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일 '폭설 후 청계산 등산'에 이어 을사년 1월 12일 후속으로 눈덮힌 청계산을 원터골에서 옛골까지 4시간만에 종주했습니다. 이 코스에도 지난 폭설 때문에 수십년 묵은 소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매주 일요일은 山친구 여럿이서 청계산 옥녀봉을 오르는 일정으로 되어있는데 이날은
옥녀를 각별히 챙기는 친구 몇명이 마나님 눈치를 보는지 옥녀봉에 갈 수 없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기수를 돌려서 모처럼 매봉을 오르기로 했다. 과천에서 오르고 있는 장촌에게 변경된 내용을 전했더니 더 좋다고 했다.
정대장과 나는 청계산역에서 원터골로 출발하면서 장촌에게 '옥녀봉으로 오르지 말고 삼거리에서 만나자'고 했다. 원터골쉼터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돌계단을 오르는데 팍팍하고 성가셨다. 게다가 뒤따라오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전화로 사업상 이야기를 어찌나 큰소리로 해대는지 귀에 거슬렸다. 그런다고 그이에게 그러지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원터골 쉼터를 지나 늘 하던대로 삼거리에 도착해서 장촌을 기다리고 있는데 고향까마귀로 보이는 우리 또래들이 몰려들었다. 정대장은 그틀과 구면인지 광주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주로 고교시절 여학교들 이야기였는데 사레지오 관련이었다. 그동안 장촌에게 연락을 취하니 장촌은 '길사정이 안좋아서 조금 늦어지니 헬기장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서 코재로 이동하여 일천수백계단을 오르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이젠을 차고 있어서 우리도 해야할랑가? 생각했다. 그런데 한무리 아가씨들은 아이젠없이 경쾌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바로 등뒤쪽에서 '나 어떻게 해...'하는 어릿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히득거리며 즐거이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중간에 한 두번 숨을 고르면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았다.
드디어 헬기장에 도착하니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한쪽 귀퉁이를 자리잡아 앉아서 잠깐 쉬는 사이에 장촌이 도착했다. 셋이서 인증샷을 찍고 있었는데 옆에서는 산새를 홀기는 젊은 남녀들이 있었다. 남자는 그 한발짝 떨어져서 사진 찍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여자 둘이는 손바닥에 먹이를 깔고는 새를 꼬시는데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지 손비닥에 내리지 않았다. 속상한 듯 한 아가씨가 '내가 인물이 안 되어서 그런가 싶다'고 했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돌문바위를 향해서 출발했다.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돌고 있었다. 나도 함께 돌디가 생각해보니 왼편으로 돌아야 효험이 더 있을 것 같아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떠나고 난 다음 왼쪽으로 두 바퀴를 더 돌았다. 그런데 정대장과 장촌이 '거꾸로 돌면 기도빨이 지워진다'고 하면서 매바위쪽으로 향했다. 나는 어떤 남자에게 부탁하여 돌문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겼다
일을 보고나서 부랴부랴 친구들을 따라갔더니 벌써 매바위를 배경으로 교대로 인증샷을 찍고있었다. 함께 찍기 위해서 놉을 구했더니 실박한 사나이가 응해주었다. 이어서 매봉에 올랐더니 기념석 앞뒤로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고있었다. 우리도 사람을 구했는데 이참에는 아릿다운 여성이 도와주었다. 폭설에 찢어진 소나무 아래서도 행상이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속절없는생각을 하고 있을 때 두 친구는 벌써 계단을 타고 건너편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는 길이라서 뒤쫓아가는데 또 커다란 소나무가 무너져서 갈 길을 막았다. 옆으로 피해서 가는 동안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한무리의 등산객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며 지났다. 그 중에 여자 셋은 온통 붉은 색으로 도드라진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등산도 등산이지만 멋을 내기 좋아한가 싶었다.
얼마쯤 더 갔을 때 파란 하늘아래 석기봉이 보이자 정대장 왈 '어서 오라고 하는 것 아니여'했다. 눈길에 위험할 것 같아서 포기하기로 하고 대신 정대장이 사진에 담았다. 이수봉을 향하여 걷고 걸었다. 계단을 두어차레 내리고 눈길을 밟고 가는 동안 사긱사각 밟히는 소리가 참 좋았다. 양지바른 곳에 왔을 때 누군가 '봄날이 온 것 같다'는 말을 하더니만 그만 넘어져 응덩방아를 찧고말았다.
산모퉁이를 한참을 돌고돌아 해맞이광장에 도착했더니 다른 팀들이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우리도 지평 무엇에 몽고제 심을 박아서 힘을 돋우었다. 이어서 이수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중간에 막아선 관측소를 피해서 몇차레 오르고 내리기를 하다가 드뎌 이수봉에 도착했다. 토박이 고양이는 안보이고 대신 쓰러진 소나무가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 시국이 복잡해서 옛사연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름드리 소나무숲길을 따라서 가는동안 수백년 묵은 소나무들이 갈라지고 찢어지고 무너져있었다. 길을 잠깐 멈추고는 속살이 하얗게 드러난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어찌하면 좋을꼬...'했다. 잘 아는 어떤 이는 '안 태어나는 게 좋겠고 굳이 태어난다면 나무가 좋겠다'고 하더니 글쌔...