는 문방구 안팍에서 알사탕을 물거나
양손엔 과자 봉투나 공책 연필을 움켜 쥐고선, 개미 한마리 얼씬 않게 조용해진 운동장에 수업 종이 울려도 가게를 얼쩡거렸다.
스무 한살의 어설픈 엄마였던 나는 흘러내리는 아기의 포대기를 자꾸 추켜올리고 칭얼대는 아가를 사름사름 얼래며, 서까래 밑의
노는 아이들을 멀건히 바라봤다. 그 집에 이사한 기억은 지금도 까무룩하다. 철없는 임신 탓에 아무 경황이 없었나 보다.
세 식구의 조촐한 살림살이를 안채서 빌렸을 손수레에 한 짐 켜켜히 싣고 두고 가는 것이 있나 살던 방을 둘러 봤었다.
늘 보채는 아기는 단단히 들쳐 업었지만 뭔가 빼먹은 듯 허전했다. 벌건 연탄 불씨는 살린 채 연탄통에 넣어 손에 들었고
빈 아궁이도 살림이 빠진 방 구둘장도 손대 보니 식지 않고 따뜻했다. 세 식구 살던 흔적은 다 놔두고 덩그라니 살림만 빠졌다.
오후 석양에 가물가물 퍼지던 햇무리가 얼기설기 얹힌 손수레 이삿짐 위로 세모나 네모 육각형 동그라미 물결모양의
금빛 은빛 도장을 굴절로 찌그뜨리며 흔들거렸다. 난 손수레 뒤를 밀고 가다가 돌아다 보고 또 뒤돌아 보는데 흐릿하게
멀리로 가늘어 지는 길. 햇살이 눈부시고 흐리고 비오는 날도 세 식구 살았던 집. 작은 창문도 큰 학교도 키 낮은 문방구도
멀찌기 자그맣게 아득해졌다.
허~이 고수레~ 옛 이사 하던 날 1월 본 글
내 나이 스물 한살 이었다. 5개월 된 딸 아기가 밤낮 울어 대며 보챘던 단칸 방 살이였다
방안에 널브러진 지저귀와 두장 넣는 연탄 난로 둘레에 친 사각 철망이 온 방을 차지했었다.
내일은 이사 하는 날, 살림이래야 구르마 한짐으로 이사 갈 방에 옮기면 될 정도였다
살았던 집은 ㄷ 로 둘러져 있었다 지붕은 스레트에 함석을 잇대어 기울어 졌고, 군데군데 패여 금이 간 멍석만한 마당은
대낮에도 어두웠다 낡은 툇마루가 놓인 안채 두칸방은 주인이 살았고, 셋방 너~댓 채는 방 한칸에 방문 앞 신 벗는 곳에
쪽 마루 만한 칸 막이 댄데가 부엌이었다 곤로 한개에 냄비 두 세개 종지 그릇 몇개 숟가락 젓가락 단벌로 ,
남은 연탄 열 댓장에 연탄 집게 연탄통, 빨간 다라이물에 담궈논 애기옷, 똥기저귀는 물기만 꽉 짜서 가져가면 되었다
일산역 가까운 집 뒤로, 푸릇 푸릇한 밭떼기와, 사루비아 개망초 국화 민들레 채송화 피고 지는
꽃밭에 벌 나비 윙윙대고, 뙤약볕 벌판 혼곤한 바람 불어 흔들리는 억새 풀섶에 기차 레일이 숨어 있었다
방의 작은 창에 비쳐든 아침 햇살이 퍼져서야, 밤새 악다구니로 울어댄 애기가 지쳤는지 엄마 가슴팍에서 잠들어었다
애기가 갤까봐 숨 죽이며 토닥였다 아~부디 벌 나비 꽃밭 꿈꾸며 곤히 곤히 잠들어다오 아가야~
한 길로 난 창문 밖이, 왁자 지껄 해졌다 겨우 잠들던 아기가 놀라 깨며 자지러지게 또 울어댔다
방 한쪽 벽, 밖 모서리는 녹슨 경첩에 여 닫히는 삐걱대는 판자 대문 한쪽이었다
판자문을 밀면 길 건너에 늘 열려 있던 일산 국민학교 정문이었고 널찍한 운동장에 아이들이 웅성웅성 대는게 보였다
자갈 흙먼지 풀풀한 큰 길로, 학생들의 등교가 긴 대열로 줄을 이었다. 판자 대문과 나란히 붙고 큰길에서 보면 움푹 꺼진
서까래 내려 앉은 침침한 구멍가게겸 문방구가 있었다 조무래기 패들이 등 하교에 구겨진
보자기처럼 꾸역꾸역 쑤셔 들어가선 입엔 사탕을 물고 손엔 과자나 공책 연필을 사느라고 공부 시간도 빼먹기 일쑤였다
스무 한살의 젊은 엄마인 나는, 포대기에 싸안은 5 개월 된 애기 얼르며, 서까래 밑에서 노는 아이들을 멀건히 바라봤다
그 방에 셋 식구 살았는데, 그 집에 이사한 기억은 지금도 까무룩하다. 철없는 임신 탓에 경황이 없었나 보다
안채서 빌렸을 구르마에 한짐을 켜켜히 싣고, 두고 가는 것이 있나 살던 방을 둘레 둘레 돌아 봤었다
늘 보채는 아기는 단단히 들쳐 업었지만 뭔가 빼먹은 듯 허전했다
연탄 불씨는 살린채 연탄통에 넣어 들었는데, 빈 아궁이도 구둘장도 손대보니 따뜻했다
세 식구 살던 흔적은 다 놔두고 살림만 빼곡히 다 실고 구르마 뒤를 밀면서 뒤따랐다
오후의 가물가물 퍼지던 햇무리가 가재 도구위에 금빛 은빛 도장을 굴절로 찌그뜨리며 흔들거렸다
돌아다 보는데 뒤로 멀어지던 길, 살았던 집도 학교도 문방구도 멀찌기 아득해졌다
* 일 갔다와서 새벽 시간에 어색한 문장들을 다듬었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거듭 고쳐야겠다. 허~이 고수레~
첫댓글 정겹고 슬프고 아름다운 수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